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바른 교회의 세 가지 외적 징표 2, <교회에 대하여 1>, 제1강 교회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함, 20쪽

“개혁신학에서는 그 징표의 내용을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결하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말씀을 보이는 형태로 공급하는 예식으로서 주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가장 신성한 예식인 성례를 집행하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교회의 불순이라는 것을 언제든지 막기 위해서 엄격하게 권징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중략) 교회라는 바른 원칙(principle) 위에서 볼 때 무엇이 잘못되면 먼저,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하고 권하는 것도 권징의 한 형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결하게 받고, 주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가장 신성한 예식인 성례에 참여하며, 교회라는 바른 원칙 위에서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30일 목요일

바른 교회의 세 가지 외적 징표 1, <교회에 대하여 1>, 제1강 교회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함, 19쪽

“성경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확실히 신봉하면서 그 말씀이 가르친 거룩한 내용에 의해서 인간 만반에 대한 거룩한 하나님의 판단을 가급적 잘 알고 깨닫고 나가려고 하는 구심적인 노력이 현저한 그룹을 개혁교회라, 개혁신앙이라, 또 개혁신학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가르친 거룩한 내용에 의해서 인간 만반에 대한 거룩한 하나님의 판단을 가급적 잘 알고 깨닫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본질의 교회 2, <교회에 대하여 1>, 제1강 교회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함, 18쪽

“지교회의 형태는 보지 못하는 교회를 구현하는 데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만일 보편의 교회를 드러내지 아니할 때 그것은 한낱 종교 단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교회는 참된 교회, 본질의 교회를 나타내기에 적응한 형태 혹은 형식을 취하고 외부의 형태뿐 아니라 갖추어야 할 내용으로서 여러 가지 필요한 조건들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 본질의 교회를 잘 드러내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2021년 12월 28일 화요일

본질의 교회 1, <교회에 대하여 1>, 제1강 교회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함, 17쪽

“먼저 큰 원칙들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교회라는 것은 무엇이고 세상은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바로 잘 가르치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어떠하며 우리는 거기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소위 세계관이라는 것을 바로 수립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관이나 사관의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더욱 깊이 쌓아서 성숙한 사람답게 품고 살아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사상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상을 더욱 깊이 쌓아서 성숙한 사람답게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27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315쪽

“로마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그런 큰 능력을 발휘하면서 전진하는 실체요 현실인가를 증시하시기 위하여서 주께서 그 백성을 인류 가운데서 뽑아내시사 새로운 한 백성을 만드시고 새로운 통치의 내용을 만드시고 친히 군림하사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이제 저희가 다시 생각하였나이다. (중략) 이 거룩한 도리를 바르게 깨닫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1981년 3월 15일 주일 오전

2021년 12월 24일 금요일

복음의 서진(西進) 5,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314쪽

“하나님의 나라는 인류의 역사 위에 하나의 구체적이고 능력 있는 현실로 늘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믿고 자기 혼자 천당 간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 위에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라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구체적이고 능력 있는 현실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복음의 서진(西進) 4,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314쪽

“기독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성격으로 보아서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때 로마 제국 안에서 당연히 서향(西向)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진을 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역사를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문화가 찬란하고 또한 발전이 신속하고 강력해서 세계를 제패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이런 대제국의 큰 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퍼뜨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역사를 깊이 통찰하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22일 수요일

복음의 서진(西進) 3,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312쪽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이 인간 세계에서 형태를 취하고 나타나기 위해서는 문화적으로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선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문화적으로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을 깊이 깨닫고 잘 드러내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21일 화요일

복음의 서진(西進) 2,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311쪽

“기독교 복음의 내용이나 하나님 나라의 도리는 단순히 생각이 옅은 사람들이 알아듣고 깨달은 다음에 ‘그렇겠다’ 하고 생각하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깊고 문화가 높으면 그것이 그만큼 심오한 사상이 발전되는 데에 필요한 재료와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지(人智)가 발달하고 문화가 높으면 그만큼 하나님 말씀에서 더 깊고 오묘한 것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람이 모자라서 못하는 것뿐입니다. 위대한 문화를 가진 사회에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내용과 사상과 형태와 영광이 훨씬 더 찬란하게 비치는 것입니다.”

생각을 깊게 하고 문화적 소양을 높이 하여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내용과 심오한 사상을 더 깊이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복음의 서진(西進) 1,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310쪽

“복음의 도리가 주님의 거룩하신 경영에 따라서 확산되어 나가려고 하면 우선적으로 서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모든 사회적인 요건이 동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쪽에 있었습니다. 첫째는 언어가 통한다는 것이고 교통과 문화가 그쪽으로 발전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경영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2021년 12월 17일 금요일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308쪽

“이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 때문에 서로 초면이었어도 같은 정신이나 같은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전진하는 사람들이니까 자연스럽게 마음이 합해지는 것입니다. (중략)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하나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따로따로 자기 길을 자기가 가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같은 정신이나 같은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전진하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합하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16일 목요일

바울 일행의 로마 입성,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306쪽

“이 환란 많은 세상은 그런 풍랑이 있는 바다를 건너가는 배와 같지만, 주의 종들이 거기에 탔을 때에는 그들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이 되는 까닭에, 그 은혜를 받고 그것을 퍼뜨리는 것 때문에 사실상 참된 평안을 주고 안전을 주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일개 죄수로 표표(飄飄)하게, 초초(草草)하게 가고 있지만 사실상 그야말로 그 사람들 모두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계시하셔서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을 다 너에게 주마’ 하셨으니까 그에게 생명이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들을 위하여 도고하고 격려하고 또 그가 그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보증을 받았던 것입니다.” * 飄 나부낄 표. 표표하다 : 떠돌아다니는 것이 정처없다. 초초하다 : 갖출 것을 다 갖추지 못하여 초라하다.

이 세상의 거대한 풍랑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참된 평안과 안전을 증시케 하옵소서.

2021년 12월 15일 수요일

하나님께서 바울을 특별히 보증하여 주심,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302쪽

“주께서는 거룩하신 방법으로 그 종에게 생활의 수요에 충만하게 공급해 주셔서 필수품에 대해서 결핍이 없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부요롭게 사치스럽게 만들어 주지는 않으시지만 수요에 대해서는 늘 결핍 없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필요 이상을 요구하고 욕심을 부리고 자기의 사치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얻으려고 기도하고 울고불고 매달리고, 행복을 추구하느라고 좀 더 잘살아 보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법이 자재(自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에게 기본적인 생활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큰 법칙을 늘 시행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게 해 주십니다.”

기본적인 생활의 필요를 채워 주시옵소서.

2021년 12월 14일 화요일

몰타 섬 사람들의 신관, <사도행전9>, 제12강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함, 297쪽

“중용(中庸)을 취하고 냉정하게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한 사고 능력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번듯한 문화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을지라도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습관이 없이 직관과 간단한 일차적인 판단에 의해서 살아 버릇하면 생각이 극단에서 극단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 庸 쓸 용.

중용을 취하고 냉정하게 깊이 생각하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13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11강 로마를 향한 항행, 290쪽

“오늘날 저희를 하나의 사회에 두시고 살아가게 하실 때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님과의 관계와 건강하고 건실한 생활 태도를 주님께서 도구로 쓰셔서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중요한 요소로서 의미를 갖게 하신다는 것을 알고 사회에 대한 저희의 책임을 생각할 때에 저희의 생활과 인격이 건실해야 하겠고 합리적이어야 하겠으며 신앙이 기경(奇警)하고 사회의 이상한 풍조에 멍든 상태로서의 종교를 형성하지 않고 신선하고 능력 있으며 참으로 도움을 주는 건실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다운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을 여기서 다시 느끼옵나이다. 주님께서 저희를 다 주장하셔서 항상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땅 위에 있으면서 이 사회와 인류에 대해 저희가 나타내야 할 거룩한 영광과 빛과 능력을 바르게 보고 늘 생각해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 奇 기이할 기, 警 놀랄 경.

1981년 3월 8일 주일 오전

2021년 12월 10일 금요일

바울 사도의 현실적이고 이지적인 신앙 2, <사도행전9>, 제11강 로마를 향한 항행, 287쪽

“이것은 바울 선생의 신앙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이지적(理智的)이고 현실에 확호히 입각한 신앙인지를 표시해 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하신 그 약속 내의 하나의 재료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함부로 파괴한다든지 잘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하신 그 현상에서 언제든지 그 약속이 이를 수 있는 상황 가운데 자기 자신을 늘 준비하고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태도입니다.”

약속하신 그 현상에서 언제든지 그 약속이 이를 수 있는 상황 가운데 저를 늘 준비하고 갖추고 있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9일 목요일

바울 사도의 현실적이고 이지적인 신앙 1, <사도행전9>, 제11강 로마를 향한 항행, 286쪽

“바울 선생은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에게 생명을 주셔서 구원하신다고 했으니까 상태가 어떻게 되었든지 구원은 받는다고 방치한 일이 없습니다. ‘이 사공들이 가면 구원 못 받는다. 사공들은 절대로 확보해라’ 한 것입니다.
자기 현실을 제 마음대로 하고서 ‘하나님이 약속했으니까 은혜를 받는다’ 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약속을 하셨으면 그 약속의 위치에 서서 현상(現狀)을 파괴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 마음대로 현실을 파괴하고 괴상한 모험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8일 수요일

하나님의 종에게 주시는 특권. <사도행전9>, 제11강 로마를 향한 항행, 285쪽

“분명히 ‘너에게 맡겼다’ 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처사(處事)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살리려고 마음을 먹으면 살릴 수 있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구해서 은혜를 받을 수도 있고 그들을 포기하고 ‘모르겠습니다’ 한다면 하나님은 ‘그러냐? 그러면 내가 네 말대로 저들을 칠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종이 가진 큰 특권입니다. 바울 선생과 같이 직접적인 계시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 있는 일입니다.”

바울 선생을 인도하신 일과 그에게 내리신 계시를 잘 이해하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7일 화요일

기도 2,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71쪽

“주여, 저희에게도 이런 확호한 사상의 터 위에 서서 철저히 사는 거룩한 은혜를 주셔서 각 사람이 그러기를 원하고 이 세상적인 생각에 의해서 자기의 죄악적인 일을 용서해 가면서 변호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자기가 이 세상을 좇는 일을 자꾸 두호(斗護)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거기에 갖다 붙이는 교활한 일이 없게 하시고 저희들 자신이 아버님 앞에서 철저한 하나님 나라의 사상의 터 위에 서 있게 하시옵소서.”
* 두호하다 : 斗 툭 튀어나올 두, 護 도울 호. 남을 두둔하며 보호하다.

1981년 3월 1일 주일 오전

2021년 12월 6일 월요일

기도 1,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71쪽

“사람들은 세상의 큰 영광을 가지고 스스로 뽐내고 그것을 과시하고 있고 바울 선생은 그들과 대조하면 미미한 일개 죄수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러한 큰 영광을 버리고 자기와 같이 되기를 오히려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할 만큼 그가 서 있는 자리와 주께서 세우시고 입혀 주시는 그 거룩한 영광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고 하늘과 땅의 차이이옵니다.”

2021년 12월 3일 금요일

바울의 변명에 대한 베스도와 아그립바의 반응,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70쪽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구원의 세계가 진리의 세계요 높고 고귀한 세계인 것을 확신한 까닭에 ‘너희들이 아무리 찬란하게 꾸미고 있어도 결국 나와 같이 되는 것이 참된 행복이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못 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구원의 세계, 진리의 세계, 높고 고귀한 세계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고 살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2일 목요일

바울이 변개 이후에 사명의 생활을 시작함,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69쪽

“선지자들과 모세가 장차 반드시 성취되리라고 말한 것을 전하는데도 선지자들과 모세를 믿는다는 유대 사람이 그 큰 소망의 내용을 전하는 바울을 박해하고 (중략) 바울이 마치 절대 진리라도 파훼한 것처럼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은 그 속에 논리가 아니라 무서운 증오, 무서운 사탄적인 세력이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권세에서 뽑아 내셔서 구원받은 새사람으로서 성화의 생활을 날마다 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1일 수요일

바울이 받은 사명,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66쪽

“바울이 전하는 이 말씀의 큰 내용은 인류가 사탄의 권세에 눌려 있을 때에 사탄의 권세에 눌려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한 사람들은 사탄의 권세하에 있는 것이고,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탄의 권세하에 있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고 그들과 같은 생활 태도를 취하고 나가면 결국 사탄의 권세가 좋은 것 같아서 그리로 다시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성화의 생활을 하게 하셔서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큰 기업의 내용을 유산으로 받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30일 화요일

사물을 판단할 때 주의할 점 3,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63쪽

“사물에 대해서 평가를 하려면 적어도 평가의 대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서 있어야 하는데 그 이해가 바르지 못하고 빈곤하면 함부로 독단적인 이야기를 하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대할 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테니까 그에 대한 평가는 늘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그 평가를 최종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내 태도를 취하되 ‘위험하지 않게 실례되지 않게 이만한 정도에서 태도를 취한다’ 이렇게 잠정적으로 하고 좀 더 알아 가는 데에 따라서 태도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를 잘 알지 못하고 이론을 충분히 알지 못할 때에는 거기에 대해서 먼저는 무례하지 않게 또한 파괴하지 않고 잘못되지 않도록 태도를 취하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사물을 판단할 때 주의할 점 2,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63쪽

“사람이 이 세상을 볼 때도 단편적으로 보고 어떤 것은 자기의 눈에 정욕이라는 색안경이 씌워져 있어서 정욕으로 보니까 세상에 있는 악과 불의, 자기를 잡으려고 도사리고 있는 덫(trap)을 못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색안경 빛깔과 같아서 잘 안 보이고 유표하게 드러나는 화려하고 좋은 것만 보이니까 그것이 추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뒤를 좇는 것입니다.”

색안경을 끼고 화려하고 좋은 것인 줄 알고 그것을 추구하고 그 뒤를 좇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26일 금요일

사물을 판단할 때 주의할 점 1,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63쪽

“만일 바울 선생이 기독교 전체를 알았다면 처음부터 박해하려고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부분만 알고 그 진수(眞髓)를 몰랐고 무엇보다도 핵심이고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몰랐던 까닭에 그를 따르는 자들을 죽여야 하고 옥에 가둬야 한다고 박해하고 나섰지만 일단 예수님을 접한 후에는 자기가 지금까지 알고 이해하고 있던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오해였던가, 무서운 단견(短見)이고 편견이며 얼마나 죄악적인 생각이었던가를 느꼈고 환연히 대오(大悟)하고 대각(大覺)하여 회개를 했습니다.”* 髓 골수 수. 悟 깨달을 오.

부분만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고 전체를 논하지 않게 하시고, 진수며 핵심이고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따르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사도 바울의 변개(變改),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61쪽

“지금까지 ‘예수는 죽은 인물이다. 위대한 기적을 행한 인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다’ 하고 생각했는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예수가 살아 계실 뿐 아니라 자기에게 여러 가지 분부를 하시고 그 분부의 내용에서, 분명히 자기를 일격에 지옥으로 보내실 수 있는 분이 그러지 아니하고 자기를 건져 내신다고 하는 큰 자비를 깊이 느꼈던 것입니다.”

형벌과 지옥과 무서움 가운데에서 불러내신 크신 자비에 감사합니다. 생각이 열려서 사색을 해 가지고 자꾸 깨달아 나아가며 불러내신 소명을 이루어 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사탄의 두 가지 특성, 미움과 자기 자랑,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55쪽

“근본적으로 사탄의 성격은 악 자체이고 증오입니다. 악을 가지고 있고 증오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뽐내려고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성격에 어떤 사람이 제일 가까운가를 보아서, 또한 그것을 이용하면 얼마만큼 효과를 내겠는가를 보아서 이용하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정욕과 인격적인 활동이 악을 좋아하지 않게 하시고, 악에 물들어 점점 거기 깊이 들어가서 결국 사탄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2021년 11월 23일 화요일

구약의 성취로서의 신약 교회,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52쪽

“바울 선생이 주장한 대로 유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거룩한 교회가 아담 이래로 지금까지 면면히 흘러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만 신약의 교회는 때가 차서 충만한 계시가 나타나서 과거에는 감춰져 있었고 다 잘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이 보충되어 이제 완전한 자태로 보여 주시는 것일 뿐입니다. 신약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우월성은 결국 구약이 지향하고 바라고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사실의 성취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것을 떠나서 신약의 교회만 따로 독립해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이래로 인류 전체에게 주신 거룩한 언약이 계계승승해서 우리에게까지 전달되고 오늘날 우리도 그 언약 가운데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22일 월요일

자기를 변명하는 바울의 태도, <사도행전9>, 제10강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 248쪽

“바울 선생은 이 세상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인사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말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이야기를 하고 또한 충정으로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은 주고 존경할 것을 존경하는 아주 참 훌륭한 인격이 여기서도 벌써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배정(配定)하에서 어떤 사람에게 돌아가는 이 세상의 권위와 권력이나 영광에 대해 그 사람이 무엇이었든지 그것을 문제 삼지 않고 먼저 그 지위나 위치에 대해서 그만큼 경의를 표하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40쪽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왕으로 오늘날 그 나라의 백성을 통치하시되, (중략) 거룩하신 은혜로서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오니 저희들이 이런 엄위로우신 주님 앞에 스스로 두려워하며 그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옵소서. 주의 엄위와 돌아보심과 주장하심은 온전히 천하에 있는 어떠한 권세로도 막아낼 수 없다는 큰 사실을 저희에게 알려 주시고 그와 같이 내려 주시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옵나이다. 이런 큰 은혜 가운데서 저희가 확연한 발검음으로 주님의 거룩한 나라의 사실들을 이루어 나가게 하시옵소서.”

1981년 2월 22일 주일 오전

2021년 11월 18일 목요일

높고 낮은 모든 자에게 복음이 전파됨,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39쪽

“이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리스도를 왕으로, 주(主)로 모시고 살게 하시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그 나라의 법을 지키면서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상에 그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나타내는 역사를 지어갈 때에는 한 사회의 일정한 부류의 사람만을 뽑아내어서 쓰시는 것은 아닙니다. 왕후장상(王侯將相)도 뽑아내고 저 아래 촌에서 밭을 갈고 있는 농부도 뽑아내고 혹은 탄광 속에서 일하는 사람 혹은 아동주졸(兒童走卒)이라도 뽑아내어서 새로운 거룩한 나라를 형성해서 땅 위에 역사를 지어나가시는 것입니다.” * 王侯將相 : 제왕ㆍ제후ㆍ장수ㆍ재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兒童走卒 : 철없는 아이들과 어리석은 사람들을 아울러 이르는 말.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리스도를 왕으로, 주로 모시고 살게 하시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그 나라의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17일 수요일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기회를 선용함 2,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33쪽

“주께서 자기를 로마로 보내셔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주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사용한 것입니다.”
“자력을 조금도 의존하지 않았지만 목전의 기회를 잃지 않고 선용하고 미래의 결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큰 원칙입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목전에 주신 기회를 늘 선용하게 하시며, 앞으로 오는 문제에 대해서 결과는 주께 맡기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16일 화요일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기회를 선용함 1,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32쪽

“‘이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이냐’ (중략) 주님의 뜻과 같이, 주님이 원하시는 바와 같이 자기도 원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 영혼의 기능은 그냥 등신과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당하는 대로 목전의 무엇이든지 하고 ‘나는 이것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뜻과 같이, 주님이 원하시는 바와 같이 원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12일 금요일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3,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31쪽

“늘 주의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지혜 없는 자같이 되지 말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자세히 주의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주의하지 않고 그저 어디서 들어왔든지 임시로 들어온 종교 감정을 가지고 ‘주께서 하시니까 괜찮다’ 하고 모험을 하고 나중에는 위험한 일을 해 놓고, 안 되는 일을 떡 저질러 놓고 ‘저질렀으니까 이제는 되겠지’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어 놓으신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을 어기고 나가는데도 자꾸 되게 만들어 주시는 일은 없습니다.”

종교 감정을 늘 주의하게 하시고, 지혜롭고 건강하고 건실한 신앙, 합리적인 신앙을 가지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11일 목요일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2,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31쪽

“‘기회를 사라. 때가 악하니라’, 악이 항상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와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라.’ 이해하라는 말은 주의 뜻은 내가 몰라도 저절로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것이 주의 뜻이다. 주의 뜻은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다’ 하는 것을 이론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께서 기뻐하실 것인지? 이렇게 해 보면 될까?’ 하고 전부 증험(證驗)해 보라는 것입니다.” * 證 증거 증, 驗 시험 험 : 실지로 사실을 경험함. 증거로 삼을 만한 경험. 

주의 뜻을 이론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1,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30쪽

“기회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고 그냥 되는 대로 하지 말고 기회를 사라는 말입니다. 자기에게 어떠한 가능성이 있고 충분히 이렇게 자기가 결정을 할 수 있으면 그렇게 움직이고 나가고 그래서 가능한 방면, 건설하는 방면, 그리고 전진하는 방면으로 가는 것이지 후퇴하고 아무렇게나 내맡기고 그러고서 자기가 무슨 불사신인 양 성전에서 뛰어내리듯이 ‘이런 불가능이 있더라도 이것을 가능하게 하신다’ 하고 뛰어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주를 시험하는 일입니다.”

가능성을 충분히 헤아려 결정하고 전진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9일 화요일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고한 이유 2,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30쪽

“주님의 뜻을 행한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가 주님을 앞질러 가는 것도 옳지 않지만 주님이 행하시려고 하시는 일에 대해서 판별하지 못하고 주를 함부로 시험해서 ‘이렇게 하면 주님은 하신다고 하셨으니까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하고 주를 시험하고 나가는 일, 이 두 가지가 다 큰 잘못입니다.”

주님보다 앞질러서 자꾸 계획하고 무엇을 꾸며 대지 않게 하시고, 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되어 가는 대로 두지도 않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8일 월요일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고한 이유 1,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30쪽

“‘이 기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그것을 하지 않고 어리석은 짓을 해서 내가 큰 곤란을 받든지 죽든지 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책임이 내게 있는 일이다. 주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주께서 당신의 뜻을 내게 이루실 때에는 나는 완전히 수동적으로 그저 기계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주신 기회를 주의해서 써야 한다’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주신 기회를 지혜롭게 최선을 다해 주의해서 쓰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2일 화요일

벨릭스가 정치적인 고려로 바울의 석방을 미룸, <사도행전9>, 제9강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고함, 223쪽

“그냥 몸만 와서 이야기만 듣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돌아가서 지금까지 대개 설명을 들은 부분까지 보았으면 그다음 부분은 무엇인가 하고 살펴서 그 이야기 자체를 잘 알고 있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최소한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은 귀만 가지고 오는 일이 없이 마음을 준비하고 참으로 이야기를 들으려고 나아와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배운 말씀을 다시 살피고 또 마음을 준비하고 참으로 이야기를 듣고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2021년 11월 1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9쪽

“말을 하게 한 그 내용의 배경에 있는 그 큰 사상과 그 확신의 재료와 내용들을 오늘날 저희들도 명백하게 파악하고 있으면서 주의 말씀이 표현될 때에 적든지 많든지 확연한 터 위에서 늘 나타내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교회가 전체적으로 거룩한 도리를 잘 파악해서 이 거룩한 도리 위에서 확연히 서서 저희들의 생활도 경영하고 저희들의 증거도 있게 하시옵소서.”

1981년 2월 15일 주일 오전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바울의 변론의 근거가 된 사상,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8쪽

“신약의 교회는 분명히 부활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부활의 능력의 발휘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사실은 최종 인류의 역사의 종결 때에 구체적으로 사람의 몸까지 영화된 상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완성되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참된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미 살아나 가지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중생의 사실이 부활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종말적인 의미의 부활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부활의 거룩하신 영광의 능력은 이미 중생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중생이라는 사실 위에서 비로소 교회는 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다시 살아난 새사람으로서 교회에서 부활의 거룩하신 영광의 능력이 발휘되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27일 수요일

계시의 발전과 신론 3,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6쪽

“오늘날 우리가 확실히 이단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계시가 더 이상 계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시는 더 계속되지 않고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상 다른 것을 더 보태면 그것은 계시도 아니고 그거야말로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완성된 계시를 잘 배우고 깨닫고 생활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계시의 발전과 신론 2,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5쪽

“자꾸 믿어 가면서, 칼빈 선생 말마따나 모든 지식은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당한 지식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알면 아는 만큼 하나님을 더 깨닫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쓰레기 지식이 많으니까, 알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너무나 많이 우리 눈과 귀에 다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색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집어 내던지는 지식의 재료라도 주워서 그것을 연마해서 하나님께 대해서 깨닫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든지 경륜이라든지 또 하나님의 크신 계획 내용에서 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많은 세월 동안 배우고 깨닫고 생활하는 데에서 얻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계시의 발전과 신론 1,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4쪽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계신다’ 이런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변증해 주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해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그것을 알 만한 것이 다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더 알아가며 그 지식이 자라나고 자꾸 깨닫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바울의 변론 내용,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3쪽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이것은 ‘명백한 사상 체계와 명백한 논리하에서 결국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내가 말을 한다’ 그런 뜻입니다. 왜 갑자기 양심을 들고 나서는가 하면, 지적인 감정, 소위 센티멘트(sentiment)라는 것이 양심이라는 것인데 자기는 자기의 지적 감정에 있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는 것입니다.” * sentiment : 정서, 감정.

성신께서 역사하셔서 명백한 사상 체계와 명백한 논리하에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유대인들이 바울을 이단이라고 한 이유,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0쪽

“계시가 (중략) 역사를 통해서 장기간 또 더해지고 또 더해지면서 전에는 불분명하던 것이 명백하게 되고 전에 종자(種子)의 형태로 있던 것이 줄기의 형태로, 줄기의 형태는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의 형태로 발전해 나왔다면 그 계시에 의한 크라이테리아 역시 요지부동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 種 씨 종. 크라이테리아(criteria) : 기준.

하나님께서 내신 여러 가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방법, 인간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항상 가변적(可變的)이며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20일 수요일

이단이란 무엇인가 3,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07쪽

“가령 ‘예수님이 지상에 와서 유대 땅에다 천년 왕국을 건설하시고 유대 사람들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운다’ 하고 주장하면 개혁교회 신학으로 볼 때에는 비성경적이고 비개혁교회적입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을 이단이라고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 형제들도 있다. 생각을 그렇게 하니까 어쩔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한 책이냐?’ 할 때 성경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리는 믿지만 ‘아니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포함한 책이다’ 그렇게 주장을 하면서도 기독론에 있어서 예수님의 속죄와 또 구원론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들을 그대로 지지하고 나간다면 그 사람을 이단이라고 못 하는 것입니다.”

바른 기독론을 지지하고 나가게 하시며, 형제들을 정죄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이단이란 무엇인가 2,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07쪽

“삼위일체에 대해서 ‘세 개의 양태(樣態)다. 마치 물이 있고 일면 얼음이 됐다가 열을 가하면 증기가 되어서 올라가는 것과 같다. 삼위일체는 그런 것이다. 하나의 실체이고 다만 세 개의 양태다’ 하고 말하면 그것은 유니테리언(Unitarian)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니테리언은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樣 모양 양, 態 모양 태. Unitarian : 유니테리언교도(삼위일체론을 부정하고 신격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한 파)

아들이신 하나님, 아버지 되신 하나님, 부어 주시는 성신님, 분명한 삼위일체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계신 것을 믿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이단이란 무엇인가 1,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06쪽

“무엇을 어떻게 주장하면 이단이 되느냐 하면 기독교가 기독교 되기에 필요한 것, 즉 정통이 되기에 필요한 절대적인 요소는 많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절대적인 요소를 가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감하면 안 되는 진리를 파괴하고 딴 것으로 대치하면 비로소 그것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며 나의 구속의 주이시며 부활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가감할 수 없는 중요한 것으로 늘 붙잡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논고,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02쪽

“신비한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생명을 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람을 새로운 생명으로 살려 놓으시는 이런 큰 중생의 사실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 함부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이 많으면 그 속에서 중생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이지 사실상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을 주셨고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셨으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을 하는 것이고, 불리한 시기라고 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바울 선생의 변호는 자기변호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예수님의 일을 증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14일 목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89쪽

“저희를 건지시고 참으로 주신 바 진리의 요구가 무엇인가 그리고 저희에게 주시는 은혜와 능력은 무엇인가를 바르게 깨달아서 구원하신 목적을 바르게 생각하고 알아서 이를 향하여 바르게 전진하게 하옵소서. (중략) 항상 주님의 건져 주심 가운데서 진리의 핵심을 알고 참된 진리의 요구를 알고 하나님 나라의 참자태를 늘 터득하고 살게 하옵소서.”

1981년 2월 8일 주일 오전

2021년 10월 13일 수요일

유대주의의 문제점 4,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88쪽

“기도 자체는 실체가 아닙니다. 방법이지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해서 벌써 덕을 많이 쌓은 것같이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간 것같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생각입니다.”

기도 자체로 무엇을 이룬 것같이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경륜의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사명을 이루어 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유대주의의 문제점 3,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87쪽

“누가 이런 것을 어기면 몹시 비난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방 사람과는 같이 앉아서 밥도 안 먹습니다. 얼마나 도도합니까? 주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체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의나 인이나 신은 버렸도다”(마 23:23) 하고 말씀하셔서 의로움과 어짊과 믿음이라는 그런 실체법적인 내용을 다 버리고 박하, 회향,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면 굉장한 것을 이룬 것같이 생각하는 이런 태도, 실체와 형식과의 관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히브리 사람들의 그릇되고 전도(顚倒)된 생각에 대해서 맹렬하게 비난하셨습니다.” * 顚 꼭대기 전, 倒 넘어질 도. 위와 아래를 바꾸어서 거꾸로 함.

율법의 실체법적인 정신, 그 영원한 법으로서의 의미를 궁구해서 터득하게 하사, 의로움과 어짊과 믿음을 목적으로 여기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유대주의의 문제점 2,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86쪽

“기독교 안에서도 어떤 절차를 밟아야 무엇이 되고 어떤 절차를 안 밟으면 안 된다고 금지해 놓습니다. ‘이것은 목사만 해야 하고 목사가 아니면 못 한다’ 이렇게 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목사가 아니면 축복을 못하게 되어 있지요? 축도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형식법이라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습니다.”

형식을 대단하게 여겨 그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지 않게 하시며, 그보다 실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8일 금요일

유대주의의 문제점 1,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86쪽

“아무도 주께서 말씀하신 그 고도의 인격적인 위치, 도덕적인 위치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니까 저마다 다 흠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형식법의 문제에 있어서는 예컨대 할례를 받은 것과 안 받은 것은 분명하게 구별되니까 ‘안 받았으니까 안 된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코노미 안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 하고 형식법적인 것을 요구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그 고도의 인격적인 위치, 도덕적인 위치에 이르고자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하시며, 형식과 절차로 조건을 삼거나 구별하고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7일 목요일

바울이 박해를 당한 이유,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83쪽

“복음의 조건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고 믿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속죄와 새 생명의 은혜를 받고 믿는 것을 전부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할례를 못 받았으면 구원 못 받는다’ 한다면 할례가 굉장히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조건의 한 조목이 될 것인데 이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속죄와 새 생명의 은혜를 받고 믿는 것을 전부로 삼고, 그 밖의 다른 조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6일 수요일

주님께서 바울을 보호하여 주심,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78쪽

“천부장 루시아는 병정을 시켜서 바울을 거기서 빼내어 다시 병영에 보호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섭리 가운데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중략) 그때 환경 가운데 있는 논리적인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천사가 와서 갑자기 그를 싹 건져서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고 천부장이 병정을 거느리고 오도록 하셨고 또한 무슨 문제인지 알고자 하여 공회를 열게 하셨고 천부장이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 끝까지 보호해야 할 큰 책임감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큰 섭리로 환경 가운데 있는 논리적인 방법으로 보호하여 주옵소서.

2021년 10월 5일 화요일

유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방식,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77쪽

“그들이 고대해 온 구주가 곧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전파한 것입니다. (중략) 어떤 말씀이 사람들 마음 가운데 크게 역사해서 부딪쳐서 그의 눈을 뜨게 하는 데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신님의 구속의 은혜의 역사가 거기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신님의 은혜로 말씀이 마음 가운데 크게 역사해서 부딪쳐서 눈을 뜨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4일 월요일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75쪽

“세상 사람이 요동하고 격노(激怒)하고 격도(激濤)가 흉용(洶湧)해도, 이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게 하고 아무리 분노하고 아무리 성난 물결과 같이 떠들어 댈지라도 주의 주장(主掌)과 인도하에 있던 주의 종 바울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모든 것을 사명을 수행하는 방도로 가장 선히 이용했다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습니다.” * 激 격할 격, 濤 물결 도. 洶 용솟음칠 흉, 湧 물 솟을 용. 掌 손바닥, 일을 다루는 솜씨 장

이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게 하고 아무리 분노하고 아무리 성난 물결과 같이 떠들어 댈지라도 주의 주장(主掌)과 인도하에 있으면서,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모든 것을 사명을 수행하는 방도로 가장 선히 이용하게 하옵소서.

2021년 10월 1일 금요일

공회가 바울을 정죄할 수 없었던 이유, <사도행전9>, 제7강 바울이 당한 고난과 주님의 보장, 173쪽

“때때로 시대의 선구자가 박해를 받고 심판을 받을 때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심오한 진리에 대해서 무지와 몽매와 저급이 항상 큰 권세를 가지고 앉아서 뽐내고 논란하고 비난하고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교회 안에도 있고 사회 안에도 있기 쉽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상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9일 수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7쪽

“아버지께서 저희가 좀 더 어떻게 인격으로서 장성하며 어떠한 사상을 포회하며 어떻게 문제를 생각해 나가야 하며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서 좀 더 영혼을 가진 사람답게, 그저 가장 단순한 조직으로만 되어 있어서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사는 사람이 아니고 깊은 생각과 사상을 가진 사람답게 정신을 차려서 깨달아 나아가도록 아버님의 계시의 내용과 가르침으로 풍성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신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그 보고(寶庫)와 풍성한 내용들을 인하여 저희들이 주께 감사드리지 아니할 수 없사옵나이다. 이제 그것이 우리 안에서 생명의 양식으로 충분히 공급되기를 원하오며 깨달아 알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리하여 주님의 자식으로서 거룩한 위치에 확실히 서게 하옵소서.”

1981년 2월 1일 주일 오전

2021년 9월 28일 화요일

바울의 문제를 판단할 능력이 없던 산헤드린,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6쪽

“‘네가 잘했다, 네가 잘못이다’ 하는 것이 명료하지 않을 때에는 그런 문제를 가지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몇 가지 조건에 의한 공식(formula)를 가지고 공리적으로 자기 종교적인 요구를 만족시키겠다고 하지 말고 한 인격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크게 가르쳐 주셨으니까 그런 것을 바르게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인격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크고 높게 배워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7일 월요일

멸망을 향해 치달아 가던 유대 사회에 참된 빛이 비침,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3쪽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충만한 계시 가운데 있고 거룩한 사상 가운데 있고 또 하나님이 쓰시는 그 거룩한 성신의 충만한 능력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울에게서 물 흐르듯이 나오는 충만한 계시가 기독교의 교리 체계를 세웠고 큰 사상의 기저(基底)를 다 준 것입니다. 또한 바울 자신이 그런 능력 있는 사상가였고 동시에 성신에 충만해서 가장 거룩한 인격으로 활동을 했으니까 바울과 접촉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기회입니다.”

바울을 통해 좀 더 배워 빛으로 생명으로 참된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5일 토요일

아무런 반성이 없는 이스라엘 일반 민중의 상태,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1쪽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찔린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는 과연 그런 죄인이다. 어찌할꼬?’ 하고서 나아온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소망이 있었고 빛을 찾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아온 사람들이 기독교인입니다. 요컨대 기독교는 전비(前非)에 대한 반성과 전비에 대한 정당한 평가 위에 늘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前非 : 이전에 저지른 잘못.

어떤 인간이 되고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지 어제와 오늘을 반성하는 지혜로움을 가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4일 금요일

역사를 통해 현저히 대조되는 두 가지 사실,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56쪽

“역사는 단순히 인간들끼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이 역사의 성격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큰 세력이 움직이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도 이 인류 역사 위에 능력적인 사실과 영광으로 함께 전진해 가면서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캄캄한 절망과 어두움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능력적인 사실과 영광을 보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하나님을 양심에 따라 섬겼다는 말의 의미,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49쪽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바 그 거룩한 계시에서 ‘이것은 죄다’ 하는 하나님의 가치 판단이 그 속에 있어야 양심도 그 가치 판단에 의존해서 ‘그러니까 이 죄는 행치 말아라. 의는 행하라’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사람을 죽여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를 만큼 암매하고 무지한 가운데로 빠져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도 일찍이 자기 양심을 따라서 기독교를 핍박했던 것이지 양심에서 하지 말라는데 억지로 혹은 포악이 좋아서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중략) ‘범사에 하나님을 섬기되 양심에 따라 섬겼다’ 할 때는 필연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인식의 터 위에서 그것이 가르쳐 주는 한에서 바른 데를 찾아 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말을 하거나 글을 쓰든지 하나님께서 보이신 바 그 거룩한 계시에 눈을 떠서 그 인식의 터 위에서 바른 데를 찾아 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1일 화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40쪽

“이 세대에도 저희들이 참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고 그러한 그릇들이 되려면 저회하고 편협한 위치, 아무것도 아닌 가장 비열한 위치에서 빙빙 도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하겠고 저희들이 주님을 향해서 주의 나라의 거룩한 도리를 알고 증거할 수 있는 거룩한 은사와 능력 가운데 확호히 늘 서야만 하겠사옵니아다.”
“주여, 저희들이 주께서 세우신 거룩한 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전진해 나가는 것인가에 대해서 용이하게 안일하게 생각지 않도록 하여 주시고 거기에 대한 저희의 책임은 무엇이며 과연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가, 그런 성숙성이 있는가를 반문케 하옵소서.”

1981년 1월 25일 주일 오전

2021년 9월 20일 월요일

동족을 향한 바울의 사랑,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39쪽

“조금 전에 두드려 맞고 막 야단이 났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런 연설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바울 선생은 성신의 충만함을 받았고 또 그렇게 인격이나 인품이 고도한 위치에 있어서 책임감이 철저하고 깊고 또 그의 사랑도 그렇게 철저하고 깊은 사람이었기에 거기서 이런 연설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신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을 따라 인격이나 인품이 자라나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8일 토요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다,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36쪽

“진리를 모르고 히브리주의의 강한 껍데기에 꽉 눌려 가지고 그 속에 들어앉아서 그 이상 나가지 못하고, 그 동굴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던 자기에게 동굴의 입구를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보여 주시고, 눈을 환연히 열어 주셔서 나갔다는 것입니다.”

눈을 환연히 열어 주셔서 예수님의 큰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그리스도의 초연성을 증거함,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34쪽

“바울 선생은 여기 폭도들에게 그러한 사실에 접촉할 수 있도록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반기독자였던 자기가 당장에 뒤집어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느냐 하면, 반기독자가 된 근거의 최저에 있으면서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그리스도는 인간이다. 야훼만이 신이다’ 하는 것인데 그것이 무너지고 ‘그리스도가 곧 그 야훼 신이다’ 하는 데로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속하여 주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합니다.

2021년 9월 16일 목요일

헤브라이즘의 독특성,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8쪽

“사람의 생활에는 그 두 가지 큰 중요한 지침과 규범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내가 한 인간으로서, 한 인격으로서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둘째는 내가 한 사회적인 존재인 까닭에 이 사회에 대해서 남에 대해서 어떠한 의무를 늘 짊어지고 있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부정당한가를 늘 바르게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계시에 입각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며 사회생활도 하고, 확호한 사관을 가지고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상적인 사회와 인간을 바라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5일 수요일

바울이 핍박을 받은 이유,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4쪽

“그러면 왜 하필 바울을 없애려고 하느냐? 왜 그런 시기와 증오가 발생하느냐 하면 최종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역사적인 전진을 저해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그것을 파괴하려는 마귀의 의도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자기에게 적응한 사람들을 그때그때 잡아서 그 사람의 증오심이라든지 암매라든지 깨닫지 못하는 것 등을 이용합니다. 그것이 마귀가 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역사적인 전진의 대열에 참여하여 성신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4일 화요일

히브리주의자 사울이 기독교를 핍박했던 이유 2,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2쪽

“기독교 역사상에서 사도 바울 선생의 위치가 아주 독특한데 그의 특성 중에 가장 큰 것 하나를 말하라고 하면 철저하다는 것입니다. 뜨뜻미지근하지 않고 철저하게 규명해서 늘 발본색원적(拔本塞源的)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 拔本塞源 : 뺄 발, 막을 색.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버려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함. ≪춘추좌씨전≫에 나온 말.

뜨뜻미지근하지 않고 철저하게 규명해서 늘 발본색원적(拔本塞源的)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3일 월요일

히브리주의자 사울이 기독교를 핍박했던 이유 1,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1쪽

“개혁 교회는 역사적으로 단순히 말씀과 성례뿐 아니라 또 하나는 권징이라는 것을 교회의 징표(mark)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불순을 숙청하고 깨끗이 하는 것이 개혁 교회의 가장 교회다운 특징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회가 교회인 것을 세상에 증시하려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방도로 나타나야 하고 둘째, 말씀은 볼 수 있는 형태로 공급되는데 그것이 성례입니다. 성례가 있어야 하고 셋째, 교회의 불순을 늘 제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순을 늘 제거하고 깨끗이 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2021년 9월 10일 금요일

바울의 사명과 책임감,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0쪽

“바울은 아주 예민한 사람이고 그런 것을 깊이 잘 아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자기 책임이며 무엇이 자기의 염결성(廉潔性)이며 위신(威信)인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 廉潔 : 청렴하고 결백함. 威信 : 위엄과 신망.
“이방과 임금들과 유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릇으로서의 임무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있는 곳에는 책임이 있고 임무가 있는 곳에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책임이며 염결성이고 위신인지 명확하게 알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9일 목요일

바울이 당한 환난의 의미,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17쪽

“사람 보기에는 부자유한 것 같고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그 거룩하신 뜻에 맡기고 성신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은 각각 그에게 주신 은사와 사명과 분수대로 자기의 책임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그 거룩하신 뜻에 맡기고 성신님만 의지하고 나아가, 주신 은사와 사명과 분수대로 책임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8일 수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110쪽

“때를 따라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요구를 억제하시면서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고귀한 도덕인 것을 가르쳐 주시고 이와 같이 주를 순종하여 그 임무를 잘 마치게 하시나이다. (중략) 저희에게 주신 것들은 가장 미미하고 작은 부분일지라도 저희의 힘에는 겨운 큰 것들이오니 이것들을 잘 감당해 나가게 하시고 정신을 차리고 큰 세계를 볼 수 있게 하옵소서.”

1981년 1월 18일 주일 오전

2021년 9월 7일 화요일

회심 후 바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109쪽

“주님께서 ‘너는 그렇게 하면 마음이 개운하고 개결(介潔)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내 계획은 그렇지 않다. 너를 저 멀리 이방 사람에게 보내려고 했으니 어서 나가거라’ 하신 것입니다. 그냥 바울 선생의 마음에 있는 그 개연(介然)한 심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자기의 책임을 다하게 두었다면 바울의 고집과 바울의 주장과 그의 인격으로 보아서는 거기서 순교했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재촉해서 ‘빨리 나가거라’ 하신 것입니다.” * 介潔하다 : 깔끔할 개. 깨끗할 결. 성품이 깨끗하고 굳다. 介然하다 : 굳게 지켜 변함이 없다.

종교적 감정으로 움직이지 말고 주의 계획대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6일 월요일

사도 바울이 처해 있던 상황,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104쪽

“물론 야고보도 훌륭한 감독이지만 그가 그 일에 대해서 철저한 사상가로서 자기 임무를 다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략) 요컨대 의사가 없다는 것보다도 능력의 부족과 철저한 해석의 부족 때문에 바울 선생과 같이 투철하게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로 학적으로 체계를 세워 가지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아마도 그가 쓴 듯하다고 하는데 야고보서를 보더라도 그런 사상 문제가 그렇게 심오하게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투철하게 논리적으로 체계를 세워 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4일 토요일

유대주의 신자들의 문제점,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100쪽

“사람들은 구원이라는 것을 ‘대문 안에 발만 들여놓으면 그만이다’ 하는 식으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특별히 한국에는 과거에 그것이 많았습니다. (중략) 교회의 의식과 제도와 활동은 가르쳐도 복음의 본질적이고 심오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처음에 전도를 받으면서 들은 내용 이상으로 별로 더 많이 가르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풍부한 내용을 성신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하나하나 배워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3일 금요일

예루살렘에 대한 사도 바울의 부채감,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96쪽

“유대주의의 지도자로 서 있었던 그 자리에 가서 어떤 바울인가를 다시 한번 증거해서 자기가 과거에 진도(眞道)를 핍박했던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이기 원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책임감이 왕성한 분입니다. 잘못을 항상 자기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책임감입니다.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 眞道 : 참된 도리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 늘 생각하고 항상 잘못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일 목요일

바울이 쓴 13개의 서신,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94쪽

“사색하고 명상하고 기도하고, 친구가 오면 담화를 하고 지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한 결과로 자기 사상의 성숙한 내용을 완결하기 위해서 에베소서를 쓰고, 위대한 교회의 진리를 가르치고 위대한 기독론을 가르치는 골로새서를 씁니다.”

바울의 서신을 통해 성숙한 사상과 위대한 교회의 진리와 위대한 기독론을 배우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일 수요일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대한 우리의 신앙,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92쪽

“신성하고 거룩한 정신과 또한 능력의 지배를 받는 까닭에 불순과 죄악적인 것으로 사상 내용을 왜곡할 위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순을 통제하셨다는 점에서 영감의 특이성이 있고”
“인간의 모든 사고 인식 작용으로 터득한 영역 이상의 광활하고 고귀한 세계의 사실들을 터득해서 전했다는 점, 또한 거기에 인간적인 약점과 부족으로 말미암은 불순(不純)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서 듣고 보되 사람의 소리라는 형식으로서 나타낸 것을 본다”

성경 66권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30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3강 계시의 그릇으로 쓰인 바울, 88쪽

“누군가가 참으로 순결하고 거룩한 사상을 가르친다 해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오히려 반감을 가지고 많은 환난과 고통과 어려움을 일으키는 것을 저희들이 아나이다. 그럴지라도 주의 자녀들은 언제든지 순결하고 아름답고 깊은 사상에 더욱 마음을 두고 찾아서 깨닫고 나아가려고 해야 할 것이고 또한 스스로를 반성해서 자기의 천박한 위치에서 사물을 비판하는 그릇된 일을 버리고 거룩히 살아야 할 것이옵나이다.”

1981년 1월 11일 주일 오전

2021년 8월 28일 토요일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태도, <사도행전9>, 제3강 계시의 그릇으로 쓰인 바울, 86쪽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어떻게 해야겠는가? ‘받아야겠다. 받되 그 사람이 의심하는 일을 가지고 비판할 것이 없다. 장성하지 못해서 모르는 까닭에 장성하도록 차례차례 먹이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것이 바울 선생의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가지고 있는 이런 훌륭한 사상을 알지 못하면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갈 수 없을 때에 그 배후에 무서운 마귀의 충동과 이용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선생의 훌륭한 사상을 차례차례 알아가고 따라가며 장성하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27일 금요일

모세의 법에 대한 바울의 사상, <사도행전9>, 제3강 계시의 그릇으로 쓰인 바울, 84쪽

“바울 선생의 사상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 2:28-29)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로마서에서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인간 세계에서 의롭게 사는 길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법을 크라이테리아로 중요하게 생각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바른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예루살렘을 중심한 유대주의 신자들의 문제, <사도행전9>, 제3강 계시의 그릇으로 쓰인 바울, 78쪽

“오늘날에도 어떤 순결하고 고도적인 기독교인들 중에는 유대주의적인 율법에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을 전체로 생활의 규범으로서, 생활의 규칙으로서 다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그 당시 유대주의자들의 열심과 같은 그런 열심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지도하고 있던 장로들은 교인들에게 ‘아니다. 그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거기에 비교하면 훨씬 이색적인 존재고 그 사상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된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바울 선생이 가지고 있는 것이 참된 기독교의 신학이고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바울 선생의 참된 기독교의 정신과 신학과 사상을 바르게 배워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25일 수요일

유기적 영감과 축자 영감, <사도행전9>, 제3강 계시의 그릇으로 쓰인 바울, 72쪽

“모르는 상태에서도 믿고 의지하고 가는 것이고 모를 때에 주께서 그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당장에 환히 다 보여 주신 것은 아닙니다.”
“바울 선생의 마음에 어떤 소원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어느 때에는 그것을 제한하시며 ‘사실은 내가 네게서 훨씬 더 의미 있는 일, 그보다 더 긴급하고 중요한 일, 내가 꼭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려고 너를 선택했는데 이제는 그 방면에서 너를 쓰겠다’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실 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24일 화요일

계시의 그릇으로 쓰인 바울, <사도행전9>, 제3강 계시의 그릇으로 쓰인 바울, 68쪽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위대한 특별 계시의 집성(集成)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로마에 있으면서 거추장스럽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위치에서 조용히 사색도 하고 생각도 해서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은사의 내용이 성신님의 통제하에서 계시의 그릇으로 잘 쓰이게 된 것입니다.”

조용히 사색도 하고 생각도 해서 가진 모든 은사의 내용이 성신님의 통제하에서 하나님의 그릇으로 잘 쓰이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23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2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함, 64쪽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유약한 것과 또한 여러 가지 편협한 것과 동굴 속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은 상태에서 벗겨 주셔서 정신을 차려 바르고 거룩한 것을 볼 수 있게 하시옵소서.”

1981년 1월 4일 주일 오전

2021년 8월 21일 토요일

율법을 지키고 살았던 바울, <사도행전9>, 제2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함, 61쪽

“바울 선생이 환난을 면해야 하겠다든지 유대인의 적개심을 누그러뜨려야 하겠다든지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쪼록 많은 사람에게 구애가 없이 접촉할 수 있고 특별히 유대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데에 공연스레 악조건이 붙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안 지킨다는 괜한 풍문을 도말(塗抹)해 버리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어떤 예식 하나를 잘 행하면 다른 사람이 보고 ‘아, 바울도 저렇게 율법을 잘 지키는구나’ 하고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 塗 칠할 도, 抹 바를 말. 발라서 드러나지 않게 함.

바른 목적을 향해서 전진해 나가는 가장 유효 타당한 방법을 가르쳐주옵소서. 

2021년 8월 20일 금요일

생활의 준칙으로서의 율법, <사도행전9>, 제2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함, 57쪽

“기독교인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경건히 단정히 반듯한 인격으로서 현실 생활을 하고 살려면 규범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을 기독교에서 따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율법이 그러한 규범입니다. 율법은 생활의 규범(the rule fo life)으로 오늘날에도 명확하게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중요하게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히 단정히 반듯한 인격으로 생활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9일 목요일

히브리 신자들의 율법 이해와 산상보훈, <사도행전9>, 제2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함, 56쪽

“높고 고귀한 가치가 있는 도덕과 생활 강령이라든지 주장, 혹은 사상이라든지 그런 것을 그냥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우수한 것이 와야 비로소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성신님을 의지해서 성신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며 가르치시는 대로 배워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예루살렘의 교회 지도자들을 만남, <사도행전9>, 제2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함, 47쪽

“바울 선생은 그러한 말씀을 듣고 ‘그래도 예루살렘에 꼭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 반문하고 자기의 소신(所信)과 자기가 생각하고 목표로 하고 있는 바를 더욱 검토하고 ‘혹시 내 생각에 잘못됨이 있는가’ 하고 다시 반성하고 성신의 조명에 의해서 그것을 확인하고 마음을 굳혔을 것입니다.”

소신과 생각과 목표를 검토하고 혹 잘못됨이 있는지 다시 반성하고 성신의 조명을 받아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7일 화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1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 42쪽

“거룩하신 주님,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사람을 부르시사 사명을 주셨을 때에는 각각 그 사람의 그릇에 따라 주시고 그 사람의 그릇이 주님의 기뻐하심을 입어서 풍부한 많은 것을 생산하도록 되어 있으면 주께서 풍부한 것과 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일들을 맡기사 그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기쁘시게 하는 길로 가도록 하시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중략) 저희의 못나고 힘없는 것을 너무나 많이 느끼고 저희의 약하고 좁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다시 느끼옵나이다. (중략) 저희들도 항상 하나님 나라의 깊고 거룩한 도리를 깨닫고 거기에 해당하게 저희의 생활이 경영되도록 주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힘 주시고 거룩한 은혜 가운데 서게 하옵소서.”

1980년 12월 28일 주일 오전

2021년 8월 16일 월요일

바울의 사명과 가르침의 내용 2, <사도행전9>, 제1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 37쪽

“바울 선생은 자기가 믿은 바에 의해서, 자기의 사상에 의해서 늘 생활하고 움직인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사상이 생기면 그렇게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비꾸러진 데로 가려고 하는 경향을 늘 가지고 있기에 거짓 스승이 나와서 끌고 가고 인간의 감정이 나와서 교회를 혼탁하게 하려고 할 때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엄격하게 막고, 어느 때는 편지로 강하게 책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의 사상을 배우고 익혀서 그 사상대로 움직이게 하사, 거짓 스승에게 끌려가거나 인간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4일 토요일

바울의 사명과 가르침의 내용 1, <사도행전9>, 제1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 34쪽

“교회의 행정, 교회의 경영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성신님께서 그를 불러서 쓰셔야 하는 것이지 사람이 자기가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가지고 있는 사상은 그의 사명 수행과 함께 움직이지 별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단정히 행하고 절제 있게 규범을 따라서 행하고 네 맘대로 하지 말아라’ 하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단정히 행하고 절제 있게 규범을 따라서 행하고, 내 맘대로 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3일 금요일

선한 싸움과 달려갈 길 2, <사도행전9>, 제1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 32쪽

“누구든지 자기의 생의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달려갈 길을 가야 합니다.”
“달려갈 길 가운데에는 ‘사명’도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 도덕적인 성격인 ‘품성’을 그리스도적인 것으로 발휘하고 살아가는 것도 포함됩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그 거룩한 도리에 따라 도덕적 품성을 그리스도적인 것으로 발휘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에서 주께서 가르치고 인도하시고 요구하신 대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2일 목요일

선한 싸움과 달려갈 길 1, <사도행전9>, 제1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 32쪽

“한 인간으로서 자기의 달려갈 길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으로서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를 늘 대적하고 우리의 앞길을 막고 마귀의 국권 조직은 싸움을 걸어 옵니다. 우리가 정당하게 나가려고 하면 그냥 조용히 무사태평하게 가는 일은 없습니다. (중략) 그 싸움은 개개인에게 미칩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씨름하며 싸워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1일 수요일

바울이 가졌던 사명의 내용, <사도행전9>, 제1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 30쪽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말을 썼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과 자기 달려갈 길을 가는 것과 자기의 확신을 그대로 지키고 살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가며 확신을 그대로 지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유기적 영감, <사도행전9>, 제1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 26쪽

“계시를 받는다고 할 때에는 ‘이것이 계시다. 이것은 계시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계시의 대종(大宗), 그 큰 줄거리와 대부분의 내용은 항상 이 유기적인 영감하에서 움직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바울 선생이 가지고 있는 그릇을 쓰신 것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그의 언어 표현력, 예술적인 감정도 다 쓰신 것입니다. 요컨대 그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기능의 모든 활동을, 인격적인 모든 활동을 충분하게 다 쓰신 것입니다.”

위대한 그릇으로서 심오한 사상을 가진 바울 선생을 통해 주신 계시를 날마다 성신의 가르치심을 받아 하나하나 알아가게 하시며 그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9일 월요일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사도행전9>, 제1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 22쪽

“주께서는 각 사람에게 십자가를 강제로 지우고 ‘너 이것을 져라! 안 지면 절대로 안 된다’ 이렇게 하지 않으시고 ‘이것이 네 십자가다. 지겠느냐?’ 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를 사랑하고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자는 ‘예, 주님 거기에 그런 고생이 있고 그런 치욕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받겠습니다. 그것을 지고 주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하고 받는 것입니다.”

날마다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7일 토요일

계속되는 경고, <사도행전9>, 제1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유, 18쪽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불우한 환경, 즉 교회가 제대로 번성해 가지 못하고 해산되고 만 것까지도 쓰셨습니다. 사람을 의지해서 살고 사람의 세력을 의지하고 사회 세력을 가지고 웅거(雄據)하고 있을 때에는 부서지고 말지만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두고 나아갈 때는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지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거룩한 자태는 그대로 유지될 뿐 아니라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 雄 씩씩살 웅, 據 의거할 거. 일정한 지역을 차지하고 굳게 막아 지킴.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두고 나아가,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지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거룩한 자태를 드러내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6일 금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21쪽

“주님께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반성하게 하시고 맹성(猛省)을 촉구하시는 주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깨달아 알게 하시고, 마비된 사람과 같이 희미한 가운데 그냥 주저앉아 있지 아니하게 하시옵소서. 이리하여 주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서게 하여 주옵소서.” * 猛 사나울 맹, 省 살필 성.

1980년 12월 21일 주일 오전

2021년 8월 5일 목요일

우리 교회는 바른 자리에 확고히 서 있는가,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19쪽

“그릇된 여러 가지 것이 올 때에 그런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려면 말씀에 깊이 잠착(潛着)하고 그것을 간직해서 그것에 의해서 자기의 사상 체계가 바르게 서야 하고 자기의 정신이 바르게 확실히 서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없이는 저절로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 潛 잠길 잠, 着 붙을 착. 잠착하다 : 한가지 일에만 정신을 골똘하게 쓰다.

깨어 정신을 차려 말씀에 깊이 잠착하고 사상 체계를 바르게 세우고 확호하게 지키고 삼가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4일 수요일

외부에서 오는 흉악한 이리와 내부의 이설(異說),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18쪽

“게을러서 그것을 잘 붙들고 깊이 깨달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온 만큼만 그러고 있다가 차츰차츰 자기에게서 희미해져 가면 나중에는 잊어버리고 망실(忘失)하기도 하고 하는 그런 정도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까닭에 사이비 진리가 올 때 그런 소리를 듣고 그냥 따라갈 수 있는 위험은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중략) 무서운 사실은 (중략) 그것이 대종(大宗)을 이루면 나중에는 소수를 이단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을 하려고 할 때에도 일어났던 사실이고 개혁 이후에 오늘날 프로테스탄트의 세계에서도 일어나는 사실입니다.” * 大宗 : 사물의 주류, 宗 : 마루 종.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붙들고 깊이 깨달아 진리에 확호하게 서 있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3일 화요일

나를 본받으라는 말씀의 의미,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16쪽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목표를 향해서 그가 가지라고 하는 거룩한 사상과 정신을 포회(包懷)하면서 그가 요구하신 행보, 즉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요구를 따라 걷는 것같이 너희들도 그렇게 내가 걸은 그런 스타일로 따라오너라. 그러면 결국 가는 것 아니냐’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 包 쌀 포, 懷 품을 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의 실례로, 예증으로 세우신 사도 바울을 자세히 연구해서, 주께서 보여 주신 목표를 향해서, 주님이 가지라고 하는 거룩한 사상과 정신을 포회(包懷)하면서 주께서 요구하신 행보, 즉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요구를 따라 걷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2일 월요일

사도 바울의 특수성,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13쪽

“유기적 영감(organic inspiration)만이 아니고 쎄오파니(theophany: 신의 현현) 같은 것으로 혹은 확실히 어떤 환상과 현상으로 나타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중략) 그런 일에 대해서도 유혹을 받지 않고, 다른 말로 하면 그런 이상한 환상에 유혹되지 않고 무엇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무엇이 이 세상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인가를 확실히 잘 구별할 수 있는 그러한 확실한 지혜와 지식이 있던 인물입니다.”

무엇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무엇이 이 세상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인가를 확실히 잘 구별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날마다 자라나게 하옵소서.

2021년 8월 1일 일요일

바울이 권고한 내용의 대지(大旨),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08쪽

“교회라는 것은 어떠한 큰 원칙 위에 있고 어떤 사실이 거기 있느냐 할 때 (중략) 첫째는 하나님이, 아들이신 하나님이 자기의 피로 사신 것이다. 둘째는 그것을 성신님이 너희들을 그 교회의 감독으로 삼으셔서 교회를 돌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다스리는 참된 방법인 것입니다.”

교회를 피로 사신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을 따라 생활하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31일 토요일

말씀을 전하는 자에 대한 공궤의 정신,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07쪽

“하나님께서 그 거룩한 나라를 형태상으로 지상에 두실 때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그 백성 가운데 레위 사람을 두고 제사장을 두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신 큰 원칙은 그냥 소소히(昭昭-) 살아 있는 것입니다.” * 昭 밝을 소

하나님께 거저 받았으니 남에게 거져 주는 정신을 가지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30일 금요일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함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04쪽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은혜의 말씀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힘이 아니고 말씀이 들어가서 성신님이 더불어 역사하시면 이로써 회개도 하는 것이고 자기를 바로잡기도 하는 것이고 튼튼히 보호도 받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사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바로잡게 하시며 튼튼히 보호하여 주옵소서.

2021년 7월 29일 목요일

하나님 나라를 공격해 오는 세력들 2,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03쪽

“그중에 현저한 자가 그릇된 이론을 가지고 ‘결국 이것이 바른 도리다’ 하고 주장하면 대거 교회가 몰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다수가 몰려가면 그 다수가 정통인 것같이 행세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소수가 바른 것을 주장하더라도 소수를 이단시하고 이방인처럼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참된 도리는 이 세상에서 소수가 유지하고 있지 다수가 유지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과거 이천 년의 역사입니다.”

정신을 차려서, 흉악한 이리가 와서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시고 감언이설로 살살 꾀어도 넘어가지 않도록 하옵소서.

2021년 7월 28일 수요일

하나님 나라를 공격해 오는 세력들 1,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03쪽

“원래 하나님 나라의 정신이 제대로 바르게 박혀 있지 않으니까 세상이 자기를 지배해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망이 자극을 받아 가지고 그것이 그만 자기를 지배해서 자기를 끌고 이 세상을 좇는 것입니다. 부귀도 좇고 명예도 좇고 영화도 좇고 또한 이 세상 것으로 자기가 자랑하고 싶은 심정, 이런 것들이 다 세상에게 붙들려 가는 양상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제대로 바르게 가지게 하셔서, 이 세상 정신을 따라가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27일 화요일

감독자들에게 부탁하는 말 2,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01쪽

“거룩한 도리를 순서 있게 풀어서 잘 먹여야 하고 성신께서 과연 그를 주장하시는 증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칭 감독, 또 자임 감독이 너무 많아서 혼탁하게 되는 까닭에 항상 그것을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신이 감독으로 세우고 성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목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이 종교직을 자기 일생의 직(職)으로 가지고 싶다고 종교를 선택해서 종교의 직무와 종교의 직업(profession)을 선택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 職 벼슬 직

성신께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셔서 거룩한 도리를 순서 있게 풀어서 잘 먹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26일 월요일

감독자들에게 부탁하는 말 1,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00쪽

““성신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28절). ‘성신이 너희에게 세웠다는 이 큰 권위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사람이 너희를 세운 것이 아니다.’ 교인들도 이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신이 그를 세웠다면 성신이 그에게서 역사해서 거룩한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감독자가 첫째로 할 일은 돌아다니면서 주선해 주는 일이 아니라 말씀으로 먹이는 일입니다.”

성신께서 세우시고 역사하는 목자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취하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25일 일요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300쪽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쓰셨고 예수님이 그를 어떻게 쓰셔서 계시의 도구로 삼으셨고 계시의 실증으로 삼으신 이상에는 우리가 그를 본받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구원의 거룩한 계시의 실증으로 삼으신 것을 확신하고 그를 본받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24일 토요일

에베소 장로들에게 권계한 내용,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298쪽

“나는 내 자신이 내 갈 길을 다 가고, 즉 어떤 목표를 향해서 내 인생의 길을 바르게 산다는 것과 둘째는 하나님이 내게 맡긴 이 사명을 충실하게 완수하기 위해서 내 인생이 그를 위하여 있는 까닭에 내 생명을 아낄 이유가 없다. 그것이 내 인생관이고 그것이 내 신조다”

하나님께서 맡긴 사명을 충실하게 완수하기 위해서 살아가게도 하시며 죽게도 하옵소서.

2021년 7월 23일 금요일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는 바울의 각오 2,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296쪽

“한번도 본 일도 없고 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성도의 교통이라는 의미를 가르쳐 줘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혈맥으로 지어짐을 받았으므로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시하고 적극적으로 그 도리를 확호하게 쥐게 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연보를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성도의 교통이 있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22일 목요일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는 바울의 각오 1, <사도행전8>, 제12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2), 295쪽

 “예수 믿는 생활 태도가 항상 그렇게 미지근하고 규례에 얽매여서만 밀려가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정신이 없다면 우리의 존재가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21일 수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11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1), 291쪽

“거룩하신 주님이여, 저희들이 항상 안온한 데서 그저 안온하게, 아주 나른하게 거의 무감각하게 자기의 어떤 일정한 관성적인 종교 형태 하나만을 유지하는 것으로 별로 큰 부족을 안 느끼고 살고 있고 이렇게 감각이 약하고 이렇게 민감성이 없고 무엇을 볼 줄을 모르는 현상 가운데 저희가 있는 것을 주께서 각각 깨우쳐 주시고 정신을 차려서 주님께서 저희에게 지금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옵소서.”

1980년 12월 14일 주일 오전 

2021년 7월 20일 화요일

바울 선생이 파악한 긴박한 문제, <사도행전8>, 제11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1), 290쪽

“바울 선생은 다가오는 환난이라는 것을 느끼는 까닭에 좌우간 비상한 시기에 임해서도 능히 극복할 수 있도록 무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전해 보아야 소용이 없는 까닭에 소수에게라도 이것을 전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신의 검으로 싸워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19일 월요일

교회에 대한 세 가지 가르침, <사도행전8>, 제11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1), 288쪽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주의할 것은 성경에 있는 모든 용어가 성경적인 용어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말을 썼지만 그 의미도 세례를 주어 깨끗이 씻어서 신성한 의미로 써야 하고 성경이 설명한 그 말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하고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실질상 용법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우리말만을 표준으로 해서 함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원수가 올 것을 이야기한 다음에 ‘지금 내가 너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유지하고 보존하고 지키고 운영하고 끌고 가시는 것은 누구냐? 너희들이 아니다. 주님이시고 주님께서 은혜의 말씀을 가지고 하신다. 그러니까 주님과 주님이 이미 우리에게 보이신 그 거룩하신 계시의 말씀에다가 너희를 부탁한다. 감독도 거기다 맡기는 것이고 교회도 거기다 맡긴다’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보이신 그 거룩하신 계시의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17일 토요일

에베소 장로들에게 권고함, <사도행전8>, 제11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1), 285쪽

“개혁 교회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교회가 교회라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로서 권계, 권하고 경계하는 것 또는 권징(勸懲)인데 그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꼭 교회 안에서 크게 선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하는 것이고 조용히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들어가서 그들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나는 그런 일에 대해서 않거나 주저하거나 그냥 말아 버린 일이 없다. 주께서 명령하셨으면 가장 지혜롭게 그 일을 했다’ 그런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것은 자기 태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고 경고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거역한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 懲 혼날 징

말씀을 듣고 반성하게 하시며 지혜롭게 권계하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16일 금요일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유, <사도행전8>, 제11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1), 282쪽

“자기의 인생에 당연히 달려야 할 길, 걸어야 할 자기의 행로, 그 당위를 다하는 것과 또 신성하게 부여된 자기 일생의 사명을 다한다는 것 때문에 내 육신의 생명도 있는 것이고 존재할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것인데 거꾸로 육신의 생명과 존재를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하고 타협해 버리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당연히 달려야 할 길, 걸어야 할 행로, 그 당위를 다하며 신성하게 부여된 일생의 사명을 다하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15일 목요일

겸손히 주를 섬긴 사도 바울 2, <사도행전8>, 제11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1), 279쪽

“다른 사람과 개인적인 사귐(fellowship)이 있어서 자별했다든지 한 것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담담합니다. 원래 동양에서도 ‘군자지교여담수(君子之交如淡水)라’ 해서 군자가 서로 교제한다는 것은 맑은 물과 같은 것이지 달콤하지 않은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맑게 서로 신뢰가 있고 존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부지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 사람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내가 성내지 않는 것이 군자다. 이것이 동양 도덕, 즉 일반 은총 가운데에서라도 생각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이 내신 일반 은혜 가운데 생각해도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기독교가 들어와서는 어떻게 엉뚱하고 이상한 다른 것을 무슨 기독교의 도덕이고 성도의 교통이고 성도의 사랑인 것같이 자꾸 왜곡되게 선전하므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볼 눈이 없게 되고 만 것입니다.” * 淡 맑을 담. 慍 성낼 온.

풍부한 인간성을 가지고 담담하게 지내며 사람들이 몰라주더라도 성내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14일 수요일

겸손히 주를 섬긴 사도 바울 1, <사도행전8>, 제11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1), 278쪽

“겸손이라고 할 때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주님이 지시하시고 명령하면 언제든지 순종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면서도 바울 선생은 ‘나는 무익한 종이다. 내가 무엇이냐’ 하는 태도로 늘 처하고 기다리고 있었지 그 위에서 자기가 교만하고 광패(狂悖)하고 한 일은 없습니다.” * 狂悖 : 미칠 광, 어그러질 패. 행동(行動)이 도의(道義)에 벗어나서 미친 사람처럼 사납고 막됨.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주님이 지시하시고 명령하면 언제든지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13일 화요일

감독자에게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권위, <사도행전8>, 제11강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유(告諭)함 (1), 276쪽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로, 도그마(dogma)로 강하게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둘이 아닌 것입니다. (중략) 계시를 가진 사람의 주장과 그 신념과 그 신념에 의한 행보가 마땅히 저들에게는 하나의 전범(典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dogma :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증명이 허용되지 않는 교리, 교의, 교조 따위를 통틀어서 이르는 말. 교회가 신에 의한 계시라고 인정하여 받아들인 진리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 典範 : 법 전, 법 범. 본보기가 되는 규범(規範).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가 강단에 섰을 때에 그 강단의 권위를 함부로 부인하거나 침해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12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66쪽

“저희도 정신을 차려서 저희에게 임한 이 시대와 주께서 저희에게 원하시는 일이 얼마나 비상하며 얼마나 심중한 고려를 요하는 일인가를 알고 전체로 주님 앞에 드리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바르게 생각하고 함부로 크고 기이한 일에 발을 뻗으려고 하지 않게 하시고 항상 자신은 못나고 힘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주님 앞에 고요히 단정히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1980년 11월 30일 주일 오전

2021년 7월 9일 금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하지 말라 3,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64쪽

“시편 131편을 보더라도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해서 자기 힘에 겨운 일을 하지 않고 어린아이같이 조용히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하고 있겠다고 한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제가 할 수 있는 체하고 나서지 않고, 자기를 반성하고 재량하며, 겸손히 자처하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8일 목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하지 말라 2,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64쪽

“개혁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사실은 먼저 일반적인 이치하에서, 일반적인 진리의 이법(理法)하에서 바르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성전 꼭대기에서 ’하나님이 나의 발을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테니까 뛰어내려서 한번 이 능력을 과시해야겠다‘ 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덤벼서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특수한 법을 비춰주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내신 이 세계의 법, 역사의 법, 자연계의 법을 의지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7일 수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하지 말라 1,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62쪽

“사람들은 흔히 이런 때에 ‘믿음으로 하면 됩니다’ 하고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합니다. 뻔히 할 수 없는 무자격하고 무능력한 사람끼리 앉아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에게 자격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이상한 생각입니다. 그런 일들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너는 네게 있는 것을 다 없는 것으로 여기고 시작할 각오가 있는가?’ 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참된 도리를 배워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믿음이 더 강하게 되고 어떻게 무장해야 하는가를 배워서 서야 할 때에 그런 것을 볼 줄 알고 느낄 줄 알게 하시며, 내게 있는 것을 다 없는 것으로 여기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6일 화요일

유두고의 문제점 2,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60쪽

“비상한 시기에 이런 범용한 사람이 준비 없이 이렇게 나타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거룩한 대열에 집어넣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법칙하에서 이 사람은 일종의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비상한 시기에 대한 통찰이 있게 하시고, 거기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있게 하시며, 거기에 대한 생활 대처가 있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5일 월요일

유두고의 문제점 1,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59쪽

“낮에 나가서 열심히 근로를 해서 자기 에너지와 자기 정력을 다 쓰고서 이제 가장 고귀한 큰 양식을 취하고 거룩한 은혜를 받아야 할 문제 앞에 왔을 때에는 그것을 받을 만한 아무 여력을 남기지 않고, 즉 준비 없이 임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준비 없이 귀만 가지고 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여력과 준비가 있게 하시고, 자꾸 장성하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2일 금요일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대처가 필요함,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58쪽

“교회는 그런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것을 느끼고 거기에 대처할 만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비상한 문제 앞에 대처하려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늘 느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성신의 충만함을 얻어서 비상한 문제 앞에 대처할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게 하옵소서.

2021년 7월 1일 목요일

임박한 환난에 대한 예견,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54쪽

“이렇게 위대한 지도자는 세상의 일에서 세상 사람의 인과(因果)의 관계와 세상 사람의 움직임만을 보지 않고 거기에 반드시 가담되어서 큰 요인(要因)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탄의 그 국권 조직이 인류 역사 위에서 움직이며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투철하게 보았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알고 정신 차려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공중에 있는 악한 신들을 대적하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30일 수요일

비범한 시기,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53쪽

“예지(叡智)가 밝은 사람은 세상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둔감하고 자기 하는 일 하나만 보고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깊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을 내세울 때, 과거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다 인류와 역사와 사회와 세계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주의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 叡 밝을 예
“어거스틴 선생도 그랬습니다. (중략) 『하나님의 도성(都城)』이란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로마 제국과 반달의 대습격, 만인(蠻人, Barbarian)들의 대습격이라는 사실들을 전제로 하고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칼빈 선생은 장차 올 유럽 사회의 새로운 시민 생활이라든지 경제적인 전체 움직임이 어떠할 것인가를 투시한 까닭에 제네바 시에 면직물 공업을 자꾸 일으켰고 또 상인과 자본가가 자본에 의해서 이(利)를 취하는 문제에 대해서 루터같이 그것을 덮어놓고 안 된다고 하고 농촌 생활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상인 생활에 어떻게 주님의 공의(公義)를 나타내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늘 가르쳤습니다.”

인류와 역사와 사회와 세계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주의해서 알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29일 화요일

비범한 인물 바울, <사도행전8>, 제10강 바울의 드로아 전도, 252쪽

“바울은 박해가 나던 그해에 백방이 되어서 헬라로 아시아로 다녔지만 불과 4년 이내에 아마 66년이나 67년경에 오늘 이 사건이 일어난 드로아에서 다시 붙들려서 로마로 압송되어서 공판을 받고 잡히던 그해에 순교했습니다.” * 백방(白放) : 죄가 없음이 밝혀져 잡아두었던 사람을 놓아줌. 62년경에 로마에 가서 가이사의 상고심에서 64년에 백방된 일.
“바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사상은 사람의 생각과 전제와 재료하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그 무한하고 아주 심오한 계시 위에 건설된 것인 까닭에 기독교인이면 누구든지 흠모하고 따라가야 할 위대한 사상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한 사상을 정신 차리고 잘 배워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28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9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3), 241쪽

“주께서 저희를 불쌍히 보시고 참으로 주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가 부인되지 아니한 기독교는 결국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의 심정에서 멀지 않은 것을 정신 차려서 깨닫게 하시고 확호하게 자기가 완전히 부인되고 주님의 영광만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 거룩한 진리 가운데 서서 거짓된 것이나 그릇된 전통에서 그냥 노예같이 끌려가는 일이 없게 하시고, 자기를 비판하고 자기 안에 참된 개혁이 늘 일어나는 생활을 하게 하시옵소서.”

1980년 11월 23일 주일 오전

2021년 6월 25일 금요일

참된 개혁을 위한 전제 조건, <사도행전8>, 제9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3), 240쪽

“내가 지금까지 받아 온 여러 가지 사상의 어떤 면이 그릇되고 어떤 면이 바른가를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바르게 깨닫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만 좋다고 하지 말고 그 말씀에 의해서 자기를 비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바르게 깨닫고, 생활 감정에서, 정신 생활에서, 견해에서, 표준에서 참으로 개혁하고 있는지 늘 주의하고 반성하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24일 목요일

자기를 섬기는 자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음, <사도행전8>, 제9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3), 237쪽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비록 다른 잡신은 섬기지 않지만 자기 행복만을 제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자기에게 맞는 데까지는 기쁨으로 받지만, ‘돌밭에 떨어진 씨’ 같이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있는 사람은 결국 ‘어떻게 나의 행복을 버리겠는가?’ 하고서 최종적으로는 자기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아상(我相)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참된 교회와 거룩한 진리의 참된 자태는 알 수 없습니다.” 
* 我相 1. 불교 사상(四相 : 중생이 실재라고 믿는 네 가지 상.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이른다)의 하나.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를 이른다. 2. 자기의 처지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 五蘊 쌓을 온. 불교(佛敎)의 근본(根本) 사상(思想)의 하나로, 세계(世界)를 창조(創造)ㆍ구성(構成)하고 있는 요소(要素)를 다섯 가지로 분류(分類)한 것.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5요소(要素)의 결합(結合)으로, 색은 육체(肉滯), 수는 감각(感覺), 상은 상상(想像), 행은 마음의 작용(作用), 식은 의식(意識)임.

아상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23일 수요일

자신의 이권 때문에 우상 종교를 견지함, <사도행전8>, 제9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3), 232쪽

“사람들은 흔히 가는 실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것을 무슨 보장이나 되는 것처럼 그것을 자랑하고 사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천박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인데 크리스천이라 하는 사람들도 그런 짓을 잘합니다. 어떤 사람이 비록 크리스천이라 해도 돈이 있으면서 돈의 위광을 자기 스스로 느끼지 않고 그것을 아주 초개(草芥)같이 생각하기가 쉽습니까? 그래서 돈이 있는 사람이 천국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참된 천국의 정신과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돈을 사모한다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는데(딤전 6:10) 그것이 큰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 芥 겨자, 티끌 개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매달려 있는 것들이 하루아침에 이슬같이 사라지는 것임을 알고, 참된 천국의 정신과 의미를 파악하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22일 화요일

자기 행복을 위해 우상을 숭배함, <사도행전8>, 제9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3), 225쪽

“그 복과 이익이라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고 자기를 살지게 하고 행복스럽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라는 것이 최종 주인으로 거기 도사리고 앉아 있는 것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말을 안 해도 우상보다 더 중요하고 무서운 것은 늘 자기, 자기의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어떤 수단이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더 잘 유지되고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21일 월요일

기도 2, <사도행전8>, 제8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2), 218쪽

“주여, 그리스도를 믿어서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났다는 것은 그런 공리주의적이고 행복주의적 자기라는 것이 완전히 없어지는 데 있사옵고, 그것이 없이는 참된 기독교의 거룩한 정신을 나타낼 길이 없다는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오니 저희 마음을 늘 돌아보시고 주께서 주시는 은혜 이외에 다른 것으로 자기 행복을 스스로 꾀하는 일이 없게 하시옵소서. 이리하여 거룩한 생활이 말로만이 아니라 생활 감정 가운데 생활 실천 가운데에 늘 확실하게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1980년 11월 16일 주일 오전

2021년 6월 19일 토요일

기도 1, <사도행전8>, 제8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2), 218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여기 우상 숭배자들이 하나의 세력을 규합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의 전진과 그 나라의 거룩한 진행을 저해해 보려고 하고 위협하고 협박을 한 이런 악행이 있는데 (중략) 주님의 자녀들이 주의 거룩하신 말씀과 능력과 은혜와 그 거룩한 사랑의 복음을 땅에 퍼뜨리고 그 나라의 역사를 전진시켜 나아갈 때에 과연 성신께서 이런 모든 사실을 땅 위에서 없애는 그 시간까지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의 힘이나 어떠한 사회 세력을 가지고도 할 수 없는 것을 아나이다.”

2021년 6월 17일 목요일

우상 숭배는 자기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2, <사도행전8>, 제8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2), 217쪽

“기독교를 열심히 믿는 것이 죽어서는 천당에 가고 살아서는 평안하게 살고, 될 수 있는 대로 액을 면하고 살고, 힘이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의지할 데를 마련해서 사는 것에 목표가 있다면 이러한 현대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는 우상 숭배주의자들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 utilitarianism 공리주의, 실용주의; [철학] 공리설[주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인간 행위의 규범으로 하는 J. Bentham 및 J.S. Mill의 윤리학설))

공리주의적이고 행복주의적 자기라는 것이 완전히 없어지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16일 수요일

우상 숭배는 자기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1, <사도행전8>, 제8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2), 216쪽

“우상도 수단입니다. 복리를 얻는 수단이고 복리라는 것도 결국 자기를 행복스럽게 하는 수단인 것입니다. 돈이 많아진다든지 건강하다든지 즐겁게 산다든지 결국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욕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상 숭배는 결국 자기를 좀 더 유리하게 행복하게 하려는 한 수단입니다.”

자기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상화하고 신화해서 섬기는 대상으로 삼으려는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15일 화요일

성신께서 신자들을 지켜 주심 3, <사도행전8>, 제8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2), 215쪽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사조(思潮)의 부패라든지 사상이 아주 그릇되게 흘러가는 암매, 이러한 것으로 사회 세력이 여전히 움직여 나갑니다. 이런 것들을 주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세상에서 하나의 사회의 세력으로 미미하게 존재할 때라도 오직 성신님만을 의지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자기들의 힘을 의지한다든지 자기들의 수가 많아서 무엇을 한다든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 潮 흘러들어 갈 조

성신님만 의지하여 나가게 하옵소서. 성신님의 보호하심으로 주의 자녀들이 개인으로도 평안을 누리고 그 거룩한 교회도 주께서 지지하심으로 존재하고 유지되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14일 월요일

성신께서 신자들을 지켜 주심 2, <사도행전8>, 제8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2), 213쪽

“사회 세력을 성신께서 통제하실 때 그 일반은총으로 내리시면서, 또한 동시에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살후 2:7)하는 말씀같이 불법의 기미는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이미 발동해서 있는 것이지만, 즉 나중에 이것이 적그리스도로 나타나서 기독교를 박멸하고 말살하려고 하겠지만 그러나 아직은 막는 분이 있어서 막는 것이 제거되고 적그리스도가 마음대로 나와서 뛰는 그런 일이 발생할 그때까지, 정하신 그때까지는 막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의와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세력이 이 땅에 전진하는 것을 불의의 세력이 말살하고 파쇄해서 없어지게 하려는 일을 절대로 못하도록 막아 주셔서 의의 세력을 보호해 주옵소서.

2021년 6월 11일 금요일

성신께서 신자들을 지켜 주심 1, <사도행전8>, 제8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2), 213쪽

“비록 소수일지라도 성신께서 그 소수를 의미 있다고 인정하시고 밀고 나가시고 지지해 주시는 사실 때문에 존재하고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것이지 자기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신께서 지켜 주심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음을 유념하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10일 목요일

기도 2,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97쪽

“저희의 경건이 내실이 없는 것이 될까 늘 두렵고 저희들이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주님을 믿는 근본이 무엇인가를 하나도 증명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세상 사람이 추구하고 있는 행복주의나 자기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공리주의적인 사상이나 정신 가운데, 기저 가운데 잠재의식적으로 그냥 존재하고 주저앉아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고 부르고 교회에 나오는 까닭에 기독교를 믿노라고 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같이 생각하고 지내는 경향이 있는가를 주의해서 살피게 하시고 기저에서 자기를 향해서 묻게 하시옵소서. 이리하여 참으로 이 흑암의 세상에 큰 사회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이 그릇된 정신이나 잘못된 왜곡된 형식 가운데서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것을 바르게 붙들고 깨닫고 알게 하옵소서.”

1980년 11월 9일 주일 오전

2021년 6월 9일 수요일

기도 1,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96쪽

“거룩하신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항상 저희의 마음 가운데 무엇이 있는가를 반성하여 비추어 보게 하시고 주의 진리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어서 참으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바를 바르게 깨달아서 저회한 위치에서, 그릇된 전통에서, 그릇된 생각에서 방황하고 있지 않는가를 주의하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8일 화요일

행복주의와 참된 기독교,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94쪽

“기독교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의 정신적인, 물질적인 유익, 자기 생활 전체에, 자기의 인생에 유리한 길인 까닭에 이것을 취한다는 이런 식 생각을 못 버리고, 항상 저회한 정신에서 방황하고 그러면서도 무슨 참된 기독교를 자기네는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취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고치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7일 월요일

우상 숭배와 자기 행복 추구,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92쪽

“그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재물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물론 자기의 행복과 자기 존재입니다. 자기가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략) 그런 사람들이 근본에서 항상 추구하는 것은 결국 자기 행복입니다. 그것이 돈이든지 건강이든지 사회상 명예든지 그 여타 세력이든지 간에 항상 자기 행복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복과 자기 존재를 위해 살지 않고, 정신을 차려서 배우고 성숙해서 주를 위해서 전부를 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4일 금요일

선동 연설의 내용,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89쪽

“저급한 정신과 몇 가지 권선징악적인 표준만을 가지고 심오한 사상을 향해서 비판을 하기 쉬운 것입니다. 바른 것을 내놓을 때에 오히려 그릇된 전통의 기독교가 바른 것을 반박하고 반대하고 그것이 무슨 신앙이냐고 욕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진리를 제 마음대로 제 생각 안에서만 받아들이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3일 목요일

일의 쉽고 어려움이 판단의 기준은 아님,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81쪽

“‘이 일을 해야 할 것인가, 하지 않아야 할 것인가’ 하는 작정은 ‘이것은 쉬우니까 하고 저것은 어려우니까 않겠다’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늘 당위(當爲)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인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선택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겠는지 않겠는지 네가 결정해라. 네가 주를 얼마나 사랑하고 주를 위해서 얼마나 봉사하겠는가 네게 결정해서 해 봐라’ 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중략) 십자가는 자기가 안 지면 안 져지는 것입니다.” * 當 마땅히 ~할 당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바르게 알고, 주를 사랑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2일 수요일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정상적인 길,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81쪽

“교회의 원칙으로 중요히 세운 것은 내시(內示)에 의해서, 안으로 보이시는 빛에 의해서 따라 나아간 것입니다. (중략) 바울 선생은 이렇게 대체로 상궤적(常軌的)인 것을 늘 따라갔습니다.”
“주의 인도를 받는 정상한 길은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자기를 비춰 보는 것입니다.”
“고린도에 편지할 때에는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해서 자기의 못난 것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생각하고 늘 자기반성을 하면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 常 항상 상, 軌 길 궤

못난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생각하고 늘 자기반성을 하면서 살게 하옵소서.

2021년 6월 1일 화요일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79쪽

“누구든지 처음에 교회를 세운다고 할 때에는 ‘능력이 거기 있는가? 은사가 있는가? 그것을 할 만한 사람들이 거기 있어서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쓰시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자기 종교 열정으로 욱 하고 달려들어서 하려고 하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치밀하고 주의 깊게 정신을 차리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31일 월요일

개인의 사명 수행과 하나님의 인도,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78쪽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을 하겠다고 하고 내가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에도 냉정하고 공평하게 이지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가지신 것이야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능력을 나에게 베푸시려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다’ 하는 개연적이고 보편적인 막연한 소리 한마디를 가지고 무리한 모험을 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27일 목요일

바울 선생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방식,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76쪽

“주님의 인도를 받아 나아갈 때에, 바울 선생에게는 주의 직접 계시가 많이 역사했습니다. 가령 성찬에 관한 도리도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았다”(고전 11:23) 해서 직접 받은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마음 가운데 내시(內示)로서, 그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치밀하게 그리고 거룩한 목적이라는 크라이테리온(criterion)하에서 늘 생각해 나가서 그 일이 이루어야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 주께 기도하여 확신을 얻는 것이 중요한 또 한 가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확신에 의해서 움직이려면 자기 환경의 전개나 변동을 늘 주시해서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 criterion (판단이나 결정을 위한) 기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치밀하게 그리고 거룩한 목적이라는 크라이테리온(criterion)하에서 늘 생각해 나가고, 환경의 전개나 변동을 늘 주시해서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26일 수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72쪽

“오늘날에도 주께서는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개인 개인의 속에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욕망과 잘못된 심정도 붕괴되어 나가고 또한 사회에 있는 여러 가지 불의에 대해서 저희들이 주의 말씀에 의하여 바로 설 때에 그런 것들이 세력을 가지고 더 공격을 하지 못하고 무너져 나간다는 이 큰 사실 앞에서 저희가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주님의 그릇으로서 거룩히 쓰이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일에 합당한 자로 서기 위해서 주께서 부르셨음을 저희가 아옵는데 그 부르심에 대해서 응대하지 않고 항상 제 길을 걷는 암매와 잘못을 주의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 회개케 하시며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은혜를 바르게 찾아서 주께서 저희에게 무엇을 시키시려고 하시는가에 대해서도 정신 차리게 하옵소서.”

1980년 11월 2일 주일 오전

2021년 5월 25일 화요일

마귀의 속임,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70쪽

“마귀의 첫째 일은 속이는 것인데 말하자면 이것은 사탄의 연극입니다. 한쪽에서는 귀신이 들어가서 야단을 하고 다른 한쪽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자를 만들어서 등장해 가지고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면서 주고받고 재주를 부리는 연극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진리와 진리에 의한 참된 신령한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24일 월요일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감,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62쪽

“‘너희는 하나님께 속해 있지만 온 세상은 그 악한 자의 팔에 누워 있느니라’(요일 5:19) 하는 말씀에서 보듯이 지금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이 에베소, 그런 사람들을 뽑아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했습니다(참조. 골 1:13).”

사람은 장래 일을 모름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65쪽

“하나님의 대권에 대한 침해라는 것은 보통 이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죄악을 범하는 것보다 무서운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악을 행하는 자가 금방 벼락을 맞아 죽지 않는 까닭에, 사람끼리의 잘못에 대해서는 굉장히 큰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불측한 반역죄를 무서운 줄 모르고 담대하게 짓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암매 가운데 처해 있는 인간의 그릇된 심리입니다.” 
* 不測하다 : 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괘씸하고 엉큼하다. 測 헤아릴 측.

내가 알아서 내 걸음을 경영하려고 하거나 내가 이룬 것같이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21일 금요일

에베소가 가지고 있는 특성,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52쪽

“이 도시에는 아데미의 신전(神殿)이 있었습니다. (중략)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한 신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데미 신당을 거기에 놓아두고 그 큰 신궁지기 노릇, 그것을 수호하고 있는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데에 에베소의 독특한 성격이 있었습니다. (중략) 아데미 신당이 있다는 것은 에베소 경제에도 굉장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중략) 은장색(銀匠色)들이 ‘아데미의 순례자들에게 팔았던 것을 점점 쇠퇴하게 한다’ 하고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 銀匠色 : 금, 은, 구리 따위의 세공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은장이.
“마술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서 여러 종류의 마술을, 요술을 하든지 점을 치든지 그렇지 않으면 소위 축마(逐魔), 축귀(逐鬼)라 해서 귀신을 쫓아내는 이런 일을 열심히 하는 까닭에 그런 책들이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중략) 행복을 추구하면서 혹은 액(厄)을 피하면서 잘살기 위해서 앞길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장래를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마음의 요구에 대응해서 (중략)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중략) 그것을 미끼로 장사를 한 것입니다.” * 逐 쫓을 축. 厄 재앙 액.
“고대 수메르 사람들, 바벨론 사람들, 갈대아 사람들에게 그런 것이 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당시에 에베소에는 특별히 그런 것이 심했습니다.”
“오만 개의 은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은화(銀貨)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공인 화폐는 데나리우스이지만, 그 이전에 알렉산더 때에도 있었고 헬라 시대에 쓰던 드라크마라는 은화가 있습니다. 그것이 다 은으로 만든 것입니다. 드라크마는 데나리와 같은 값으로 통용되었습니다. (중략) 한 데나리는 노동자가 나가서 하루 일해서 받는 품삯이었으니까 오만 명의 노동자가 일해서 받을 품삯만큼 값이 나가는 책을 모아서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장래 일을 알기 원하는 심정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55쪽

“바울 선생이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속죄함을 얻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의 자태가 차츰차츰 명확하게 형성되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장래를 사모하게 하셨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능히 알 수 없도록 만드셨다(참조. 전 8:7)고 가르쳤는데 사람들은 그 장래의 일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한 이후에 장래 일을 알기를 원하는 심정은 버쩍 하나의 강렬한 욕망으로 늘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 길을 제가 걷겠다고 하는 것, 즉 자기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서 자기가 자기의 길을 결정해서 가겠다고 한 것이 최초의 죄악의 아주 가장 강렬한 성격인데, 이것을 가진 이래로는 장래를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사람은 장래 일이 불안한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장래 일을 알려고 할 때에 알 수 있도록 별달리 문을 열어 주셨느냐 하면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시고 미리 보아야 할 것들을 보게 해 주시는 이 거룩한 계시의 사실과 그 범위를 떠나서 그 이외의 사특한 방법으로 자기의 장래를 예료(豫料)하려고 하고 인간의 장래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정욕적인 행동 경향입니다.” * 豫 미리 예, 料 헤아릴 료.

이방의 괴악한 종교행습을 엄히 경계하심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58쪽

“몰렉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이렇게 불로 사르는 제사를 지냈는데, (중략)암몬 사람 모압 사람들의 가장 괴악한 우상입니다. 우상 숭배의 방법으로서 제사를 드릴 때에 불을 때서 벌겋게 단 우상에다 살아 있는 자식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불 가운데로 지나가서 물론 타 죽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보면 재판장이 재판을 하려고 재판정에 들어가면서 거기까지 가는 동안 몇 발에 떨어져야 한다는 관념이 있어서 그러면 재수가 있고 그 수를 어기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척척 걸어가다가 하나가 모자라니까 거기는 잔 디딤으로 한 번을 더 디뎌서 그 수를 채우고 올라갔다고 그려 놓은 장면이 있습니다.”
“복술이라고 할 때에는 많은 경우에 무슨 신에게 접해서 점을 쳐 줍니다. 신에게 접해서 죽은 사람의 일까지라도 말한다고 해서 명도(冥途), 명도라는 것은 죽음 건너편 세계, 유명(幽冥)의 일인데 명도의 신에게 접한 자는 명도 점쟁이라 해서 또 그런 방면의 점을 자꾸 치는 것입니다. (중략) 요술(妖術)을 한다는 것도 그냥 기술(奇術)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에 접한 자의 이야기입니다.” * 冥 어두울 명, 途 길도. 幽 그윽할 유. 幽冥 : 저승. 奇 기이할 기.
“무당이란 가장 악질적인 것입니다. 신을 대리해서 신의 세계에 자기가 중매가 되어 가지고서 활동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진언자는 특별히 무슨 말를 턱 건네 가지고 그 말에 의해서 무엇이 된다고 하는 자입니다. 또 박수도 가장 괴악한 자로서 장래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지시와 은혜 가운데에서 장래를 예료(豫料)하는 것 이외에 절대로 다른 어떤 방법으로 자기가 모르는 세계를 알려고 장난이나 농으로라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아주 막대한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파렴치하다든지 어떤 도덕적 생활을 실패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 豫 미리 예, 料 헤아릴 료.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지시와 은혜 가운데에서 장래를 예료(豫料)하는 것 이외에 절대로 다른 어떤 방법으로 자기가 모르는 세계를 알려고 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18일 화요일

바울의 에베소 체류,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51쪽

“54-57년까지의 세 번째 전도 여행 가운데서 (중략) 주의 제자로 자임(自任)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다시 세례를 준 일까지를 우리가 배웠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의 도를 전파하고 권면했습니다.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 왕국입니다. 메시야 왕국을 다른 데서 바라지 않고 이미 오신, 왕이신 예수님께 돌아와서 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할 것을 여기서 가르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강론하고 권면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져 가지고 듣지 않을 뿐 아니라 공중 앞에서 공공연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도리, 참된 하나님 나라의 도를 비방했습니다. (중략) 그러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람들과 다투면서 거기서 그냥 버티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경우에는 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 공연히 그들을 붙들고 시비를 하고 또 불쾌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말을 듣지도 않고 수긍하지도 않고 그대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데 그대로 유지하고 나갈 이유가 없다’ 생각하고 거기서 석 달 동안 있은 후에는 회당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두란노라는 서원(書院), 즉 학교를 빌렸습니다. 이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 선생은 담대하게 강론을 했고 이러기를 두 해 동안 했습니다.”
사람들과 다투면서 그냥 버티며 공연히 시비를 하고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는 일이 생길 때, 지혜롭게 처신하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17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6쪽

“거룩하신 주님, 저희들의 신앙생활 가운데 주께서 저희를 위하여 베풀어 주신 은혜의 사실이 있지만 거기에 대한 저희의 신앙의 내용과 인식의 내용은 심히 부족하고 미흡하고 결핍투성이이며, (중략) 인간적인 종교관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회하고 비천한 가운데 그냥 속해 있을 때가 많이 있사오며 사시랏ㅇ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이해한 것같이 자기 스스로 자득(自得)하고 구안(苟安) 가운데 젖어 있는 일이 많이 있사옵니다.”
“오늘날에도 명색만 기독교인이고 기독교를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 진수(眞髓)와 오묘한 도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결핍이 없는 양으로 그대로 지내는 이 큰 암매, 멍청한 사실이 흔히 있기 쉽사오니 저희를 정신 차리게 하시고 깨우쳐 주시고 불쌍히 여기사 저희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핍이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시고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내는 종교와 자홀(自惚) 가운데 빠져서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양 생각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것으로서 쓰일 수 있는 양 생각하는 이런 모든 오만과 잘못을 완전히 포기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서 겸손히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늘 바라고 기다리며, 주님이 깨우쳐 주시는 사실을 보면서 너무나 잘못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시옵소서.” * 髓 골수 수. 惚 황홀할 홀.

1980년 10월 26일 주일 오전

2021년 5월 14일 금요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아야 함,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5쪽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는 새로운 하나님의 경륜의 시대가 전개되고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중략) 예수 이름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확인해 놓은 것입니다.”
“민중을 결속시키고 조직해서 힘을 기르고 고난을 참으면서 로마와 투쟁을 해서 나중에는 로마 제국을 무찔러 버린다는 그런 의미의 구속(救贖)은 알아도 그런 물리적이고 육체적이고 현세적인 것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크신 경륜의 구속의 사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사상과 신앙과 지식의 내용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을 때에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세례가 구원을 받았다는, 구원에 관계되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저의 사상과 신앙과 지식의 내용이 충분하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13일 목요일

절차나 의식 자체가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님,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39쪽

“‘나는 그러니까 세례 받았다. 나는 메시야에게 접붙임 받은 사람이다’ 하고 그런 구안(苟安)에 빠지고 그 세례가 주는 실효를, 세례가 요구하는 실제 내용으로 가지고 있는 효과를 가져야겠다고 생각도 하지 않고 과연 그것이 자기에게 있는가를 검토도 하지 않고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그것은 효과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런 까닭에 효과 없는 세계에서 일보도 벗어남이 없이 주저앉아서 저회하고 있다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평연(平然)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손을 씻었다고 해서 오며가며 남을 미워했다든지 남을 중상모략 했다든지 자기 자신이 남에 대해서 그릇되게 생각하고 오만한 평을 했다든지 하는 것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팔 뒤꿈치까지 씻어서 결례를 행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淨)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 일에 대해서 맹렬히 타매하셨습니다. ‘안 씻은 손으로 무엇을 먹어서 사람이 불결하게 되는 것인 줄 아느냐? 불결한 것은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참조. 마 15:19-20)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성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성경을 대할 때에도 성경 책 자체에서 신성한 무엇을 발견하려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책은 거룩하다’ 하고 책을 우상화합니다. 책이 뭐 거룩합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책을 혼동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경 숭배라는 것도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그릇된 메시야관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1쪽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유일의 구속자이심을 믿었고 구속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중략) 유대교의 성현(聖賢)이라는 사람들이 배출되던 시대입니다. 제1세기 2세기에 난 사람들을 탄나임(תַּנָּים)이라고 그러는데 아주 권위 있는 유대교의 성현들입니다. (중략)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메시야관을 안 고치는 이상에는 메시야를 대속의 구속주로, 자기의 피로 구속하시는 분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메시야의 구속을 믿지 않고서 메시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면 그 세례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로고스가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고 계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고 속죄의 크신 사실을 이뤘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구원을 받을 길은 없습니다.”
“메시야를 보편적인(universal) 구주로 믿고 나와야만 요한의 세례가 성례로서의 효과를 갖고 은혜의 방도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고, 하나님과 자신이 은혜의 계약을 맺었다는 표(sign)가 되고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중략) 만일 바울 선생이 가서 예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도록 하지 아니 했다면 에베소에 모여 있던 열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 그냥 있었을 것입니다.”

세례로써 확증되는 사실들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2쪽

“어떤 사람이 성례 후에도 성례의 효과가 없는 상태가 그대로 계속된다면 이것은 그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중략)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죽음에서 나와 생명으로 들어가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호와 표가 되는 것이고 확증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구원받았는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징표를 주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물리적으로 확실하게 공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이후에는 자기의 육신의 생활도 그 약속(commitment)하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도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를 정당하게 받은 사람은 비록 복음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미흡하다고 할지라도 세례 받으려고 자기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했을 때에는 최소한 성삼위와 그 성삼위 중 제2위 아들이신 하나님과 그의 구원 사실에 대해서 승인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후일에 그의 신앙이 타락했다가 다시 복구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요한의 세례를 받았던 이 사람들에게 있는 위험은 그것을 전연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왜 다시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첫째로 세례는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의 확인이 되는 까닭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구원받았다는 사실의 확인이 될 만한 내용과 요소를 안 가지고 있으면서 전연 별다른 기독론하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까닭에 그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어떤 교단에서 별다른 기독론을 가르치고 그런 별다른 기독론하에서 세례를 받았다면 그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비록 그의 지식이 미흡하더라도 성삼위의 이름 아래에서 아들이신 하나님의 구속의 사실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받았다면 이쪽 교회에 와서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왔다는 표로서 일생에 한 번 정당한 세례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021년 5월 12일 수요일

말씀이 없는 성례는 의미가 없음,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37쪽

“성례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징하는 진리의 내용입니다. (중략) 반드시 말씀과 병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개혁 교회에서 명확하고 확호하게 주장하고 믿는 바는 말씀은 성례 없이 독립하지만 성례는 말씀 없이 독립해서 의미를 안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리하게 전파하는 요한의 설교에 있었던 것입니다. (중략) 말씀이 먼저 들어가면 그 마음이 찔려서 자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하고 나와서 묻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가 가지고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중략) 메시야에게 속한 사람으로 자임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안에 깨달음이 없다는 큰 결핍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아무리 공급되어도 그것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결핍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를 믿는 양 생각합니다. (중략) 우리들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 민감하게 자기를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공급될 때 그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옵소서.
“세례가 요구하는 바 믿어야 할 내용을 충분히 다 깨닫지 못했으면서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이러한 위험이 뒤따라 다닙니다.”

2021년 5월 11일 화요일

세례는 근본적인 회개를 전제로 함,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35쪽

“참된 의미의 회개와 완전한 변개 안에는 또 한 가지, 신앙의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중략) 참으로 구원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회개에도 적어도 자기가 먼저 바르게 판단하는 인식론의 요소, 즉 지적인 요소가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정적(情的)인 요소, 그다음에는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의지적인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가 성립됩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줄 때에 요구한 회개는 그런 임시적인 회개가 아니고 근본적인 회개입니다. (중략)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으로서 자기를 드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에 의해서 바르게 살겠다는 자기의 작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생활 도리와 그 경영하시는 여러 가지 것들을 차례차례 배워서 그것에 의해서 자기가 살아가고 그것에 따라서 사명도 행하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한 분자로서 자기의 본분도 행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너는 과연 하나님께서 죄 사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고 또한 네게는 은혜의 계약의 세계로 그 거룩한 나라로 옮겼다’ 하는 것을 확증해 주시기 위해서 세례라는 의식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행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은 이미 그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확신이 있어야 하고 그 확신은 확실한 증거를 함께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이 새로운 사람으로서 행보를 한다는 것은 성자(聖者)의 생활을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새로운 사람이 자꾸 장성해 가는 것이니까 자기가 아는 범위 안에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것입니다.”
“세례는 심히 중요하고 그것은 또한 은혜의 방도로서도 중요합니다. 그 시간에 그 복음적 사실과 자기의 구원과 중생과 사죄의 큰 사실들을 확인하고 하나님께서 ‘오냐. 내가 네게 그렇게 했다’ 하고 세례라는 표를 주셨으니까 그 표를 잡으면 이제 확실하고 요지부동할 것입니다. 이런 확실하고 요지부동하는 심정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성신께서 역사하셔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정도의 반대만 하지 않고 받으면 성신께서 꼭 역사해 준다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루터파에서 생각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마치 성경 말씀에다 하나님의 성신의 능력과 역사를 가둬 놓는 것과 같은 생각입니다.”
“성경 말씀이 가장 유효한 은혜의 방도라고 할지라도 성신께서 그것을 쓰시려면 쓰시는 것이고 만일 안 쓰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례도 마찬가지이고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신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임재하시고 역사하시기도 하고 또 그 사람을 보시고 안 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성신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임재하시고 역사하옵소서.

2021년 5월 10일 월요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음,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25쪽

“바울 선생의 제3차 여행, 대개 주후 54년에 저 윗고을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지방을 다녀서 소아시아의 서남쪽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대도시인 에베소에 이르렀더니 예수님의 제자로 자칭하고 자임하고 있는 사람이 열두엇쯤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생활 행동을 가만히 볼 때에 진실하지 못하거나 훌륭하지 못한 것을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은혜의 계약 가운데 들어가서 사는 사람의 생활 방향과 인격적인 장성의 확연한 증거를 볼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가장 요체(要諦)가 되는 문제는 새로운 은혜의 계약의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사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보혜사이신 성신님이 역사(役事)하시는 문제입니다.” * 要諦 : 중요한 점. 요약할 요. 살필, 진실 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에 관문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 앞에 자기 자신의 신앙고백도 되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하는 것이 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대해서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확인을 하시는 중요한 절차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성례이고 그중에서도 세례입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과 은혜의 계약 가운데 접붙여진 여부를 가장 간단하고 명확하게 획선적(劃線的)으로, 금을 긋는 식으로 알려고 할 때에는 ‘무슨 세례를 받았는가? 세례 받은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 묻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을 접붙여 주는 그 신앙의 대상은 누구냐 하면 메시야다. 요한이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야, 즉 그리스도에게 접붙여 준 것입니다.”
“에베소를 하나의 기점(基點)으로 해서 발전해 나갈 교회의 초석(礎石)으로서 활동하게 하기 위하여, 교회의 기둥같이 활동하게 하기 위해서 처음에 나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주시고 뽑아내시는가 하는 양태(樣態)를 보여 주셨습니다.” * 礎 : 주춧돌 초
“다 같이 예루살렘의 최초의 신약 교회를 회억(回憶)하면서, 보혜사이신 성신님의 내재(內在)와 활동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갔을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28쪽

“사도 바울 선생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3차에 걸쳐서 여행을 하면서 교회를 세웠다는 것은 기독교 역사의 최초에 성신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계약과 새로운 경륜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증시하면서 역사를 지어 나가는 최초의 중요한 개시(開始)인 것입니다. (중략) 이때에 신령하고 아주 현실적이면서 능력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서, 지금 이 역사의 시기에 어떤 형태를 취하고 현현(顯現)하느냐 하는 문제를 증시하기 시작한 때라는 것입니다.” * 顯 나타날 현, 現 나타날 현.
“요한의 세례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 주일에 이야기했습니다. (중략) 그 근원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지 사람이 제 마음대로 이렇게 하기로 작정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의 세례도 그렇고 물론 그리스도의 세례도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양식(樣式)도 다른 것을 취한 것이 아니고 물을 가지고 하는 세례입니다.”
“요소적인 중요한 문제는 첫째로 (중략) 근본적으로 그 심정(heart)에 아주 극단적이고 전적인 변화가 있은 다음에야 준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그와 동시에 이 세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죄(赦罪)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중략) 요한이 증거한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야에 대한 관념을 정당하게 갖고 신의(信依)하고 나아갔다면 요한의 세례만으로도 성례를 통과한 것입니다. (중략) 충만한 기독론적인 의미를 다 계시하지 아니한 그런 양태의 세례에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 속에 이 열두 사람들도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 赦용서할 사.

세례의 중요성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29쪽

“그 위험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보겠는데, 먼저 세례의 중요성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이 말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중략) 가톨릭에서는 소위 뱁티즈멀 그레이스(baptismal grace)라는 말을 써서 세례는 그것 자체가 그것을 시행했으면 그에게 은혜를 끼치는 부호(符號)가 되는 동시에 은혜를 끼치는 방법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중략) 그 사람이 충분한 기독론과 복음 사실에 대한 넉넉한 인식이 비교적 희박하다고 할지라도 세례 받은 그 사실이 그 사람에게 은혜로 역사하면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충분히 은혜의 방도(media gratiae)라고 이야기합니다.”
“루터교에서는 세례라든지 성찬이라든지 하는 성례가, 츠빙글리식으로 ‘하나의 완전한 기호에 불과하다. (중략)’ 하고 생각지 않고, 그것을 시행하는 그 시간과 그 공간에 예수님께서도 임재하셔서 거기서 그것이 상징하는 모든 은혜를 그 시간에 그에게 다 베풀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에 상당히 공간적이라고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쪽은 물리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례나 성찬을 베풂으로 그것이 직접 동인(動因)이 되어서 거기서 어떤 유효성이 발생한다고 한다면 물리적인 이야기입니다. 인과(因果)의 관계를 가진 물리 이야기입니다.”
“그 물질 자체도 심지어 어떤 신비한 의미를 띠게 되는 것같이 이야기합니다. 또한 츠빙글리의 말대로 하자면 ‘(중략) 우리는 주를 기념하는 것이고 하나의 의식을 집행해서 그것으로 금을 그어 불신자와 신자의 세계를 나누고 그가 신자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 즉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명확하게 확인하는 일이다’ 하는 정도에서 끝내기 쉽습니다.”
“하지만 개혁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또 성경이 우리에게 정당하게 가르친 도리로서 가장 중요하고 엄숙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세례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기호 혹은 징표이고 동시에 하나의 봉인, 즉 확인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기호와 확인이냐? 요약해서 말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은혜의 계약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아서 그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중생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하나의 징표를 준다. 그것을 네가 확증으로 가지고 있거라’ 하는 의미입니다. 그와 동시에 내 편에서는 ‘이제부터는 이 새로운 생명으로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지 옛사람으로서 걸어가서는 안 되겠다. 그런고로 새로운 사람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전부를 드립니다’ 하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확인인 동시에 내 쪽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19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모든 백성을 제자를 삼아서 세례를 베풀라”고, 마지막에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을 내리실 때 그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릇 어떤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그 경영하신 대로, 선택하신 대로 성신님으로 역사해서 새로운 생명을 넣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중생(重生)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넣어 주신 사실이 그 사람의 의식 가운데 나타나는 사역을 성신님께서 하시면, 이것을 가리켜서 변개(conversion)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변개의 사실에는 첫째로 회개라는 사실이 따라옵니다. (중략) 거기서부터 획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의 참된 회개는 일생에 한 번뿐입니다.”

회개라는 말의 의미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32쪽

“그런데 성경에서는 회개라는 말이 정확하게 이런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고 (중략) 어떤 경고가 이르고 책망이 있고 말씀이 그에게 오면 ‘아, 이거 잘못했구나’ 하고 깨닫기도 합니다. (중략)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재미있는 설교를 듣고 좋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러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종교도 하려고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도 섬기려고 하고 ‘하나님은 나를 요구하실 것이다’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무가치한 자신을 가치 있는 것같이 인정하는 일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깊이 느끼는 시간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 참 잘못했다’ 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회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하면서도 아주 저급하고 비천한 위치에서 자식다운 아무런 인격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려서 자기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을 가치 있는 것같이 인정하는 일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깊이 느끼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적인 품성, 즉 그리스도적인 도덕적 성격과 인격이라는 것을 모르고 밤낮 몇 가지의 도덕적 조건에 비추어서 ‘이것은 괜찮다. 이것은 잘못했다’ 하는 정도에서 웃고 울고 자만하고 구안(苟安)에 빠져 있다면 기독교의 바른 도리를 체득하지 못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생활 지침은 ‘오직 성신을 의지해서 새사람으로 살아라’ 하는 데에 있지 옛사람적인 여러 가지 것을 가지고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 苟 구차할 구. 遷 옮길 천.
오직 성신을 의지해서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기의 잘못을 생각해 봐야 생각 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판하는 표준(criteria)이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큰 의미를 안 가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임시적 회개’라고 하는데 이런 임시적 회개도 겉으로 보기에는 진짜로 회개하는 것과 여러 가지로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2021년 5월 6일 목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21쪽

“거룩하신 주님이여, 저희들 마음 가운데 빛을 비추셔서 얼마나 저희가 부족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도리를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 된 체하고 자기의 몇 가지의 도덕적인 조건으로 자기의 종교와 강령을 삼고 그 동굴 속에 갇혀 앉아서 그것을 우상화하고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서 관견(管見)하며 비판하고 폄론(貶論)하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부정당한 모든 일을 행하면서 그것조차 알지 못하는 이런 괴악한 위치에 있는지 알게 하시옵소서. 자기가 무슨 가치가 있는 것같이 생각해서 스스로 하나님 앞에 원조(援助)를 하려고 나서는 아주 망측하고 주제넘은 생각도 하는 일이 있사옵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하시고 겸손히 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신성한 일에 대해서 자기가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주께서 저희에게 분수에 맞도록 은혜를 주셨고 일을 시키셨으니 그 시키시는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 管 : 대롱 관. 貶 : 떨어뜨릴 폄. 援 : 당길 원

1980년 10월 19일 주일 오전

2021년 5월 3일 월요일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세례와 본질상 동일함,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13쪽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세례와 본질상 동일함,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13쪽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는 어떠냐 할 때 가톨릭은 ‘이것은 결코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중략) 고대에 있던 신학자들은 이 두 가지가 본질상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냉정하게 보면 그것은 본질상 같은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셨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둘째로 그 양식이 물로써 세례를 준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가자 중요한 것은 그에게 아주 극단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 전적(全的)인 변화가 없이는 세례 안 준다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1:5-17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는데 그 가운데 16절을 보면 주의 사자가 요한의 부친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요한이 태어날 것을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의 하나님께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하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가고 있던 길에서 방향을 돌려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그 다음에 17절을 보면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오게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중략) 자식들 가운데 많은 사람을 자기네 선조의 마음으로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선조가 가지고 있던 그 마음을 자식들에게 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저희 마음대로 저희 세대의 정신만 가지고 살던 그 사람들에게 이제는 바른 정신이 돌아오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이 근본적인 회개입니다.”
“누가복음 3:7-9을 보면, 이것은 마태복음 3:7-10에도 있은 말씀인데 (중략) 임박한 진노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이 이러한 참된 회개인데 ‘누가 이것을 가르쳐서 이제는 행복을 추구하고 환난을 피하려고 이렇게 나오느냐’ 하고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행복주의(eudaemonism)와 종교적인 이익 추구에 대해서 맹렬하게 공격한 것입니다.”
“근본의 변화, 마음(heart)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말한 것이지 그러한 변화가 없는데 그 조목만 하면 산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는 성례적인 의미를 가지고 죄를 씻는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죄를 씻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그 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는 네 죄를 씻는다’ 하는 의미, 즉 사죄(赦罪)를 위한 성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볼로같이 그 세례를 받고 그 성례적인 의미를 나중에 깨달으면, 그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또 세례를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예수님의 세례와 다른 점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17쪽

“첫째로 요한의 세례는 구약의 이코노미하에 속해 있어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실 일을 늘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율법 시대에 속해 있어서 회개의 필요를 강조했습니다. 변개(變改, conversion)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 소극적인 것은 회개고 적극적인 것은 전적인 신앙, 즉 구원의 신앙입니다. 지금 신약 시대에 와서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일이 첫째로 오지 않고 믿으라는 말을 하는데 ‘네가 마음이 고쳐지고 전부가 변개되어서 주를 믿어야겠다’ 하는 것입니다. (중략) 셋째로, 이 세례는 주로 유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이 가지고 있는 소위 보편주의(universalism)와는 다른 점입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다르냐? 앞으로 자세한 설명을 더 듣게 되겠지만 우선 중요한 것은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비춰 볼 때에 무엇에 비춰 보느냐 하면 율법에 의해서 합니다. (중략) 신약의 유니버설리즘이라는 것은, 형식상으로는 보편주의이고 내부에 있어서는 신령주의(Spiritualism)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연약해서 이룰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의 성신께서 하신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율법의 제도를 이루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율법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그 하나하나의 강요에 대해서는 이제 우리는 상관이 없다.’ 이것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의미의 한 부분입니다. (중략) 그리스도적인 새 생명으로 말미암은 새사람이 자연스럽게 건강하게 살아나가면 자연스럽게 그 성격이 하나님의 거룩한 그리스도의 품성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새사람은 그리스도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살았느니라’는 그리스도 안의 새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고 ‘얼마나 잘못이 많고 부족이 많은가? 지금은 몰라서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항상 자기 자신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성신님이 내려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충만한 가운데 역사하셔서 생명의 성신의 법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하는 이 사실은 모르고 구약적인 율법의 개조에 의해서 회개를 한다고 해서 그놈 하나에 대해서만 어떻게 하면 되는 줄 알고 이렇게 껍데기만 피상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이것이 부정당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가톨릭이 그렇습니다.”
“수많은 프로테스탄트 역시 그렇게 하고 사는 것입니다. (중략)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신령한가? 내 안에서 성격이나 성품 전체가 조화 있고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서 율법에 맞는가? 성품이 율법에 맞으면 자연히 행하는 것도 어떤 개조를 알아서 행하는 것보다는 율법이 요구하는 그 근본정신에 의해서 하게 될 것입니다.”
성신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충만한 가운데 역사하셔서 성격이나 성품 전체가 조화 있고 자연스럽게 율법이 요구하는 그 근본정신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30일 금요일

신앙고백서에 나타나 있는 성례,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04쪽

“성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우리의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7장 1절에 나타난 것을 보면 (중략) 정식으로 모든 사람 앞에 ‘이 사람은 교인이다’ 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집행을 안 했으면 교인인지 아닌지 아직 불분명한 것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한 상이점(相異點)을 거기에 두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엄숙하게 약속하고 그리스도에게 봉사하고 살고 네 마음대로 네 행복을 추구하고 살지 말라는 엄숙한 예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주께 헌신하는 예식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봉사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의 계약의 복리들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어떤 징표로서, 세례를 받으면 느낄 수 있고 성찬을 먹으면 먹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그런 징표로서 신자들에게 표시되고 그것이 확인되고 봉인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내리고자 적용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중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8장은 세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 알고자 하니까 이것을 보는 것인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란 무엇이냐?”
“이것은 교회에 입교하는 예식으로서 중요하고 은혜 계약의 표도 되고,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졌다는 것과 중생했다는 표도 되고, 죄의 사유함을 받았다는 표도 되고, ‘나는 이제 하나님 앞에 전부를 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이제부터는 행보하겠습니다’ 하는 내 고백의 표도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가지고 있는 독특성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06쪽

“성례가 요한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것은 어떤가? (중략) 학자들이 뭐라고 하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고, 우리의 믿는 바와 성경이 가르친 바에 의해서 교회가 역사적으로 늘 믿고 나온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개종자들에게 주던 세례와는 달리 아주 풍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요한의 세례도 그와 같이 죄 있는 사람의 죄를 씻어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그 위치에 다시 놓아 준다는 의미인가? (중략) 결례는 분명히 복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략) 보통 유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위치와는 전혀 다른 아주 새롭고 높은 차원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의 사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 새로운 차원은 무엇입니까? (중략) 박두(迫頭)해 온 하나님 나라를 위해 확실한 준비를 하라는 자리입니다. (중략) ‘준비하기 위해서 이 세례를 받아라’ 하는 의미로 준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의 세례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 迫 : 닥칠 박. 
“그것 자체 안에 철두철미하게 도덕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네 심정을 온전히 정화했다는 도덕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성례는 ‘말씀’이 없으면 의미가 없음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08쪽

“요한의 세례에 서 있는 첫째 조건은 ‘네가 만일 근본적으로 네 마음에 성신님으로 말미암은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세례를 네게 줄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중략) 신약의 세례에 중요하게 붙어 다니는 큰 요소, 그것이 없으면 세례의 효과가 없게 되는데 그 요소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그것은 ‘말씀’입니다. 성례는 말씀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말씀은 독립해서 의미를 갖지만 성례는 상징에 불과한 까닭에 말씀이 같이 가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례를 받으면서 그 예식이라는 부호(symbol) 혹은 그 표(sign)에서 그 말씀을 연상하고 말씀이 약속한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유대 사람들이 결국 의식 그 자체가 효과를 내는 것같이 생각했습니다. (중략) 말씀에 대한 아무런 인식과 회억(回憶)이 없을지라도 의식 자체가 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톨릭의 세례관입니다. (중략)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은혜를 끼쳐서 그가 홀연히 여러 가지 은혜 가운데 변화를 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 回憶 : 돌아올 회, 생각할 억.
“제사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 까닭에 ‘양보다는 황소가 더 좋다’ 해서 큰 소를 드렸습니다.”
“교회가 그것이 없으면 교회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뭐냐 하면 말씀이 그 교회 안에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강단(講壇)이 있어야 합니다. (중략) 개혁 교회에서 교회라는 것을 말할 때에는 말씀이 정당하게 바르게 선포되고, 선포만 되는 것이 아니라 강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첫째 조건입니다.”
“요한의 세례의 특징 중 하나가 그것입니다. 말씀이 붙어 다녔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그 선두 조건으로 말씀이 오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heart) 가운데에서 성신님으로 역사해서 영혼의 저 심저(心底)에서부터 죄를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갈구와 신앙이 없이는 세례를 안 준다’ 하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목표였고 궁극적으로 세례를 주는 목적이 그것이었습니다.” * 底 : 바닥 저
“그뿐 아니라 요한이 거기다가 무엇을 늘 보했는가 하면 예리하게 아주 마음을 확실히 꼬집고 찌르는 듯한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말씀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는가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11쪽

“마치 우리 교회가 오래전부터 개혁 교회로, 죽 개혁 교회의 노선과 정신에 확실히 서 있었던 것같이 남들이 말하는 소리를 더러 들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서울에 있을 때에도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해 보면 그런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개혁 교회의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중략)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그것을 지시했다는 확증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하는 줄 압니까? 내가 무엇이기에 내가 나가서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므로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라고 하시는지 아닌지 먼저 잘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중요하지, 덮어놓고 ‘자기를 써서 이 일을 하시라’고 하면서 목사도 되려고 하고 종교인도 되려고 하고 교회도 세우고 다 합니다. 그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잘 알아보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28일 수요일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97쪽

“너희가 믿을 때에 성신을 받았느냐. (중략)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왜 다른 것은 안 묻고 ‘믿을 때에 성신을 받았느냐?’ 하고 물었겠는가”
“항상 모든 일에 하나님의 그 거룩한 계시와 그 은혜 가운데 살려고 하기보다 자기 선입관이나 생각이 앞서서 자기의 뜻대로 살면 성신께서 특별히 이런 것을 조명하셔서 깨닫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갈구하지도 않는데 그런 것이 들어가서 특별한 의미가 거기 그 사람에게 진개(陳開)될 이유가 없습니다.” * 陳 : 늘어놓을 진.
항상 모든 일에 하나님의 그 거룩한 계시와 그 은혜 가운데 살게 하사 성신께서 특별히 조명하시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사실상 두 개의 큰 문제 앞에서 어떤 확호한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 크라이시스(crisis)에 서 있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전통적인 관념이나 생각은 무엇이고 그에 따른 그 사람들의 태도는 어떤 것인가, 메시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무엇이었는가를 보면서 요한이나 우리 주 예수께서 그 사람들에게 준 것인 무엇인가 하면 최종적으로 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 예수님의 세례라는 한 개의 중요한 실(seal) 혹은 사인(sign)으로 나타났습니다. (중략) 그러한 사인으로서의 의미를 가져야만 비로소 성례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결례(潔禮)라는 것이나 제사를 드린다는 것도 하나의 사인입니다. (중략) 물을 뿌리든지 손을 씻든지 이것도 하나의 사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죄를 씻는 데에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물을 가지고 씻을 수 있는 죄는 세상에 없습니다.” * seal : 증표. 潔 : 몸 닦을 결.
“이런 징표로서 세례가 대표하는 실(實)내용이 무엇이냐 (중략)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주었다는 의미를 바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여기서 큰 착오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實 : 열매 실
“두 가지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례라는 것은 몇 번이든지 필요에 따라서 다시 고쳐서 받고 또 받아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마치 침례교회에서 ‘침례가 아니라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무효다’ 하는 것과 같이 세례의 징표라는 점을 무시해 버리고 양태(mode)를 더 중요히 생각하는 이런 일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둘째로, 만일 그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생각지 아니하면 세례가 가지고 있는 성례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바르게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톨릭처럼 ‘요한의 세례는 결국 성례의 의미를 갖지 않으므로 세례에 수반하는 독특한 은혜가 거기에 없다’ 하는 주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현실적으로 무슨 영향이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요컨대 참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을 종합적으로 좀 더 풍부하게 가지는 데서 그 사람의 사상 생활이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떠한 권선징악적인 적용을 금방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같이 생각한다면 모든 지식과 모든 탐구 역시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지식을 얻고 탐구하고, 참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을 종합적으로 좀 더 풍부하게 가지게 하옵소서.
“평생을 가도 하나님 나라의 그 거룩한 도리는 깊이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도리를 깊이 아는 것이 그 사람의 바른 정신과 또 인격을 함양해서 세워 주는 소이(所以)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도리를 깊이 알아 바른 정신과 인격을 함양해서 세워 나가게 하옵소서.
“그것 자체로 충분히 효과를 내고 성례로서의 의미를 다 가진다면 왜 에베소에 있는 열두 사람은 다시 세례를 받았는가”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01쪽

“성례라는 것이 무엇인가 (중략) ‘세례를 받고 너희 죄를 씻으라’ 하였는데 이 말씀에서 중요히 생각할 것은 이것이 소위 성례적 표현(sacramental language)이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서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표이고 실질상 효과와 능력은 내부에서 성신님이 일으키시는 것이다. 그래서 네 죄를 씻어 주신다’ 하는 의미입니다. (중략) 성신님이 그 안에서 역사하셨다는 역력한 증거가 있는 까닭에 이것을 행함으로써 첫째는 보이는 교회 안에 정식 회원으로서 입회를 하는 표를 삼고 둘째는 그 사람이 충분히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표적으로 그에게 실시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신앙고백으로만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 죄를 씻었다는 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할 때 ‘아, 그렇습니까’ 하고 받는 것입니다. 설령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검색까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중략) 창세기 17:10에도 있습니다. 거기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할례라는 것이 마치 계약인 것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성례는 유월절과 할례 두 가지이고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중략) 구약의 유월절과 할례라는 예전(禮典)은 개인적인 것보다 국민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민족적인 색채가 아닙니다. 민족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인인가 아닌가만 남는 것입니다.”
“둘째로 구약의 이 예전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 여러 가지 다른 것을 수반(隨伴)시켜서, 곁들여서 상징적으로 의식을 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제사나 결례도 다 구약의 성례를 보조하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그런데 신약은 어떠냐 하면 성찬이 없으면 세례가 완전히 성립 안 된다든지 또 세례가 없이는 성찬이 완전히 성립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이 없습니다. (중략) 셋째로 구약의 성례전들이 장차 오실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고 신약에 나타나는 성례들은 이미 오셔서 일을 이루신 예수님의 사실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 隨伴 : 따를 수, 짝 반.
“넷째로 (중략) 지배하시는 방법은 개조(個條)를 하나씩 하나씩 들어 놓고 이 개조에 대해서 어떤 조건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소위 구약의 배타주의(particularism)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세례나 성찬을 집행했을 때 내리시는 그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중생과 새로운 생명의 활동과 또 새사람의 일과 성신님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온전히 신령한 생활을 경영할 수 있게 특권을 내리시는 이런 풍성한 은혜와 같은 은혜를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중략) 그러나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는 그런 모든 것이 다 종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2021년 4월 23일 금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93쪽

“저희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 지대에서 돌아다니기가 심히 쉬우며 (중략)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의 도리의 심오하고 신령하고 거룩한 것들에 접촉하면서도 그 능력을 내 것으로 삼지 못하고 항상 영외에서 자기의 고집과 자기 마음대로의 선입관 가운데서 그냥 저회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옵나이다. 주께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크게 정신 차리고 깨우치게 하시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의 그 오묘(奧妙)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시며 이리하여 교회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은혜의 능력의 역사 가운데 확호하게 서게 하시고 인간적인 그릇된 도덕관이나 자기의 고집이나 자기의 편협한 종교관 가운데서 방황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1980년 10월 12일 주일 오전

전통적인 메시야관의 문제점,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8쪽

“요한은 이와 같이 사실상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 알아야 할 정당한 기독론의 핵심을 뽑아서 말했지만 사람들은 편견(prejudice)이 있는 까닭에 그렇게 못 알아들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세한 해석과 개념을 새로 구성하지 않는 이상,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말뜻과는 전연 같지 않습니다.”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9쪽

“전통적인 메시야관에 따르면 메시야가 구주로서 임한다는 생각은 전연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구주는 하나님뿐이시고 구속은 하나님으로만 말미암는다. 어떠한 중보자(中保者)도 필요하지 않다’ 하는 강한 신관과 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믿느냐,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론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mediator, μεσίτες)이시라는 것입니다.” * 保 : 도울 보. μεσίτης, ου, ὁ : 메시테스[mĕsitēs]. 중재자.
“중보자로서의 그의 임무를 제사라는 형식을 가지고 생각하고 표현하자면 그는 첫째로 제사장인 까닭에 당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서 하늘에 있는 성막(聖幕)에 들어가서 단번에 모든 죄를 도말(塗抹)하기 위한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것입니다. (중략)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열(班列)을 좇는 제사장으로서, 아론의 반열과 같이 중간에 변동하거나 하지 않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선지자로서 우리를 늘 가르치시고 셋째로, 왕으로서 우리 위에 군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 塗抹 : 칠할 도, 칠할 말. 발라서 드러나지 않게 가림. 班 : 나눌 반.
“지금은 하늘에 그저 구주로 앉아 계신다는 정도의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전통적으로 프로테스탄트의 신앙 중에서도 확연히 깊은 신학과 신앙을 가지고 가르친 이 개혁 교회의 신앙에서는 절대로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보자로서 제사장인 동시에 왕이시고 왕인 동시에 선지자이시고 선지자인 동시에 제사장이십니다. 그것을 다 지금도 행사하고 계시고 그 어느 것도 조금 적게 일하시는 부분이 없습니다. 다만 나라를 경영하시는 형태가 이렇게 생긴 것뿐입니다. (중략) 참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기묘하신 방법, 예수님이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기묘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그가 선지자로서 항상 성신님을 나에게 내주(內住)하게 하셨고 가르치게 하시며 그 거룩한 진리로 나에게 늘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못 믿는다면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요한의 세례 당시에 발생한 문제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91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중략) 그 죄를 속하려면 먼저 회개를 해야 하고 둘째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선행으로 맺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회개의 열매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주 유대적(Hebraistic)입니다.”
“오늘날에도 유대교에서는 이사야 53장에 있는 고난 받는 메시야를 한 인물로 생각지 아니하고 유대 사람 전체로 봅니다. 그래서 옛날에 유대 사람들이 메시야 시대가 도래(到來)하기 위해서 자자영영(孜孜營營) 노력하고 고통을 참고 애를 쓰고 매를 맞고 피땀을 흘렸지만 그 노력이 씨가 되어서 그 후에 메시야 왕국과 메시야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면 보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이런 것들이 요한의 세례 당시에 필연코 발생했던 일이고 세례 받은 사람들 안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 孜孜營營 : 힘쓸 자, 만들 영. 쉬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일함.
“그러면 요한의 세례 자체가 무효인가?”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그리스도를 깊이 바르게 알아야 함,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2쪽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그분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었고 어떻게 알고 뭐라고 가르쳐 주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야 그러한 정치 제도니까 일방 정치가들은 가서 악질적으로 짜 가지고 오고 국민들은 먹고 좋다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그것을 안 먹고 거부하고 자기는 아프리카 사람이나 인도 사람같이 그냥 쪼들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 하면 그럴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맹목적으로 멍하니 있지 말고 국가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저버리고 나가면 나중에 어디로 갈 것인가를 근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생각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생각을 하게 하옵소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측이 어느 때는 노동자들의 근로나 고통이나 여러 가지 것들을 이용해서 자본을 축적했는데도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뽐내고 자기 마음대로 쓰면서 낯을 내고 그것을 영광으로 알고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자본주의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일에 자유를 주고 또 그런 일에 구애(拘碍)가 없도록 한다는 점 때문에 악질적이고 악마주의적인 공산주의 같은 것을 대항할 때에는 이쪽에 서서 대항할 수밖에 없지만,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과 잘못에 대해서 그냥 용인하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 낯내다 [난내다] (활용형: 낯을 내다) 다른 사람 앞에 당당히 나서거나 지나치게 자랑하다. 拘碍 : 거리낄 구, 거리낄 애. 礙(거리낄 애)를 쓰기도 함. 거리끼거나 얽매임.
하나님 앞에서 좋은 태도를 가지게 하옵소서.
“그 교회의 강단이 그리스도를 얼마만큼 깊이 바르게 가르쳤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됩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한 그리스도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4쪽

“프로테스탄트의 우리 교회가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그 사람이 가톨릭에서 기독교 세례를 받고 왔다고 하면 ‘당신이 받은 영세(領洗)는 무효니까 다시 받으시오’ 하지 않는 것입니다.” * 領 : 다스릴, 옷깃, 목, 가장 요긴한 곳. 영세 : 세례하는 일
“요한은 예수님을 어떻게 알았느냐 (중략) ‘내 뒤에 오시는 분’이라고 해서 자기는 그의 안내자라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당신이 능력이 있는 분이므로 많은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바로 이어서 ‘그분은 성신과 불로써 세례를 주실 분이다. (중략) 그는 심판자이시다.’”
“대속(代贖)의 고통을 받으실 분 (중략) 선재(先在)하신 분이고, 31절에는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는 목적은 그분을 이스라엘에게 소개하고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중략) 성신으로써 세례를 주실 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심히 중요한 선언인데 (중략)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면서 요한이 소개하는 예수님을 알 때에 나사렛에서 오신 그분을 이스라엘에 약속한 메시야로서 그 메시야 개념의 테두리 안에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의 전통적인 신관(神觀)에 의하면 하나님 외에 다른 아무도 하나님과 동등으로 여길 수가 없습니다. (중략) 전통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반적인 신관이나 구원관에 아무런 수정을 가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들은 요한이 부르짖는 회개라는 문제와 죄악에 대한 예리한 지적 때문에 찔림을 받고 나와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2021년 4월 19일 월요일

에베소에 능력 있는 교회가 서려면,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77쪽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철저히 받고 거룩한 교회를 형성하려면 철저한 정신과 신앙의 위치에 서야지, 저렇게 중도소도 못 되고 어리삥삥하게 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터키 땅인데 그 일대를 놓고 보면 바울 선생의 생각에는 마치 고린도가 아가야의 중심이 되고 그다음에는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로마가 또 하나의 중심을 이루어 나가듯이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에베소가 중요한 중심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에서 전도를 해 보았으니까 갈라디아 땅에 있는 어느 곳을 생각해 보았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경과해 온 더베나 루스드라를 보았을 때 여기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중략) 에베소에 능력 있는 착실한 교회가 서려면 구원의 의식이 분명하고 성신의 거룩한 능력이 충만해서 그 충만한 능력 가운데서 교회의 기초를 세워 나갈 만하고 교회 역사의 처음을 장식해 나갈 만한 그런 핵심(core)이 될 중요한 인물들이 거기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사람들 머리 위에 손을 얹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옛날 한 24-5년 전에 임했던 오순절의 특별한 성신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신약 교회를 개시하기 위해서 필요한 성신님의 은사를 베풀어 주신다는 한 표호(標號)였습니다. 방언을 한다든지 예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표호를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제일 알아보기 쉬운 표호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 또 한 번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인(sign)으로, 시작하는 호각 소리 같은 표호로 그 사람들도 방언도 하고 예언을 한 것입니다.” * 標號 : 표할 표, 이름 호. 속의 것을 나타내 보이는 표지나 부호.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아야 했던 이유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0쪽

“우리의 그릇된 생각이나 등한한 생각이나 특별히 어떤 문제점도 생각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지나가는 이런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서 똑똑하게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할 수 있고 어떤 문제점이 있으면 생리적으로 얼른 마음에 걸리게끔 되어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중략) 우리는 흥미 때문에 배우는 것은 아니고 중요한 문제니까 그냥 넘어가지 않고 조금이라도 알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릇된 생각이나 등한한 생각이나 특별히 어떤 문제점도 생각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지나가는 이런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서 똑똑하게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할 수 있고 어떤 문제점이 있으면 생리적으로 얼른 마음에 걸리게끔 되어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러면 ‘요한의 세례는 무효했던 것이냐’ 하는 것이 첫째 문제입니다.”
“여기 있는 열두어 사람은 완전히 결핍이 되어 있기에 다시 세례를 받고 정신을 차리게 하나님께서 은혜로써 회복해 주신 것입니다.”
“세례 문제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과연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이름을 들을 만한 사람인가’ 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요소가 완전히 결핍되어 있는데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조건들은 가지고 있으려니 하고 자홀(自惚) 가운데, 스스로 만족 가운데 빠져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021년 4월 16일 금요일

구약의 배타주의와 신약의 보편주의,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75쪽

“구약이나 구이코노미 시대가 가지고 있는 배타주의(particularism)는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 교회 안에 들어와서 누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성격인 보편성(universalism)과 확실히 대조되는 것입니다. (중략) 의식법은 만일 법으로 따지면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절차법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과 사람끼리 ‘너는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라’ 하는 여러 가지 가르침들은 실체법입니다.”
“더 깊은 지식을 얻은 까닭에 변동되었다는 것보다는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전에는 ‘못 쓰겠다’ 하던 것도 ‘할 수 없다. 그냥 그대로 용인해야지’ 하고 전에 일호(一毫)도 용납하지 않던 것을 용납하는 식으로 대개 많이 변합니다.”
“신령한 주의(spiritualism, spirituality)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근거로 비추어 보자면 구약적인 철저한 자기 규제에도 못 미치고 신약이 주는 바 거룩한 성신으로 말미암은 은사의 생활에도 이르지 못하는, 중도 소도 못 되는 반거충이와 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대개 크리스천들이 이런 중간 지대에서, 회색 지대에서 그냥 구안(苟安) 가운데 빠져서 안일하게 지내기가 참 쉽습니다.” * 중도 소도 아니다 : ‘스님과 속세인도 아니다’의 뜻인데, 속인(俗人)을 소[牛]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苟安 : 구차할 구. 구차하게 편안과 안위를 구하는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 지대에서 돌아다니기가 심히 쉽사오니, 주께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거룩한 성신으로 말미암은 은사의 생활에 이르게 하옵소서.
“회색 지대의 구안 (중략)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특색도 없고 아무것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그런 불분명한 도덕적인 상태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2021년 4월 15일 목요일

신약과 구약의 관계,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73쪽

“오늘 이야기 가운데 우리가 볼 문제점이 무엇인가 하면, (중략)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를 또 받았다는 것이 여기 나타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아무런 효과도 없고 관련이 없는 것인가? (중략)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요한의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착실히 깨닫는 것이 옳지, 몰라도 그냥 지레짐작만 하고 지나간다면 중요한 진리를 놓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깊은 도리를 깨달을 재주가 없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며 착실히 깨달아 중요한 진리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깊은 도리를 깨닫게 하옵소서.
“새로운 하나님의 배제(配劑)와 경륜하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면 그것은 후에 새로운 배제인 신약의 시대에 들어와서 어떤 비중을 가지는가” * 配劑 : 여러 가지 약제를 배합함. 또는 그 약제. 짝 지어 줄 배, 배합할 제. 排布(배포). 늘어설 배, 펼 포. 생각을 해서 일을 이리저리 조리 있게 계획(計劃)함, 또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계획(計劃). dispense [dispéns] : 조제하다, 특면하다, 내놓다
“온전히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고 할 때에는 구약과 신약을 합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가 (중략) 구약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 또한 우리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며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지낸다면, 신약은 얼마나 잘 아는지 몰라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을 제대로 소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거스틴 선생이 (중략) ‘신약은 구약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신약에 있는 진리들은 다 구약 안에 있는 것이고 ‘신약은 결국 구약을 설명해 주는 책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중략) 가장 강조해준 책이 구약 이사야입니다. 신약 어떠한 책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신약을 바르게 깨달아 알고자 한다면 그 모태가 되는 큰 사실인 구약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식도 이렇게 바르게 배워야지 순서 없이 신약만 붙들고 앉아 있으면서 무엇을 아는 것같이 생각하는 그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식을 순서대로 바르게 배우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13일 화요일

하나님 말씀 가운데 숨어 있는 중요한 문제들,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72쪽

“그러면 이런 구절을 읽어 갈 때에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하는 것과 문제가 되는 것을 볼 눈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오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중요성을 따질 때에 ‘그것이 얼마만큼 현실적인가, 즉 얼마만큼 적용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합니다. 보통은 ‘하나님 나라의 전체의 큰 진리 가운데에서 이것이 얼마나 막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할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전체 사상 구조라든지 또 하나님의 큰 경륜의 내용에 대해서 우리가 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매일의 실천 생활에서 얼마만큼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것을 얼른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항상 ‘내게 얼마만큼 유익하냐?’ 하고 공리적으로 생각하는 방식, 즉 공리적인 사고 형태를 못 버리는 것입니다.”
공리적인 사고 형태를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전체의 큰 진리 가운데에서 파악하고 하나님의 큰 경륜의 내용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12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67쪽

“주님이여, 저희 눈을 환연히 열어 주시고 저희를 드시사 이렇게 낮은 골짜기 속에서 캄캄한 데에서 위를 쳐다보되 조금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높이 올리사 넓은 세계를 보고 또한 일어나는 사태가 얼마나 긴박한 것인가를 보고 마귀의 세력과 흑암이 어떻게 팽창하고 커져서 지금 이 세계를 도도히 밀고 나가는가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거룩한 교회의 수가 많든지 적든지 하나하나가 당면해 있는 문제와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의 큰 내용이 무엇인가를 저희들이 깊이 깨닫도록 정신을 차리게 하여 주옵소서.”

1980년 10월 5일 주일 오전

바울 선생의 질문의 근본 취지,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64쪽

 “제1차 여행이나 2차 여행에서 많은 교회를 다 세웠고 그때 많은 신자가 그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신자들 하나하나가 오순절에 성신을 받듯이 했는가 하면 그런 기록이 도무지 없습니다. (중략) ‘성신을 받았다’는 말뜻은 결코 오순절적인 이양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결론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을 때에 성신 받았느냐’는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주후 64년에 바울 선생은 “중생의 씻음과 성신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딛 3:5)는 말씀을 했는데, (중략) 로마서 8:9이나 고린도전서 6:19-20이나 디도서 3:6이나 고린도전서 2:12, 3:16, (중략) 성신께서는 반드시 새로운 생명을 주시면서 새사람을 형성하고자 그 안에 들어가 계시는 것입니다. 성신이 내주하시고 또 성신이 인 치시고 또 성신이 세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성신의 도리는 바울 선생의 그 서신 가운데 아주 풍성하게 나옵니다. 물론 성신으로 먼저 중생해야 합니다.
“성신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하는 디도서 3:6의 표현처럼 중생 즉시 그 이후로는 성신이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이고 내주하신 성신의 그 현저한 역사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중략) 성신으로서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이루고 그 사명을 행하고 있는 흔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우니까 ‘믿을 때에 성신 받았느냐?’ 하고 물었고 ‘아닙니다. 우리는 성신이 있는 것도 듣지 못 했습니다’ 한 것입니다.”
성신으로서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이루고 그 사명을 행하게 하시며 그 흔적이 있게 하옵소서.
“그러면 믿은 이래로 성신의 역사의 자취는 무엇이냐? (중략) 그런데 너는 믿고 앉아서 무엇을 탐닉(耽溺)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느냐?” * 耽즐길 탐, 溺 빠질 닉.
“조금 있으면 64년부터 네로가 등극해서 박해를 시작합니다. 네로의 무서운 박해가 올 것인데 바울 선생도 그때 붙들려서 결국 68년경에 순교를 하셨는데 그러면 이런 네로의 박해가 오는 그 시대에 바울 선생은 환난에서 끝까지 견디고 참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답게 승리해야 할 것을 모든 교회에 늘 강조해서 가르친 것입니다.”
환난에서 끝까지 견디고 참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답게 승리하게 하옵소서.
“과거에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라는 무서운 박해가 오는데 그것도 모르고 앉아서 교회의 형태와 종교 행사에만 매달려서 거기서 떠들고 있다가 일단 문제가 오니까 아무런 준비 없이 넘어간 것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중략) 구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그렇게 용이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환경에서 이렇게 조용히 지내고 있으면 아무런 바람도 불지 않고 아무런 문제의 도전 같은 것도 없는 것인가?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못 보고 앉아 있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강한 문제들이 늘 앞에 떡 대두하고 있는데, 멀리 한국에 있는 문제까지 이야기할 것이 없이 당장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유치한 상태 가운데 그냥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021년 4월 7일 수요일

바울 선생의 성신론,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60쪽

“이 당시가 주후 54년인데 바울 선생이 성신론을 얼마만큼 풍성히 가지고 있었는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때부터 1년 혹은 2년 전에 52년과 53년에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가 있습니다. (중략) 데살로니가전서는 2차 선교 여행 마지막에 체류하던 고린도에 있을 때인 주후 52년에 쓴 것이고 데살로니가후서도 몇 달 지내서 53년 초에 거기서 아마 쓴 것 같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에 성신에 대해서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신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중략) 사람의 말로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신님께서 그 말씀을 쓰시고 그와 함께하셔서 역사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신이 그 속에서 역사해서 기쁨을 일으켰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신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중략) 하나님께서 내신 법칙이 있고 그 법칙대로 살도록 성신께서 힘을 주시고 인도하시는데 그것을 다 포기하고 제 마음대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신은 하나님의 법칙을 그 사람에게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여기서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신께서 하나님의 법칙을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인도하옵소서.
“고린도전서는 이때부터 한 3년 후에 썼습니다. 또한 로마서 8:14 이하에도 써 놓았는데 로마서는 지금부터 한 4년 후에 쓸 것입니다. 그다음에 갈라디아서에서도 무애지도(無礙地道), 신령한 생활의 도리 같은 것을 지금부터 3년 후에 아주 깊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 礙 : 거리낄 애.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알 수 있고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확인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무질러 버리고 제 마음대로 나가면 이것이 성신을 소멸하는 일입니다. 자기의 고집, 무지 경망, 부도덕으로 성신님께서 외부에서 그 크신 뜻을 이루어 나가시려고 하는 것이나 교회 앞에서 거룩한 은혜를 나타내시려는 것을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일이 많은데 그것이 성신을 소멸하는 일입니다.” * 무지르다 : 한 부분을 잘라버리다.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성신께서 이루어 나가시려는 그 크신 뜻을 받들게 하옵소서. 교회 앞에 거룩한 은혜를 나타내시옵소서.
“이런 도리는 후일에 골로새서 1:13이나 디도서 3:5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순결하여서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절개를 지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구별해 놓았고 둘째는 도덕적으로 순결해서 신절을 다 지키고 나가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순결하여서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절개를 지키게 하옵소서.
“바울 선생은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쓴 52년 53년에 이미 성신의 도리를 심오하고 풍성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넉넉히 규지(窺知)할 수 있습니다.” * 窺 : 엿볼 규

2021년 4월 6일 화요일

너희가 믿을 때에 성신을 받았느냐,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59쪽

“믿을 때에 성신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어떤 사람들이 해석하듯이 잘못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순절 때에 제자들이 한 일백 이십 명 모였다가 갑자기 모인 곳이 진동하고 크고 급한 바람이 부는 소리가 나고 그다음에 불같은 혀가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했다는 이 오순절 때의 특수한 이양적인 성신 강림을 항상 지언(指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도 어떻게 임했든지 간에 네가 방언은 해야 하고 네가 예언은 해야 하지 않느냐‘ 하고, 요새 어떤 교파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둘째 은혜‘라 해서 ’그 은혜를 또 받아야 한다‘ 하면서 그러한 것을 주장하고 말했겠는가? 그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입니다.”

2021년 4월 5일 월요일

에베소 교회에 필요했던 참된 능력,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58쪽

“그렇다면 이러한 제전을 큰일로 여기고 좋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중략) 무엇보다도 성신의 능력이 개개인에게 역사하셔서 첫째는 개인의 성품과 신앙의 절개와 성결의 생활을 하게 하는 데에서 특별히 그 은혜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 성결의 생활이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순결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앞에 신절(信節)을 다 지키는 것과 성신을 의지해서 죄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생활 양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신절 : 신의(信義) 있는 절조(節操: 마디 조, 잡을 조. 절개(節槪ㆍ節介)와 지조(志操))
“훨씬 초연한 경건의 내재력과 새사람다운 품성과 그리스도에 대한 간절한 사랑과 신절을 다하는 것, 이러한 것이라야만 가(可)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신절이라는 것을 합쳐서 한마디로 첫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열렬하게 사랑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타산(打算)을 하지 않는 그러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열렬하게 사랑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타산(打算)을 하지 않는 그러한 사랑을 다하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2일 금요일

에베소 교회의 중요성,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56쪽

“하나님께서도 그 종을 통해서 참된 초자연의 능력이 쓱쓱 발휘되게 하시고 그 능력은 마술하는 사람같이 사람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이 아니라 안수하면 병든 사람이 낫고 심지어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 놓아도 낫고 일어나는 희한한 일이 발생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하시느냐 하면, 초대에 교회의 큰 기초를 세워나가려고 할 때에 그 교회의 기초를 세울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기풍 가운데에 반신국적인 요소로서 마술이라는 것이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는데 그것을 퇴치하면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신비의 능력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을 모르느냐’ 하고 경고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기선 목사님 같은 분이 한 것은 죽은 사람을 살린 일입니다. 제가 그 목사님을 잘 압니다.”

교회에 도전해 오는 시대적 문제들,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52쪽

“자기 열정을 가지고 주께 열심히 봉사하려고 할 때 주님이 자기를 섬길 만한 천사가 없어서,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로도 부족해서 그 사람의 봉사를 그냥 받으려고 하시겠는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사람의 봉사가 주님 앞에 무엇을 보태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주를 의지하고 성신님을 의지해서 가르치신 그 도리대로 신령한 사람, 즉 새사람의 모양을 드러내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주를 의지하고 성신님을 의지해서 가르치신 그 도리대로 신령한 사람, 새사람의 모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형상적인 것, 유형적인(formal) 것에다 의미를 둔다는 것이 잘못이라 것입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물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신다니까 양보다는 황소가 더 좋고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행에 대해서도 양이 적은 것보다도 양이 많은 선행이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 돈도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강박관념(complex)을 가지는 식입니다.”
“1세기 어간은 계시 시대인 까닭에 만사에 그 행위 계시(act revelation)나 말씀의 계시(word revelation)가 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보이는 교회로 존재하려면 어떤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사회나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세상적인 성격, 강렬한 세상적인 특성들은 교회를 향해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공격을 안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 악한 자(ὁ πονηρός)에게 처해 있고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 ὁ πονηρός : 호 포네로스. 호 : 정관사 남성 단수 주격.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와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세계의 문제, 특별히 교회를 향해서 도전해 오는 흑암의 세력의 큰 공격과 작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와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세계의 문제, 특별히 교회를 향해서 도전해 오는 흑암의 세력의 큰 공격과 작용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1일 목요일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스데반의 변론이 유대인들과 대립됨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67쪽

"사람이 항상 사상적으로 심오하거나 더욱 고결한 것을 탐구하고 추구하고 산다면 자기 자신의 현실에 대한 어떤 냉정하고 정직한 비판이 자신의 내부에서 내시(內示)에 의해 발생하든지 아니면 외부의 훌륭하고 우수한 이론에 의해서 자신이 그것을 터득해야 합니다."
"서책을 보았다든지 하면 '아, 그렇구나. 여기에 비추어 보면 내가 아주 잘못 생각했구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사람인 경우, 그중에서도 이편에서 상당히 적의를 가진 사람 쪽에서 그런 비판이 온다면 좀처럼 쉽게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반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현실에 대해 냉정하고 정직하게 비판하게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1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1쪽

"스데반의 사상과 정신으로 보아서는 그런 말도 함 직한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마디로 말하면 본질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가지고 따져라. 무엇이 참된 것이냐. 실제의 세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라. 왜 실제의 세계를 상징화하는 표상을 가지고 자꾸 떠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표상과 실제의 문제입니다. 신약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서 '표상이 아니라 실제다' 하는 것입니다."

본질과 실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2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5쪽

"성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작게 말할 때는 우리의 몸입니다. '너희 몸은 (중략) 너희 가운데 계신 성신의 전, 곧 성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상) 하고 우리의 몸을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 몸으로, 너희 몸뚱이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라'(고전 6:19하-20)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전의 본질은 우리 몸인줄 알게 하시고, 우리 몸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3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5쪽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하고 말씀했습니다.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의 교회는 모여 있는 이 집합을 이야기한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고 본질의 교회, 보편의 교회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즉 불가시(不可視)의 교회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시의 교회가 우리와 떨어져서 어디 딴 데 공중에 돌아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불가시이며 보편적이고 유구한 까닭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형태를 보일 때는 시간과 공간의 범주 안에 들어와서 형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모여 있는 보이는 교회의 형태입니다. 보이는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의 본질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는 이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의 보이는 형태입니다."

보이는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의 본질들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4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5쪽

"그리고 그것이 바로 커뮤니오 쌍토룸(communio sanctorum, 성도의 사귐)이라는 것입니다. 커뮤니오 쌍토룸이란 같이 모여서 교제하고 사랑하고 같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같이 사명을 받고 목적을 향해서 전진하는 이런 상태이지 집을 만들어 놓고 앉아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이 모여서 교제하고 사랑하고 같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같이 사명을 받고 목적을 향해서 전진하게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5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8쪽

"그 당시에는 구약이 계시였는데 그 동일한 계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다 같이 한 하나님을 섬기고 그 계시 위에서 하나님을 찾는 생활 태도를 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반대의 위치에서 죽일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무엇이 작용한 것입니까? 물론 근본적으로 인간의 가장 부조리하고, 가장 의리 없는 타락의 본성인 증오심이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증오심이 작용했을지라도 그때 그 환경을 포착해서 (중략) 흑암의 세력의 주관자가 관여했던 것입니다."

타락한 본성의 작용을 주의하고, 흑암의 세력의 주관자가 관여하는 것을 분별케 하옵소서.


기도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9쪽

"오늘날도 주의 진리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그것을 받을지라도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계시를 가지고 있다는 많은 사람에게 훼파당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제든지 흔히 있기 쉽사옵니다. (중략) 그래도 주의 진리는 이 속에서 확호하게 서서 선양되어야 하겠사오니 주님, 저희들을 깨우쳐 주시사 말씀의 거룩하고 깊은 도리와 실제의 세계에 확호하게 서 있어서 계시된 표상이나 모형이 아니라 실제의 사실과 진실들을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은혜로 인도하시옵소서."

1974년 6월 12일 수요일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