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러니까 세례 받았다. 나는 메시야에게 접붙임 받은 사람이다’ 하고 그런 구안(苟安)에 빠지고 그 세례가 주는 실효를, 세례가 요구하는 실제 내용으로 가지고 있는 효과를 가져야겠다고 생각도 하지 않고 과연 그것이 자기에게 있는가를 검토도 하지 않고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그것은 효과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런 까닭에 효과 없는 세계에서 일보도 벗어남이 없이 주저앉아서 저회하고 있다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평연(平然)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손을 씻었다고 해서 오며가며 남을 미워했다든지 남을 중상모략 했다든지 자기 자신이 남에 대해서 그릇되게 생각하고 오만한 평을 했다든지 하는 것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팔 뒤꿈치까지 씻어서 결례를 행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淨)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 일에 대해서 맹렬히 타매하셨습니다. ‘안 씻은 손으로 무엇을 먹어서 사람이 불결하게 되는 것인 줄 아느냐? 불결한 것은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참조. 마 15:19-20)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성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성경을 대할 때에도 성경 책 자체에서 신성한 무엇을 발견하려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책은 거룩하다’ 하고 책을 우상화합니다. 책이 뭐 거룩합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책을 혼동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경 숭배라는 것도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그릇된 메시야관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1쪽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유일의 구속자이심을 믿었고 구속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중략) 유대교의 성현(聖賢)이라는 사람들이 배출되던 시대입니다. 제1세기 2세기에 난 사람들을 탄나임(תַּנָּים)이라고 그러는데 아주 권위 있는 유대교의 성현들입니다. (중략)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메시야관을 안 고치는 이상에는 메시야를 대속의 구속주로, 자기의 피로 구속하시는 분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메시야의 구속을 믿지 않고서 메시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면 그 세례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로고스가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고 계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고 속죄의 크신 사실을 이뤘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구원을 받을 길은 없습니다.”
“메시야를 보편적인(universal) 구주로 믿고 나와야만 요한의 세례가 성례로서의 효과를 갖고 은혜의 방도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고, 하나님과 자신이 은혜의 계약을 맺었다는 표(sign)가 되고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중략) 만일 바울 선생이 가서 예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도록 하지 아니 했다면 에베소에 모여 있던 열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 그냥 있었을 것입니다.”
세례로써 확증되는 사실들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2쪽
“어떤 사람이 성례 후에도 성례의 효과가 없는 상태가 그대로 계속된다면 이것은 그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중략)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죽음에서 나와 생명으로 들어가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호와 표가 되는 것이고 확증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구원받았는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징표를 주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물리적으로 확실하게 공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이후에는 자기의 육신의 생활도 그 약속(commitment)하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도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를 정당하게 받은 사람은 비록 복음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미흡하다고 할지라도 세례 받으려고 자기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했을 때에는 최소한 성삼위와 그 성삼위 중 제2위 아들이신 하나님과 그의 구원 사실에 대해서 승인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후일에 그의 신앙이 타락했다가 다시 복구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요한의 세례를 받았던 이 사람들에게 있는 위험은 그것을 전연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왜 다시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첫째로 세례는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의 확인이 되는 까닭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구원받았다는 사실의 확인이 될 만한 내용과 요소를 안 가지고 있으면서 전연 별다른 기독론하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까닭에 그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어떤 교단에서 별다른 기독론을 가르치고 그런 별다른 기독론하에서 세례를 받았다면 그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비록 그의 지식이 미흡하더라도 성삼위의 이름 아래에서 아들이신 하나님의 구속의 사실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받았다면 이쪽 교회에 와서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왔다는 표로서 일생에 한 번 정당한 세례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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