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5일 화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3,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2쪽

“위대한 개혁주의의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칼빈 선생은 어거스틴을 권위자로 인용해서 때때로 그것을 강조해 나갔습니다.”
“‘속죄가 절대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까지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방법이었느냐 아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냐’ 할 때 어거스틴 선생이나 아타나시우스 선생이나 칼빈 선생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전능과 대권하에서 속죄를 꼭 절대적이라고 할 것이 있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예수님을 육신의 몸으로 땅에 보내서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으면 도무지 구원하실 수가 없었다는 그런 말로 하나님의 대권을 제한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그런고로 그렇게 절대적으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늘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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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