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8일 토요일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아우르는 기독교의 위대한 본질 2,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75쪽

“하나님의 성신께서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셨던 것이고, 이 새로운 세계에서 헬레니즘이나 헤브라이즘의 모든 이상이 갈등이 없이 조화되어 혼연(渾然)히 목표에 도달하는 경지를 성신께서 구현하셨다는 사실을 그(사도 바울)는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인문주의적인 이상이 다 구현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아우르는 기독교의 위대한 본질 1,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75쪽

“위대한 사상적 인물로 설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속에 거대한 사상적 깊이를 가지고 많은 갈등과 고뇌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극복해 가면서 마침내 어떠한 투명하고 조직적이고 계통적인 해결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사실상 투명하고 능력 있고 설복력 있고 가치 있는 사상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이 쓴 글들을 읽을 때 우리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상의 세계에 도달했는가 하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쓴 글들을 읽을 때 그 위대한 사상의 세계를 이해하고 느끼게 하옵소서.

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예루살렘 회의로 모인 이유와 바울 사도의 태도,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66쪽

“여기서 참으로 교회의 협의회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암암리에 우리에게 보이는 것인데, 그것은 당면한 문제를 고려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어떠한 원칙 가운데 해석되어야 할 것인가를 상고한 결과로 그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회의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자기 한 사람이나 주위의 몇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인들,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함께 앉아 의논하는 것이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함께 앉아 의논하여 당면한 문제를 고려하게 하옵소서.

2019년 12월 8일 일요일

기도, <사도행전6>, 제5강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161쪽

“저희가 지극히 적은 수라도 참으로 주님의 거룩한 은혜를 받은 자요 진리를 깨달은 자답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공고하게 결속해서 저희가 달려야 할 이 경주장에서 경주하게 하시고, 저희 앞에 벌어져 있는 이 전장(戰場)에서 감연히 전투해 나가게 하시며, 또한 모든 그릇된 것의 유혹을 물리치게 하여 주시고, 일보도 양보함이 없이 끝가지 진리에 올바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1966년 7월 6일 수요일

2019년 12월 5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3, <사도행전6>, 제5강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157쪽

“이런저런 도리에 대해 흐리멍텅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그릇된 길로 가는 가장 교묘한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것이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어떤 부분이 얼마나 종래에 가지고 있던 개혁교회의 정신과는 많이 벗어난 것인가를 알 것입니다. (중략) 미국 교회가 부패한 가장 중요한 근저(根底)는 진리를 끝까지 진리로서 고수하지 않은 것입니다. (중략) 교인이 다른 것을 이야기할 때도 그것을 막지 않고, ‘그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 하는 생각으로 지내면서 큰 교회를 만들고 돈만 거두면 그만인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부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은 일보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교회의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의 거룩한 도리를 끝까지 고수하게 하옵소서.

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2, <사도행전6>, 제5강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156쪽

“진리가 아닌 것은 양보할 수도 있습니다. 진리라면 양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진리가 아닌 것은 양보도 하고 타협도 하는 것인데, 그들은 결과적으로 마치 진리를 진리 아닌 것처럼 대하는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진리가 왜곡되고 삭감되고 파괴되어서 결국 진리가 아닌 것이 서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 바로 분별하게 하시고, 진리를 양보하지 않게 하옵소서.

2019년 11월 21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1, <사도행전6>, 제5강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154쪽

“만일 진리를 타협해 가면서 성신의 영감을 바라고 있다면 영감은 그만두고 타협으로 말미암아 괴상한 것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수가 자꾸 많아지니까 그 사람들을 처벌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처벌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를 원치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평화를 유지하고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친교를 유지하려고 덮어 둔 것입니다.”

성신께서 영감을 주시고 마음을 합치게 하시고 동일한 공동의 결론에 도달하게 하신 것을, 소소 명백하게 역사를 관통해서 능력 있게 남아 있게 하신 개혁교회의 거룩한 도리를 적극적으로 생활에서 드러내게 하옵소서.

2019년 11월 17일 일요일

양측의 논지와 한국 교회에 있는 폐단, <사도행전6>, 제5강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146쪽

“'너희가 메시야를 배척하고 버린 이상에는 너희도 정죄받은 이방 사람과 똑같은 위치에서 정죄받은 것이고, 너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상에는 너희에게 아무 특권도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느 사람에게 특권이 있는가 할 때, 나중에 바울 선생은 명확하고 명쾌한 결론으로 말하기를 '누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인가 하면 피로써 자기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시(自恃)하고 자과(自誇)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신령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에 의해서 구원을 받고 부르심을 받아서 새로운 생명을 받은 그 사람이 이스라엘이다. 모든 이스라엘의 특권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혈통상 유대인이라고 해서 이스라엘의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신령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에 의해서 구원을 받고 부르심을 받아서 새로운 생명을 받아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11월 13일 수요일

안디옥에서 변론이 일어남, <사도행전6>, 제5강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140쪽

“기독교 역사를 보면 진리를 호지(護持)한 모든 운동에는 반드시 나중에는 결국 열전(熱戰)이 붙거나 최소한 감정의 소격(疏隔)과 분열이 생기고 맙니다. 이것은 불가부득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말만 따로 하고 감정은 따로 있도록 그렇게 피조(被造)되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다만 그런 것을 절제할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절제하지 못할 때 감정이 말에 앞서고 나중에는 죄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을 절제하게 하사 감정이 말에 앞서 죄에 빠져 들어가지 않게 하옵소서.

2019년 11월 8일 금요일

갈라디아서의 기록, <사도행전6>, 제5강 예루살렘 회의의 성격, 139쪽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아는 고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전연 새로운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방 사람에게는 새로운 사실이고, 히브리 사람에게도 처음부터 그것이 핵심이었던 사실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중대한 갈림길(crisis)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1-16).”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것만이 중대한 갈림길이 됨을 늘 생각하게 하옵소서.

2019년 10월 12일 토요일

기도,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31쪽

“성신님으로 인하여 저희가 이 말씀이 생생하고 능력적인 말씀인 것을 실증하게 하여 주시고, 그것을 실증하는 생활에서 먼저 저희의 그릇된 것이 씻겨지게 하시며, 저희가 또한 거룩한 교회로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큰 은혜의 왕국의 거룩한 속성들을 구현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여, 성신님으로 저희를 충만히 지배하시고 주장(主掌)하여 주시고, 모든 경우에 저희의 목표가 명확하게 하시고 방황하지 않게 하시며, 좁은 문을 향해 가는 길에서 저희가 좁고 험한 길을 걸어갈 때에도 분명한 소망과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이 같이하심을 맛보고 나가게 하시옵소서.”

1966년 6월 29일 수요일

2019년 10월 11일 금요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 8,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30쪽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 17:3). (중략) 환란의 장소는 또한 능력의 장소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참으로 추구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납하시고 힘 주시고 붙드시며 같이 가신다는 참능력이 환난에서 비로소 증시되는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고후 12:9)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큰 능력은 우리가 고생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릇된 길을 가면서 고생하지 말고, 참으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면서 고생하게 하옵소서.

2019년 10월 7일 월요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 7,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29쪽

“말이나 노새와 같이 딴 데로 가면서 뚜들겨 맞는 것보다 고치고 바른 길로 들어가면서 고생하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좁은 문을 향해서 걸어가노라면 길은 좁고 험해서 그 좁고 험한 길을 가느라 고생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른 길로 가면서 여전히 고생하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드러내도록 고치고 바른 길로 좁은 길로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게 하옵소서.

2019년 10월 5일 토요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 6,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28쪽

“우리의 사상이 될 수 있는 대로 진리에 대해서 민감하고, 진리라고 하면 모든 것을 배제하고 그냥 따라가겠다는 그런 위치 가운데 있어야만 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 못해서 아무리 신령한 교회라고 할지라도 갖가지 사람들이 있어서 진리보다는 현실상 유익한 것을 취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표면만 그럴듯하게 맞추어 주고 내면으로는 늘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늘 취하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상이 될 수 있는 대로 진리에 대해서 민감하고, 진리라고 하면 모든 것을 배제하고 그냥 따라가겠다는 그런 위치 가운데 있게 하옵소서.

2019년 10월 4일 금요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 5,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27쪽

“지금까지 그릇되게 가지고 있던 자기의 모든 해석, 즉 역사와 물질과 현실에 대한 그릇된 해석을 버려야 합니다. (중략) 교회의 거룩한 속성의 첫 번째가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라는 것은 구별되라는 것입니다. ‘사상상으로 너는 구별되어야 한다. 세상의 때 묻은 사상에 그냥 잠겨 있거나 그냥 섞여 있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역사와 물질과 현실에 대한 그릇된 해석을 버리고 사상상으로 구별되게 하옵소서.

2019년 10월 3일 목요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 4,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26쪽

“‘하나님 나라가 현실적으로 역사의 과정 위에서 구현되는데 거기에 들어가려면 환난을 겪는다’ 할 때는 첫째, 하나님 나라적인 거룩한 사상과 거룩한 성격 혹은 속성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나 자신의 생활이 하나님 나라의 것으로 먼저 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생활 가운데 그릇된 것, 사람의 때가 묻었던 것이 씻겨져야 합니다.”

생활 가운데 그릇된 것을 씻어내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사, 하나님 나라의 것으로 화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적인 거룩한 사상과 거룩한 성격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2019년 10월 2일 수요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 3,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25쪽

“그러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약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중략)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자태를 구현하기 위해, 거룩한 그 나라의 속성을 인류의 역사 위에 명확하게 구현하고 증시(證示)하기 위해서 너희를 선택했느니라’ 하는 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거룩한 목적입니다.”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인류의 역사 위에 명확하게 구현하고 증시하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30일 월요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 2,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24쪽

“잠시 위로를 준 듯했으되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해결도 안 줄 때에는 거짓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런 거짓 선지자를 위대한 신학자라고 해서 모두 따라다닌다면 그것도 불쌍한 이야기입니다. 왜 따라다니는가 할 때 지식을 좋아하는 나머지, 아는 체하는 나머지, 심각해지고 싶은 나머지 모두들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지식을 좋아하고 아는 체하고 심각해지고 싶어서, 거짓 선지자를 따라다니지 않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27일 금요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 1,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19쪽

“우리가 다 같이 중생하고 다 같이 구원의 은혜를 받고 다 같이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보유한 까닭에 거룩한 교회로 서 있지만, 성약교회가 만일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인 사명을 이 역사의 시기에 땅 위에서 구현하려면 고생하지 않고 저절로는 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필연적으로 끊어야 할 것을 끊고, 과거의 행습 가운데 잘못된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차례차례 깨닫는 대로 내려놓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18일 수요일

바울 선생이 받은 계시 3,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13쪽

“이미 내리신 풍요한 계시의 내용에 대해서 명확한 파악이 있고 판단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깊이 명상하고 사색하고 그 거룩한 도리를 추구해 나갈 때 그 도리 위에서 새로운 계시를 취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는가’ 하고 찾아 나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중략) 기도만 하고 막연히 앉아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서 보이신 뜻을 자꾸 외우고, 성신님의 거룩한 조명으로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17일 화요일

바울 선생이 받은 계시 2,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11쪽

“계시라는 것은 이미 내리신 계시와 스스로 충돌하지 않고 자기모순(self-contradiction)이 없는 까닭에 이미 내리신 계시의 터 위에서만 새로운 계시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받은 계시는 누가 보든지 보편성 있고 타당성 있는 증명을 하는 계시입니다. 그는 주관적이고 독선적인 일이 있었을 때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계시받은 것이 아주 기이하고 오묘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지나치게 볼 것 같아서 그것은 내가 말하지 않는다’ 하고 자기가 삼층천(三層天)에 올라간 이야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참조. 고후 12:1-6).”

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자제하며 분별력을 가지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16일 월요일

바울 선생이 받은 계시 1,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10쪽

“계시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공허한 공백의 상태에서 받은 것은 아닙니다. 깊은 사색과 사색의 논리적인 진행 위에서 또한 타당성이 있게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라는 것은 신비한 것이지만 법칙하에서 움직이는 것이지 법칙을 떠나서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깊은 사색과 사색의 논리적인 진행 위에서 또한 타당성이 있게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가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11일 수요일

바울 신학의 구성과 전도 여행의 관련성 3,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09쪽

“개인의 문제에 대해서 복음이 답변해 주는 것을 자기 스스로 체험해서 얻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상대방이 그 말씀을 들어서 그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문제를 확연히 해결하게 할 뿐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가지게 해서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신 거룩한 목표에 대한 전망(vision)을 명확하게 가지게 하는 그것이 살아 있는 신학의 소위(所爲)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신 거룩한 목표에 대한 전망을 명확하게 가지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9일 월요일

바울 신학의 구성과 전도 여행의 관련성 2,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08쪽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이고,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하는 문제이고, ‘이 생애에서 어떻게 승리를 얻느냐’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여전히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이라는 그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이 무슨 실효를 내는가’ 하는 것을 내가 올바로 깨닫고 아는 것이 신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이 삶에 실효를 내는 나날이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4일 수요일

바울 신학의 구성과 전도 여행의 관련성 1,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04쪽

“사람이 신학을 형성할 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그 신학이 검증될 수 있는 생활 경험입니다. (중략) 그 경험과 지적인 이론(principle)의 구성이 합쳐지면 거기에 정당하고 타당성 있는 신학이 자동적으로 형성되는가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학을 구성할 때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계시에 있는 것입니다. 계시에 터를 두고서 그 계시에 대해 정당하고 타당성이 있고 그런고로 동일한 인식의 작용하에서 보편성을 가지는 해명을 하여서 그 해명한 바가 자기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실증되고 검증되었을 때 비로소 그 신학은 살아 있는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계시를 해명한 바를 제 경험과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실증하고 검증하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3일 화요일

바울 신학의 배경과 위대성 4,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03쪽

“하나님은 그저 존재만 하신다거나 단순히 법칙을 내시고 위에서 감독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역사 위에 오셔서 자신이 원하실 때는 역사의 전 경로(course)를 잡아 트시고, 필요할 때에는 자녀 개개인의 세세한 문제까지 직접 관할하시고 통치하시는 은혜의 왕국, 곧 레그눔 그라티아에(regnum gratiae)의 왕”이십니다.

인생의 기계화 문제, 인간성 상실의 문제, 그리고 절망의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통치하심을 받게 하옵소서.

2019년 9월 2일 월요일

바울 신학의 배경과 위대성 3,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02쪽

“그 후의 역사에서는 누가 그리스도의 나라의 위대한 사상의 높은 세계에 도달했는가 할 때 위대한 어거스틴(Augustine, 354-430) 선생이 도달했습니다. 그 후에 칼빈(John Calvin, 1509-1564) 선생이 어거스틴 선생이 가지고 있는 사색의 세계를 비교적 명확하게 조직하고 훨씬 명료하고 훨씬 정밀한 세계까지 이끌어 내려서 사람들의 갈 길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가르쳐 나간 큰 공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그런 위대한 철학적인 세계를 겸비한 대사상가가 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 어거스틴, 칼빈 선생 등을 통해 나의 갈 길에 대해서 배워나가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28일 수요일

바울 신학의 배경과 위대성 2,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01쪽

“그 모든 세계를 다 갖다 놓고서 기독교를 이모저모에서 살펴볼 때 그 모든 것이 기독교에 다 완성되고 흡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인생의 깊이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깊이 사색해 나가는 참된 철학(philosophy), 즉 지혜를 사랑하는 관점에서 사색의 세계를 전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철학의 기본이 될 것인데, 이런 위대한 철학을 세웠다고 하면 역사적으로는 바울 선생이 효시(嚆矢)인 동시에 가장 위대한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깊이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깊이 사색해 나가는 참된 철학을 하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26일 월요일

바울 신학의 배경과 위대성 1, <사도행전6>, 제4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2), 101쪽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받은 그 거룩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신님의 조명(照明)과 주장(主掌)하심으로 자신의 풍요한 지식과 풍요한 사색력을 사용해서 헤브라이즘이 도달하고자 하는 그 이상적인 경계(境界)와 헬레니즘이 늘 지향하고 있던 이상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조화된다는 사실을 깊이 환연(煥然)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바울 신학’이라는 말을 쓴다면 이것이 바울 신학이 위대한 타당성과 보편성을 가지게 된 소이(所以)이고, 이렇게 해서 바울 신학은 참된 의미의 그리스도교의 사상적인 구성에서 위대한 정점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거룩한 복음을 성신님의 조명과 주장하심으로 현 문화 속에서 드러내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22일 목요일

기도,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91쪽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복음의 사실을 전한 뒤에는 복음의 도리를 더 깊게 전하여서 믿음 안에 거하도록 가르쳐야 하겠사오며, 또한 교회가 자라서 필요에 따라 직원을 세우거나 일을 해 나갈 때 제도에 의지하지 않고 모든 일을 주님께 부탁하여 주께서 친히 실증해 주시고 써 주시기를 바라서 주께 맡겨야 하겠사옵나이다. (중략) 저희 교회도 성신의 함께하심과 감동하심을 따라 이 시대와 저희 교회의 필요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명하여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그리하여 이 시대에 필요한 신학을 세워 나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1966년 6월 22일 수요일

2019년 8월 21일 수요일

전도 여행 가운데 수립한 위대한 신학 3,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89쪽

“꿈을 보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듣고서 모든 성경을 쓴 것이 아닙니다. 그의 면밀한 추구와 면밀한 노력에 의해서 쓴 것입니다. 그 추구와 노력이란 그의 지적인 활동과 논식의 활동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의 풍요한 경험 가운데 자료를 수집하는 것과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전부를 보지 아니하고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쓰기로 한 면밀한 노력인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것이 편지입니다.”

바울의 편지에 담긴 위대한 이야기를 바르게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19일 월요일

전도 여행 가운데 수립한 위대한 신학 2,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86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였으면 그 계시는 우리의 현실 생활에서와 사회생활에서 나 개인의 주관적인 일뿐 아니라 전체 사회의 객관적인 현실로서 어디서든지 실증될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그러한 역사를 요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면면히 흘러 내려오며 객관적인 실증이 있는 진리를 따르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14일 수요일

전도 여행 가운데 수립한 위대한 신학 1,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86쪽

“바울 선생의 신학은 어디에 근거를 두었겠느냐 (중략) 어디에 최후의 근거를 두는가 하면 하나님의 계시에 늘 근거를 두는 것입니다. (중략) 이미 존재하고 이미 보편화한 계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바울 선생의 그 위대한 신학은 계시에 근거를 두었으나 계시에 대해 평명적인 해석만을 하는 것은 신학이 안 됩니다. 계시가 우리에게 준 것이 현실 생활에서 역사적인 현실성과 역사적인 실효성을 실증한 위에서, 또한 인식론적인 과정하에 충분한 승인을 거쳤을 때 그것이 살아 있는 신학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의 위대한 신학을 잘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13일 화요일

바울 신학의 수립,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75쪽

“바울 선생은 전도하기 전에 자기의 신학 체계를 다 구성해 가지고 있다가 강론한 것입니까? (중략) 바울 선생이 그때그때 성신의 충만한 감동의 역사로 필요에 응해서 하나님의 계시로 좀 더 명확하게 조직하고 구상해 나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략) 그의 신학적인 행동은 아주 창조적인 성신의 역사에 의해서 터득된 것들이어서 그는 참된 의미의 신학자입니다.”

경험적이거나 사변적인 신학을 벗어나 참된 의미의 생생하고 살아 있는 신학을 배우고 터득하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12일 월요일

교회를 조직함 5,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73쪽

“장로라 하면 교인들이 투표해서 그중에서 유력한 사람, 헌법에 규정한 대로 제일 많이 표를 받은 사람을 세우고, 그 사람은 자기가 장로가 된 줄로 압니다. (중략) 그런 사람이 모이고 또 모여서 당회가 되면 그다음에 오는 사람도 그런 사람같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해 이색(異色)이 있게 되면 조화가 깨져서 안 됩니다. (중략) 그러니까 자기가 인기 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함부로 말을 안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똑같은 사람끼리 자꾸 모여서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치리하면 그것이 한 틀(pattern)이 되고, 그 틀대로 교인들은 생각하고, 그 틀에서 실무 교육을 받은 대로 교인들이 또 장로를 뽑고, 그 장로는 또 그렇게 다스리고, 그렇게 해서 점차 한발씩 자꾸 뒤로 물러가는 것이고 자꾸 타락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악순환입니다. 이런 악순환이 교회에 전체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교회가 타락하고 배교해 나간다는 중요한 현상의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주께 드려서 주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고 주께서 쥐고 쓰시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10일 토요일

교회를 조직함 4,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73쪽

“주께서 임명하시는 방식은 성신의 은사가 부어 넣어져서 전에 장로가 아니었을 때는 별로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았던 은사가 이제 비로소 자리를 얻어서 현저하고 능력 있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중략) 그 은사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할 때 장로로서의 자기의 직무를 가장 본질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성신의 은사가 현전하고 능력 있게 나타나, 맡은 사명을 가장 본질적으로 수행하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9일 금요일

교회를 조직함 3,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69쪽

“교인들이란 일반적으로 판단의 기준(criteria)이 정당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사물을 판단할 때 꼭 말씀의 위치에서 성경의 뜻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관습에 의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참 많습니다. ‘어디 교회를 보니까 장로가 그렇고 어디 교회의 장로도 그렇더라. 그러니 우리 교회 장로가 그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이 있느냐’ 합니다. (중략) ‘교회는 어찌되었든지 분열되지 않아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편에 있는 사람의 것도 양보를 시키고, 암매 가운데에 진리를 파괴하는 촉수(觸手)가 되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의 것도 양보를 시켜서 중간에 세워 놓으면 진리는 그럭저럭 타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는 소강(小康)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잘 다스렸다는 아무 근거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못쓰게 만드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타협함이 없이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드러내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2019년 8월 8일 목요일

교회를 조직함 2,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68쪽

“이름만 있고 실질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아닌 것입니다. 사실상 아닌 것은 허위(虛位), 즉 빌 허(虛) 자와 위치라고 할 때의 위(位) 자를 써서 실위(實位)가 아니라 허위가 됩니다. 교회에서 장로로 선택해서 장로로 안수 받으면 장로가 되는 줄로 아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언제 장로가 되는 것인가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장로로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그 은사를 주신 확실한 사실이 실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증이라고 할 때 그가 장로로서 자기의 직무에 하나님의 은사를 틀림없이 잘 드러내면 비로소 그가 장로인 것을 다른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느냐 하면 그 실증이 권위로서 임하는 까닭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실질이 있게 하시고 이를 실증하는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7일 수요일

교회를 조직함 1,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68쪽

“장로들을 임명한 것이 아니라 장로가 될 만한 사람들을 선택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장로 노릇을 하거나 하지 않는 문제는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교회가 장로로 임명하니까 장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을 뽑아서 내놓지만, 그를 장로로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권위를 그에게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가운데 성신의 충만한 감화로 역사하셔서 그가 받은 은사와 권위를 가장 정당하고 충만하게 행사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장로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 노릇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의탁하며 성신의 충만으로 늘 힘을 얻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6일 화요일

어려운 귀로를 택한 이유 :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하라 권함 3,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68쪽

“우리가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경영 가운데 충분히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의 길을 지나야만 그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덮어놓고 고생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는 다른 길이 없고 환난과 여러 가지 장애가 가로막혀 있는 그 길밖에 없습니다.” 

환란과 여러 장애가 가로막혀 있는 좁은 길로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행진하여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경영 가운데 충분히 들어가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5일 월요일

어려운 귀로를 택한 이유 :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하라 권함 2,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67쪽

“요컨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하려면 무엇이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인가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일 아침에 우리가 배운 것같이 참된 원칙을 세우려면 참된 것에 대한 바른 가치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환난이 올 때에도 인내할 수 있고 그런 인내를 통해서 마침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가르쳐 주셔서 참된 것에 대한 바른 가치 판단이 있게 하시고 참된 원칙을 세우고 환난이 올 때에도 인내할 수 있게 하옵소서.

2019년 8월 1일 목요일

어려운 귀로를 택한 이유 :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하라 권함 1, <사도행전6>, 제3강 전도 여행 가운데 위대한 신학을 수립함 (1), 67쪽

“보이는 현실이 압도적인 세력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범람하는 이 현실 세계의 유혹과 시험과 위협 가운데에서 어떻게 하면 승리를 얻고 살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친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깁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인 까닭에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알지 않고 보지 못하는 것을 잡으려고 갈 때에는 항상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형상이 있는 것들의 가치만 크게 보는 그릇된 습관을 버리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고 형상이 없지만 거기에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믿음에 거하라’ 하고 권하려고 이 길을 취한 것입니다.”

바른 믿음에 거하여, 형상이 있는 것들의 가치만 크게 보는 그릇된 습관을 버리게 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고 형상이 없지만 거기에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7월 31일 수요일

기도 2, <사도행전6>, 제2강 바울 사도는 왜 왔던 길로 되돌아갔는가, 61쪽

“저희는 이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별달리 생각지 않고 거룩한 도리 위에 서서 주께서 원하시는 길을 좇게 합소서. (중략) 주님 저희들이 주의 말씀을 배우면 배울수록 그로 인하여 더욱더 건실하게 장성할뿐더러 그것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거룩한 빛을 찬연하게 드러내게 하시옵소서.”

1966년 6월 8일 수요일

2019년 7월 29일 월요일

기도 1, <사도행전6>, 제2강 바울 사도는 왜 왔던 길로 되돌아갔는가, 60쪽

“아버님이여, 그의 거룩한 족적들을 주께서 인(印) 치신 것처럼 저희들의 행보에 대해서도 주께서 인을 치사, 좁은 문을 향해서 좁고 험한 길을 갈지라도 거기에 주께서 인 치신 은혜가 있으므로 열매가 있고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어서, 저희가 역사의 한 시기에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은 주님께서 분명히 보내셔서 크신 일을 이루시려고 하심인 것을 증거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저희 자신이 또한 그 증거를 스스로 맛보게 하시옵소서.”

2019년 7월 25일 목요일

충만한 지식으로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함, <사도행전6>, 제2강 바울 사도는 왜 왔던 길로 되돌아갔는가, 59쪽

“바울 선생의 간절한 염원은 전도를 들은 그들이 주의 말씀과 들은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가장 말년에 쓴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와 같은 옥중 서신들 속에서도 무엇을 강조했느냐 하면 저들이 충만한 지식에 도달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충만하고 충분한 지식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조금만 알지 말고 충분한 지식에 도달하라는 것입니다. (중략) 모든 것의 기본이 지식인 까닭에 필요한 것입니다.”

주의 말씀과 들은 진리를 잘 배워 충분히 이해하고, 충만하고 충분한 지식으로 신앙이 더 강해지고 소망이 더 빛나며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옵소서.

2019년 7월 24일 수요일

바울 사도의 모범과 한국 교회의 그릇된 현실 2, <사도행전6>, 제2강 바울 사도는 왜 왔던 길로 되돌아갔는가, 58쪽

“‘나는 진리를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를 위해서 투쟁한다는 것이 형제를 미워하는 증오로 바뀌었으면 증오가 진리입니까? 증오가 진리가 될 턱이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증오를 가져오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리라면 증오가 안 생겨야 합니다. 진리를 위한다면서 증오를 일으킨다면 그것이 무슨 진리입니까? 그런 진리를 두 번만 가졌다가는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자유를 얻고 진리 가운데 빛 가운데 기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7월 22일 월요일

바울 사도의 모범과 한국 교회의 그릇된 현실 1, <사도행전6>, 제2강 바울 사도는 왜 왔던 길로 되돌아갔는가, 55쪽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사심에 동참함으로 말미암아, 성신의 내주로 말미암아, 능력적인 그리스도의 인격의 발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구현될 뿐 아니라 거룩한 형제끼리의 교통 혹은 코이노니아 가운데에 구현된다는 사실이 하나의 새롭고 거대한 사회적인 에너지로서 발휘되기 시작해서 그 에너지가 사회에 있는 비신국적(非神國的)이고 반신국적(反神國的)인 요소와 상충되어서 거기에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전투 혹은 전투하는 교회(church militant)로서의 전투가 발생한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전투를 날마다 해 나가게 하옵소서.

2019년 7월 15일 월요일

기도 3,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39쪽

“저희들에게 맡기신 이 거룩한 사명이 지혜롭고 주의 깊고 용기 있게, 성신님이 쓰시는 능력 있는 그릇답게 저희에게서 다 나타나게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주님, 저희들을 붙드시고 끝까지 성신님으로 역사하시며 주장(主掌)하시고, 큰 지혜를 주시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명확하게 보게 하시옵소서.”

1966년 6월 일 수요일

2019년 7월 11일 목요일

기도 2,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39쪽

“신성한 이름과 아름다운 명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심 깊이 파고 들어갈 때에는 결국 자기의 세상적인 욕망과 자기 자신의 영예와 자기 자신의 발전과 성공에 마음이 끌려서 자기 정신 가운데 휩쓸려 세상에 속한 생각으로 자칫하면 방황하기 쉬운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붙드사, 주께서 맡기시고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깨닫게 하시고, 저희가 잘못된 데로 방황하지 않게 하시며, 또한 저희 마음 가운데 주께서 선택하시고 은혜 주신 것을 끝까지 깊이 간직하고 나아가게 하시고, 저희 교우들 하나하나가 주님이 어떠한 은혜를 주셨으며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를 올바로 깨달아 알게 하시옵소서.”

2019년 7월 10일 수요일

기도 1,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38쪽

“오늘날 저희도 저희의 부분에서 저희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하시고, 저희도 오늘날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이 거룩한 정신이 동일한 성신님의 역사로 저희 안에 역사하게 하시옵소서. 타협이 없이 일관해 나가던 그의 정신을 체(體) 받게 하시고, 진리를 가지고 나갈 때 두려움이 없이 진리의 그 위대한 승리의 힘과 정복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려고 하던 그의 간절한 소원과 그의 적극적인 행동과 그 전투의 전사와 같은 태도를 저희도 가질 수 있게 성신님으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아주 세밀한 주의(注意)와 지혜를 오늘날 저희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2019년 7월 9일 화요일

복음은 타협을 용인하지 않음 7,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9쪽

“복음은 죄에 대하여 조금도 부드러울 수가 없고 관용할 수가 없고 철두철미하게 냉철하게 늘 비판해 나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생활 가운데 마귀의 요소가 있고 마귀의 시험의 유혹이 들어올 때에는 그것을 철두철미하게 축출하려는 것이 복음의 진정한 태도입니다. 만일 그렇게 축출하려는 것을 조금이라도 반대하고 유혹을 그냥 용인할 때는 벌써 복음이 복음으로서의 특성을 잃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활 가운데 마귀의 요소가 있고 마귀의 시험의 유혹이 들어올 때에 그것을 철두철미하게 축출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2019년 7월 8일 월요일

복음은 타협을 용인하지 않음 6,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9쪽

“거기에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무슨 표를 붙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도 큰 이름을 가지고 구원을 말하고 신앙을 말하고 정통을 말하고 보수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내부에 있는 혼탁성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만들어 나가는 큰 작용을 늘 하는 것입니다. (중략) 시대가 가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성격을 드러내고 맙니다. 역사는 늘 그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외부보다 그 내부가 순수하게 하옵소서.

2019년 7월 5일 금요일

복음은 타협을 용인하지 않음 5,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7쪽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된다는 사실을 소홀하게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무엇이 정확하고 바른 것인가 하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시험을 받는가 하면, 그런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고 흠이 있는 문제들이 나에게 와서 ‘이걸 선택할까, 저걸 선택할까?’ 할 때, 이렇게 살아 보아도 별것이 아니니까 기왕이면 대세를 좇고 기왕이면 유리한 데를 좇아가겠다는 공리적(功利的)인 동기가 자기를 지배해서 그런 것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진리를 추구하고 순수한 동기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2019년 7월 4일 목요일

복음은 타협을 용인하지 않음 4,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6쪽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서 광명한 천사인 체하면서 유혹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을 때 무슨 무슨 이유를 붙여서 죄 가운데, 혹은 세속적인 것 가운데, 이 세상의 거대한 사실 가운데, 그것도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움직이는 혼탁한 바빌론적인 요소 가운데 그냥 따라 들어가는 이런 괴상한 짓을 하는데 그런 것이 참 위험한 일입니다.” 

죄 가운데, 혹은 세속적인 것 가운데, 이 세상의 거대한 사실 가운데, 그것도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움직이는 혼탁한 바빌론적인 요소 가운데 그냥 따라 들어가지 않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2019년 7월 3일 수요일

복음은 타협을 용인하지 않음 3,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6쪽

“안 믿는 사람은 믿음이 왔을 때 순수하게 나아가는 기능이나 있지만, 이미 믿음이 와서 고귀한 것이 들어갔는데도 반응이 전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움직이고 있다면 아무런 가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새 것에 새로 뿌리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문제가 있을 때 타협하고 나가는 것같이 이상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마귀가 가장 원하는 바이고 유혹하는 바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타협하고 나가지 않게 하옵소서.

2019년 7월 2일 화요일

복음은 타협을 용인하지 않음 2,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5쪽

“복음에는 항상 소란을 일으키는 요소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복음은 타협치 않는 까닭에 그렇습니다. (중략) 복음을 쥔 다음에는 복음이 나에게 명령하는 대로 순수하게 자기를 보존해서 빛과 어두움을 합하지 않고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뒤섞어서 활동하지 않는 것이지, 세상에 붙은 욕심도 이루고 또한 일방 하나님 나라의 일도 한다고 하면서 나아가는 것은 가장 열악한 일이고 안 믿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복음이 나에게 명령하는 대로 순수하게 자기를 보존해서 빛과 어두움을 합하지 않고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뒤섞어서 활동하지 않게 하옵소서.

2019년 7월 1일 월요일

복음은 타협을 용인하지 않음 1,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5쪽

“바울 선생은 도처에 검(劍)을 땅에 던져서 분열과 쟁론을 일으키고 질시와 기쁨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검을 던지러 다녔습니다. 평화를 일으키려고 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략) 오늘날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은 들어가는 곳에 반드시 ‘가(可)냐, 부(否)냐’를 일으킵니다. ‘받아들이겠는가, 박해하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받아들이지도 않고 안 받아들이지도 않고 어리삥삥하다면 그것은 복음에 접촉하지 못한 증거일 뿐입니다. 만일 이것을 들은 사람, 의식 있게 들은 사람, 정신 차리고 들은 사람이라면 받든지 반대하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받아 기쁨이 넘치는 나날이 되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28일 금요일

사람이 교회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가 7,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4쪽

“운동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운동 자체가 사람의 것이 될뿐더러 자칫하면 큰 위험 가운데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대권에 속한 큰일을 내가 하는 것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신이면 사신답게 혹은 수임자답게 늘 생각해야지, 우리가 마치 임명권자인 것처럼 주제넘게 전부를 다 생각하고 지낸다는 것은 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본분에 맞게 늘 생각하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27일 목요일

사람이 교회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가 6,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4쪽

“월요일이면 동지들이 여기에 모여서 성경을 강론하고 하나님 앞에 경배를 드리고 나아가지만, 그러나 그들 아무에게도 그런 생각을 가지도록 하지 않고, 또 그 목사님들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 자신의 문제가 더 큰 문제이니까 우리 자신이 먼저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신실한 사람이 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2019년 6월 26일 수요일

사람이 교회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가 5,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3쪽

“역사가가 감히 손을 대지 못할 곳에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입니다. 역사가의 손에서도 감추어진 채로 하나님께서 따로 요긴하게 쓰신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는 줄 모르게 갔고 하는 줄 모르게 실행을 했지만, 그럴지라도 그 사람들의 상(賞)은 하나님 앞에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다 인정하시지, 세상 사람이 지목하고 떠드는 사람만 인정하실 까닭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큰 계획과 경륜하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람 어느 누가 ‘내가 계획하고 내가 큰 이상을 세우고 내가 목표를 세운 다음에 나아가면 교회는 어떻게 된다’ 하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삶을 묵묵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24일 월요일

사람이 교회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가 4,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3쪽

“부패라는 것은 창수(漲水)와도 같고 도도한 해일(海溢)과도 같이 넘어 들어오는 것이고 막으려는 내 손이라는 것은 심히 작은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팔을 벌려 막아도 넘어오는 홍수는 못 막아 내는 것입니다.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막아 내시되 나만을 쓰셔서 막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초석(礎石)이 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막는 것입니다.”

부패를 막아 내시는 하나님께 다 의탁하옵고 저희는 저희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21일 금요일

사람이 교회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가 3,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3쪽

“하나님께서는 어떤 종들을 세우셔서 결과적으로 교회의 부패를 방지하게도 하시고 교회를 타락하는 데에서 건져 내셔서 새롭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그 사람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 자신이 ‘내가 하겠다’ 하고 나선 것은 아닙니다. ‘나는 신실히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고 나가겠다’ 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히 의지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어디에 쓰시든지 쓰시는 대로 나는 쓰임을 받을 뿐인 것입니다.”

신실히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19일 수요일

사람이 교회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가 2,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2쪽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패퇴해 나갈 때 ‘네가 일어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신실한 ‘남은 자’들이 끝까지 남아 있어서 남은 그루터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다시 새싹이 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신실한 ‘남은 자’로 사는 것, 남아서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남아 있는 자답게 신실하게 생활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남은 자답게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실하게 생활하게 하옵소서.

사람이 교회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가 1,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2쪽

“한국의 교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서 부패한다든지 타락한다든지 할 때 우리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일어나서 한국 교회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하는 생각을 할 아무 까닭도 없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그런 사명을 가지고 일어난 것도 아니고 우리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할 턱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의탁하고 겸손히 신실한 생활을 해 나가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17일 월요일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 위험 2,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2쪽

“하나님의 교회가 튼튼한 성곽과 같이 나를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국 주님의 거룩하신 몸인 동시에 주님께서 머리가 되시고 주님께서 그 총화(總和)가 되시는 까닭에 ‘내 주는 강한 성(城)이고 방패와 병기이시다. 내가 그 안에 튼튼히 지키심을 받는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 정당하지, ‘내가 이 교회를 지켜서 교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고 패퇴하지 않도록 하겠다’ 하는 것은 어림없는 생각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 안에 튼튼히 지키심을 받아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15일 토요일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 위험 1,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20쪽

“우리가 진리를 지킬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고, 진리가 우리를 지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이 성신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역사해서 나를 보존하고 지키셔야 내가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지, ‘내가 진리를 지키겠다’ 한다는 것은 벌써 이야기가 안 되는 것입니다.” 

주신 믿음으로 진리를 항상 근실하게 유지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거기서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14일 금요일

바울 사도의 다양한 경험과 주님의 인도, <사도행전6>, 제1강 복음을 바르고 깊이 있고 담대하게 선포함, 17쪽

“‘우리는 하나님께서 권고하시고 돌아보시니까 병도 앓지 않고 아무런 곤란도 안 받는다’ 하는 생각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니까 고난을 받을지라도 그 고난에서 그 사람이 실패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목적을 향한 그의 행진이 고난 때문에 찌부러지지 않는다’ 하는 것이 그들이 받은 경험의 중요한 교훈(lesson)입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비록 죽었을지라도 목적에 도달하도록 다시 일으키셔서 더베를 향해 갈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난을 받을지라도 그 고난에서 우리가 실패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목적을 향한 우리의 행진이 고난 때문에 찌부러지지 않게 하나님께서 권고하시고 돌아보시옵소서.

2019년 6월 13일 목요일

기도 3,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36쪽

“바울이 비록 돌에 맞아서 그 목숨이 땅에서 떠나가는 그 시간까지 그 속에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있어서 변함이 없이 항상 기뻐했던 것과 같이 저희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안함이 끊임이 없이 항상 요지부동하게 존재하게 하시옵고, 아버님의 거룩하신 사랑의 통재(統宰)의 손이 역력하게 저희와 언제나 같이하심을 늘 느끼게 하시옵소서.” 

1966년 5월 18일 수요일

2019년 6월 12일 수요일

기도 2,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35쪽

“이 교회가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가는 길에서 비록 어느 때는 아무 진척이 없고 아무런 발전이 없는 듯할지라도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결국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올 것을 기대하면서, 맡기신 일과 사명에 잠시라도 태만함이 없이 전진하는 길에 쉼이 없게 하시옵소서. 저희와 늘 같이하시고 끝까지 지키시는 주여, 저희를 이러한 확신과 소망과 기쁨 가운데 늘 두시옵소서.”

2019년 6월 11일 화요일

기도 1,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35쪽

“저희들의 행진에 치우침이나 주저함이 없게 하시고, 저희가 울면서 씨를 뿌릴지라도 결국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웃음으로 기쁨으로 나중에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게 하시고, 이와 같은 큰 은혜를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더 확신하고 주의 거룩하신 능력과 사랑과 지혜에 모든 것을 맡기고 쉼 없이 전진케 하시옵소서.”

2019년 6월 10일 월요일

바울의 경험과 고백, 그리고 오늘의 우리 3,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33쪽

“문제는 ‘내가 바른 목표를 향해서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가, 나는 주께서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가, 내가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고 딴 짓을 하려고 하고 자기 자신의 출세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거룩한 이름들을 이용하고 빌려서 자기의 발판으로 삼는 공리적(功利的)인 종교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큰 분기점이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바른 목표를 향해서 날마다 진행하고 주께서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 하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8일 토요일

바울의 경험과 고백, 그리고 오늘의 우리 2,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32쪽

“우리도 그날까지 지키실 것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쓰셔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우리 위에서 이루시려고 하는 그 일을 이루시는 날까지 실패함이 없이 나를 붙드시고 끝까지 나를 지지해 주실 것을 나는 믿는다. 그런고로 목전의 암담한 현실 앞에서도 내가 아무것도 저어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쓰셔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우리 위에서 이루시려고 하는 그 일을 이루시는 날까지 실패함이 없이 붙드시고 끝까지 지지해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7일 금요일

바울의 경험과 고백, 그리고 오늘의 우리 1,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31쪽

“자기의 환경에 새로운 진전이 전혀 없고 새로운 희망이 없을 때라도 주신 사명과 맡기신 그 일에 대해서 충성을 다하고 나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손이 그를 그냥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가 혹은 전에 지혜가 없어서 그러한 환경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과거의 문제이고 현재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에 새로운 진전이 전혀 없고 새로운 희망이 없을 때라도 주신 사명과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하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5일 수요일

박해의 다양한 양상과 하나님의 인도 4,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28쪽

“남이 볼 때 세상적인 번영이나 출세나 특별하고 화려한 꿈을 줄 만한 현실이 도무지 아니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다’ 하고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모든 길을 통해서 어떤 음울한 경우라도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신다’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잘못해서 음울한 데로 빠지고 자기가 잘못해서 고난 가운데 빠져 들어가고서도 (중략) 인도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지워 드리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적인 번영이나 출세나 특별하고 화려한 꿈을 줄 만한 현실이 도무지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심을 믿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4일 화요일

박해의 다양한 양상과 하나님의 인도 3,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22쪽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경건한 생활과 경건이라는 확실한 위치를 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경건한 생활을 하며, 경건이라는 확실한 위치에 늘 서 있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3일 월요일

박해의 다양한 양상과 하나님의 인도 2,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22쪽

“반법(反法)이라는 것은 사실은 악법보다도 더 괴악한 것입니다. 아무 법도 없다면 그것은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의 자유로운 욕망에 맡긴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런 반법주의는 안 됩니다. 그런고로 항상 그런 차원(plain)에서 높이 올라서서 참된 하나님의 법이 나의 생활의 준칙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고 이것도 저것도 다 없으면 그것은 결국 자기의 존재의 규범이나 존재의 형식조차 부인해 버리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의 자유로운 욕망에 맡기는 차원(plain)에서 항상 높이 올라서서 참된 하나님의 법이 나의 생활의 준칙이 되게 하옵소서.

2019년 6월 1일 토요일

박해의 다양한 양상과 하나님의 인도 1,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21쪽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바른 것을 늘 취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중요합니다. 비판을 안 할지라도 바른 것을 취득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바른 것을 취득하지 않고 비판만 하면 타락하는 것입니다.”

바른 것을 늘 취득해 나가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31일 금요일

하나님 말씀을 전한 방식과 능력, <사도행전5>, 제11강 바울의 경험과 고백, 316쪽

“바울이나 바나바와 같은 사도들이 취한 선교의 태도는 ‘원칙이 서 있으면 그 원칙의 성격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방도라야 정당한 방법이다’ 하는 것이지 ‘어떤 방법이라도 써서 하면 된다’ 하는 그런 태도는 없었습니다.”

바른 원칙에 서게 하시고, 그 원칙의 성격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사용하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27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5>, 제10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음, 309쪽

“끝없는 감사와 주님께 대해 숭엄한 마음을 가지고 맡기신 일에 늘 주의하게 하시고 정신을 차리게 하시고 제멋대로 행하지 않게 하시며 교만하거나 건방진 마음을 가지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 앞에 겸손하여 주의 말씀에 주의하고 가르치심을 깊이 깨달아 알고 그런고로 말씀이 속에 있는 자답게 은혜 가운데 장성해 나가게 하시옵소서.”

1966년 5월 11일 수요일

2019년 5월 23일 목요일

루스드라 사람들의 우상 숭배를 지적하고 만류함 3, <사도행전5>, 제10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음, 301쪽

“베드로도 ‘나도 사람이다. 사람에게 이렇게 절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얼마 후에 교회에 사람을 섬기고 우상을 만드는 경향이 생기고 그것이 점점 조직화하여서 로마교회라는 거대한 제도로 발전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이 강력하게 옷을 찢고 말릴 만한 일들을 교회의 이름 아래에서 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경배하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22일 수요일

루스드라 사람들의 우상 숭배를 지적하고 만류함 2, <사도행전5>, 제10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음, 297쪽

“그리스도는 누구를 보고 상심하시는가 할 때 이런 경우처럼 하나님을 오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않고 그릇된 다른 것을 하나님으로 알 때 가장 상심하십니다. 하나님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다 인식하지 못했으면 인식하지 못한 만큼 겸손하게 그것을 깨달으려고 하면 좋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의 인식을 전부로 알고 함부로 가치를 폄하해 버리는 태도에 대해서 상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게 하시며, 다 인식하지 못했으면 인식하지 못한 만큼 겸손하게 그것을 깨달으려고 노력하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21일 화요일

루스드라 사람들의 우상 숭배를 지적하고 만류함 1, <사도행전5>, 제10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음, 296쪽

“믿고 의지해 버리는 이런 것은 하나님께만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에 자신의 전부나 자기 목숨을 전적으로 맡겨서도 안 되고 하나님 이외의 다른 어떤 대상에게도 경배를 하는 것이 아닌데, 그런 것을 다른 것에 돌리면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횡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참람(僭濫)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17일 금요일

기도 3, <사도행전5>, 제9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침, 283쪽

“주님께서 저희와 늘 같이 하시고 늘 성신님으로 저희 속에서 크게 역사하셔서 저희들이 지혜 없는 자같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도리를 모르는 자같이 함부로 행하지 않고 조심해서 올바로 깊이 깨닫고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1966년 5월 4일 수요일

2019년 5월 15일 수요일

기도 2, <사도행전5>, 제9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침, 282쪽

“여기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도적이고 전형적이고 원인적인 큰 사실들을 저희가 잘 배우게 하여 주셔서, 이 시대의 여러 오류와 여러 가지 그릇된 관념 가운데 방황하는 일이 많은 데서 저희를 확호히 지켜 주시고, 참으로 이 사도적인 교회의 원형을 따라 어떻게 하나님의 성신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바른 전형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인가를 저희가 깨달아 알 수 있게 하시며, 그럼으로써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장 경건하고 단정한 듯이 말하면서도 비원칙적이고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누르려고 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들을 마치 하나님의 성신의 표현 방식의 전부인 것같이 함부로 말해서 많은 형제들에게 고난을 끼치게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도리를 혼탁하게 하는 암매의 현실에서 저희를 건져 내시사, 교회의 참된 전범(典範)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의 거룩한 방도가 어떻게 다양하고 어떻게 기묘한 것인가 하는 것과 또한 그것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한 저희의 정당한 태도를 늘 올바로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2019년 5월 14일 화요일

기도 1, <사도행전5>, 제9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침, 282쪽

“사랑하시는 주께서 저희에게 은혜를 주셔서 항상 문제의 핵심을 잘 포착할 수 있는 지혜가 있게 합소서. 바울 선생이 삽시간에 문제의 핵심을 잘 포착해서 다른 긴 이야기를 하지 않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요점을 쉬운 말로 곧 선언할 수 있게 된 이것을 볼 때에, 성신님이 그에게 충만하실 뿐더러 그의 보는 눈이 범상하지 않고 평소에 깊은 준비와 깊은 연마가 그에게 있었다는 것을 또한 느끼게 하오며, 단순히 주님의 거룩하신 복음만을 알고 다른 것을 전연 알지 못하고 기계와 같이 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에 비복음적인 것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항상 그에게 같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가 여기서 다시 느끼옵나이다. 주께서 저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거룩한 말씀을 배워 나갈 때마다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난 바 주님의 종들이 어떻게 맹렬한 불과 같이 담대하고 능력 있게 그러면서도 명철하고 주의 깊게 움직였는가를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2019년 5월 13일 월요일

루스드라 사람들의 반응과 바울의 만류 4, <사도행전5>, 제9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침, 280쪽

“어떤 사람이든지 나면서부터 자연히 그 속에 본성의 광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자연법에 대한 근본적이고 본능적인 경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까닭에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르며, 본성의 빛을 따라 지혜롭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11일 토요일

루스드라 사람들의 반응과 바울의 만류 3, <사도행전5>, 제9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침, 279쪽

“‘본성의 빛’ 혹은 ‘본체의 빛’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서 인간 본성 가운데 근본적으로 희미하게나마 가지고 있는 바 자기의 본체이자 자기의 원래의 패턴인 하나님을 향하는 구심적인 경향을 말합니다.” 

저의 본체이자 원래의 패턴인 하나님을 향하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9일 목요일

루스드라 사람들의 반응과 바울의 만류 2, <사도행전5>, 제9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침, 277쪽

“복음은 논증하거나 간청하는 것이 아니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선포라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졌는가 하면 첫째로, ‘결국 이것을 가지고 설득하고 신빙(信憑)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 까닭에 내가 내 힘으로 논변을 해서 신빙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해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이고, 둘째로, ‘이것을 일단 전하면 그것은 너희에게 한 분기점(crisis)을 주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복음을 내가 내 힘으로 논변을 해서 신빙하게 전하려 하지 않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8일 수요일

루스드라 사람들의 반응과 바울의 만류 1, <사도행전5>, 제9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침, 276쪽

“바울 선생은 ‘나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고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인데, 왜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인격을 섬기려고 하느냐’ 해서 이 말로 아주 간단하지만 명료하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교적인 신 개념을 파쇄(破碎)해 버렸습니다. 성신님의 지혜로 이야기하는 까닭에 이렇게 명료하고 명쾌하고 쉬운 말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거짓 신을 섬기지 말고, 참신이신,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만 섬기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7일 화요일

바울 사도가 앉은뱅이를 고침, <사도행전5>, 제9강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침, 271쪽

“모든 기적은 거저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실재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발생한 기적이 땅 위에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모든 기적은 반드시 그렇습니다.”

실재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에 더 마음을 두게 하옵소서.

2019년 5월 2일 목요일

기도 2, <사도행전5>, 제8강 이고니온에서 말씀을 전한 방식, 259쪽

“주님, 저희들을 주장(主掌)하시고 충만한 은혜로 보존하시며 성신님으로 충만케 하시고, 성신의 충만한 은혜가 저희 안에 가득 있기 위하여서 주께서 요구하시는 바 마음이 가난한 상태, 곧 두려워하고 마음이 약하고 하나님 앞에 심히 떨고 항상 송구한 태도를 취하며 자만이 없고 교만이 없고 함부로 하는 것이 없고 또한 사람의 교묘한 지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건실하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거룩한 계시로 인도하시기를 기다리는 이 근본적인 태도가 이 교회 안에와 저희 교우들 가운데 충만하시옵소서.”

1966년 4월 20일 수요일

2019년 5월 1일 수요일

기도 1, <사도행전5>, 제8강 이고니온에서 말씀을 전한 방식, 259쪽

“지혜와 은사가 저희들에게도 있어서 저희들에게 주신 이 거룩한 사명과 목적을 분명히 의식하고 확실한 목적의식 하에서 저희들의 행보가 건실하고 후퇴함이 없이 늘 전진하게 하시며, (중략)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주님이 원하시는 양들에게 성신의 능력과 은혜가 더욱 전달되는 사실들이 명확하게 더 드러나게 하여 주시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저희의 행진이 건실하게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2019년 4월 29일 월요일

분열의 문제와 복음의 진리 4, <사도행전5>, 제8강 이고니온에서 말씀을 전한 방식, 257쪽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더 이상 있지 못하게 하니까 다리의 티끌을 털어 버리고 나갔고, 여기 이고니온에서는 도망했고, 앞에서 성경을 본 대로 루스드라에서는 돌로 맞아서 죽었습니다. 어디에 가서는 핍박을 당하고, 어디에 가서는 핍박을 피해서 도망하고, 어디에 가서는 그냥 쫓겨나는 이것도 하나의 중요한 방식입니다.” 

어떠한 처지에 처하든지 그 처지에서 어린 양처럼 유순하게 그러면서도 지혜롭게 성신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분열의 문제와 복음의 진리 3, <사도행전5>, 제8강 이고니온에서 말씀을 전한 방식, 255쪽

“성경을 보면 복음이 어디에 들어가면 이런 분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구별되고 거룩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 할 때는 그것은 무엇보다도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께 붙었느냐 안 붙었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딱딱 구별해라. (중략)’ (중략)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래야만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붙어서 좁은 문으로 생명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25일 목요일

분열의 문제와 복음의 진리 2, <사도행전5>, 제8강 이고니온에서 말씀을 전한 방식, 253쪽

“세상에 악이 있는 까닭에 악이 필연적으로 선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분열 작용을 하는 것뿐입니다. 분열 자체가 악이 아니고, 원래 악이라는 요소가 선의 요소 혹은 선할 수 있는 요소 혹은 선의 목표를 가지고 가는 요소를 못 가게 눌러서 강제로 위장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을 때 그것을 다시 분열시켜서 선을 향하는 것은 제대로 선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 복음의 진리인 것입니다.”

악에서 떠나 늘 선을 향하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24일 수요일

분열의 문제와 복음의 진리 1, <사도행전5>, 제8강 이고니온에서 말씀을 전한 방식, 252쪽

“복음도 교회를 분열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참복음의 능력이 부패한 교회에 들어갈 때에는 분열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패하지 않았을 때에는 전부를 싱싱하게 보강해 주지만, 교회가 부패했을 때에는 그 부패한 요소가 부패하지 않은 요소, 혹은 적어도 부패하지 않으려고 하는 요소, 그리고 복음을 따라가려고 하는 요소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질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감과 질시가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분열이 생깁니다.”

분열이 생겨도, 일보도 후퇴하지 아니하고 착실히 일보씩 전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실하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23일 화요일

성신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사도행전5>, 제8강 이고니온에서 말씀을 전한 방식, 249쪽

“사람의 지혜로 ‘요렇게 하면 잘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날 때 그것을 따라가지 않고, ‘성신님이여, 저를 쓰셔서 무슨 말씀이시든지 이제 저들이 성신의 권능과 은혜 가운데 들어갈 수 있도록 원하시는 대로 하옵소서’ 하고 그분께 의탁하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 선생이 말한 방도이고, 그 마음자리는 성신의 권능이 그들에게 나타나게 하기 위해 약하고 두려워하고 오히려 떨기까지 했습니다. 혹시라도 오만이나 그릇된 것이 나타날까 두려워했습니다.”

성신님이여, 저를 쓰셔서 무슨 말씀이시든지 이제 저들이 성신의 권능과 은혜 가운데 들어갈 수 있도록 원하시는 대로 하옵소서.

2019년 4월 19일 금요일

기도 3,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31쪽

“인간의 정열을 가지고 종교를 행하려고 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인간의 현실 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것을 마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신앙의 생활인 것같이 오해하는 암매와 어리석음이 큰 것을 알게 하시고, 그런고로 항상 신령하고 거룩한 위치에 있게 하시고 참된 경건이 저희를 늘 지배하게 하시며,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품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게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1966년 4월 13일 수요일

2019년 4월 18일 목요일

기도 2,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31쪽

“저희로 하여금 주께서 저희를 세우시고 택하신 거룩하신 목적을 이루는 자식들이 되게 하시고, 그것을 딴 것으로 변조해서 독선적인 자기도취와 독단 가운데 빠지는 일이 없게 하시고, 자칫하면 빠져 들어가기 쉬운 이런 사이비적인 열심과 경건에 빠져 들어가는 어리석음이 없도록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2019년 4월 17일 수요일

기도 1,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30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성신님이 늘 저희들의 마음에 밝히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중요한 것과 체계 있고 논리성 있게 그 말씀에 진술된 거룩한 큰 도리를 항상 잘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계획의 전모에 대해서 저희가 그 깊이를 다 파악하지 못할지라도 대체로 늘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며, 또한 이 세상을 볼 때에도 항상 그 전체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게 저희의 마음을 길러 주시고 세워 주시며, 이 악한 세대에 저희들이 가는 이 길을 주께서 붙들어 주셔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시고 그릇된 데로 들어가지 않게 하시고 오류와 미망과 그로 말미암은 자기주장과 독선과 교만 가운데 빠져 들어가지 않게 하시고, 항상 연약한 저희가 주님을 의지하며 자기 자신을 올바로 평가한 그 겸손한 위치에서 주님의 거룩하신 사랑의 품안에 늘 있고 그 은혜에 항상 거하게 하시옵소서.”

2019년 4월 16일 화요일

영생 얻음에 합당한 자와 합당치 않은 자 2,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28쪽

“두 사도는 핍박을 받아서 떠났을지라도, 그 말씀을 참으로 받은 사람들, 즉 영생을 받기에 해당한 자로 나타난 사람들은 말씀을 기뻐하고 말씀을 찬송하면서 말씀을 두루 전파하니까 말씀이 그 지방 일대로 두루 퍼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 말씀은 아무 몰락이나 정체나 그런 것이 없이 그대로 진행하고 나갔습니다.” 

말씀을 기뻐하고 말씀을 찬송하면서 말씀을 두루 전파하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15일 월요일

영생 얻음에 합당한 자와 합당치 않은 자 1,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27쪽

“그 마음의 상태가 영생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나타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뻐한 사람들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찬송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뻐하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오늘의 우리 교회가 깊이 생각할 문제 5,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24쪽

“‘하나님이 나를 늘 붙들고 계신 그 품안에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 그 품안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걸어가고 내가 붙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유리(遊離)된 채로 내가 하나님을 붙들려고 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내가 어떻게든지 하나님 앞에 잘 믿는 사람이 되겠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늘 하나님의 자식답게 나타내시는 위치 가운데 떠나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늘 하나님의 자식답게 나타내시는 위치 가운데 떠나지 않고 있게 하옵소서.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12일 금요일

오늘의 우리 교회가 깊이 생각할 문제 4,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23쪽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 말씀의 대도라야 하지, 대종과 대도를 떠나서 지엽적인 것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태도를 명백히 한다고 하면 무엇이 되느냐 하면 항상 분열하는 분파(sect)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대도를 전파하는 큰 능력을 늘 가지고 있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11일 목요일

오늘의 우리 교회가 깊이 생각할 문제 3,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22쪽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수용력이 있는 동안에는 전하는 것입니다. (중략) 항상 끝없이 진리를 전달하더라도 교회의 전체적인 태도나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조가 결국 거기에 대해서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차라리 점점 더 굳어지고 저락(低落)해 갈 때에는 끝없이 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받는 사람에게만 전하고 나머지에게는 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반응하며 수용하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10일 수요일

오늘의 우리 교회가 깊이 생각할 문제 2,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22쪽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종교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식답게 역사 위에서 역사의 책임자답게 움직이라고 하십니다. 역사의 책임자란 무엇인가 할 때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역사(history)를 땅 위에 구현할 책임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식답게 역사 위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역사를 땅 위에 구현하는 책임자답게 움직이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9일 화요일

오늘의 우리 교회가 깊이 생각할 문제 1,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22쪽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대도를 늘 파악하고 살아야지, 지엽적인 문제로 콩이야 팥이야 하고 논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 말씀의 대도를 늘 파악하고 거룩한 목표를 향해서 자꾸 전진하고 나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다가 넘어졌으니 못 쓰겠다든지 그 사람이 이러니 못 쓰겠다든지 하는 것을 가지고 너무 논란하지 않는 것이 정당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대도를 늘 파악하고 거룩한 목표를 향해서 자꾸 전진해 나가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8일 월요일

유대인의 비방과 바울의 결별 선언,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21쪽

“이스라엘을 포기했다고 선언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기 동족에 대해서 끊임없는 슬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그 백성에 대해서 끊임없는 슬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진행을 위해서는 그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전해도 바른 도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나중에는 심지어 자기의 그릇된 선입관을 가지고 반대하고 비방하고 나서면 그때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포기하니까 발의 티끌까지 털어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수요 정통이라고 해서 끝없이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해서 애착을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하나님의 바른 도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고 애착을 가지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6일 토요일

이 강설의 특이성: 기독교의 전모를 선포함 6,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5쪽

“강설을 할 때에는 항상 기독교의 대종(大宗)을 이야기해야지, 부분적이고 지엽적이고 저변적인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그것으로 끝나면 기독교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략) 기독교의 대종을 파악하지 못하면 어디에서 주저앉는가 하면 종교적인 생활 문제에서 주저앉는 것입니다. (중략) ‘기도를 많이 해야겠다. 성경을 많이 보아야겠다. 또한 예배당에 열심히 나가야겠다’ 하는 데에 그냥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운동을 하는 데 뛰어들든지 기독교적 박애 운동을 해야겠다든지 무슨 운동을 해야겠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든지 죄를 이기고 살아야겠다든지 하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기독교의 대종을 파악하고 이를 중시하게 하옵소서.

2019년 4월 3일 수요일

이 강설의 특이성: 기독교의 전모를 선포함 4,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4쪽

“‘우리 인생의 목표가 어디에 이르며 우리의 행진이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는가를 가르친다’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후사, 즉 하나님의 상속자로 서는 것입니다. (중략)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네게 주셨을 뿐 아니라 그를 아낌없이 주셨으므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네게 주신다. 왜 우주 만물을 창조한 줄 아느냐? 네게 주려고 창조한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로 인생의 목표를 삼고 행진해 나가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30일 토요일

이 강설의 특이성: 기독교의 전모를 선포함 3,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3쪽

“의롭다 하심이 무엇입니까? 의롭다 하심은 죄 없다 하시는 하나님의 선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둘째의 사실은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같이 이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권속(眷屬)이 되어서 하나님이 친히 먹이시고 기르시고 세우시며 생존의 목표를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휘오쎄시아, 즉 양자(養子)로 삼는 일이 늘 거기에 붙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셋째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의롭다고 하시면서 너희를 세우시는 뜻은 최후에 너희를 만물의 후사로 세우시려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다.’”

죄 없다 하시고, 친히 먹이시고 기르시고 세우시며 생존의 목표를 세워 주시며,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이 강설의 특이성: 기독교의 전모를 선포함 2,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3쪽

“하나님께서 어떤 정부를 세우셨고, 그 정부가 어떻게 인류의 정부 위에, 역사를 창조해 가는 모든 인류 위에 친히 통재하시느냐 하는 것을 한 모델을 들어서 이야기해 나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목표를 나중에 분명히 일러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신 줄 아느냐? 그 거룩한 은혜를 구현하시려는 것이다. 그 거룩한 은혜의 구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공로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019년 3월 27일 수요일

이 강설의 특이성: 기독교의 전모를 선포함 1,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1쪽

“왜 먹고사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자기의 해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정부가 여기 있다’ 하고 그 해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내셨고, 하나님이 너희를 먹고살게 해 주셨고, 너희로 하여금 목적을 가지고 살게 하신 것이다’ 하되 바울 선생은 이것을 하나님의 정부라는 형태로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부에서 먹고살며,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26일 화요일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의 타락 3,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0쪽

“오늘날의 기독교가 생활이 아니고 종교로 타락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거기서 영광을 떠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중략)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이 우리의 생활에 직면한 것이 아니거나 기독교의 참된 진수가 자기의 전체 생활 혹은 인간의 전체 생활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고 독특하고 괴이하고 괴상한 종교적 생활을 기독교라고 해서 그리로 사람을 몰아넣으면 거기에는 영광이 떠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나중에 그 점을 강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가 말씀한 기독교라는 것은 생활의 대종(大宗)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大宗 : 사물의 근본.

기독교의 참된 진수가 전체 생활을 포괄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의 타락 2,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0쪽

“‘거기에 하나님의 종교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의미 없다. 너희가 너희 전체의 생활과 너희의 권력과 너희의 영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을 할 때 하나님 나라의 패턴과 하나님 나라의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에는 아무리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를 가졌을지라도 제국이 와서 너희를 병탄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역사적인 의의라는 것을 우리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패턴과 하나님 나라의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움직이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20일 수요일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의 타락 1,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09쪽

“종교라고 할 때는 전 세계의 역사의 성격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지, 문화의 거대한 성격 가운데 부분을 취해서 종교라고 하면 그것은 타락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종교라는 말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훨씬 포괄적인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부분적인 것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늘 생각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18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95쪽

“저희도 다 양자의 영을 받아 후사로서 그 찬란한 영광에 들어갈 것을 믿고 감사하옵나이다. 이 같은 사실을 확실히 알고 믿어서 이 세상 사는 동안 허투루 살지 않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힘 있게 능력을 발휘하며 살게 하여 주셔서, 저희를 자녀로 세우신 본의가 있게 살게 하옵소서.”

1966년 4월 6일 수요일

2019년 3월 16일 토요일

“하나님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식답게 진리를 사모하고 살고 하나님의 자식다운 거룩한 영광을 나타내고 살려고 할 때 세상 사람은 그것을 칭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저해하고 무시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식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하고 나갈 때 그들이 그것을 저항하고 무시할 때는 곧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저항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식답게 진리를 사모하고 살고 하나님의 자식다운 거룩한 영광을 나타내고 살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5,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93쪽

“신약에 있는 이 중요한 사상이 무엇을 가르치는가 할 때, 먼저 그 근거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서 그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셨다는 사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그 생명으로 그를 다시 낳으신 까닭에, 부활하신 그 생명으로 태어난 그에게 이번에는 하나님이 무슨 법적인 지위를 주셨는가 하면 ‘내 자녀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後嗣), 곧 하나님의 후사”(롬 8:17)가 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좋은 것을 받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하는 말씀과 같이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높은 위치에 두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서 저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시고, 자녀 삼으시고,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높은 위치에 두시니 감사합니다.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4,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92쪽

“자기 생활의 고귀성과 남이 존경하는 것의 가치를 알았을 때는 다시 그런 데로 빠져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칭의의 실질적 효과입니다.”

제 자신의 생활의 고귀성과 남이 존경하는 것의 가치를 알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13일 수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3,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91쪽

“칭의의 실효(實效)가 어떻게 미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참으로 일생 입고 싶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좋은 옷을 입었다면, 그 옷을 입은 것 때문에라도 다시 더러운 데 가서 더러운 것을 묻히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용서의 철저함을 깨달아서 칭의라는 사실이 나의 내부에 현실적으로 실효 있게 유지되었을 때는 절대로 죄에 더 거하지 않으려는 강한 반발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용서의 철저함을 깨달아서 칭의라는 사실이 저의 내부에 현실적으로 실효 있게 유지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12일 화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2,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9쪽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하나님이 친히 대가를 지불하게 마련하시고 그 마련하신 것에 의해서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의 죄와 오늘의 죄뿐 아니라 나의 모든 결핍으로 말미암은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의 터 위에서만 칭의라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너, 오늘날까지의 죄만은 용서해 주마. 앞으로의 죄는 네가 주의해라. 주의하지 않으면 너는 탈락한다’ 하는 것은 아르미니안(Arminian)들이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저의 모든 결핍으로 말미암은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2019년 3월 11일 월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1,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8쪽

“칭의(justification)는 앞에서 말씀드린 중생이라든지 변개라든지 성화와는 아주 다릅니다. 중생이나 변개나 성화는 항상 그 사람, 곧 죄인의 내부에 발생하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은 그의 내부에 발생한 문제라기보다는 그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도덕적인 문제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법적인 지위를 규정하는 말입니다.”

의롭다고 선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019년 3월 10일 일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8,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6쪽

“하나님의 통치 대권이 인류의 역사 위에 나타날 때 그것은 그 전에도 늘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권능의 왕국이 인류의 역사(歷史) 위에서 역사(役事) 하는 것입니다. (중략) 인류의 역사 위에서 작용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중략) 하나님의 권능의 왕국이 인류의 역사(human history 혹은 the history of mankind)에서 워크 아웃(work out) 한다. 로트(wrought)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왕국이 인류의 역사(歷史) 위에서 역사(役事) 하는 것을 잘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9일 토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7,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5쪽

“이 설교는 어디에 늘 중점을 두고 이야기 했는가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전부이시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셨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너희가 이렇게 하고 인류가 이렇게 해서 역사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는 것은 천계(天界)에서 하신다는 이야기 일뿐만 아니라 땅 위에서 인류의 역사 위해서 이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거기에 무엇이 분명히 나타났는가 할 때 ‘하나님 한 분이 주역이시다’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주역이신데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은 역사 위에 이렇게 분명하고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중심이시고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이 역사 위에 분명하고 명료하게 나타남을 믿고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8일 금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6,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4쪽

“잘못해서 하나님의 대권을 제한하는 것도 옳지 않고, 잘못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그 무한한 값을 제한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편이나 다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타내 보이시는 거룩한 의사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것은 우리가 인간의 논리(reason)의 형식의 범주 안에서 하는 이야기이니까 논리의 형식의 범주 안에서 상고 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야지, 그 이상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것을 자꾸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로,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가설을 자꾸 꺼내서 한쪽을 자꾸 약화시키는 것은 부정당한 일입니다.”

논리의 형식의 범주 안에서 상고 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7일 목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5,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4쪽

“제가 여러분께 증언 하고 싶은 것은 제 자신이 믿는 바는 무엇인가 할 때 ‘하나님은 절대자이신 까닭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사를 보이신 것은 완전한 의사이다. 하나님의 절대 속성하에서 나타내신 거룩한 의사는 그것도 완전하고 절대적인 까닭에 하나님의 무한한 절대에 대해서 우리의 추리(reason)가 함부로 상고(詳考)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 다른 길이 있다든지 없다든지 하고 자꾸 이야기 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길을 보이셨고, 하나님이 보셨으면 그것은 절대이다. 그런 줄 알고 우리가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꾸 논리로써 이것이 절대적이라면 다른 상대적인 길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 길밖에 없다는 말이 되고 말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 길밖에 없다고 보셨으면 그 길밖에 없다고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하나님이 그 길을 가지고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뜻이다. 하나님이 쓰시려면 쓰시는 것이고 쓰시지 않으려면 안 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지 않는가. 그러니 하나님의 거룩한 의사 표시는 그 자체로 언제든지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속성하에서 나타내신 거룩한 의사는 그것도 완전하고 절대적인 까닭에 하나님의 무한한 절대에 대해서 함부로 추리하고 상고(詳考)하지 않게 하시며,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6일 수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4,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3쪽

“논란을 한 결과, ‘하나님이 이미 계시하신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그 일밖에는 절대로 하실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에서는 안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그 길 외에 다른 길을 취하시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의사(意思)인 까닭에 절대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당하다’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 하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개혁 신학자의 이론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계시하신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그 길 외에 다른 길을 취하시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그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5일 화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3,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2쪽

“위대한 개혁주의의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칼빈 선생은 어거스틴을 권위자로 인용해서 때때로 그것을 강조해 나갔습니다.”
“‘속죄가 절대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까지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방법이었느냐 아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냐’ 할 때 어거스틴 선생이나 아타나시우스 선생이나 칼빈 선생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전능과 대권하에서 속죄를 꼭 절대적이라고 할 것이 있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예수님을 육신의 몸으로 땅에 보내서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으면 도무지 구원하실 수가 없었다는 그런 말로 하나님의 대권을 제한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그런고로 그렇게 절대적으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늘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4일 월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2,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1쪽

“거기에 직접적인 직설법을 쓰지 않고 결국 자꾸 생각해 나가면 그 결론으로서 ‘아, 그러면 그것 자체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도략 가운데 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대권을 가지고 이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의 죄는 사람의 죄로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너희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한들 그렇다고 해서 너희가 하나님의 일을 실패하게 했다든지 차단했다든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과 그 대권의 행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몇 배가 되는 모든 악한 자들이 일어나서 모든 악을 다 행할지라도 그것을 저해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도략,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과 그 대권의 행사로 이끌어 나가심을 믿고 의지하며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2일 토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1,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0쪽

“역사에서 간단한 이야기를 재료로 취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진행을 말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공의를 나타내시고 어떻게 그 사랑을 나타내시는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만세 전의 경영과 도략은 그 공의와 사랑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반영해 나가는가 하는 것에 대해 다윗까지 이스라엘의 맨 처음 역사로써 몇 가지 중요한 예시(例示)를 한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중략)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와 사랑의 역사(歷史)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정점을 땅 위에 인류의 역사 위에 계시했다’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생각하고 생활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1일 금요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2,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79쪽

“이스라엘 민족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쓰셨느냐’ 하는 것과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려고 인류의 역사 위에 이스라엘 백성을 택해 내신 줄 아느냐’ 하는 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컨대 여기에 나타난 사관(史觀)은 ‘모든 역사의 큰 주역 혹은 유일의 주역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여기서 한 이 강설은 간단한 강설 같지만, 이후에 올 기독교의 거대한 역사를 올바로 계속 해석하도록 하나의 중요한 시사(示唆)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이끄시는 삶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있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28일 목요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1,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79쪽

“왜 이런 서술법을 쓰는 것입니까?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갔다’ 하고 말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게 하셨다’ 하는 것은 무엇이 다릅니까? 행동에서나 현상에서나 역사를 만들어 내는 데에서는 같을 테지만,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다른 것이고 또 일의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갔다’ 할 때는 ‘그는 경건한 사람이고, 그는 신과 통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는 계시를 받고 참으로 용단 있게 용기 있게 위대한 족장답게 민족을 창시했다’ 하는 말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내보내셨다’ 할 때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영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 역사 위에서 어떻게 역사하셔서 무엇을 어떻게 창조하시고 무엇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시느냐’ 하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정치(government) 혹은 하나님의 정사(政事)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것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인류 역사 위에서 어떻게 역사하셔서 무엇을 어떻게 창조하시고 무엇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시는지 배우고 깨닫고 늘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27일 수요일

기도 4,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68쪽

“이리하여 저희 교우들이 아버님 앞에 더욱 신령한 은혜를 받고 더욱 깊은 지혜를 받고 더욱 형형(炯炯)한 안광(眼光)이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것과 깊은 것과 웅혼한 것과 영광스러운 것과 능력적인 것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저희 생활을 통해서 이 교회 거룩한 진행을 통해서 그 나라의 대권과 그 영광스러운 통치권이 땅 위에 구현되는 것을 저희가 생활로써 증험하고 생활로써 실현케 하시옵소서.”

1966년 3월 30일 수요일

2019년 2월 26일 화요일

기도 3,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68쪽

“주께서 이 교회를 이런 거룩한 영광을 위해서 세우셨사오니 영광을 위해서 쓰시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능력과 속성과 영광을 구체적으로 이 역사의 진행을 위해 구현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그러한 저희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 저희를 뽑으시고 세우셨사오니 저희에게 힘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확고히 서게 하시고 저희의 비전(vision)이 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오묘의 깊이를 통찰 할 수 있게 더욱 지혜를 주시며 성신님께서 역사하시고 기르시옵소서.”

2019년 2월 23일 토요일

기도 2,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67쪽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능력과 영광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땅 위에 역사 위에 건설되고 나타난다는 사실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찬연히 완성된다는 것을 확호히 믿고 나가면서, 저희 시대에 처하여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 역사의 진행에 대해서 저희가 확실히 할 말이 있고 제시할 선지자의 소리가 있고 또한 거기에 대한 저희의 책무가 있다는 책임감을 또한 느끼옵나이다. 사람들이 방황하고 절망하고 헤맬 때에 거기에 대해서 이런 거룩하고 웅혼한 사상이 1세기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이 여전히 진행하고 여전히 나타난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적인 현실에 응해서 분명히 대답을 하시며 하나님의 능력은 어느 때든지 어떤 현실 앞에서든지 거기에 적응하게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찬연한 빛으로 늘 나타나는 것을 저희 자신을 통해서 이 거룩한 교회를 통해서 증시해야 할 것을 이제 다시 느끼옵나이다.”

2019년 2월 21일 목요일

기도 1,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66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님께서는 크신 사랑을 베푸시사 저희에게 거룩한 말씀을 통해서 그 나라를 보이시고 가르쳐 주시며, 하나님의 통치 대권이 권능의 왕국과 은혜의 왕국으로 땅 위에 역사 위에 임재하시고 진행하시며, 메시아께서 오셔서 속죄의 크신 일을 이루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이미 영광을 입으셨고 또한 저희를 그와 같은 이상향의 영광의 위치에 도달시키기 위하여 그와 같은 영광을 향해서 나아갈 목적을 확실하게 보이셨고, 저희가 거기를 향해 진행하는 동시에 땅에 있는 동안에 거룩한 교회, 곧 하나님의 나라의 아름답고 능력 있는 용체(容體)를 세우시고, 이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 위에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대권이 어떻게 능력 있게 그러나 은혜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인가를 증시(證示)케 하셨사옵나이다.”

2019년 2월 20일 수요일

강설의 주제 : 하나님의 통치 대권과 은혜 2,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66쪽

“하나님의 거룩한 엄위와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는 언제든지 조화되어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사상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하신 통치의 대권에 나타나는 공의와 하나님의 은혜에 나타나는 사랑이 하나의 조화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 거룩한 나라를 땅 위에 건설하시고 그 위에서 속죄의 은혜와 통치하시는 그 거룩하신 역사(役事)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통치의 대권에 나타나는 공의와 하나님의 은혜에 나타나는 사랑이 하나의 조화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 거룩한 나라를 땅 위에 건설하시고 그 위에서 속죄의 은혜와 통치하시는 그 거룩하신 역사(役事)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잘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19일 화요일

강설의 주제 : 하나님의 통치 대권과 은혜 1,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61쪽

“비교적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초연한 상태에서 항상 이야기를 제시했다는 말씀입니다.”

비교적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초연한 상태에서 항상 이야기를 제시하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18일 월요일

스데반의 강설과 비슷한 바울의 강설,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59쪽

“역사는 단순히 연대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배열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맥박이 흘러야 하고 최후에 가서는 어떤 철학적인 것이나 적어도 어떤 명제적인 것이 차츰차츰 명료하게 드러나고 그것을 향해서 전체의 야기가 집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으로써 일을 이루고 삶으로써 다시 일을 이루는 메시야는 너희가 기대하고 생각하던 것과는 훨씬 차원을 달리하는 고도적이고 참된 메시야이시다.”

바른 역사인식과 기독관을 가지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14일 목요일

비시디아 안디옥의 분위기,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51쪽

“왜 이런 소위 분위기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 할 때, 어디에 가서든지 전도할 때에는 전도를 받는 그 사람과 또 전도하는 내가 처해 있는 환경에 대해서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어떠한 사람들이 모여 있느냐 하는 데 의해서 전도하는 방식이나 말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을 전하려고 할 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할 때 저 사람들이 어떠한 배경이나 어떠한 정신이나 어떠한 영향 가운데 처해 있는가 하는 것을 먼저 민감하게 고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떠한 배경이나 어떠한 정신이나 어떠한 영향 가운데 처해 있는지 민감하게 고려하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13일 수요일

바울 일행을 떠난 마가 요한 2,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50쪽

“‘나야말로 그런 은혜를 받았다’ 해서 ‘그것은 내 특권이요 그런고로 나는 이러한 높은 경지에 올라섰다’ 하고 자기의 가치를 높이기 시작할 때는 소위 자기 자신 가운데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은 일종의 착오 가운데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 특권으로 생각하고 제 가치를 높이고 제 자신 가운데로 빠져 들어가는 착오 가운데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12일 화요일

바울 일행을 떠난 마가 요한 1, <사도행전5>, 제5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1), 149쪽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았을 때에 반드시 모든 사람이 다 잘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을 하다가 시험을 받았든지 자기의 욕망에 의해서든지 혹은 자기의 다른 생각에 의해서 탈락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대열에서 탈락해 나갈지라도 하나님의 성신이 그들에게 각각 역사하셔서 어떠한 시기가 지나면 다시 서로 마주쳐서 다시 붙들고 나가는 그런 일이 때때로 생깁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다가 시험을 받거나 욕망으로 혹 다른 생각으로 대열에서 탈락해 나갈지라도 하나님의 성신께서 역사하셔서 다시 붙들어 주시고 다시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8일 금요일

기도 2, <사도행전5>, 제4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2), 138쪽

“모든 그릇된 세력들이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좀먹고 해치려고 할 때 결국은 마음 가운데 있는 심한 탐욕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마귀는 사람의 탐욕을 가장 유효하게 이용해서 흑책질을 하며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저희가 다 알고 있사옵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런 일에 대해서 저희 교우들을 하나와 같이 탄탄하게 보호하여 주시고 은혜 가운데 굳건히 세워 주셔서 모든 그릇된 것을 버리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건실히 서서 주의 말씀 가운데 착실히 자라 나가게 하시고, 또한 거룩한 사명에 대한 각성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전진해 나가게 해 주옵소서.”

1974년 10월 30일 수요일

2019년 2월 7일 목요일

기도 1, <사도행전5>, 제4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2), 138쪽

“저희들 모두가 주님 앞에서 이 거룩한 도리에 올바로 굳게 서게 하시고, 사이비적인 것이 와서 들러붙을 때 그런 것을 시정하고 제척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 마땅히 취해야 할 바른 절제를 취하고, 그리하여 교회가 항상 순결하게 하시고, 모든 잡된 것이 여기에 터를 두고 발전해 나가는 일이 없도록 주께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2019년 2월 6일 수요일

교회의 권징과 권위 2, <사도행전5>, 제4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2), 137쪽

“앞으로도 계속 공고하게 결속해서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공통으로 있도록 하는 것이 첫째로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진리에 대한 이해를 공통으로 가진다는 것은 요컨대 누가 혼자만 다 깨달은 체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고, 자기 혼자 아는 체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고, 우리가 공동으로 나눠서 같이 ‘이것이 진리이다’ 하고 생각해야 하고, ‘이렇게 해석한다. 이렇게 우리는 배웠다’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의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깨달음이 달라서 여러 층이라고 할지라도 늘 공통의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같이 앉아서 같이 공부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혼자만 앉아서 혼자만 다 알아 버리고 마는 일은 없습니다.”

공동의 이해를 가지는 교회의 신앙을 배우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5일 화요일

교회의 권징과 권위 1, <사도행전5>, 제4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2), 135쪽

“교회다운 특성은 진리에 입각해서 정상적으로 다 이해하고 ‘과연 그것이 진리이다’ 하고 깨달은 바에 의해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긍할 수 없게 이상하게 나간다든지 단순히 자기의 인간 종교를 형성하고 꾸려서 맞춰 나가는 그런 일이 있을 때에는 교회가 무엇을 하도록 우리의 선배들이나 역사 위에 있는 참되고 거룩한 교회들이 가르쳤는가 하면 그것을 책망하는 것과 제재하는 것과 또 그에 대해 올바로 가르치는 것이 교회에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긍할 수 없게 이상하게 나간다든지 단순히 자기의 인간 종교를 형성하고 꾸려서 맞춰 나가는 그런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책망하는 것과 제재하는 것과 또 그에 대해 올바로 가르치는 것이 교회에 있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4일 월요일

진리가 신장해 나갈 때에는 그릇된 것이 나타나기 마련임 2, <사도행전5>, 제4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2), 134쪽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가치 있는 위대한 역사의 걸음을 걸으려고 할 때에는 먼저 시련이라는 것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오는 것인데, 그 시련은 그때마다 형태를 달리할지라도 분명히 반(反)세력으로, 괴악한 흑암의 세력으로 거기에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마귀의 도구인 가라지입니다. 알곡을 해치려고 알곡과 더불어 같이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그런 형태입니다.”

반세력과 흑암의 세력으로 시련이 올 때, 주께서 보호하시사 굳게 서서 그런 것을 시정하고 제척하게 하옵소서.

2019년 2월 2일 토요일

진리가 신장해 나갈 때에는 그릇된 것이 나타나기 마련임 1, <사도행전5>, 제4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2), 133쪽

“항상 진리가 신장해 나가려고 할 때에는 그릇된 것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릇된 것이 나타나서 반대도 하고 뒤섞이기도 하고 혹은 진리에 붙어 다니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두셔서 사람이 가장 정당한 일을 하려고 할 그때에 당장에 마귀가 탁 나타나서 그 일과 대결을 한 것입니다.” 

그릇된 것이 나타나 반대도 하고 뒤섞이기도 하고 혹은 진리에 붙어 다니기도 할 때, 항상 민감하고 명민하게 생각하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2019년 1월 31일 목요일

사이비 종교의 특징인 돈에 대한 탐욕 2, <사도행전5>, 제4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2), 131쪽

“‘탐심이라는 것은 뭐냐?’ 할 때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골 3:5). ‘귀신 앞에 나가서 절하는 것과 탐심이 무엇이 다르냐?’ 하는 것입니다. ‘탐심이 그런 것이다. 탐심이라는 것은 맘몬(Mammon)이라는 우상, 돈 귀신이라는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항상 신령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돈에 탐심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돈에 탐욕을 가진 사람으로서 돈에 포로가 되면 신령한 생활을 할 길이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탐심을 버리고 신령한 생활에 매진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30일 수요일

사이비 종교의 특징인 돈에 대한 탐욕 1, <사도행전5>, 제4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2), 130쪽

“성경 말씀은 ‘돈을 탐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돈을 탐하는 탐심이 생겨서 ‘어떻게 하면 이 돈을 좀 불려서 나를 유익하게 할까?’하면 그냥 거기에서 일만 악의 뿌리가 다 나오는 것이고 일만 가지 악이 거기서 막 솟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중략)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하고 말씀하고,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沈淪)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하고 말씀합니다.”

돈을 탐하여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지 않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2019년 1월 28일 월요일

기도 3,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13쪽

“이제 주께서 저희와 함께하시며 저희를 인도하시사 거룩한 권능을 나타내 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역사의 궤도 위에 올라선 이 교회가 가는 길을 주의 손이 앞서 가시며 이끄시고 인도하시며 말씀을 선포케 하시옵소서.”

1966년 3월 23일 수요일

2019년 1월 26일 토요일

기도 2,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12쪽

“이 교회가 가는 길에서 주께서 진리의 길을 굽혀 다른 길로 돌려놓으려고 하는 장해와 모든 암매를 파쇄하실 때는 주의 손이 친히 하실 것이지만, 교회가 충실히 순종하고 저 끝까지 간 후에 비로소 하실 것이요, 가기도 전에 주께서 친히 홀로 하시지는 않는 것을 아나이다. 그러므로 저희 교회는 충실히 자기의 갈 길을 가게 하시옵소서. 그다음의 문제는 주께서 친히 주의 손으로 그것이 적이면 엘루마를 치시듯이 치실 것이요 그것이 바다면 홍해를 가르시듯이 가르실 것이로소이다. 주여, 그러므로 저희는 믿고 주께서 인도하셔서 가라고 하는 거기까지 갈 뿐이로소이다.”

2019년 1월 24일 목요일

기도 1,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12쪽

“주의 손이 죽어 있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것이요, 저희가 주는 것이 아니로소이다. 그런데 자기가 기적을 행하려고 하는 그릇된 생각 가운데 많은 사람이 방황할 때, 여기서 저희가 분명히 주께서 행하신다는 큰 사실을 보나이다.”

2019년 1월 23일 수요일

총독이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김 5,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11쪽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오의(奧義)를 전파하고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적과 더불어 대전해서 적을 압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오의(奧義)를 전파하고 전달하는 일을 제일 중시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22일 화요일

총독이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김 4,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10쪽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을 의지한다면 그건 옛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고 사람의 세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성신만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쓰시는 그릇들이 나서서 오직 성신만 의지하고 말씀을 변증하고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신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21일 월요일

총독이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김 3,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09쪽

“이 교회는 어디로 가는가 할 때 우리는 역사의 궤도 위에 올라서서 바울 선생이나 바나바가 거룩한 말씀을 들고 나가듯이 나가는 것입니다. 영민하고 지혜가 있지만 아직 빛을 받지 못한 서기오 바울과 같은 그런 심령이 말씀을 구할 때, 말씀을 전하려고 하더라도 순탄하게 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저항하는 원수와 마귀는 언제든지 그것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의식적인 기능과 여러 교우들이 배우고 공부하는 이러한 준비입니다.”

언제든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치밀하게 관찰하며 해석하고 그에 따라 내리는 결론과 작정하는 이런 것이 전부 마치 바울 선생이 일어나서 하신 것과 같은 그런 일이 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18일 금요일

총독이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김 2,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09쪽

“주께서는 오늘날 우리의 손을 쓰시듯이 오늘날 우리의 목소리를 쓰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는 승천하셨지만 오늘날도 나사렛 예수로 계실 때보다 훨씬 능력 있게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어디서든지 필요한 자리에 계시는 것이고 필요한 종을 쓰셔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참으로 에클레시아 하기아, 즉 거룩한 교회의 지체(肢體)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룩한 교회의 지체(肢體)로서의 기능을 늘 발휘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17일 목요일

총독이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김 1,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08쪽

“그렇게 되니까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13:12상) ‘그 말씀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믿을 수 있을 만큼 이야기를 들어야 믿는 것입니다. 그냥 그것을 보고서 ‘아, 예수 도(道)는 참도이다’ 하고 믿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렇게 되는 것을 보고 비로소 그 사람 속에 믿음이 들어갈 길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할 때, 믿을 수 있을 만큼 이야기를 잘 해 줄 준비를 늘 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12일 토요일

복음의 진행을 저해하는 흑암의 세력을 파쇄함 5,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03, 105쪽

“준비한 이상을 한 것이 아닙니다. 준비한 이상으로 성신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말을 갑자기 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잘 알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바울은 가만히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엇이 적인가를 서기오 바울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어야겠다. 그리니 말을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마음 가운데 확신이 생긴 다음에 만나서 그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준비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마음 가운데 확신이 생긴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11일 금요일

복음의 진행을 저해하는 흑암의 세력을 파쇄함 4,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03쪽

“성신이 충만한 것은 성신이라는 창조자이시요 인격자이신 그분이 유기적으로 나를 전체로 지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유기적으로 전체로 지배하시는 그 사실이 너를 주장(主掌)해야겠다. 네가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나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그 일이 성신께서 너라는 그릇의 한도 안에서 전부 주장하시는 일이 되어야겠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나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그 일이 성신께서 나라는 그릇의 한도 안에서 전부 주장하게 하여 주옵소서.

2019년 1월 10일 목요일

복음의 진행을 저해하는 흑암의 세력을 파쇄함 3,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02쪽

“성신이 충만한 초연한 위치와 초연한 심경과 옛사람이 없는 심경에서 담담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준비하고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신이 충만한 초연한 위치와 초연한 심경과 옛사람이 없는 심경에서 담담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준비하고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9일 수요일

복음의 진행을 저해하는 흑암의 세력을 파쇄함 2,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02쪽

“누구든지 성신의 충만함으로 무슨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하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ideal) 위치에 서 있을 때여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 생활을 할 때와 같은 일반적인 생활 태도보다도 훨씬 자기가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강하게 의식하고 있어야 하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의식의 기능과 지혜를 다 동원해야 하고, 잘 준비해야 하고, 그것을 제시할 때 항상 모든 점에서 아상(我相)이 없이 성신이 충만한 자답게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 생활을 할 때와 같은 일반적인 생활 태도보다도 훨씬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강하게 의식하고 있게 하시고, 제게 있는 모든 의식의 기능과 지혜를 다 동원하며, 잘 준비하고, 그것을 제시할 때 항상 모든 점에서 아상(我相)이 없이 성신이 충만한 자답게 제시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8일 화요일

복음의 진행을 저해하는 흑암의 세력을 파쇄함 1,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100쪽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진행해 나가도록 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거룩한 교회가 그 역사의 궤도 위에 올라서서 행진할 때 그 하나님의 말씀의 코스를 달리기 위해서 역군으로 뽑은 사람들은 미미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미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진행해 나가도록 하는 역사적인 사명의 길을 오늘도 달려가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7일 월요일

구브로로 가게 하신 성신의 인도 2,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79쪽

“성신의 인도는 항상 의식적이라야 하고 논리적이라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신님의 인도가 무의식적이고 비논리적이고 기경(奇警)하고 기괴한 것이 아닙니다. 성신의 인도는 의식적이고 논리적이고 나중에라도 ‘그것은 가장 그럴듯하다. 타당하다’ 하고 승인할 만한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항상 의식적이고 논리적인 성신의 인도를 받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5일 토요일

구브로로 가게 하신 성신의 인도 1, <사도행전5>, 제3강 구브로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 (1), 78쪽

“성신께서 인도하시는 방식이라는 것이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막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필요와 이유에 따라서 행동했을 때에 그때 당시는 자신이 그런 현실적인 요청이나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혹은 현실적인 무슨 우위성 때문에 혹은 ‘꼭 필요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 더 낫겠다.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일종의 자기의 기호(嗜好) 때문에 그 길을 취했는데, 알고 보면 지나고 보면 그것이 성신님이 인도하신 사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유와 필요에 따라 성신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살피고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4일 금요일

기도, <사도행전5>, 제2강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낸 안디옥 교회, 74쪽

“형제와의 교통을 깊게 하고 임재하신 그리스도와의 교통이라는 점에서 그 말씀을 깨달을뿐더러 성신님이 그 말씀을 쓰시사 저희들에게 공동으로 또한 보편적으로 내리신 그 거룩한 은혜 가운데 어떠한 상태하에서든지 늘 함께 있어서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늘 향상하고 전진하도록 은혜로 인도하시옵소서. 주께서 붙드시고 잠시라도 쉼 없이 전진하는 이 확실한 태세를 늘 가지고 전진케 하옵소서.”

1974년 10월 23일 수요일

2019년 1월 3일 목요일

성신의 지시를 받는 고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5>, 제2강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낸 안디옥 교회, 69쪽

“신앙이 옅어서 항상 저회(低廻)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지시가 오는 것이 아니고, 고도의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일에 대해서 자기가 깨닫고 알뿐더러 그 일로 가겠다는 확실한 각오를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그것을 기대하고 있고 또 부르시는 일에 쓰일 만한 준비가 있는 사람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일을 깨닫고 알며, 부르시는 일에 쓰일 만한 준비가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2일 수요일

계시의 말씀 안에서 가지는 교회의 교통과 보편성 6, <사도행전5>, 제2강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낸 안디옥 교회, 65쪽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라는 사실에서 그와 더불어 내가 교통하고 형제와 더불어 교통하되, 그의 신의 역사로써 교통해 나가는 것이고, 그것이 반드시 형제가 내 곁에 있지 않을지라도 계시의 분담이라는 점에서 교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라는 사실에서 그와 더불어 내가 교통하고 형제와 더불어 교통하되, 그의 신의 역사로써 교통해 나가게 하옵소서.

2019년 1월 1일 화요일

계시의 말씀 안에서 가지는 교회의 교통과 보편성 5, <사도행전5>, 제2강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낸 안디옥 교회, 65쪽

“말씀에 의해서 우리가 그것을 나누어 가질 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신, 곧 바울 선생에게 역사하셨던 그 신이 마치 어제 바울 선생에게 역사하시고 오늘 나에게 역사하시듯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계시는 사상의 전승이나 전수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그 신의 신비하고 거룩한 역사에 의해서 그 계시 자체를 각성하는 깨달음 가운데서 올라가 거룩한 하나님과 교통하는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각성(覺醒)이라는 말은 깊은 깨달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교통했던 우리 주님과 교통하면서 그분의 임재(presence)라는 사실을 더욱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신의 신비하고 거룩한 역사에 의해서 그 계시 자체를 각성하는 깨달음 가운데서 올라가 거룩한 하나님과 교통하는 차원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