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여행이나 2차 여행에서 많은 교회를 다 세웠고 그때 많은 신자가 그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신자들 하나하나가 오순절에 성신을 받듯이 했는가 하면 그런 기록이 도무지 없습니다. (중략) ‘성신을 받았다’는 말뜻은 결코 오순절적인 이양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결론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을 때에 성신 받았느냐’는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주후 64년에 바울 선생은 “중생의 씻음과 성신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딛 3:5)는 말씀을 했는데, (중략) 로마서 8:9이나 고린도전서 6:19-20이나 디도서 3:6이나 고린도전서 2:12, 3:16, (중략) 성신께서는 반드시 새로운 생명을 주시면서 새사람을 형성하고자 그 안에 들어가 계시는 것입니다. 성신이 내주하시고 또 성신이 인 치시고 또 성신이 세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성신의 도리는 바울 선생의 그 서신 가운데 아주 풍성하게 나옵니다. 물론 성신으로 먼저 중생해야 합니다.
“성신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하는 디도서 3:6의 표현처럼 중생 즉시 그 이후로는 성신이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이고 내주하신 성신의 그 현저한 역사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중략) 성신으로서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이루고 그 사명을 행하고 있는 흔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우니까 ‘믿을 때에 성신 받았느냐?’ 하고 물었고 ‘아닙니다. 우리는 성신이 있는 것도 듣지 못 했습니다’ 한 것입니다.”
성신으로서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이루고 그 사명을 행하게 하시며 그 흔적이 있게 하옵소서.
“그러면 믿은 이래로 성신의 역사의 자취는 무엇이냐? (중략) 그런데 너는 믿고 앉아서 무엇을 탐닉(耽溺)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느냐?” * 耽즐길 탐, 溺 빠질 닉.
“조금 있으면 64년부터 네로가 등극해서 박해를 시작합니다. 네로의 무서운 박해가 올 것인데 바울 선생도 그때 붙들려서 결국 68년경에 순교를 하셨는데 그러면 이런 네로의 박해가 오는 그 시대에 바울 선생은 환난에서 끝까지 견디고 참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답게 승리해야 할 것을 모든 교회에 늘 강조해서 가르친 것입니다.”
환난에서 끝까지 견디고 참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답게 승리하게 하옵소서.
“과거에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라는 무서운 박해가 오는데 그것도 모르고 앉아서 교회의 형태와 종교 행사에만 매달려서 거기서 떠들고 있다가 일단 문제가 오니까 아무런 준비 없이 넘어간 것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중략) 구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그렇게 용이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환경에서 이렇게 조용히 지내고 있으면 아무런 바람도 불지 않고 아무런 문제의 도전 같은 것도 없는 것인가?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못 보고 앉아 있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강한 문제들이 늘 앞에 떡 대두하고 있는데, 멀리 한국에 있는 문제까지 이야기할 것이 없이 당장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유치한 상태 가운데 그냥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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