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선생의 외식도 바울의 책망 끝에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고, 두 사람의 마음 가운데 아무 유감도 남긴 것이 없이 화평하게 일은 끝났습니다. 베드로 선생은 후에라도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벧후 3:15)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바울 선생을 늘 높였고 결코 그것 때문에 조금이라도 사감(私感)을 갖든지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신의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도 가다가 넘어지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넘어졌다가도 ‘네가 넘어진 것이다. 일어나라’ 하실 때에는 벌떡 일어나서 먼지를 털어 버린 다음에 다시 거기에 유감을 두지 않습니다.”
가다가 넘어지는 일이 있어도 벌떡 일어나서 먼지를 털어 버리고 거기에 유감을 두지 않고 성신의 은혜를 받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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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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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에 속해서 인간의 열정을 가지고 무엇을 행한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입니다. (중략) 분파(分派)가 됐다는 것입니다. 모든 분파된 것을 나쁘다고 한 것이 아니고 분파의 원인이 인간의 열정에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말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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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한 개체로 보면 내 안에서 주관적으로 또한 내 안에서 유기적으로 활동하시는 것입니다. 유기적으로 활동하시면 성신의 생각도 결국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떠오른 이 생각이 성신의 생각인가 내 생각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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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님이 내 인격을 당신의 인격으로 화(化)하게 유기적으로 사역하려고 할 때에 하시는 방식은 강제로 하는 게 아니고 항상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앞에다 놔두고 우리에게 판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리로 가겠느냐, 저리로 가겠느냐?’ 성신께서 어떤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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