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1일 목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5,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4쪽

“자기가 마땅히 할 것을 잘하고 있다고 자기를 인정하는 아상(我相) 가운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기도의 본의냐 하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 앞에 우리가 구하는 가운데 제일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떡 일어나서, 거기다가 종교적인 자기를 현저하게 세우고 나가는 데에 중점을 둔다면 참으로 문제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찬송도 그렇고 다른 모든 것도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반적인 은혜의 수단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 아상(我相) : “자기의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홀(自惚)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것을 아상(我相)이라는 말로 자주 쓰고 있습니다.”, <사사기 소고 1>, 72쪽.  
“속에 있는 자아(自我)라는 것, 속에 있는 아상 (我相)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 인간의 공리주의 (功利主義)라는 것”, <신앙의 자태 1> 85쪽. 
“1. 『불교』 사상(四相)의 하나.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를 이른다. 2. 자기의 처지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마땅히 할 것을 잘하고 있다고 자신을 인정하는 아상 가운데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4,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3쪽

“기도를 하는 본의(本義)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남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자기는 어떤 시간에 나와서 기도를 했다는 것을 슬그머니 공로와 자기 자랑으로 가지고 있게 되고, 적어도 남에게 자랑은 하지 않지만 자기가 그것을 가치 있는 중요한 일로 여겨서 그것이 결핍되든지 그것을 중단했든지 할 때에는 갑자기 마음 가운데 파동이 일고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심정을 가지게 됩니다.”  

기도로 자기 공로를 삼거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게 하시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거룩한 교통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9일 화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3,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2쪽

“그것이 아주 옳다고 확신하고 받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도리를 좀 더 받아 가면, 그 거룩한 도리를 좀 더 알았다는 새로운 지식의 터 위에서 그것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비추어서 확인해 보고 옳은 것은 더욱 확신을 가지고 굳혀 가고 미비한 것은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개혁 정신의 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도리의 터 위에서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비추어 보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8일 월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2,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2쪽

“처음에 무엇을 받아들였을 때에 ‘그것이 옳겠거니’ 하고 받아들여 놓으면 그것이 나중에 자기에게 거의 전통이 되고 절대화된 우상으로 존재하게 되기가 쉬운 것입니다. 
가령 개혁 교회의 신앙이라고 해서 개혁 신앙과 신학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우상이 되기가 쉽습니다. 개혁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개혁 신학’이라는 체계를 죽겠다고 쥐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으면 깨닫고 거기에 자기를 비춰보고, 자기 자신의 사상 체계를 비추어 보아서 완고한 것이나 그릇된 것이나 자기 식 생각에 그냥 서 있으면 다른 것을 평가하는 평가의 척도나 원칙(principle)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언제든지 다시 신선하게 비판해 보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으면 깨닫고 거기에 자신을 비춰보고 비판해 보고 생각해 보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1,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1쪽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면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 안에서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종교적인 선입견(prejudice)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도 보면 소동을 일으키는 유대 사람들은 다 종교적인 선입견에서 그런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강렬한 종교적인 선입관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비판하고 그것을 재평가하고 취사(取捨)하는 태도를 늘 취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2일 화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4쪽

“성신님께서 저희를 주장하셔서 그러한 것(이것이 과연 그러한지 터득한 부분을 반성하고 복습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을 고귀하고 신사적인 것이라고 가르치신 이 말씀의 뜻을 알고 저희도 이렇게 고귀하고 신사적인 위치에서 늘 살아가기를 바라오며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을 멀리 아덴까지 전송하였듯이 저희도 항상 마음에 거룩한 사랑과 진정을 품고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는 생활을 해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1968년 9월 8일 주일 오전

2020년 12월 21일 월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4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오늘도 은혜를 주셔서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를 배우게 하시고 또한 주께서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지금까지 이 고귀한 베뢰아 사람들을 본받아서 저희들도 고요히 시간을 내서 늘 성경을 공부하는 데에 주력하고, 이것이 과연 그러한지 각각 터득한 부분을 반성 작용에 의해서 다시 복습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데서 아버님의 은혜를 더욱 받기를 원하였고 앞으로도 이렇게 나가기를 원하옵나이다.”

2020년 12월 18일 금요일

베뢰아 사람들이 가진 고귀한 태도 2,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3쪽

“개혁 교회에서는 역사적으로 베뢰아적인 태도를 늘 취하기를 바라서,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 자리에서 기쁨으로 받는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같은 태도를 후닥닥 보이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들은 후에 조용한 가운데서 다시 반성해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기를 바라서, 설교를 듣든지 예배를 드리든지 항상 고요한 가운데 엄숙하게 드린 것입니다.”  

말씀을 들은 후에 조용한 가운데서 다시 반성해서 그것을 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7일 목요일

베뢰아 사람들이 가진 고귀한 태도 1,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2쪽

“그러한 까닭에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하기 위해서 때를 따라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항상 복잡하고 왔다 갔다 하고 일을 잔뜩 쌓아 놓고 일에 매여 있는 동안에는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기에 그렇게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하기 위해서 때를 따라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6일 수요일

하나님 말씀을 해독하는 데도 훈련이 필요함 2,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0쪽

“항상 반성 작용이 필요합니다. 반성 작용이라는 것은 내가 한번 인식한 사실을 나열해 놓고 그것을 비판하면서 차례차례 확인해 가는 심리작용입니다. 이러한 것이 늘 필요한 것입니다.” “배운 정도가 이것을 파악하기에 심히 빈약할 때에는 빈약한 내용밖에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책을 읽든지 말을 들을 때에도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훈련과 지식의 축적과 성장이 늘 필요한 것입니다.” 

책을 읽든지 말을 들을 때에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훈련과 지식의 축적과 성장이 늘 있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5일 화요일

하나님 말씀을 해독하는 데도 훈련이 필요함 1,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0쪽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해득(解得)하려면 해득하는 연습을 늘 해야 합니다. 예배당에 오래 다녔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번도 자기가 반성해서 말씀 자체의 의미를 재정리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냥 들어오는 대로 딱 듣고 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을 잘 보는 사람은 책을 한번 휙 빨리 보고 끝났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론적이고 심오한 도리를 가르친 책을 볼 때에는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을 자세히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하는 데에서 또 걷어 내고 ‘아 그렇구나’ 하고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만일 상당히 심오하게 오랜 세월 동안 연구한 것을 몇 마디로 표현한 것을 간단히 보아서 다 이해하려면 그의 사상이나 그의 생각의 그 깊이가 그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과 비견할 만한 사람이라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득하려고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을 자세히 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4일 월요일

교회가 부흥회적 성격을 취할 때 발생하는 폐단,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18쪽

“교회 안에서 교회 신도들의 신앙을 향상시키려고 하면서 항상 부흥회식 흥분과 감정과 열띤 호응만을 자꾸 일으키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던 태도가 하나님 니라에서는 좀 더 고귀하다는 것을 알았던 개혁 교회의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은 예배 의식과 하나님 앞에 모이는 태도에 대하여서 전통적으로 엄숙하게 하고 신중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함부로 제 감정에 의하여 요동할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기의 이해를 검토하라는 말입니다. (중략) 자기가 이해한 부분 안에서 지금 터득한 바를 바르게 깨닫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이해한 부분 안에서 지금 터득한 바를 바르게 깨닫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1일 금요일

베뢰아 사람들의 신사적인 태도 2,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16쪽

“날마다 주의해서 차례차례 그것이 그러한지의 여부에 대한 확실한 태도를 결정하고 나간 것입니다. 그것을 덮어놓고 천연(遷延)하는 것은 무성의한 태도여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성의와 열정을 가지고 그것이 그러한지 여부를 늘 판단하고 나아간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베뢰아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이러한 베뢰아 사람들의 특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고 그 오의(奧義)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좋은 터를 이룹니다.” 
* 천연하다 : 일이나 날짜 따위를 미루고 지체하다. 옮길 천. 늘일 연. 
* 오의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지니고 있는 깊은 뜻. 속 오. 뜻 의.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주의해서 차례차례 성의와 열정을 가지고 그것이 그러한지의 여부에 대한 확실한 태도를 결정하고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0일 목요일

베뢰아 사람들의 신사적인 태도 1,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14쪽

“본래 신사적이라는 말은 그 마음이 질서를 존중하고 항상 어떤 규례나 마땅히 걸어야 할 대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늘 자기를 주의하는 것을 뜻합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그러한가 하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다’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신사는 격동하는 감정 속에 한꺼번에 휩쓸려 다니지 않고 먼저 자기가 냉철하게 이지적으로 당위(當爲)나 가부(可否)를 바르게 판단한 다음에 마땅히 지지할 것은 중심으로 지지해서 변함이 없이 나아가고, 마땅히 배격할 것은 이론을 들어서 명확환 논리하에서 배격해 나갑니다. 이런 것이 신사의 태도인데 베뢰아 사람들 역시 그러한 신사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9일 수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8쪽

“주의 말씀의 큰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전통에 얽매여서 껍데기만 핥고 있는 동안에는 오히려 예수님을 욕되게 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큰 위험이 있음을 저희가 여기서 발견하였나이다. 그런고로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고 오묘하게 늘 깨닫고 나가게 하시고 그리하여 마땅히 바른 판단과 평가를 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1968년 9월 1일 주일 오전

2020년 12월 8일 화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8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에 거기에서 마땅히 깨달아야 할 깊은 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옵나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바르게 알지 못하여 몇 백 년이라도 그냥 고루한 전통과 그릇된 편견으로 은폐된 가운데 그대로 그것이 정당하다고 그 말씀을 해석하고 나가던 전통적인 유대교와 유대 사람들의 태도 가운데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지극히 큰 은혜로 주의 그 기이하시고 아주 획시기적인 크신 일, 개혁의 큰일을 바울 선생에게나 스데반에게 보여 주셨고 그들의 전(全) 정신을 뒤집어서 심히 오묘하고 깊은 도리를 바르게 추리하고 바르게 생각하게 하셨나이다.”

2020년 12월 7일 월요일

복음을 받은 헬라 사람들 2,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7쪽

“힘이 센 프로메테우스가 있고 별것들을 다 만들어 냈지만, 일단 유사(有事)해서 마음에 큰 불안을 느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생활로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헬라 사람에게 이 구원의 복음이 들어갔을 때, 성신님이 그 마음에 역사했을 때, ‘아, 이거야말로 진리이다’ 하고 마음 가운데 그것을 수긍한 것입니다.” 
“성신께서 그들에게 역사한즉 그것을 믿었습니다.” 

성신께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며 그것을 믿고 생활하도록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옵소서.

2020년 12월 4일 금요일

복음을 받은 헬라 사람들 1,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6쪽

“바울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해서 이런 깊은 사실들을 자기 마음 가운데 확인하고 확신한 것을 데살로니가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메시야론을 시정(是正)해서 신이 인화(人化)하신 메시야, 인간으로 사람의 모든 고통과 죽음을 맛보셨으나 죄 없으신 메시야, 그러나 다시 사시고 영화(榮華)하신 메이야, 그분을 이야기하였고, 둘째는 ‘나사렛 예수야말로 모든 언행과 그 역사(役事)에 있어서 도무지 틀림이 없는 메시야다’ 하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바울 선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확신한 이런 깊은 사실들을 올바로 깨닫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3일 목요일

오늘날의 그릇된 기독론,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4쪽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있는 중요한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른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성경은 자기네가 독점하고 일수판매(一手販賣)해서 자기네가 가장 권위 있는 정통으로 여기면서 진리를 더 깊이 아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나가는 것이 오늘날 세대에 허다한 배교상(背敎狀)입니다. (중략)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바르게 이야기하면 구식(舊式)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 그릇된 메시야관이야말로 헬라적 신화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성경 해석이라는 것은 자기네의 독단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내외에 있는 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보면 헬라적인 신화, 혹은 다신교의 그릇된 영향 가운데 있던 사람들의 생각과 비슷한 그릇된 기독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바르게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일 수요일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2,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4쪽

“예수님께 대해서 연구를 안 해 보고 예수님께 대해서 옳다 그르다 한다면 얼마나 큰 무식이냐는 말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연구해 보지 않고 성경에 나와 있는 묘사가 예수님에게 맞는다는 것을 믿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암매입니까. 
사실상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모르는 사람과 같이 답답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저렇게 답답할까’ 생각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는 사람과 같이 멍청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되지못한 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유대 사람들이 꼭 그렇게 멍청하고 답답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면서 성경은 자기네가 가장 잘 아는 체하고 예수님을 가장 핍박을 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 연구하여 예수님을 바로 알고 깨닫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일 화요일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1,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2쪽

“구약에 있는 이사야서를 떡 끄집어내서 해 받으신 이야기를 했겠고, 다니엘에 있는 ‘기름 부은 자의 끊어짐을 보리라’(단 9:26)는 말씀을 가지고 해 받으신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을 인용해서 ‘그는 썩지 아니한다. 그는 무덤 가운데에서도 그 육신은 안전히 거하다가 다시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아간다’(시 16:9-10)하는 말씀의 의미도 가르쳤을 것입니다.” 
“지금 나를 핍박하는 것은 마치 내가 스데반을 핍박한 것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왜 그러는가 하면 그들이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옵소서.

2020년 11월 30일 월요일

다메섹 노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일,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199쪽

“그 예수, 죽었으면 없어져 버렸어야 할 예수, 죽었으면 그 영혼이나 있지 육신이 그대로 있지 못할 예수가 영광 가운데 역력한 육신으로 나를 향해서 불렀다.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중략) 가까이 가지 못할 거리감을 주면서도 보이기는 역력하게 굉장히 크게 보인 것입니다. (중략) 물리학적인 법칙에서는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바울 선생과 같이 영민(英敏)하고 지식이 많은 이는 예수님을 만나 뵌 후에 그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멀리 계셔서 가까이 가지 못할 빛 가운데 거하시면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거기에서 이야기를 하셨는데도 나에게 그렇게 명료하고 가까이 그렇게 크게 나타나셨다. 도저히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나 감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현상으로 나타나 보이셨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거기에서 저희에게 명료하고 가까이 대하시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찬미하고 경배하고 높이고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7일 금요일

바울 선생이 해명한 위대한 메시야사상,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198쪽

“그들은(유대인들) 메시야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신화해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승낙치 않으면서도 그 속성상 신과 같이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바울 선생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뒤집었느냐 하면 ‘그는 신이었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땅에 오셔서 모든 점에 있어서 사람과 꼭 같이, 항상 모든 일에 초연한 능력을 발휘하시는 것이 아니라, 즉 그가 당하는 육신의 고통이나 심령상 고통을 당신의 능력으로 제어해서 오지 못하게 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 인생이 받는 모든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과 아픔을 다 당하시되 죄는 없으시느니라’(히 4:15) 여러분, 그것이 바울 선생이 해명해 놓은 위대한 메시야 사상입니다. ‘죄 없으신 그분은 또한 단순한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그런 것이다’ 이것이 그가 제시한 새로운 메시야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에 거기에서 마땅히 깨달아야 할 깊은 도리를 바르게 깨닫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6일 목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91쪽

“저희는 역사를 보는 눈이 천견(淺見)이고 단견(短見)이어서 사물을 관견(管見)하는 사람들이오나 저희가 성신을 의지하고 주께서 주신 거룩한 지혜를 받아서, 저희에게 주신 모든 진리가 가장 유효하게 주의 영광을 위해서 쓰이게 하시옵소서. (중략) 진실로 우리에게 주신 지혜가 논리적으로 순서 있게 바르게 사용되어야 할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게 하옵소서.” 

1968년 8월 25일 주일 오전

2020년 11월 25일 수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90쪽

“거룩하신 주님, 저희에게 주신 은사는 무슨 은사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가장 적절히 유효하게 최선을 다해서 사용해야 하고 그것이 어디에 유휴(遊休) 되거나 낭비되어 세상에서 허투루 소모되어서는 아니 될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나이다. 아버님께서 일찍이 그 사랑하시는 종 바울에게 주셨던 많은 지혜와 식견은 주께서 성신님으로 붙드심으로 인해 큰 통찰력으로 발휘되어서, 그의 생활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배우면서부터는 항상 가장 지혜 있게 행동하고 지혜 있게 생활을 해서, 그로 말미암아 복음이 오늘날 저희에게까지 미치는 큰 기초를 은혜롭게 세울 수 있었사옵나이다.”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복음을 전하는 데에 나타난 바울의 지혜,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9쪽

“성신의 인도함을 받고 점점 나아가면서 복음의 효과 있는 전달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항상 중요한 거점(據點)을 세워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민도(民度)와 깊은 정치적인 식견(識見)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라니까 오다가다 아무 데라도 들어가서 덮어놓고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시오’ 하고 돌아다닌 것이 아닙니다. 여기 보면 두 군데 암비볼리나 아볼로니아는 그냥 알과(戞過)했다고 했습니다.” 
* 民度 : 국민의 생활이나 문화 수준의 정도. 
 * 戞過 : 어떤 곳의 근처를 지나면서 그곳을 들르지 아니하고 그냥 지나감.  

성신의 인도함을 받고 점점 나아가 지혜로운 결정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3일 월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6,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7쪽

“스코틀랜드 국회가 일어나서 당장에 칼빈주의로 다 개종을 할 때에는 요한 낙스(John Knox, 1514-1572)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고 낙스는 칼빈의 밑에 와서 조용히 앉아서 공부를 하고 나갔던 사람입니다.”  

주재(主宰)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0일 금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5,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6쪽

“칼빈 선생은 제네바에 앉아서 자기 자신이 군중을 모아 가지고 거대한 개혁 운동을 할 수 있었지만 군중을 모아서 떠드는 것으로 개혁 운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개혁 운동이라는 것은 원칙의 문제이고 진리의 문제인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면, 배우고 나가서 그것을 크게 퍼트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는 자자 영영(孜孜營營)히 오디토리움(auditorium)에 앉아서 매일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 孜 힘쓸 자, 營 경영할, 지을 영. 자자영영하다 :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다. 

모든 통재(統宰)를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4,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6쪽

“루터는 결코 게르만 민족의 힘을 빌려서 라틴 족을 때리려고 하지도 않았고, 게르만의 민족 운동이나 시민 사회에서 당연하게 발흥(發興)하는 세력을 이용해서 가톨릭의 권위주의 체제를 뚜드려 부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하나님 나라의 일을 사람의 책략과 사람의 힘을 빌려서 하려고 할 때에는 일이 되지 않는다’ 하고서 끝까지 하나님 말씀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신께서 누구를 들어서 어떻게 싸우는가 보자’ 했을 때에, 성신께서 들어서 쓴 사람이 섹소니아 선제후(Elector of Saxony)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사람의 책략과 사람의 힘을 빌려서 하려고 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다 맡기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8일 수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3,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5쪽

“개혁 시대를 보면 우수한 인물들이 별과 같이 거기에 모여서 밀고 나아갔습니다. (중략) 대독일의 황제가 일어나서 루터와 항쟁해서 끝까지 죽여 버리려고 했지만 루터는 끝까지 자기의 원칙(principle)과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한 그가 주신 지혜를 가지고 가장 정당하게 움직여 나간 것입니다.” 

끝까지 원칙과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주신 지혜를 가지고 가장 정당하게 움직여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7일 화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2,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5쪽

“펠라기안(Pelagian)적인 그릇된 사상을 타매(唾罵)하고 바르게 비판하고 세운 어거스틴의 신학은 그 후에 칼빈 선생에 와서는 아르미니아니즘(Arminianism)을 타매하고 비판하고 나아가는 운동으로 다시 복귀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이런 역사적인 바른 신학을 포기하고 차라리 율법주의적이고 즉물주의적인 경건주의로 마구 흘러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경건주의도 못 되고 그냥 교회 기업주의, 처치애니티(churchianity)라는 것으로 자꾸 흘러 내려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 Pelagian : Pelagius주의자((원죄를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를 믿음)) 
* Arminianism : 아르미니우스설 ((인간의 자유와 능력을 구원에서 인정한 사상)) 
* churchianity : 특정 교회의 관습이나 이익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 

교회가 역사적인 바른 신학을 밀고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6일 월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1,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4쪽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던 시기는 반드시 아주 우수한 두뇌와 우수한 정신들과 우수한 인품들이 교회 안에 모여 있을 때였습니다. 가령 교부철학(敎父哲學)의 완성과 동시에 바울 선생의 신학 이래로 신학의 대종을 세운 이가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입니다. 어거스틴의 두뇌는 아마 역사상 가장 종합적이고 우수한 두뇌 중 하나일 텐데 그는 철학의 세계에서도 위대한 교부 철학자로 그 시대를 장식했지만 무엇보다도 신학에 있어서, 즉 성경 해석에 있어서 깊고 오묘한 것을 투철하게 발견해 냈습니다.” 

아주 우수한 두뇌와 우수한 정신들과 우수한 인품들이 교회 안에 모이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3일 금요일

노래하는 사람의 예,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4쪽

“여러분, 살리아핀(Chaliapin, 1873-1938)이라는 유명한 가수를 아시지요? (중략) 그가 『메피스토펠레』(Mefistofele)라는 가극을 할 때 보면 (중략) 그렇게 마귀 노릇을 해서 사람들에게 ‘아, 마귀는 저런 것이다’ 하는 영감(inspiration)을 주는 것입니다. 한때는 살리아핀도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성당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기능이 교회에 있지 않고 자꾸만 사회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 이 세상 나라로 뻗어 나가서 그쪽에 자기의 안주지지(安住之地)와 성공과 빛과 영광을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혜도 그렇고 지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주의 영광을 위해 가장 적절히 유효하게 최선을 다해서 사용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2일 목요일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어디에 써야 하는가,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0쪽

“우수한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와서 교회의 프린시플(principle)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운영하고 그래서 바르게 역사를 지어서 다음 대(代)에 물려준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지혜나 지식 혹은 위대한 명철을 주시고 위대한 판단력을 주시고 위대한 예술적인 창조력을 주셨다면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영광의 한 부분씩을 가장 유효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주신 것이지 제멋대로 나아가서 이 세상만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프린시플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운영하고 그래서 바르게 역사를 지어서 다음 대에 물려주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1일 수요일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보는 지혜의 결핍 현상,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78쪽

“하나님 나라를 운전해 나가려고 할 때에, ‘거기에는 지모(智謀)가 필요 없고 사람의 명철이라는 것이 작용하지 않는다’ 하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사람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확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주신 은혜인 지혜나 지식이나 명철을 잘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앞을 늘 내다보고 바른 예산하에서 일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0일 화요일

하나님 나라의 일과 지혜 2,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76쪽

“프로그램이 서 있지 않은 전투는 만용(蠻勇)에 불과하고 결국 맹전(猛戰) 가운데 참패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계획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야 한다’ 하는 말, 즉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明哲)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하는 말씀을 ‘그러니까 우리의 명철이라는 것을 일체로 써서는 안 된다’ 이런 말로 바꾸어 놓으면 큰 망동(妄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프로그램을 세우고 계획을 세워 일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9일 월요일

하나님 나라의 일과 지혜 1,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76쪽

“복음을 전할 때에는 어디든 닥치는 대로 문 앞에 이르러서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가운데 성신의 깊은 지혜를 가지고 목표를 세운 다음에 ‘여기서 하고 다음에는 어디로 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役事)를 땅 위에 구현(具現)시키려고 할 때에는,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국가의 국운(國運)을 반전시키고 판도(版圖)를 넓히려고 할 때에 가지는 정치적인 식견(識見)에 못지않은 위대한 식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기독교 역사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깊은 지혜를 가지고 목표를 세워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 땅에 구현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6일 금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72쪽

“주님, 불사신(不死身)과 같은 이 찬연한 능력의 발현이 저희들 식구들 속에, 이 교회 안에 찬연하게 능력 있게 깃들고 나타나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여기서 더욱 그것이 빛나기를 간절히 기도하옵고 구하옵나이다. 저희 모든 현실적 사정을 주께서 아시오니 권고(眷顧)하옵소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사 모든 것을 쓰셔서 결국은 아버님의 영광을 드러내시옵소서. 모든 것을 쓰셔서 아버님의 영광을 저희를 통해서 드러내실 만큼 저희들은 장성해야 할 것이고 아버님께 전부를 맡기고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겠나이다.” 

1966년 9월 28일 수요일

2020년 11월 5일 목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71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들의 생활의 길에 아버님의 거룩한 나라의 영광과 능력이 충만케 하여 주셔서 우리의 인간적인 조건 여하를 불구하고 그 나라와 그 나라의 시민인 저희의 속사람의 순수한 능력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증진되어야 하겠고 저희의 생활을 통해서 더욱 아름답게 비쳐야 하겠사옵나이다. (중략) 그것이 저희 속에 늘 쌓여서 저희의 환경이 여하하든지 저희들을 통해서 늘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저희에게서 늘 강하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옵소서.”

2020년 11월 4일 수요일

바울과 실라의 찬송에 천지가 화답함 3,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71쪽

“그 후에 역사는 감연히 이렇게 하늘의 소리를 부르고 하늘의 세계에서 늘 사는 그 사람들의 목숨이 떨어지면서라도 하늘의 세계는 그대로 진행해서, 로마 제국이 아무리 그것을 눌러 보려고 했어도 그것은 도도한 바닷물과 같이 그냥 밀고 내려갔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의 역사는 한마디로 이 서전(緖戰)에서 나타난 하늘의 그 능력을 그대로 증거하면서 나아간 역사입니다.” 
* 緖 실마리 서. 

하늘의 소리를 늘 부르고 하늘의 세계에 늘 살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3일 화요일

바울과 실라의 찬송에 천지가 화답함 2,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70쪽

“자기의 경계가 하늘에 닿아 있을 때 비로소 하늘의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 하늘의 소리를 참으로 들었을 때에 그 사람들은 전에 어떠한 악대(樂隊)나 어떠한 합창대(chorus)나 어떤 예술가가 부르는 소리보다도 아주 기이하고 아주 심오하고 아주 특이하고 초연한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저의 경계가 하늘에 늘 닿아 있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일 월요일

바울과 실라의 찬송에 천지가 화답함 1,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69쪽

“바울과 실라도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에 그들이 누구와 늘 관계하고 사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여기서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찬송입니다. 기도하고 울고 매달린다는 자기의 세계에 그냥 갇혀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의 세계에 마음이 있었던 까닭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왜 이렇습니까?’ 하고 울고 야단 내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껍데기는 토굴 속이지만 찬송이 나왔습니다. 그 속사람이 지금 하나님 나라의 세계에 딱 살고 앉아 있는 까닭에 그 나라의 의와 평강과 기쁨을 노래한 것입니다.”  
토굴 속에, 자기의 세계에 그냥 갇혀 있지 않고, 속사람은 늘 하나님 나라의 세계에 딱 살고 앉아서 그 나라의 의와 평강과 기쁨을 노래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31일 토요일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 5,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68쪽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죄악 가운데에서 생활할 때의 얼굴을 보면 그 눈이나 얼굴에는 반드시 죄악적인 의식, 혹은 ‘나는 권위자다’ 해서 그 맹렬한 얼굴이, 엄장(嚴莊)한 그런 의식이 드러납니다. (중략) 사람은 생활환경에 따라서 용모가 나옵니다. (중략) 다이아반지도 전체의 교양과 우아성과 고귀성이 균형이 맞아서 조화가 있는 사람이 끼어야 금상첨화(錦上添花)로 아름답지, 반지 하나만 빛나고 그의 얼굴 용모라든지 하고 있는 꼬락서니나 말하는 것을 보면 구역질이 날 사람이 이것만 끼고 돌아다닌다면 우스운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느냐? 누구와 접촉하느냐? 누구와 제일 가까이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용모에 속사람이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활하고 마음을 그곳에 두어 그러한 속사람이 드러나 보이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30일 금요일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 4,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67쪽

“하나님 앞에 늘 경배하는 참된 무아(無我)의 경계(境界) 가운데 때를 따라서 자꾸만 들어가는 사람의 얼굴에는 빛이 비칩니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경배하고 경배의 거룩한 경계, 무아의 경계 가운데 들어갔다 나온 사람의 얼굴이 어떠한가 하는 예는 모세인데 그가 40일 동안 하나님의 영광에 직접 접촉해서 그 앞에 엎드려서 구하고 말씀을 듣고 나오니까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수건을 덮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빛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햇빛의 그 환한 밝은 물리적인 광선도 영광인 것입니다. 요컨대 광명이라는 것 전부가 하나님의 영광의 한 부분이요 혹은 영광의 자취입니다. 그런고로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늘 경배하는 참된 무아(無我)의 경계(境界) 가운데 때를 따라서 자꾸만 들어가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9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 3,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66쪽

“바울 선생의 얼굴에는 굵은 돌로 맞은 자리가 있어서 흉터가 있고 (중략) 얼굴이 일그러져서 보기가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은 ‘어디서 저런 괴상하게 생긴 사람이 왔는가?’ 하는데 일단 입을 열어서 하나님 말씀을 턱 전하고 그가 남하고 접촉하면서 사흘만 같이 살면, 그 모든 것이 다 눈앞에 보이지 않고 아름답고 거룩한 것밖에 안 보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일입니다. 겉사람은 날로 후패해서 장막은 차츰차츰 낡고 흠이 나고 할지라도 그 속에 있는 찬연한 사람은 금과 같이 빛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속에 있는 참된 보물이 차츰차츰 더 가득하고 더 빛나고 더 정련(精鍊)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 2,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65쪽

“달빛은 참 교교히 아름다워서 바라보고 바라보아도 끝없는 시정(詩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찬연히 빛나면 그의 얼굴이 어떻든지 오히려 그것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인하여 귀하게 보였다는 말입니다.” 

늙어서 이가 빠지고 나중에 머리가 호호백발이 되고 주름살이 늘수록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욱 비추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7일 화요일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 1,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64쪽

“지금 핍박을 받고 매를 하나 더 맞았으면 그리스도의 영광은 더 축적되어서 그것이 나중에 우러나올 때에는 찬연하게 빛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실라는 저 깊은 땅굴 옥 속에서도 시편을 들어서 찬송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핍박을 받더라도 그만큼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 축적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6일 월요일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3,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63쪽

“세상에서 육신의 몸이 죽는 순간까지, 즉 육신이 영혼과 분리되는 그 시간까지 우리의 속사람은 참으로 빛나게 장성해 나가는 것이 중생한 사람이 당연히 걸어가야 할 코스입니다. (중략) 중생한 사람은 조건이 나빠지면 나빠진 만큼, 즉 이 껍데기가 벗겨져서 기지(機智)나 총명(聰明), 건강, 발랄한 희망, 욕망, 정열, 이런 것이 탁 꺾어지면 꺾어진 만큼 겉사람에게 가려 있던 찬연히 빛나는 속사람이 그만큼 구실을 더 해야 합니다.”  

육신의 조건이 나빠지면 나빠진 만큼 겉사람에게 가려 있던 속사람이 그만큼 구실을 더 하고, 참으로 빛나게 더 장성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2,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61쪽

“우리는 젊은 사람이 믿는 것이나 노인들이 예수 믿는 생활을 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거울삼아 늘 자기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항상 자기 세계에서만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예수 믿어서 저렇게 된다면 자, 예수를 그렇게 믿어서 좋을 것인가?’ 하고 생각할 바가 있습니다.” 

늙을수록 젊었을 때보다 좀 더 낫고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으면 그전보다 좀 더 나아서 남들에게 그리스도를 좀 더 나타내고 그래서 죽는 그 시간까지도 자꾸자꾸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다가 죽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3일 금요일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1,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59쪽

“바울과 실라가 가지고 있는 그 속사람의 본질이 핍박과 환난에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평안함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그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고고한 위치에 올라 서 있는 품성과 인격이었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조건이나 환경의 조건이나 육체의 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그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2일 목요일

찬미에 이어 두 가지 기적적인 사실이 발생함,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59쪽

“핍박과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는 주님 앞에 기도하고 주님께서 위로를 주시면 그 위로를 받고 마음에 안정을 얻고 고요한 가운데 지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한 핍박의 끝에 하나님 앞에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찬송을 하게 된다면 이것은 일반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에 대한 이해와 터득의 정도가 통상적인 데 그쳤다면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터득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바울 일행이 고소를 당함 3,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52쪽

“깨닫는 소수가 있으면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것을 그냥 죽어라 붙들고 나오는 보수적(保守的)인 상태가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정형입니다. 좋게 말하면 보수요 나쁘게 말하면 완고(頑固), 완패(頑 완고할 완, 悖 어그러질 패)입니다. 완고한 것이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했습니다(삼상 15:23).” 

완고를 깨고, 바르게 놓을 것을 바르게 놓고 바로잡을 것을 바로잡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0일 화요일

바울 일행이 고소를 당함 2,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51쪽

“병든 사회, 부패한 사회는 그 부패가 점점 심해져 가는 어떠한 관성(慣 버릇 관, 性)적인 상태 가운데 있는 까닭에 어떻게 보면 안정한 듯하고 고요한 듯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안정하고 고요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해서는 마지막에 부패하고 만다’ 하고 파훼하는 데에서 비로소 참된 구원의 생명의 능력이 발휘될 것입니다. 이 부패한 세계에 생명의 은혜가 내려가면 부패한 세계가 안정한 데에서 그대로 더 고요하고 안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번은 뒤집혀야 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놓을 것을 바르게 놓고 바로잡을 것을 바로잡는 새로운 질서의 정돈과 정리가 생겨야 합니다.” 

부패를 파훼하고 참된 구원의 생명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19일 월요일

바울 일행이 고소를 당함 1,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49쪽

“정의를 앞세워서 자기의 이익을 비호(庇 감쌀 비, 護 보호할 호)하고 혹은 설원(雪 씻을 설, 冤 원통할 원)하기 위하여, 분풀이를 하기 위하여 나선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 사람이 흔히 하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이 정의와 인도를 부르짖을 때에는 사실상 자기의 괴악한 감정을 가지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설욕하거나 설분(雪憤)하려고 하는 일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괴악한 감정으로 정의와 인도를 부르짖지 않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43쪽

“지혜를 주시사 마귀의 어떤 유혹이나 회유나 동맹을 요구하는 어떠한 사실도 냉연히 거절할 뿐 아니라 그것을 제거하게 하시고 항상 철두철미 주님의 은혜와 진리에만 부속해 있게 하시며, 진리를 떠난 다른 어떤 사실로도 그것이 바르게 서지 않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중략) 암매와 몽매 가운데에 있사오니 저희들을 항상 지켜주셔서 밝히 보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게 하시고 저희들로 하여금 늘 마음이 순수하게 주님만 의자하고 진리에 확실히 붙어서 있게 하여 주시고 성신이 충만히 저희를 온전히 지배하시고 강한 성이 되사 두르고 지키시옵소서. 주님, 늘 이와 같이 저희와 함께하시고 영광의 목적을 향하여 저희에게 힘 주시고 전진케 하시며 두려움 없이 용기 있게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게 하옵소서.” 

1966년 9월 21일 수요일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42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주의 말씀을 상고할 수 있게 하시고 말씀으로 또한 큰 용기와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하시니, 저희들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필요한 때에 누가 되었든지 주께서 들어서 영광을 위하여 쓰신다는 이 큰 사실을 바라보옵나이다. (중략) 주님께서 저희에게도 은혜를 주셔서 저희가 가진 사명을 분명케 하시며, 저희들이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주님께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면서 크게 능력 있게 전진해 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2020년 10월 15일 목요일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 3,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42쪽

“교회가 예배당을 짓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자기네 신앙의 장성의 증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누구에게 구걸을 얼마 했다는 증표로 예배당을 지어 놓고 앉았으니까 벌써 타락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가운데서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14일 수요일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 2,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38쪽

“자기 자신이 진리에 대한 확실한 능력과 진리의 확실한 실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증시하지 못하면 백번 별 소리를 다 하더라도 그 신학이라는 것은 송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별 괴상한 이야기나 하면 별것이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굉장한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괴롭고 아픈 사람에게 암만 백 가지 이론을 해도 그것으로 아픈 사람이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 그 속에 들어가야 그 마음에 평화가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싫어서 돌아서는 사람에게 내가 백 가지의 신앙 이론을 한다 해도 돌이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신이 그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면 간단한 몇 마디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듣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확실한 능력과 진리의 확실한 실증을 가지고 있고 증시하게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13일 화요일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 1,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36쪽

“오늘날 세계의 교회가 타락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중에 많은 경우는 마귀와 이런 식 동맹을 맺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면에서 동맹을 하는데, 주로 재력(財力) 동맹이 많습니다.” 

교회가 마귀와 재력 동맹을 맺지 않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마귀는 먼저 동맹을 제안함 4,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36쪽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들어서 쓰시는 거룩한 종이 와서 가담할 때에는 감연히 손을 잡고 같이 일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어떤 것이 올 때는 냉연히 거절해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붙드셔서 족하다. 네가 도울 아무 권리가 없다’ 하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것을 족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종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와도 냉연히 거절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11일 일요일

마귀는 먼저 동맹을 제안함 3,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35쪽

“옥에다 넣고 때리고 야단 냈지만 그런 때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동맹을 거절함으로써 마귀가 일어나서 폭력을 쓰게 되었을 때에 마귀는 승리해 본 일이 없습니다. 폭력을 쓰면 쓸수록 하나님 나라는 마치 화톳불을 때리면 때릴수록 일어나는 것같이 확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십자가의 길 자체가 승리라는 것을 생활로써 증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핍박을 받음으로써 자꾸 굳어지고 불 속에 들어감으로써 정련된 금과 같이 빛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입니다.” 

마귀와 동맹하길 거절하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10일 토요일

마귀는 먼저 동맹을 제안함 2,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34쪽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 진리를 선전하고 진리를 전달하는 특권도 진실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있을 뿐이지, 마귀와 같은 허위(虛僞)의 종속 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행할 때에는 ‘너와 내가 동맹할 필요가 없다. 동맹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한다. 마치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한 것같이 네 힘을 빌어다 쓰지 않는다.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은 절대로 하나님의 원수의 원조를 털끝만치도 받지 않는다. 나는 너를 적으로 대하고 싸울 뿐이다.’” 

진실 가운데 있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9일 금요일

마귀는 먼저 동맹을 제안함 1,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34쪽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영광을 전파하는 특권과 그러한 은혜의 경영은 하나님께서 오직 그 자녀에게만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 외에는 진리를 전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진리에 속하지 아니한 다른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진행에 돈으로나 말로나 어떠한 사실로나 권력으로나 원조한다고 할 때 그것을 받는다면 그것은 교회의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영광을 전파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8일 목요일

빌립보 교회의 시작,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29쪽

“하나님 나라는 적극적으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가담하고 애를 쓰는 이들을 써서 전진시키시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신 바 은사로 했으면 그 길로 이어서 게으르지 않고 항상 진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적극적으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가담하고 애를 쓰게 하옵시며 주신 바 은사로 그 길로 이어서 게으르지 않고 항상 진행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7일 수요일

신령한 전쟁의 주역이 된 두 여인 3,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25쪽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거룩하고 신령한 전사(戰士)는 항상 사람들이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나 지각이 있고 공부를 많이 한 남자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미미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다만 충성스럽게 주님을 사랑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그분의 생활을 지탱해 준 것도 남자들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야단 내고 다녔지만 제자들이 지탱한 것이 아닙니다. 기록으로 보면, 끝까지 십자가까지 따라간 여인들, 돌아가신 후에는 무덤까지 갔던 그 여인들이 지탱해 준 것입니다.” 

미미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다만 충성스럽게 주님을 사랑하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신령한 전쟁의 주역이 된 두 여인 2,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25쪽

“하나님께 대해서 냉담하고 맹목인 가정이나 남자들에 대해서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의 방도가 되고 하나님의 복의 기관이 되어서 버티고 있는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는 부인들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남자들이 회의적이고 향락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시대에 그래도 그 가정에서 하나나 둘이라도 주님을 섬기고 모시고 살아가면 그들이 은혜의 기관이 되고 복의 기관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셔서 결국 하나님 나라를 진행하시고 말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모시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쓰셔서 하나님 나라를 진행하옵소서.

2020년 10월 5일 월요일

신령한 전쟁의 주역이 된 두 여인 1, <사도행전7>, 제5강 빌립보 성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이 세워짐, 123쪽

“하나님 나라의 진행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의 전투의 역사라는 것은 남이 별로 주목하지 않을 만한 미미한 몇 사람이 차츰차츰 들어가서 고요한 가운데 먼저 발붙일 자리를 찾고 발을 붙인 다음에는 거기서 일 보씩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참여할 자리를 찾고 발을 붙이고 거기서 일 보씩 전진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4일 일요일

기도 5,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114쪽

“저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주의 영광을 위한 생활의 행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께서 이 교회에도 충만히 공급하시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참으로 하나님 나라의 기를 높이 세우게 하시고, 결국은 불타 버리고 결국은 스러져 버릴 세상의 영광이 무색한 데서 하나님 나라의 기만이 찬연히 빛나며 나부끼게 하옵소서.” 

1966년 9월 14일 수요일

2020년 10월 3일 토요일

기도 4,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113쪽

“주님, 저희에게 이 은혜를 주시려고 모든 인간적인 조건을 다 철폐해 버리시고 저희를 선택하시고 은혜를 베푸시오니,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 저희가 주의 영광을 위해서 참으로 유효하고 능력 있게 증거해서 세상 사람의 그릇된 편견이나 오해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이며 얼마나 볼 것이 없는 것인가를 웅변으로 가르치고 나타내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2일 금요일

기도 3,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113쪽

“저희는 미미한 소수의 자녀들이지만 주께서 큰 능력을 베푸사 영광스럽고 능력 있게 쓰시기를 바라오며, 주께서 저희의 마음 문을 여시고 저희들의 생각을 밝히 환하게 비추심으로써 남자들이나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꽉 막혀서 암매 가운데 방황하고 있을 때, 저희에게 지혜를 주셔서 넓고 큰 세계, 하나님 나라가 진행하는 큰 사실을 멀리 바라볼 수 있고 대관(大觀)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옵소서. 이리하여 저희의 지혜가 깊고 저희의 관찰하는 것이 해박하고 저희의 생각이 항상 하늘나라에 있어서 높고 거룩하여, 진실로 하나님 나라의 싸울아비답게 용감스럽고 능력 있고 신령하고 거룩하게 하옵소서.”

2020년 10월 1일 목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112쪽

“아버님의 크신 은혜는 과거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오만이나 모든 오해를 다 봉쇄하시고 쳐 물리치시며,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종을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주장하심과 힘 주심이라는 것은 사람의 제도나 생각이나 관습에 의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가르치시고, 어디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역군이 있고 하나님의 종들이 있고 하나님의 군대가 있으면 그가 가는 곳마다 그와 연합하여 전쟁에 유리한 기지를 제공하는 일이 있어서 결국은 승리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의 기호(旗號)를 거기에 높이 올리게 한다는 사실을 저희가 보고 이제 주님 앞에 감사하옵나이다.”

2020년 9월 30일 수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112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님께서는 이 세상의 많은 인구들 가운데서 원하시는 사람을 뽑아내시고 불러 내사 성신님의 역사(役事)로 그 마음을 열게 하시고, 각각 받은 바 은사대로 아버님께 그들의 모든 능력을 맡겼을 때에 100배 혹은 60배 혹은 30배나 넉넉히 쓰셔서 하나님 나라의 큰 진행과 하나님 나라의 큰 정복의 행군을 힘써 돕고 같이 행진하게 하신 큰 역사를 여기서 이제 보옵나이다.”

2020년 9월 29일 화요일

자주 장사 루디아 2,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111쪽

“오늘날에도 교회에 남자들이 적고 여자들이 많다면 그것은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남자들이 비겁자가 되었든지 맹목자가 되었든지 무능력자나 무기능자가 되어서 전쟁에 가담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소위 남자라고 뽐내면서 무슨 생각이 어떻게 들었기에 하나님 나라의 깊이도 모르고 하나님 나라의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밤낮 앉아서 가갸거겨만 되풀이하고 자기는 잘 믿는 듯이 돌아다니면서, 여자들이 모였다고 함부로 무시하는 소리를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되지못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을 들어서 강한 자를 무색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시는 큰일을 하시옵나이다. 이런 일을 유념케 하옵소서.

2020년 9월 28일 월요일

자주 장사 루디아 1,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111쪽

“주께서는 때를 따라서 이렇게 일하시는데, 과연 주님의 거룩하신 능력 하에서는 유대 사람들의 편협한 생각대로 ‘남자라야만 한다. 무엇이라야만 한다’ 하는 것이 다 의미가 없습니다. 전 세계를 정복하는 복음의 거대한 비약이라는 이 큰 사실, 복음이 바다를 건너서 유럽으로 탁 튀어 들어오는 이 사실을 생각할 때, 복음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는 큰 관문이요 큰 시작인 여기에서 누가 거점을 제공하고 누가 참으로 하나님의 군대에 가담해서 같이 일을 했는가 하면 한 여인이 했습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군대에 가담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27일 일요일

기도처를 찾아가서 거기에 모인 여자들에게 말함,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108쪽

“바리새교인이었던 바울 선생이 지금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自主者)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하는 거룩한 사상을 지녔습니다. 그렇게 전 사상 체계가 완전히 변한 바울 선생에게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만 눈에 보였지 남자가 앉았다든지 여자가 앉았다든지 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품은 거룩한 사상으로 남자든 여자든 종이든 자유자든 가리지 않고, 다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는 것만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26일 토요일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의 의미,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103쪽

“로마 최후의 정복자는 누군가 하면, 그것은 브루투스나 카시우스나 안토니우스까지 다 물리치고 홀로 황제가 되고 절대 권력자(dictator)가 된 아우구스투스가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언제든지 최후의 정복자요 최후의 승리자이십니다.”  

최후의 정복자요 최후의 승리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소망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25일 금요일

환상은 판단의 재료일 뿐임 3,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97쪽

“어떤 특이한 사실을 꿈꾸었으면 그 일로 인하여 지금까지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다가도 무엇을 생각할 수 있고 또는 전연 생각지 않았던 어떤 소설이나 글을 보다가 그 사람이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고서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꿈이나 그림, 소설이나 글 등을 판단의 재료로 지혜롭게 사용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24일 목요일

환상은 판단의 재료일 뿐임 2,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96쪽

“사람들은 환상이 마치 직접적인 계시인 것같이 떠들지만, 바울 선생은 환상을 직접적인 계시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난 다음에 ‘내가 그 환상을 가지고 추리하고 판단해서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로 인정했다’고 한 것입니다.” 

건실한 지혜와 지식과 판단력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해득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23일 수요일

환상은 판단의 재료일 뿐임 1,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95쪽

“환상도 환경이라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성신님의 거룩하신 계시를 그에게 주는 도구로만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컨대 우리가 환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해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처럼, 그런 묵시(默示)를 보여 주셨을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해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묵시가 위험하지 않은 것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 환상을 보려고 하고 환상을 보면 덮어놓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위험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해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2020년 9월 21일 월요일

바울 사도의 전도 여행과 성신의 인도 방식 2,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95쪽

“내 능력은 완전치 못하고 주님이 주신 영화롭고 고귀한 그 특권적인 사명을 이룰 만한 것이 못 됩니다. 내 능력이 넉넉해서 주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의 성신은 우리의 유한한 능력도 쓰시고, 자신의 그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 힘을 우리에게 베푸셔서 우리로 하여금 마치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처럼 참으로 자유롭게 일을 이루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우리의 유한한 능력도 쓰시고,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 힘을 베푸셔서, 우리로 하여금 마치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처럼 참으로 자유롭게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20일 일요일

바울 사도의 전도 여행과 성신의 인도 방식 1, <사도행전7>, 제4강 바울 사도 일행의 빌립보 입성, 94쪽

“자기의 부족과 불명(不明)과 지혜 없음이 그러한 현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당한 오늘날의 이 현실을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다 부탁하고 나아가면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시 68:19)께서 기묘하신 방법으로 오히려 그런 현실을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방도로 쓰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얼마가 되었든지 그것을 주님의 손에 맡기면 주께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쓰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주께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쓰시옵소서.

2020년 9월 18일 금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89쪽

“저희가 매일매일 지내는 환경의 모든 괴로움을 주님의 그 전능하신 손에 부탁하여서 주께서 저희의 마음 가운데에 위로를 주실 뿐 아니라 그 모든 환경을 쓰셔서 성신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을 보이시고 마침내 오묘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주시는 큰 사실을 저희가 증험케 하셔서, 그로 인하여 더욱 찬송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든 그 환경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역사하시고 움직이시는가를 해석하고 해득할 수 있는 지혜가 저희에게 있게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러한 복을 거룩한 은혜로 저희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1966년 9월 7일 수요일

2020년 9월 17일 목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89쪽

“오직 주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를 사랑하고 그 거룩한 목표를 향해서 가는 자에게는 사람의 우울과 괴로움과 이런 모든 것이 성신님의 기묘하신 인도의 방법으로 찬연히 전용(轉用)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보았사옵나이다. 
저희는 저희의 부족과 불명(不明)으로 인해 앞으로 여러 가지 잘못된 것이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까닭에 지금 여러 가지 불미한 일을 저릴러 놓고 훗날에 그 잘못을 거두고 괴로움을 거두지만,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다 맡기고 항상 주께서 세우시고 저희에게 밝히 보이신 그 목표를 향해서 전진하고 있을 때에는 사랑하시는 성신님께서 그런 모든 것을 기묘하신 손으로 기이하게 전용하사 저희를 인도하시는 방식으로 삼으시나이다.”

2020년 9월 16일 수요일

예수의 신이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말의 의미 4,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87쪽

“주를 사랑하고 주님의 목표를 향해서 변함없이 나가는 그에게는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신 말씀대로 성신님께서 모든 환경을 들어서 쓰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성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주를 의지하는 자에게 그 크신 능력과 기묘한 손을 나타내신다.” 

매일매일 생활 가운데에 모든 일이 늘 바라는 대로 다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성신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처음부터 주신 거룩한 목표를 향해서 항상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그 방향을 향해서 전진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15일 화요일

예수의 신이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말의 의미 3,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85쪽

“무슨 일을 만나서 ‘이 일을 내가 해야 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고 생각할 때, 자기 개인에게는 상당한 이익이 있고 또 그것이 상당히 고려할 만한 문제일 때에라도 그리스도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나라, 그의 은혜의 왕국(regnum gratiae)이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생각해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의 거룩한 속성에 비추어 볼 때 이 일은 빛나는 일이 되지 못한다. 내가 구할 것은 그 나라이지 나 자신의 안전이나 복리가 아니다’ 하고 결론을 지었다면 그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상당한 이익이 있고 또 상당히 고려할 만한 문제일 때에라도 그리스도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생각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14일 월요일

예수의 신이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말의 의미 2,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84쪽

“바울 선생은 아시아 도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신께서 막으시는 것으로해석할 수 있었던 그의 예지와, 자기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던 그의 능력으로 비두니아로 못 들어가게 된 현실을 파악할 때, 신학적으로 말해서 ‘기독론’에 의해서 파악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경영과 계획과 그 나라의 발전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는 거기에 가는 것이 부당하다고 깨닫게 되었을 때에 간단히 한마디로 “예수의 신이 허락지 아니하는지라” 하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경영과 계획과 그 나라의 발전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13일 일요일

예수의 신이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말의 의미 1,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84쪽

“‘그리스도는 누구시냐? 예수님은 누구시냐?’ 하는 것을 날마다 증진해 나가야 하고 밝히 더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오늘 알고 있는 예수님은 어제 알고 있던 예수님보다 더 분명해야 하고, 날이 갈수록 예수님에 대해 더 밝고 더 자세하고 더 정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예수님을 더 분명하게 알고 더 자세하고 더 정밀하게 인식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12일 토요일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경영,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80쪽

“서쪽으로 갔던 사람들이 결국 돌아서 아시아로 복음을 전해서 오늘날 우리도 복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볼 때에, 역사를 통한 크신 경영과 계획이 이미 하나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거룩한 목표를 향한 행진을 잠시라도 쉼 없이 그대로 꼭 유지하면, 비록 우리가 때때로 잘못되거나 차질이 생겨서 주저앉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병이 나서 ‘어쩌면 좋을까’ 하기도 하고 음울한 일을 당하고 어떻게 할지를 알지 못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성신님을 의지하고 주께서 주신 그 사명의 거룩한 목표를 향해서 변경이 없이 충성스럽게 나아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붙드셔서 그런 것 하나하나로 오히려 찬연히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신님을 의지하고 주께서 주신 그 사명의 거룩한 목표를 향해서 변경이 없이 충성스럽게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11일 금요일

성신께서 기묘한 방식으로 인도하심 3,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78쪽

“친히 길 잃은 양을 찾아가시는 주님의 거룩하신 정신을 그냥 발휘하셔서 친히 거시서 잃어버린 그를 붙드시고 ‘저기가 바른 길이 아니냐? 왜 여기서 방황하느냐?’ 하고 돌이키셔서 마침내 정당한 주의 길 위에까지 끌고 나와서 거기서 이끌고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때때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인간적이고 옛사람적인 약점과 그릇된 것이 나타날지라도, 그렇게 넘어졌으니까 넘어진 김에 자꾸 더 넘어지려고 할 것이 아니라 방향을 돌이켜서 언제든지 처음부터 면할 수 없는 그 목표를 향해서 자기의 처음 뜻을 버리지 않고 초지일관하게 끝까지 전진해 나갈 때에 주께서는 방황하던 그 자리에서부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넘어졌으니까 넘어진 김에 자꾸 더 넘어지려고 할 것이 아니라 방향을 돌이켜서 언제든지 처음부터 면할 수 없는 그 목표를 향해서 처음 뜻을 버리지 않고 초지일관하게 끝까지 전진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10일 목요일

성신께서 기묘한 방식으로 인도하심 2,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77쪽

“시간을 천연하기도 하고 낭비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낭비나 시간의 천연이나 우회가 비록 우리의 부족과 잘못과 옛사람적인 것 때문에 발생할지라도, 목표를 잃지 않고 다시 목표를 향해서 주님을 의지하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족과 잘못과 옛사람적인 것으로 낭비와 천연이 발생할지라도, 목표를 잃지 않고 다시 목표를 향해서 주님을 의지하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9일 수요일

성신께서 기묘한 방식으로 인도하심 1,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77쪽

“인간의 실패와 인간의 연약으로 말미암은 그릇된 것과 부족한 것이 우리의 생활 가운데 때때로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부족에 대해서 늘 반성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중략)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은 가장 기묘하신 손으로 그 속에서도 선한 결과를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인도하셔서 사람의 부족이나 연약이나 잘못 속에서도 선한 결과를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것은 잘못된 길을 끝까지 가면서 ‘이것도 성신의 인도하는 방식이다’ 하는 그릇된 이론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족함을 늘 반성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8일 화요일

바울 선생이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함 3,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73쪽

“바울 선생은 늘 구체적인 사람을 대상으로 가르친 까닭에,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는 이 무아상(無我想)의 큰 도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고도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참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중략)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이 세상을 향하여 못 박히고 세상도 자기를 향해 못 박혔다는 도리를 가르친 것입니다.” 

아상을 없이 하고, 이 세상을 향하여 못 박힌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7일 월요일

바울 선생이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함 2,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69쪽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기도에 대해서 다른 것으로 대답하시는 중요한 형식은 무엇인가 하면, 특별한 꿈으로나 별다른 형식이나 특이한 방식으로 지시하시기보다는 우리의 주의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항다반(恒茶飯)의 일을 가지고 지시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반드시 다 순조롭고 잘 발전할 수 있는 길만을 보이시는 것이 아니고, 때때로 슬픔과 온 몸의 병과 일의 지장과 천연(遷延) 같은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인도의 손을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천연 : 遷 옮길 천 延 끌 연, 시일을 미룸 

색박하고 불운한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주의 인도하심을 현실적으로 받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6일 일요일

바울 선생이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함 1, <사도행전7>, 제3강 바울 사도를 유럽으로 인도하심, 68쪽

“바울 선생이 갈라디아와 무시아와 드로아에서 자기가 당한 여러 가지 사정, 곧 진로의 색박(塞막을색迫궁색할박)이나 궁색이나 막힌 것, 또 신체의 허약이나 질병이나 정양(靜고요할정養기를양, 몸과 마음을 안정하여 휴양함) 등의 사정을 겪으면서 불행했던 일과 괴로웠던 일과 슬프던 일과 환경이 여의치 못했던 일과 다른 수가 없이 자기가 처음부터 계획했거나 원했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이 열린 것 등을 다 자세히 성찰(省察)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터득했다는 것이 오늘 우리가 중요히 배울 점입니다.” 

제 환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해석하고 해득할 수 있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5일 토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60쪽

“다른 사람을 대하든지 저희 서로가 대하든지 항상 불분명한 위치에 있지 않고 분명한 자리에서 아버님을 참으로 올바로 증거하고 나아갈 수 있게 하시고, 증거하는 데 육신상 사회상 구애가 없게 저희를 늘 붙들어 주시며 인도하여 주옵소서. (중략) 저희가 과거에 주님 앞에서 잘못한 것이 많이 있을지라도 성신님께서 충만히 저희에게 역사하시고 저희를 주장(主掌)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저희의 앞길에서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며, 저희가 가는 길이 주님의 거룩하신 성신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길이 되게 하옵소서.” 

1966년 8월 31일 수요일

2020년 9월 4일 금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9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는 저희에게 은혜를 주셔서 어떤 경우에든지 저희가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여 주님의 나라를 나타내기에 가장 적응한 사람으로 서기를 원하시며, 또한 저희에게 무슨 은사를 주시든지 주신 그것을 가장 유효하고 열매 있게 사용해야 할 것을 여기서 다시 생각하였사옵니다. (중략) 저희도 주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서 주님께서 어디에 나가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 때에 주님의 나라에 대한 가장 깊고 심오한 이해를 토대로 하여 사물을 생각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고, 단견(短見)과 편견에 의해서 자기가 원칙을 가장 잘 지킨다는 태도를 취한 나머지 편협하게 되고 또한 원만하지 못하고 깊지 못하여 천박한 데서 방황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을 생각하옵나이다.”

2020년 9월 3일 목요일

디모데에게 행한 안수와 할례의 결과 3,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9쪽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살생이라는 문제, 우상에게 절하는 우상 숭배 같은 문제만을 금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으로서 품어야 할 따스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발로(發露)를 요구했고 순결을 유지활 것을 말했습니다. 자기의 도덕적인 순결과 사회적인 순결을 지키고 따뜻한 인간애와 그리스도적인 사랑을 가질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 거룩하고 도덕적인 법칙은 요구했지만, 그 이외에는 다른 어떤 율법으로도 구원의 문제를 저해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품어야 할 따스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늘 드러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2일 수요일

디모데에게 행한 안수와 할례의 결과 2,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8쪽

“손을 얹었든지 안 얹었든지 중요한 문제는 그의 권위를 승인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의 권위는 곧 교회의 권위요 동시에 우리가 다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리신 것을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각(知覺)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리신 권위를 지각하고 승인하게 하옵소서.

2020년 9월 1일 화요일

디모데에게 행한 안수와 할례의 결과 1,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7쪽

“그에게서 예언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시려는 사실을 확인한 까닭에 그런 모든 적격성과 모든 은사의 내용이 그에게 있다는 것을 승인하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이제 나를 따라서 같이 나가지 않겠느냐?’ 하고 그에게 권했고, 디모데가 그 일에 대해서 승복을 한 것입니다.”  

주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심에 대해 승인하고, 그에 따라 권하고, 승복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8월 31일 월요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 4,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6쪽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를 자의로 출납할 수 있는 것같이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으면 자기에게 힘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대로 성실히 전하고 먹이는 것이 정당합니다. 사람이 그러한 권위를 주었다 빼앗았다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면 권위로 서는 것이고, 하나님이 안 세우시면 사람이 그것을 백번 인정해도 권위는 안 서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고, 힘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대로 성실하게 소명을 다 하게 하옵소서.

2020년 8월 30일 일요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 3,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5쪽

“단순히 복음을 맡은 그 사람이 어디에 복음을 전하면 성신님이 역사하시고 인도하셔서 복음이 역사할 때 상대방이 매이거나 풀리거나 한다는 말씀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거룩한 집안을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릴 역군으로 세우신 사람을 임명하시고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시는 것이지, 교회가 그것을 맡은 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거룩한 집안을 다스리시고 그 나라를 다스릴 역군으로 세우신 사람을 임명하시고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옵소서.

2020년 8월 29일 토요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 2,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5쪽

“주께서 부르셔서 쓰시지 않은 사람을 공교회가 불러서 쓴 것이라고 승인해 버리는 심히 무책임하고 암매한 태도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의 권위를 사람의 권위로 바꾸어서, 사람이 주님의 권위를 맡은 자라 생각해서 자기가 제멋대로 주님의 권위를 청지기와 같이 가지고 있다가 이 사람에게 주고 저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주님의 권위를 사람의 권위로 바꾸지 않게 하시고, 주께서 때를 따라서 원하시는 사람을 쓰시옵소서.

2020년 8월 28일 금요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 1,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4쪽

“주께서 불러 세우신 다음에는 교회가 안수를 하든지 말든지 그 사람을 불러서 쓰시는 것입니다. (중략) 주께서 그를 불러서 쓰시는데도 그 권위를 무시해 버리고 ‘사람의 제도와 사람의 방식을 쓰지 않았으니까 무효다’ 한다면, 사람의 제도나 방식을 주님이 부르셔서 쓰시는 주님의 소명 위에 놓는 일이 되고 따라서 이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주님의 소명을 가장 위에 놓게 하옵소서.

2020년 8월 27일 목요일

디모데에게 행한 안수의 의미,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3쪽

“교회는 모두 일어나서 디모데를 단순히 칭찬받는 젊은이로만 여기지 않고 이제는 엄연하게 교회의 공인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섰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서 세우셨다는 것을 자기네도 확증하는 예식을 행한 것입니다. 자기네가 그 사람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를 세운 것은 바울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께서 들어 쓰시는 사람에게 승복하게 하옵소서.

2020년 8월 26일 수요일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 3,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2쪽

“원칙은 분명하지만 그 분명한 원칙을 깊은 철학적 사색과 우수한 논리와 훌륭한 사상적 근거하에서 적용했습니다. 편협한 바늘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모든 것에 적용하는 사람이 아니고 항상 크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원칙을 적용해 나간 사람입니다.” 

원칙은 분명하지만 그 분명한 원칙을 깊은 철학적 사색과 우수한 논리와 훌륭한 사상적 근거하에서 적용하게 하옵소서.

2020년 8월 25일 화요일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 2,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51쪽

“자기의 논리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주장하지 않고 늘 상대방의 근거로 들어가서 거기서부터 이야기해 나왔습니다. 그것이 바울 선생의 특장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경우에 모든 모양이 되고 어떤 경우에든지 적응된 모양이 되어서 모쪼록 하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대방이 있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고 나가려고 한 그것이 그의 위대한 적응성입니다.” 

상대방이 있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고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8월 24일 월요일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 1, <사도행전7>, 제2강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안수함, 48쪽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적인 민족적 특성을 확인하는 점에서 하는 할례는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중략)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생명은 전제적(前提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 대해 죽어야 한다는 것을 늘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멸시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자기도 그런 사람 비슷하게 그와 더불어 동료가 되어서 그들이 하는 일을 이해하고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복음으로써 이야기할지언정 덮어놓고 타매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올바르게 생각하게 하시고, 적응성을 강화시켜 주옵소서.

2020년 8월 22일 토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7쪽

“주여, 저희들을 받으시고, 저희들의 이 부족과 암매는 저희들의 것이고 언제든지 붙어 있는 것이오니 이것을 매일매일 벗겨 주시고, 저희를 장성시켜 주시며, 저희 모든 문제를 맡으시고 모든 염려를 맡으사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이끄시고 인도하시옵소서.” 

1966년 8월 24일 수요일

2020년 8월 21일 금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7쪽

“전적으로 주님의 인도를 확신하고 주의 능력에 전부를 부탁하고 나아가는 것뿐이옵니다. (중략) 더 할 수 없을 만큼 아무리 치밀하게 생각했다고 할지라도 결국 주님의 광명이 비칠 때에는 너무나 부족과 제한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또한 저희는 저희의 감정이 유순한 가운데에서 작정한 것 같지만 실은 허다한 격렬한 감정을 발동할 큰 소지(素地)가 있는 그러한 정도의 사람으로서 늘 생각하고 있으며 저희가 남과 어떤 감정상의 소격이 있든지 없든지 저희 감정의 정도나 인격적인 장성의 정도는 자재해서 별것이 아닌 것을 늘 느끼고, 그러므로 주님 앞에 전체를 맡기고 이 부족과 미숙을 주님께서 불쌍히 보시고 인도하시기를 바라고 늘 주께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필요한 줄로 아나이다.”

2020년 8월 20일 목요일

성신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취할 바른 태도 5,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6쪽

“나로서는 어떨지 잘 모르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가는 것뿐입니다. 
바울이 드로아로 간 길은 분명히 성신이 인도하신 길입니다. 그러나 드로아로 가면서 ‘성신께서 나를 드로아로 이끄시니까 따라간다’ 하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이리도 못 가고 저리도 못 가니까 가는 데까지 가보자’ 하고 간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의심 가운데, 회의(懷疑) 가운데 간 길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나아가게 하시고, 마침내 깨달을 수 있는 지점으로 이끌어주옵소서.

2020년 8월 19일 수요일

성신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취할 바른 태도 4,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5쪽

“내가 지금 어떠한 자리에 서 있든지, 어디를 지나왔든지, 어떻게 해서 무슨 문제가 별로 아름답지 않게 되었든지 상관할 것 없이 결국 나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자신이 절실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내가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듯한 환경과 위치에 있을 때에도 나는 절실히 부족하다는 것을 늘 느끼는 것이 정당합니다.” 

주여, 이것은 제 생각일 뿐이고 주님께서 요지부동한 확신으로 저를 인도하시옵소서.

2020년 8월 18일 화요일

성신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취할 바른 태도 3,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5쪽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원래 되지못한 생각입니다. 내가 아무런 감정상의 문제나 다른 사람과의 문제가 없이 작정한 것도 ‘주여, 저의 작정은 항상 결핍이 있고 암매가 있고 제한이 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중략) ‘주여, 제가 이렇게 되지못해서 바나바와 갈라져서 이 길을 취하고 나갑니다. 저는 항상 부족하니까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의 작정이나 계획을 이루기 위해 가려고 하는 이 길에서 주께서 저를 인도하셔야겠습니다’ 

주여, 저는 항상 부족하니까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의 작정이나 계획을 이루기 위해 가려고 하는 이 길에서 주께서 저를 인도하옵소서.

2020년 8월 13일 목요일

성신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취할 바른 태도 2,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5쪽

“주여, 저는 여기까지밖에 생각이 안 나갑니다. 제가 아는 것이 이것뿐이고 저의 장성이 이것뿐이고 제가 깨닫는 것이 이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주님 앞에 작정을 해 봐도 이것밖에 못합니다. 이 이상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제게 이루시려고 하는 그 일을 이루시옵소서.” 
“주여, 제가 인간이어서 불가부득 이런 데에 떨어졌습니다만 이것도 다 주님 앞에 맡기고, 모든 염려를 또한 맡기고 주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2020년 8월 12일 수요일

성신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취할 바른 태도 1,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4쪽

“하나님의 성신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는 언제든지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결정이나 주관적인 판단에 의거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물론 내가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판단을 하지만 내 판단을 의지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는 것뿐입니다. ‘주여, 저는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뜻이 별달리 자재(自在)하시거든 제가 나아가는 이 길에서 또한 인도하시옵소서’ 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별달리 자재(自在)하시거든 제가 나아가는 이 길에서 또한 인도하시옵소서.

2020년 8월 11일 화요일

사람의 결정은 인간적 암매의 범주 안에 있음 5,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4쪽

“우리 자신이 기도하고 결정한 문제는 신성한 것이고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원만하고 더 이상 다시 바라볼 것이 없는가 하면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는 때란 성신님께서 나에게 최후의 결론과 확신으로 밀고 나가시는 때인데 그것을 그때까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도 비두니아로 가지 않기로 했을 때에는 어떨지 잘 알지 못하였고, 헬라 땅으로 들어가서 유럽 땅에 복음을 전하고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그 가치와 의의를 알았을 것입니다.” 

오직 주를 의지하게 하게 하시고, 성신께서 때를 따라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간구합니다.

2020년 8월 10일 월요일

사람의 결정은 인간적 암매의 범주 안에 있음 4,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4쪽

“기도하고 나서 말했으니까 그러면 완전한가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백번 기도하고 말하더라도 바울 선생이 아시아 도로 가려고 했던 것이나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던 것 같은 계획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기도하지도 않고 퍼뜩퍼뜩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성신께 가까이 살고 가장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늘 거하면서 살던 바울 선생의 결정입니다.” 

우리 자신이 기도하고 결정한 문제는 신성한 것이고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원만하고 더 이상 다시 바라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0년 8월 6일 목요일

사람의 결정은 인간적 암매의 범주 안에 있음 3,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3쪽

“다시 무시아 앞에서 비두니아로 가겠다고 한 결정도 결코 누구와 문제가 생겨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열심히 기도하고 또한 신령한 은혜 가운데서 자기가 그렇게 해 보겠다고 결정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신령한 은혜 가운데에서 기도하고 결정한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왕왕 무슨 문제를 결정할 때에 거기에 인간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슨 문제를 결정할 때에 거기에 인간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전적으로 주께 전부를 부탁하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8월 5일 수요일

사람의 결정은 인간적 암매의 범주 안에 있음 2,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3쪽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를 데려가는 문제에 대해 서로 오순도순 의논해서 타협을 하고 갔다고 해서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바울과 바나바가 격론을 하고 갈라졌으니까 하나님의 성신이 그 일을 포기하신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의 결정이 왕왕 인간적인 오류와 암매와 인간적인 범주(category) 안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계획이나 생활이 원만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암매의 범주에서는 못 벗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만하게 생활하고 계획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암매의 범주에서 못 벗어나고 있음을 늘 염두에 두게 하옵소서.

2020년 8월 4일 화요일

사람의 결정은 인간적 암매의 범주 안에 있음 1,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2쪽

“무릇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사람 보기에 완전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자부하는 일이라도 결코 그것을 완전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정도의 차가 있을지언정 항상 거기에 결핍과 부족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결핍과 부족이 붙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31일 금요일

인간의 부족 위에서라도 성신의 역사가 드러남 3,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2쪽

“내가 어떤 길을 원래의 계획대로 출발하지 못하고 불가부득한 인간의 감정의 소격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갈라섰을지라도 그것은 그것이고, 하나님 앞에 전부를 맡기고 나아가면 거기서부터 이끌고 나가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부족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그것이고, 하나님 앞에 전부를 맡기고 나아가 하나님의 성신의 기묘하신 역사가 드러나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30일 목요일

인간의 부족 위에서라도 성신의 역사가 드러남 2,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2쪽

“우리는 어떤 일 앞에서든 낙심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모르고 앞길을 경영할 수 없고 어떻게 할는지 알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여 염려를 맡기는 자를 한 걸음씩 매일 인도하시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 모르고 넘어졌으면 넘어진 그대로 하나님 앞에 맡기게 하옵소서. 한걸음씩 매일 인도하옵소서.

2020년 7월 29일 수요일

인간의 부족 위에서라도 성신의 역사가 드러남 1,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31쪽

“바울 선생이 베드로 선생을 면책한 일이나 바나바와 더불어 격론을 하고 갈라선 점을 볼 때 역시 바울의 인간성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신령하다고 할지라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고 때때로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의 나머지의 생애와 전체의 일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자기 잘못이나 이미 저질러진 일까지 다 하나님 앞에 맡길 때, 마치 어떤 사람이 그릇을 깨뜨려 놓고 그 깨진 그릇까지 하나님 앞에 맡기면서 ‘이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나의 모든 염려를 다 맡깁니다’ 하는 태도를 취하는 때와 마찬가지로, 결코 그때 갈라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경영이 좌절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없이,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보강하시면서 자신의 계획은 계획대로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제2차 여행 가운데서 보게 됩니다.”

저의 나머지의 생애와 전체의 일을 하나님께 다 맡깁니다. 제 잘못이나 이미 저질러진 일까지 다 하나님 앞에 맡기오니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경영이 좌절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없이,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보강하시면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2020년 7월 28일 화요일

마가의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섬,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27쪽

“바울 편도 있고 바나바 편도 있고, 그리고 둘 다 옳은지도 모르고, 동정하자면 바나바에게 더 동정할는지도 모릅니다. 바울과 같이 아주 냉철하고 철저하게 철커덕 끊어 버리는 그것보다는 바나바와 같은 대인군자적(大人君子的)인 관용의 태도를 가진 사람의 심정을 우리가 더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바울 선생의 주장은 아마 누가복은 9:62에 있는 말씀대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는 정신이었을 것입니다.”
“마가는 바울 선생의 말년에 그에게 늘 가까이 있던 훌륭하고 좋은 수종자(隨從者)였고 좋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간성으로 인해 부족이 없을 수 없습니다. 주께 의뢰하오니 맡아 주옵소서.

2020년 7월 27일 월요일

바울 사도가 교회를 돌아보려 한 이유 2,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25쪽

“믿지 않는 사람 하나를 예수 믿고 나오게 하는 일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특수한 은사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복음이 들어가서 성신이 역사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의 조건이 많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산업을 올바로 이끌고 거기에 참된 영광의 빛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가 되려면 그 사람에게 훨씬 많은 은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은사의 장성과 훈련이 필요한 까닭에 더 힘든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업을 올바로 이끌고 거기에 참된 영광의 빛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가 되도록 은사의 장성과 훈련이 있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23일 목요일

바울 사도가 교회를 돌아보려 한 이유 1,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25쪽

“그의 마음 가운데 가장 큰 제목은 사람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나라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인 까닭에, 거룩한 그리스도의 영광의 구체적인 현시(顯示)로서의 교회가 지금 그 사회에서 정당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좀 더 알아보고 싶어서 그곳을 향해 떠났던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교회가 정당한 사명을 수행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22일 수요일

유럽 전도에 대한 성신의 계획을 알지 못했던 바울 사도,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21쪽

“때때로 우리의 인생길에는 그런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성신께서 지금 내가 나아가는 길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라고 하실지 다 모르고 가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약교회가 발족해서 여기까지 나왔지만 앞으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고 가는 일도 사실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경영이 있다면 우리가 그때는 바울 사도가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는 것같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 하나님이 우리를 이 길로 부르시는구나’ 하고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준비가 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길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준비가 늘 있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21일 화요일

바울 선생이 베드로를 면책함 2,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20쪽

“베드로 선생의 외식도 바울의 책망 끝에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고, 두 사람의 마음 가운데 아무 유감도 남긴 것이 없이 화평하게 일은 끝났습니다. 베드로 선생은 후에라도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벧후 3:15)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바울 선생을 늘 높였고 결코 그것 때문에 조금이라도 사감(私感)을 갖든지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신의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도 가다가 넘어지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넘어졌다가도 ‘네가 넘어진 것이다. 일어나라’ 하실 때에는 벌떡 일어나서 먼지를 털어 버린 다음에 다시 거기에 유감을 두지 않습니다.”

가다가 넘어지는 일이 있어도 벌떡 일어나서 먼지를 털어 버리고 거기에 유감을 두지 않고 성신의 은혜를 받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20일 월요일

바울 선생이 베드로를 면책함 1, <사도행전7>, 제1강 인간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인도, 17쪽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교회와 거룩한 복음으로서의 유대(紐帶)보다도 민족이 더 중요한 것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보통 때는 모르지만 일단 위기에 임하면 나타나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중략) 원래 거룩한 교회 안에서는 이 나라 사람, 저 나라 사람이 따로 없는 것인데 문제가 생기면 각 나라로 나뉘어 버립니다.” 

민족보다 그리스도의 교회와 거룩한 복음으로서의 유대(紐帶)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17일 금요일

기도,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9쪽

“거룩하신 주님이여, 주께서 저희를 이 세상에서 뽑아내시사 거룩한 교회로 세우시며 참된 교회의 순결성과 거룩한 영광을 가지게 하시는 이유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비류 없는 큰 은혜의 사실, 곧 복음의 사실과 생명의 사실을 이 죽어 있는 흑암의 사회에 전하고 깜깜한 가운데서 사탄의 권세하에 갇혀 있는 이 사회에 전해서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 앞에서 하나님 앞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이요, 주께서 친히 그렇게 이끌어 주시는 은혜를 나타내 주시기를 바라서 주님의 약속과 분부대로 나아가는 것임을 다시 정신을 차려 알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이 세상이 모두 혼동해서 각각 제 길을 가는 착잡한 현실에 대해서 주의하게 하시옵소서.”

1981년 5월 17일 주일 오전

2020년 7월 16일 목요일

기독교는 사회 개선 운동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것임 8,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9쪽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는 그들이 돌을 들어서 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회라는 것은 제멋대로 자기에게 유리하기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증거했고, 생명을 증거했고, 하나님 나라가 거기에 나타나도록 자기들에게 맡겨 주신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역사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생명을 증거하며 하나님 나라가 교회에 나타나도록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역사해 주시길 기대하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15일 수요일

기독교는 사회 개선 운동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것임 7,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6쪽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고 복음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생명이 작용하는 사실이 나타나야 하고 하나님 나라의 원칙들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것을 하거나 다른 문제들에 휘말려서는 안 됩니다. (중략) 예수님께서는 비교할 수 없이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생명이 거기에 나타나는 사실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쓰시는데, 그 일은 하지 않고 딴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비교할 수 없이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생명이 작용하는 사실이 나타나고 하나님 나라의 원칙들이 시행되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14일 화요일

기독교는 사회 개선 운동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것임 6,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4쪽

“유대인의 전통적인 메시야관의 목표는 결국 유대 민족을 중심으로 한 지상의 현실적인 복지 사회였던 것입니다. 이상적인 복지 사회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런 메시야관을 가졌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 배워서 잘못된 생각을 고친 것입니다. 어떻게 고쳤습니까? 그런 복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가 곧 메시야라고 생각했던 생각을 뚜들겨 고쳐서 당시 유대 사람으로서는 아주 철두철미한 사상상의 변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 배워서 잘못된 생각을 뚜들겨 고쳐서 철두철미한 사상상의 변혁을 이루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9일 목요일

기독교는 사회 개선 운동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것임 5,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4쪽

“주님이 세우신 것은 사회의 복지 향상의 기구나 그런 기관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산 자들만으로 형성되는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교회는 죽은 데서 삶으로 들어오는 이런 기쁘고 복된 소식을 전하려고 있는 것이지, 이 세상의 인간 사회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 어떤 대책이나 방법을 제시하려고 온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회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죽은 데서 삶으로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복됨을 전하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8일 수요일

기독교는 사회 개선 운동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것임 4,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3쪽

“세계의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가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고 해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기독교가 무엇을 얼마나 기여하겠습니까? 그것은 기독교로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세력으로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능력은 예수님의 능력이지, 자기의 사회 세력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참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생명을 주시고 변혁시키시며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삶에서 증거하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7일 화요일

기독교는 사회 개선 운동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것임 3,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2쪽

“만일 가장 고귀하고 비류(比類)할 수 없고 비견(比肩)할 수 없이 위대한 생명을 주시는 사실을 바꿔서 사회를 개선하는 운동과 사실로 고쳐 놓는다면 무엇을 얻겠습니까?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죽은 사람에게 비단 옷을 입히고 꽃을 꺾어서 갖다 놓고 장식을 잘해주고 그렇게 잘 위하면서 ‘거기서 평안히 있다가 일어나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가장 고귀하고 비류(比類)할 수 없고 비견(比肩)할 수 없이 위대한 생명을 주시는 사실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2일 목요일

기독교는 사회 개선 운동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것임 2,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2쪽

“사회의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죽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그 사람들은 살아 있고 선의를 가지고 있으니까 노력해서 향상시키자. 이렇게 운동하면 그 사람들이 아는 날이 올 것이다’ 하는 식으로 그런 일반적인 삶이나 육신의 생명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가져오신 사회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경이 분명히 고린도전서 15:50에 말씀하시기를 ‘혈육은’, 즉 사람의 피와 사람의 육신, 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모든 능력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遺業)으로 얻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님을 늘 유념하게 하옵소서.

2020년 7월 1일 수요일

기독교는 사회 개선 운동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것임 1,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2쪽

“어떤 사회에 들어가서 그 사회를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이나 발언을 한 일이 사도행전 어디에 있습니까? 그때 그 사회는 노예 제도를 가지고 있는 사회였고 검노(劍奴)를 가지고 있던 사회였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가 검노를 폐지하겠다든지 노예 제도를 폐지하겠다든지 하면서 그 사회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은 것이 아닌 것을 사도행전뿐 아니라 바울 선생의 많은 서신 가운데서도 보는 것입니다.”

바른 정신으로 새로운 생명을 받은 자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6월 29일 월요일

주님은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가 4,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01쪽

“주님이 내놓으신 큰 사실은 그 사람들의 능력을 가지고 문제를 고치고 개선해서 향상해 보라고 하는 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었는가 하면 주님이 내놓으신 사실은 죽은 자를 살리는 사실입니다. 오직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재창조하는 사실을 보이신 것이지, 현실의 생명의 능력과 인간의 선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이야기하는 비판이 아니었던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만대에 변할 수 없는 큰 진리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회세력이 되어서 다수를 가지고 도덕적인 개선책을 쭉 내걸고 운동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재창조하는 사실을 보이고 증거하게 하옵소서.

2020년 6월 25일 목요일

주님은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가 3,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299쪽

“처음에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원전(原典)인 모세의 율법이나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과 그로 인한 지도가 온당치 못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중략)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중략) 이스라엘 백성을 교도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인도해야 할 불쌍한 어린양들을 그릇되게 인도하는 것을 보신 까닭에 그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하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과 그로 인한 지도가 온당하게 하옵소서.

2020년 6월 23일 화요일

주님은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가 2,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298쪽

“인간의 의지적인 노력과 도덕적인 노력으로 거룩한 위치에 도달하겠다는 형성주의에 대해서는 그 대신 오직 성신의 능력과 그 능력으로 역사하는 하나님 나라의 사실을 가르쳐 주셨고, 유대 민족의 편협한 쇼비니즘에 대립해서는 전 인류 가운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뽑아서 새로운 한 백성을 이룬다는, 말하지면 보편주의(universalism)와 보편성(catholicity 또는 catholicism)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인간의 의지적인 노력과 도덕적인 노력으로 거룩한 위치에 도달하려 하지 말고, 오직 성신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옵시고, 그 능력으로 역사하는 하나님 나라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6월 18일 목요일

주님은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가 1, <사도행전6>, 제10강 교회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298쪽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하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이 율법주의입니까? 아닙니다. (중략) 예수님이 가르치신 큰 의미는 영원한 법, 즉 렉스 아에테르나(lex aeterna)로서의 의미를 더 강하게 가집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큰 의미를 바로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2020년 6월 16일 화요일

기도 2,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84쪽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을 품고 살게 하시고 공연한 종교적 의식과 번문욕례적인 그릇된 해석으로 마음을 괴롭게 하거나 짊어질 수 없는 부담을 지는 일이 없이 은혜를 참으로 은혜롭게 가지고 살게 하시며, 그러나 또한 거룩한 생활의 규범을 늘 지키고 살아서 신령한 사람이 실질적인 생활에서와 도덕적인 생활에서와 마음과 심정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나타내는가를 입증하고 살게 하옵소서.”

1966년 8월 17일 수요일

2020년 6월 12일 금요일

기도 1,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84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주님의 나라의 거룩하고 깊은 도리를 더 깊이 깨닫고 충성할 마음을 가지게 하시며, 저희의 생활이 항상 그리스도의 지체답게 자연스럽고 자유스럽게 하시고, 그러나 거룩한 원칙이 저희 안에 엄연히 늘 있어서 세상과 더불어 타협하거나 이 세상을 사랑치 않게 하시고, 저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모양을 같이하고 잘 조화되어 가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세상을 사랑하거나 세상을 추구하고 사는 태도가 없게 하시고, 항상 원칙에서는 일보도 양보함이 없는 거룩한 정신을 가지게 하시며, 그러한 거룩한 정신이 아버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과 충성과 절개로 늘 나타나게 하시고, 또 거룩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신을 저희의 생활과 태도에서 늘 나타냄으로써 그리스도인의 고고한 도덕을 늘 드러내고 살아가게 합소서."

2020년 6월 11일 목요일

신령하게 자유스럽게 자연스럽게 2,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83쪽

“바울 선생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갔고, 서원한 일이 있을 때에는 머리를 깎았습니다(참조. 행 21:26; 18:18). (중략) ‘아, 우리는 파마라는 것을 하면 안 됩니다. 염색은 죽어도 안 됩니다’ 하고 그냥 머리를 이렇게 바싹 치켜 올리고 다니면 더 신령하고 거룩한 것인가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그럴 것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자유로워야 하고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에 너무 특별나게 뒤떨어지지도 말고 특별하게 앞서서 유행의 첨단을 걷지도 말고 같이 보조를 맞추어 나가게 하시고, 될 수 있는 대로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지혜를 찾으려는 데에 정신을 모으게 하옵소서.

2020년 6월 8일 월요일

신령하게 자유스럽게 자연스럽게 1,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80쪽

“바울 선생은 구약의 의식을 전적으로 반대한 것이 아니고, 구약의 의식이 구원의 조건으로서는 절대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뿐입니다.”
“‘디모데의 경우에 아무런 비방 없이 전도하게 하려면 할례를 받게 해서 유대 사람이라는 확증을 확보해 가지고 가면 좋겠다’ 해서 전도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려고 한 것뿐이지, 결코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해서 할례를 받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항상 어디든지 적응할 수 있게 자기를 만들게 하옵소서.

2020년 6월 1일 월요일

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 2,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79쪽

“남의 생명이 자차(咨嗟)하게 죽고 비참하게 죽는 것도 무시해 버리고 ‘너야 살든지 굶어 죽든지 배가 터져 죽든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내 행복만 돌보면 된다’ 하는 이러한 모지락스럽고 괴악하고 이기주의적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咨 탄식할 자, 嗟 탄식할 차. 

남의 생명을 위반해서 남의 피 위에 내 생명과 내 행복을 건설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교의 아름다운 도리를 따르게 하옵소서.

2020년 5월 27일 수요일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 1,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75쪽

“그릇된 개념에 정당한 이름을 붙이거나 혹은 무엇을 오해해서 정당한 이름 아래에서 정당한 개념을 못 가질 때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의 삼위일체를 섬긴다고 할지라도 삼위일체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가졌을 때는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정당한 개념을 가지게 하옵소서.

2020년 5월 24일 일요일

야고보의 연설과 예루살레 회의의 결정 2,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73쪽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적인 도덕적 표준에 신실하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은 연약한 기타 교인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유와 순결과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유가 있고 또한 생활의 순결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생활의 순결뿐 아니라 남의 양심을 위해서 절제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자유는 있으되 다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하게 하옵소서.

2020년 5월 21일 목요일

야고보의 연설과 예루살레 회의의 결정 1,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71쪽

“아주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딴 조건을 도무지 붙이지 말고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의 도덕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가르치자’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았으니까 도덕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이 소위 인도(人道)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참된 인도주의(humanitarianism)가 여기에 나타납니다.” 

거룩한 생활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생활의 도덕적인 규범을 지켜나가게 하옵소서. 신령하고 거룩하고 겸손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5월 20일 수요일

구약의 정신과 신약의 정신은 동일함 5,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69쪽

“이제는 의식과 의문이 없다면 그러면 아무 조건도 없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네 안에 조건을 만드시고 그 조건을 요구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늘 믿음이라는 조건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믿음이라는 조건이 절대로 필요했고 모든 시대를 통해서 결국 도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믿음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5월 16일 토요일

구약의 정신과 신약의 정신은 동일함 4,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66쪽

“‘내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그것을 제물로 표시하고 고백해라’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들이 십분지 일을 가져와야만 내가 받고, 십분지 일에서 덜 가져오면 내가 좀 덜 기뻐한다’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십분지 일이라는 것을 무슨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 안에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양(量)이다’라고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고 그럴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헌금으로써 저를 대표합니다.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게 하옵소서.

2020년 5월 15일 금요일

구약의 정신과 신약의 정신은 동일함 3,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65쪽

“구약 시대는 행위의 언약이고 신약 시대에는 은혜의 언약인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맨 처음 무죄 시대의 사람인 아담에게 능력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죄를 범한 다음에는 절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아시는 까닭에 그다음부터는 전부 은혜의 언약이라는 새로운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새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까닭에 이제는 구원받을 수 없으니 내가 너를 건져야겠다’ 하는 말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하여 절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건져주옵소서.

2020년 5월 14일 목요일

구약의 정신과 신약의 정신은 동일함 2,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64쪽

“할례를 함으로써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정신은 오늘날도 그대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과의 언약 가운데 있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맺은 거룩한 언약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되어서 오늘날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지, 언약을 떠나서 무슨 구원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의 이름도 성약교회(聖約敎會, the Holy Covenant Church)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거룩한 언약이 맺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맺은 거룩한 언약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되어서 오늘날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2020년 5월 12일 화요일

구약의 정신과 신약의 정신은 동일함 1,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64쪽

“‘하나님 나라가 발전하고 계시가 발전했으면 그 발전한 계시 위에서 살지, 왜 너희들은 발전하지 못했던 옛날로 돌아가서 마치 하나님께서 내리신 계시가 없는 것같이 혹은 그 위에 아무 계시도 없는 것같이 딴 짓을 하고 사느냐? 그러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복고주의와 역행주의를 벗어나 하나님께서 내리신 계시 위에서 살게 하옵소서.

2020년 5월 5일 화요일

구약과 신약의 대립?, <사도행전6>,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263쪽

“구약에서 누가 율법을 행해서 구원받으라고 한 사람이 있습니까? ‘너희 가운데 율법을 행해서 구원받을 영혼이 없으니 그런고로 너희는 내가 주는 복음을 믿으라’ 하는 것이 구약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어디에서도 ‘너희들은 예수만 믿으면 되고 모든 율법을 파괴해도 괜찮다’고 한 데가 없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고 거룩한 생활의 규범을 늘 지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5월 4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52쪽

“아버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의지하며 순순히 신뢰하고 아버님이 주시는 은혜를 기대하고 고요한 가운데 잠잠히 참고 나아가는 확실한 신앙의 태도가 늘 있게 하시며, 거룩한 길을 보이셨을 때 주저하거나 준순(浚巡)하지 않고 그것이 복잡하지 않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싫어하는 그릇된 태도를 버리게 하시고, 아버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만 번이나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浚 깊을 준, 巡 돌 순. 준순하다 : 어떤 일을 단행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1966년 7월 27일 수요일

2020년 5월 3일 일요일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6,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47쪽

“우리 교회가 개혁교회의 원칙이나 개혁교회의 신조를 받아들였다고 할 때 그것이 개혁교회의 것이니까 우리가 받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전승해 주신 진리이니까 받겠다는 것이지, 이것은 개혁교회의 것이니까, 우리가 개혁파 교회이니까, 우리가 장로교이니까 이것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전승해 주신 진리를 받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29일 수요일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5,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46쪽

“교회에서 그릇되게 자라난 사람은 그릇되게 배워 놓은 사실 때문에 차라리 순진하고 단순한 백지와 같은 사람보다 훨씬 교정하기도 어렵고 가르치기도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다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먹고 크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28일 화요일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4,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45쪽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알아서 교회의 본질과 교회가 가지고 있는 거룩한 사명에 대해서 충분히 깨달을 만큼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할 때 성숙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릇된 전통과 그릇된 선입관에 젖어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성숙이 늦는 것입니다.”

그릇된 전통과 그릇된 선입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알고 교회의 본질과 교회가 가지고 있는 거룩한 사명에 대해서 충분히 깨닫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24일 금요일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3,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43쪽

“하나님의 방법과 계획과 뜻이 이방 사람이나 유대 사람이나 구별 없이 다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시고 같은 은혜를 차별 없이 내리신다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간단하고 명료하고 가장 은혜로운 방법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중략)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성신의 충만함을 주시고 성신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방식이 너무나 간단해서 못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으며 성신의 충만함을 받고 성신께 인도함을 받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23일 목요일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41쪽

“신령하다고 할지라도 어떤 기회가 충분히 여물어서 그것이 표면화하여 그것을 검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까지는 문제를 모르고 있는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무서운 사실이 벌써 자라나가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충분히 조절하고 감독하고 삼제(芟除)할 만한 아무런 마련이 없었습니다.”
* 芟 벨 삼, 除 덜 제.

쓴 뿌리를, 그리스도교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와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에 비추어, 발견하고 제거하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22일 수요일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1,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40쪽

“교회 안에는 허다한 빈틈이 있는데 어떤 빈틈이든지 그대로 허용할 때는 시험에 떨어집니다. 그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사람들이 그것을 그대로 용인하고 나가는 날에 교회는 자꾸 깊은 시험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허다한 빈틈을 엄격하게 주의하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19일 일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들 7,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38쪽

“성경을 해명한 것도 법인 것이지, 성경에 꼭 명문(明文)으로 쓰여 있어야만 법인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있는 모든 뜻을 해명하면 그렇게 해명된 것도 또한 진리인 것이지, 해명된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명한 것을 법으로 받아들이고 진리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17일 금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들 6,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36쪽

“교회가 무슨 법이나 무슨 도리를 제정하고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줄 압니다’ 하고 작정했으면 거기에 순종해서 나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에 대한 확실한 해석도 없고 그 작정을 번복하거나 개정하기 위해 별다른 마련을 한 것도 없이 그때그때의 정치적 목적과 필요에 의해서 임시로 그런 법을 무시해 버리고 편법을 쓰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정한 법과 도리를 순종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14일 화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들 5,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36쪽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을 보여 주셨을 때에는 다른 것을 다 배제하고 보이신 뜻에만 순종하는 것입니다(참조. 행 8:26, 40).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시시한 전체를 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삼상 15:22). 순종이 전도보다 나을 뿐 아니라 직접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형식을 취하는 제사보다도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신 뜻에만 순종하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13일 월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들 4,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35쪽

“무엇이든지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것만 되는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께서 첫째의 원인(cause)도 되셔야 하고 둘째의 원인도 되셔야 합니다. (중략)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내가 돈을 가지고 집을 짓는다든지 사람들이 나타나서 사람의 세력을 동원해서 집을 짓더라도 하나님께서 원인이 되셔서 친히 하실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실 것이다’ 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사람에게 전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중략) 만일 우리가 말하지 않아야 할 경우에 말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전도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첫째의 원인도 되시고 둘째의 원인도 되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9일 목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들 3,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34쪽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요컨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방도가 나 보기에는 어리석은 것 같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방도이면 내가 좇아간다’ 하는 것이 정당한 태도인데,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중략)
요컨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혜의 방도에 대한 참된 믿음과 참된 깨달음이 없고 믿음에 정당한 지적 요소가 결핍되어 있을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방도가 제가 보기에는 어리석은 것 같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방도이면 좇아가도록,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혜의 방도에 대한 참된 믿음과 참된 깨달음이 있게 하시고, 믿음에 정당한 지적 요소가 충분하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8일 수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들 2,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33쪽

“예배당을 지을 만한 큰 은혜가 있다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더 튼튼하고 능력 있게 되어서 그 안에서 교회의 속성이 드러나야 그것이 외부에 있는 건물과 서로 합치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은 옷을 입으면 그것이 좋은 옷을 입을 만한 인격이 있다는 표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옷이 가치가 있는 것이지, 옷은 화려한데 속은 너절하고 나쁠 것 같으면 그 옷은 그 사람에게 해당치 않는 것입니다.” 

속의 인격과 속에 들어 있는 것에 해당할 만큼 옷을 입고 정당하게 생활하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6일 월요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들 1, <사도행전6>, 제8강 베드로의 연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230쪽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지시하시는 것을 거절하지 말고 그리로 따라가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방면으로 가지 않거나 그분이 지시하시는 방도대로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앞질러 뛰어 들어가서 자기 생각대로 해놓고는 ‘하나님께서 과연 이러한 환경에서 나를 건져 내시는 능력을 나타내시는지 보자’ 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방면으로 가게하시고 지시하시는 방도대로 하게 하옵소서.

2020년 4월 2일 목요일

기도,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21쪽

“무엇이 참된 것이며 무엇이 가장 근사하고 그럴듯하나 실은 무서운 적이 되는 것인가를 늘 주의하게 하시며, 또한 저희가 무엇을 반대한다고 치우쳐서 스스로 또 다른 반대의 위치에 떨어져서 결국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을 이루지 못하는 일 또한 많이 있사오니,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저희에게 올바로 가르쳐 주시고 깊이 가르쳐 주심으로 저희가 늘 깊이 깨닫고 깊이 배우고 올바로 생각하고 올바로 생활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1966년 7월 20일 수요일

2020년 3월 26일 목요일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함 3,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19쪽

“한국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으면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사람의 정욕적인 형태이지만, 여기에서는 성신님이 온전히 지배한 아름다운 그리스도적인 품성의 조화가 있어서 하나의 통일적인 마음(sprit)을 가지고 움직인 까닭에 전원 일치라는 결론이 나중에 나타난 것입니다.”

성신님이 온전히 지배한 아름다운 그리스도적인 품성의 조화가 있게 하옵소서.

2020년 3월 24일 화요일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함 2,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18쪽

“그가 14년이라는 많은 세월을 보낸 후에 사도들이 그를 만나 보았을 때 그가 충분히 성숙하고 장성한 하나님의 사도로서 모든 영광과 권위를 가진 것을 발견하고 교제의 악수를 하고 그를 승인했다는 말씀입니다.”
“성신님이 지배하신 까닭에 그런 일치성이 발생할 통일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신님의 지배를 받고 성숙하고 장성하게 하옵소서.

2020년 3월 20일 금요일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함 1,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15쪽

“자기에게 임하는 환경의 상태와 하나님께서 그 마음 가운데에서 내시(內示)하신 사실이 서로 부합하게 하신 것입니다(참조. 사도행전 10장). (중략) 항상 한 걸음씩 인도하시는 환경의 거룩한 조화가 반드시 내시와 더불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렸는데 여기에서도 그렇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선생에게는 계시가 있어서 올라가야 했는데 마침 안디옥 교회에서도 그를 천거해서 보냄으로써 올라간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내시하심을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사 환경과의 거룩한 조화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2020년 3월 19일 목요일

종교적 형식주의의 예들 : 할례, 헌금, 교회, 기도 5,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13쪽

“기도를 많이 하고 열심히 하는 것으로써 신령한 생활을 하는 척도(barometer)를 삼는다면 그 사람은 이제 그 이상 다른 것으로는 신령한 생활을 할 필요도 안 느끼게 될 것이고 달리는 신령한 생활이 무엇인지 찾아볼 것도 없게 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늘 엎드려 있으면 신령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신령한 생활이 아닌 것을 신령한 생활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으로 다 그냥 치료해 버리고 맙니다.” 

진정으로 신령한 생활을 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2020년 3월 18일 수요일

종교적 형식주의의 예들 : 할례, 헌금, 교회, 기도 4,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12쪽

“어떤 정도만큼의 양심의 치료라는 것은 무서운 면역성을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전연 안 갈 수는 없고, 너무 깊이 들어가기는 그렇고, 나의 잘못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그냥 내버려두고 나간다는 것은 너무 무례한 일 같고, 그렇다고 또 완전히 그것을 포기하고 철저히 회개한다면 너무 많은 희생과 손해가 있겠으니까, 적당히 가서 적당히 울고 회개하고 적당히 책망 듣고, 그만한 정도로 대가를 지불했으니까 이제는 가서 그대로 지내야겠다’ 하는 이런 태도가 중간 상태의 종교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일입니다.” 

스스로 된 줄로 알고 면역성이 생기고 중간 상태에서 생활하지 않도록, 참된 진의와 본질을 파악하며 희생을 무릅쓰고 대가를 지불하게 하옵소서.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종교적 형식주의의 예들 : 할례, 헌금, 교회, 기도 3,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11쪽

“종교의 중간 상태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전에 때때로 말씀드렸습니다. (중략) 중간 상태라는 것은 자기의 양심에 면역성을 일으키게 됩니다. (중략) 하나님의 복음이 충만히 들어가지 않고 기독교가 충분히 들어가지 않고서 그저 어떠한 형해적(形骸的)인 것을 조금 접종시켜 놓으면 면역성이 생겨서 나중에는 진리가 그 속에 들어가지 않고 ‘아, 으레 그렇겠구나’ 하고 마는 것입니다.”

몇 가지 법을 준수하고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본래 심오한 그 뜻과 의의를 깊이 생각할 여유를 가지게 하옵소서.

2020년 3월 12일 목요일

종교적 형식주의의 예들 : 할례, 헌금, 교회, 기도 2,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10쪽

“거꾸로 교회가 사용될 때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세상에 나가면 훨씬 우수한 사람이 많고 격렬한 경쟁이 있는 사회인 까닭에 자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미미한 교회에 와서는 ‘아, 여기야말로 내가 한번 두각을 나타낼 곳이구나’ 하고 어떤 교만이 생기고 뽐내는 일이 생기고 어떤 자랑이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인간적인 것과 교만과 자기주장과 자기의 의지가 발생할 때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 자책하고 없애 버리고 그 대신 거기에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품성과 덕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2020년 3월 10일 화요일

종교적 형식주의의 예들 : 할례, 헌금, 교회, 기도 1,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08쪽

“현상적으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흔적 없이 없애시는 것이 아니고 다 그대로 있습니다. 헌금하면서 ‘주님, 주님께 드렸습니다’ 하고 암만 이야기해도 물건은 거기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자기가 하나님께 드린 것같이 생각하면 스스로 속이는 일입니다. 분명히 거기에는 실제의 거래(transaction)로서 드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제 것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아무것도 제 스스로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저를 쓰시옵소서.

2020년 3월 9일 월요일

히브리 민족주의자들의 입장, <사도행전6>, 제7강 종교적 형식주의의 폐단, 203쪽

“바울은 ‘누가 되었든지 아주 제일 처음의 백지에서부터 시작하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고 그로 말미암아서 이 새로운 이코노미로 들어오면 똑같은 은혜와 영광과 권리를 향유하는 것이다’ 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이론은 참 무서운 이론입니다. 말하자면 헤브라이즘을 파괴하는 이론이 되는 것이고, 히브리적인 특권을 전부 무시해 버리는 이론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고 새로운 이코노미에서 은혜와 영광과 권리를 향유하는 나날이 되게 하옵소서.

2020년 3월 3일 화요일

기도 2,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93쪽

“성신님, 저희를 항상 일깨워 주시사 저희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산업으로서 바르게 행하는 것인가를 늘 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이런 거룩한 도리를 배울 때마다 저희 마음 가운데 깊이 새겨서, 저희에게 요구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발견해서 그것을 드리게 하시고, 혹여라도 항상 나타나는 글의 표면에 있는 것만을 가지고 그릇된 형식을 취하지 않게 하시고,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성신의 계시를 늘 받고 살아가게 합소서.”

1966년 7월 13일 수요일

2020년 3월 2일 월요일

기도 1,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93쪽

“거룩하신 아버지여, 저희들이 주님께서 참으로 기쁘게 흠향하시는 제물로서 저희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게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저희로 하여금 참으로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올바로 깨닫게 하시고, 혹여라도 종교의 형식 가운데 빠져 들어가거나 옛날 유대에서 간 선생들이 안디옥과 그 부근의 도시들에 다니면서 소란을 일으키던 율법주의적이고 형해적이고 잘못된 인간적인 생각 가운데 그릇되게 빠져 들어가서 참으로 거룩하고 복스러운 이 소식을 흐리게 하거나 왜곡하지 않게 하시고, 자기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같이 그릇되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게 하여 주옵소서.”

2020년 2월 28일 금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5,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91쪽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친히 내시고 스스로 소유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은 사실상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돈을 가지고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 이 몸도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그것을 바칠 자격이 있습니까? (중략) 그런고로 헌금이란 우리의 정신을 드리라는 것뿐입니다. 그뿐입니다. (중략)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추하고 더러운 것밖에 없어서 하나님의 그 아름답고 깨끗한 궁전에 용납할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전부 내어놓는 삶을 살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2020년 2월 27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4,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90쪽

“교회는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잘못을 증거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넋은 다 어디로 가고 형식만 남아 있는 그것을 위대한 것같이 여기는 것이 헤브라이즘의 타락입니다. (중략)
우리 교회는 ‘자연스럽게’라는 표어(motto)를 늘 중요하게 썼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이상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내가 30도만큼 할 수 있으면 30도만큼만 할 것이지 그 이상으로 부풀려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자연스럽게 하게 하시고 그 이상으로 부풀려서 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21일 금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3,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9쪽

“헌금을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신이나 넋은 빠지고 시시한 물건만 몇 가지 갖다 놓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느냐? (중략) 돈이 없으면 내지 말아라. 그러나 너 자신을 내놓아라. 나는 네 자신의 몸을 산제사로 들리는 것을 반가이 받는다. 그것을 네가 표상하기 위해 일전을 내놓든지 십 원을 내놓든지 네 마음 가운데 우러나오는 대로 기쁨으로 드리면 받을 것이지만, 없는 것을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정신으로 넋으로 제 자신으로 마음 가운데 우러나오는 대로 기쁨으로 드리는, 그런 원칙을 지켜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2,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8쪽

“의식(儀式)이란 결국 어떤 원칙을 제시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제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도는 제도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큰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다리요 방도로서 존재합니다. 그런데 목적은 없고 그냥 ‘너는 다리 위를 한없이 돌아다녀라. 그러면 결국 도달할 곳에 도달할 것이니라’ 해서 한강 다리를 백날 돌아다닌다 한들 다리를 건너서 목적지에 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한강에 있는 것입니다.” 

번문욕례적인 허다한 많은 방도에 치중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통치하심을 늘 승인하는 목적지를 향해 다리를 건너가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9일 수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1,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7쪽

“‘이 순결한 하나님의 나라를 여기에 건설한다. 그러기 위해서 생명의 존엄성을 늘 유지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의 생명을 주의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승인해서는 안 된다. 우상의 제물도 먹지 말아라. 그런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라’ 하는 위대한 법칙이 거기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원칙(principle)하에서 나온 법칙입니다. (중략) 큰 원칙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늘 유지하고 생명을 주의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승인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내용을 사회적으로 현시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7일 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0,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7쪽

“둘째는 ‘생명은 순결하게 발전해서 거룩한 씨를 퍼뜨려야 하는 까닭에 불의나 불순과 추악으로 불행한 자녀를 만들고 불행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서 그로 말미암아 원한과 괴로움과 슬픔이 생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 부정당한 부모를 가진 불쌍한 어린아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회의 발전상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현실적이고 사회적이면서도 순결을 보전해 가면서 나아간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순결하게 여기에 건설하게 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3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9,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6쪽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대권 이외에 다른 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고로 우상의 문제나 목매어 죽인 문제나 피라는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되고, 거기에는 살벌하게 남의 생명의 희생의 터 위에서 자기의 행복을 건설한다는 그런 태도가 없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언제든지 약육강식(弱肉强食) 위에서 자연도태(自然淘汰)를 믿는 현대의 진화론적 철학 가운데서나 발견하는 문제이지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벌하게 남의 생명의 희생의 터 위에서 자기의 행복을 건설한다는 그런 태도가 없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2일 수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8,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5쪽

“역사상에 나타난 이 회의를 우리가 볼 때에 그런 중요한 의의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중략) 여기에 무슨 법이 있는가 할 때,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본래의 온정을 표시하기 시작해서 살벌하고 피비린내 나는 비인도적이고 비신국적(非神國的)인 현실에서는 언제든지 유리(遊離)해 나가는 것이다’ 하는 것이 여기에 나타난 큰 사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본래의 온정을 표시하기 시작해서 살벌하고 피비린내 나는 비인도적이고 비신국적(非神國的)인 현실에서는 언제든지 유리(遊離)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1일 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7,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5쪽

“진(眞)을 추구하고 미를 추구하는 헬레니즘의 이상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데서 이루어진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헬레니즘이고 헤브라이즘이고 다 없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한 분뿐이구나. 그가 오직 유일의 방도이고, 이 방도를 떠나서는 이상(理想)의 경계에 도달하지 못 한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길이다. 이것만이 바른 철학이다. 헤브라이즘이나 헬레니즘이 지금까지 말하던 여타의 것은 그림자를 보인 것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이것이야말로 그 진리요 그 도리이다. 예수님만이 진리요, 죽었던 그가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 탄생했으니까 예수님만이 생명이다’”

오직 예수님을 유일의 방도로 길로 진리로 생명으로 알고, 이 방도로 이상의 경계에 도달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0일 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6,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5쪽

“생의 충족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경계(境界)인 까닭에 자유라는 헬레니즘의 이상을 초월하는 것이고, 그런고로 하나님 나라의 자유라는 것은 무식과 맹목과 암매 가운데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암매의 노예가 되었던 내가 밝히 보고 밝히 깨달은 까닭에 높은 교양과 새로운 지혜 가운데에서 누리는 자유라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계에서 높은 교양과 새로운 지혜 가운데에서 자유를 누리며 생의 충족을 실현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7일 금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5,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5쪽

“또 헤브리이즘에서 발견하는 자기희생(self-sacrifice)이라는 것도 자기 스스로 억지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심으로써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풍요를 소유하게 하시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아는 터 위에서 즐거이 자신을 드리는 것임을 안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생의 충족이라는 헬레니즘의 이상에 도달했다는 것을 동시에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대신하심으로써 저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풍요를 소유하게 하시고, 즐거이 제 자신을 드리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6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4,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4쪽

“또 헤브라이즘이 가지고 있던 자기 부인이라는 것도 자기가 스스로 억제하면서 억지로 ‘안 된다, 안 된다’ 하고 스스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이 나에게서 홀연히 발생하는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자기 부인을 홀연히 이루심을 알고, 기꺼이 자기 부인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5일 수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3,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4쪽

“바울 선생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가지고 있던 이 위대한 사실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하면서부터 예수 안에서 이 위대한 이상들이 다 실현된 것을 보았습니다. 즉 헤브라이즘이 가지고 있는 유유 맹종(唯唯盲從)과 같은 맹종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참조. 롬 12:1).” 

즐거운 마음으로 제 자신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4일 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2,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4쪽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죄를 지속적으로 자꾸 범하는 것이 아니다. 가다가 불가부득 넘어진 그 사실이 죄가 되지만, 그러나 넘어져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법은 없다’ 하는 말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 24:16) 하는 말씀과 같이 또 일어나 서는 것입니다.”

가다가 불가부득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서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3일 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4쪽

“내 속에 있는 성신으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의 나라를 내 안에 보유한 것을 증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도 중생이라는 사실의 터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참조. 롬 14:17). 그것도 저것도 없고 마음에는 밤낮 불안과 괴로움과 암매가 가득하고 늘 계속해서 악을 생각하고 불의를 생각하고 계속적으로 죄악적인 생활 가운데 호흡하고 살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범치 아니 하는 것이다’(참조. 요일 3:9; 5:18) 하는 말씀을 알 길이 없습니다.” 

성신으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의 나라를 내 안에 보유한 것을 증시하게 하옵소서.

2020년 1월 31일 금요일

충만한 복음 대신에 율법주의가 횡행하는 현실 2,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2쪽

“율법주의는 언제든지 경건주의와 붙어 다닙니다. 율법을 강하게 지키면 경건한 것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중략) 은혜가 그를 지배한다는 사실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과 성신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경지에 도달하여 그 성신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법칙, 곧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 나를 주장한다는 새로운 세계의 법칙을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저를 지배하게 하시고 자유를 누리며 성신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경지에 도달하여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 저를 주장하게 하옵소서.

2020년 1월 30일 목요일

충만한 복음 대신에 율법주의가 횡행하는 현실 1,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79쪽

“참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목자 된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목자 된 사람 자신이 그 세계에 들어가서 큰 확신 가운데 도달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너무나 많이 직업적인(professional) 교역자가 되는 까닭에, 조강과 같고 다 낡아 빠지고 물 빠진 칡뿌리 같은 것을 주면서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이다’ 하는 것이고, 그러한 까닭에 복음을 받은 사람들도 그것이 과연 자기의 전 지식과 생 전체보다도 위대하고 풍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느낄 재주가 없는 것입니다.”

참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내용을 파악하고 그 세계에 들어가서 큰 확신 가운데 도달하게 하사, 전 지식과 생 전체보다도 위대하고 풍요한 복음임을 느끼고 알게 하옵소서.

2020년 1월 6일 월요일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아우르는 기독교의 위대한 본질 4,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77쪽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은 바울 선생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식의 몇 가지 종교적인 교의(敎義, tenet)나 종교적인 강령을 가지고 떠드는 문제가 아니고, 전 사상의 세계이고 전 지식의 총화(總和)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지식보다도 종합적이고 총화적이고 충만하고 충일한 지식인 까닭에 ‘오직 내가 그것 하나를 잡으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참조. 빌 3:12).”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 그것 하나를 잡으려고 값을 치르게 하시고 다른 모든 것을 버리게 하옵소서.

2020년 1월 3일 금요일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아우르는 기독교의 위대한 본질 3,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77쪽

“기독교는 헬레니스틱(Hellenistic)한 인간의 모든 추구와 이상이 목표에 도달한 큰 세계인 동시에 헤브라이즘이 구현하고자 하던 모든 이상적 견지가 환연히 구현되는 세계라는 것을 발견했기에, 그것이 그(바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찬송으로 나타났고, ‘내가 지금까지 알던 모든 지식을 다 분토(糞土)로 여기며,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다’고 고백했습니다(참조, 빌 3:8; 고전 2:2).”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