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30일 금요일

마술사 시몬과 성신의 비상한 은사 2, <사도행전3>, 제10강 마술사 시몬과 성신의 비상한 은사 중 246쪽

"그러한 욕망 자체가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욕망 자체는 무리한 것이고 되지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이런 무리한 욕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기초도 없고 방법도 모르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단계도 밟지 않고 덮어놓고 인조적으로 성자(聖者)가 되려고 하고 인조적으로 권능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이상한 풍습이 있습니다. (중략) 모두 다 신령하고 굉장한 권능이 있는 사람같이 행동해 보려는 그런 욕망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초가 있고 방법도 알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단계도 밟게 하옵소서.

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마술사 시몬과 성신의 비상한 은사 1, <사도행전3>, 제10강 마술사 시몬과 성신의 비상한 은사 중 246쪽

“시몬 마구스가 ‘나도 돈을 많이 드릴 테니 그런 권능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중략) 이것은 그가 음흉하고 흉측해서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그의 암매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중략) ‘나도 기도하면 저렇게 사람들에게 큰 권능이 임하게 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란 것입니다. 말하자면 위대한 기독교의 신령하고 높은 경지를 자기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특권적인 은사의 큰 권능을 자기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깊이 있는 말씀을 힘써 깨달게 하옵소서. 암매 가운데 헤매지 않게 하옵소서.

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기도, <사도행전3>, 제9강 사마리아에 성신을 내리신 이유 중 224쪽

“저희의 부족을 하감하시고 저희를 깨우치시며 거룩하게 하시고, 저희가 어떻게든지 변해서 굉장하게 위대하게 되어서 올라가 성신을 받겠다는 그릇된 방향을 취하지 않고, 그러나 저희가 여기에서 매일 점진적으로 논리적으로 순차 있게 장성하라고 은혜를 주셨사오니 질서 있게 장성해 나가게 하시고, 공연히 기이한 사실을 추구하여 지지 못할 짐을 지고서 높은 데 표준을 두고 자기도 희생치 않으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 하고 공허한 표준 가운데 감정을 자극하는 그릇된 기독교적 행동을 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저희의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신님이 저희 안에서와 저희 주위에서 같이 역사하시사 저희가 스스로 도달하지 못하나 도달해야만 할 길을 증거하심으로써 올바로 도달케 하시고 올바로 전진하게 하시며 정상적으로 장성해 나가게 하시옵소서.”

 1965년 9월 19일 주일 공부

2016년 12월 19일 월요일

성신을 받는다는 말을 바르게 이해해야 함 2, <사도행전3>, 제9강 사마리아에 성신을 내리신 이유 중 215쪽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통해서 인류를 다루시는가를 생각할 때, 역사에서는 무엇보다도 시간적인 요소(element)를 주의해야 합니다. 이 시간적인 요소를 통해서 인류를 다루신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2천 년 전에 성신을 받은 그 사실을 놓고 ‘오늘날도 꼭 그런 식으로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거기에 하나의 절대적인 틀(pattern)을 세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시대적인 흐름과 시간의 경과를 통한 계시의 발전을 잘 분별하고 깨닫게 하옵소서.

2016년 12월 16일 금요일

성신을 받는다는 말을 바르게 이해해야 함 1, <사도행전3>, 제9강 사마리아에 성신을 내리신 이유 중 214쪽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은혜를 적용하시는 데에는 다양성(variety)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오늘날의 표준으로 볼 때 ‘그것은 잘못되었다’ 하는 것도 그 이전에는 그냥 그대로 넘어간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약을 읽을 때 때때로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자꾸 나타나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신 개념이나 신관하에서 생각할 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나타난다는 말입이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은혜를 다양하게 그 실상과 환경과 역사와 문화에 맞게 적용하여 주심으로 저희가 하나님의 높은 원칙의 세계에 올라가서 은혜를 터득할 수 있게 하시오니 감사드리옵나이다.

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201쪽

“그 사도들과 오늘날의 저희들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한 혈맥으로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때에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유롭게 쓰시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성신의 충만한 역사는 저희에게 늘 있어야 하겠사오니 이 충만한 역사가 이 교회에 역사하여서 아버지의 영광을 크고 능력 있게 증시하고 전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1965년 9월 12일 주일 공부

2016년 12월 9일 금요일

성신의 특별한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 3,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97쪽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나지 아니하고는 보통 인간의 목숨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의 일을 받지 않고 도리어 미련하게 여기는 것이고 또한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고전 2:14 참조)”
“성신 충만이라고 할 때는 그 사람이 가장 그리스도인답게 되는 것이 충만의 중요한 내용이지 잠시 종교적인 황홀경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충만의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할 참된 능력을 주옵소서.

2016년 12월 8일 목요일

성신의 특별한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 2,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97쪽

“세례를 받을 만한 고백은 중생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중생의 고백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고 믿는다. 나는 죄인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속(贖)하신다’ 하는 사실을 믿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속하시고 나의 구주로서 나에게 새로운 생명이 되신다’ 하는 것을 믿어서 고백하게 되면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하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 고백은 어떤 사람이 하느냐 하면 성신께서 감화하셔서 그렇게 고백할 심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진하고 자원해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될 때에는 그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신께서 역사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을 보면 “또 성신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主)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속하시고 나의 구주로서 나에게 새로운 생명이 되심을 감사드리옵나이다.

2016년 12월 7일 수요일

성신의 특별한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 1,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95쪽

“중생은 신약 시대에 비로소 있는 것이고, 구약 시대에는 별다른 조건하에서 구원을 받은 것같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세대주의적인 교훈입니다.”
"여기의 이 구절 때문에 쉐이퍼 박사 같은 사람은 성신을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사마리아를 보아라. 사마리아도 그 당시에 성신을 못 받고 세례 받은 다음에 얼마 있다가 사도들이 가니까 성신을 받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그때는 성신께서 구약적인 역사로 역사하신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적인 역사가 어디 따로 있습니까? 성신은 언제든지 동일한 성신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여 주옵소서.

2016년 12월 6일 화요일

세례와 구별되는 입교의 의의 4,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92쪽

“다른 교회에 있다가 가령 우리 교회로 왔다고 하면 그가 다른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하다 왔으니까 우리 교회에 와서도 당장에 직분자가 된다든지 혹은 직분자는 안 되더라도 얼른 우리 교회의 정교인이 된다든지 할 수 있겠습니까?”
“노회에 소속한 교회들은 ‘우리는 노회의 치리와 교리적인 제시를 공동으로 승인한다’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회는 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다른 교회에서 이쪽으로 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못 막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무슨 야단을 내고 왔든지 간에 이쪽으로 왔으면 받아줄 수밖에 없습니다. 저쪽에서 정당하게 이명(移名) 증서를 해 보내든지 통고를 해서 보냈으면 이명을 받아 줄 의무가 있는 것이지 ‘아, 당신은 안 되겠소’ 하고 이쪽에서 마음대로 퇴짜를 놓을 수 없습니다. 노회가 부인하거나 그 사람을 치리하지 않는 이상에는 받아야 합니다.”

2016년 12월 2일 금요일

세례와 구별되는 입교의 의의 3,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91쪽

“늘 주의해서 교회가 교인 혹은 교회의 회원을 받을 때에는 세례를 받았다는 조건하에서 덮어놓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교인이 되기 전에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고백과 확실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교회에 대한 자진 봉사의 간절한 열의가 성신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교인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체의 신앙의 조목이나 신앙의 기조에 대해서 분명히 깨닫고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자진 봉사의 간절한 열의가 성신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옵소서.

2016년 12월 1일 목요일

세례와 구별되는 입교의 의의 2,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90쪽

"교회가 하나님의 성례와 교회에 들어오는 입교례(入敎禮) 혹은 소위 봉인식(封印式)을 너무도 소홀하게 다루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에 왜 그렇게 분열이 생기느냐 하면 무자격한 사람들이 교인 노릇을 하는 까닭에 그렇습니다. 무자격한 사람들, 즉 각성이 없고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교인으로서의 자기의 권리만을 자꾸 주장하는 통에 언제나 교회에 분요(紛擾, 어지러움)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고 교회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2016년 11월 30일 수요일

세례와 구별되는 입교의 의의 1,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90쪽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맡은 의무가 무엇인지를 각성한 대로 이제부터 신실히 다 행하겠다는 선언을 할 뿐 아니라 또한 교회라는 것은 무엇이므로 자기가 교회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믿는다는 각성이 들어가야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맡은 의무를 다 행하게 하시고, 교회의 지체로서 할 바를 성실히 수행하게 하옵소서.

세례의 정신과 방식 3,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89쪽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고 말씀을 변증하기 위한 것이지 말씀을 떠나서 그것만이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신통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신통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아마 하나님의 말씀도 말만으로서는 신통력을 가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 교회의 아주 분명한 태도입니다. 긴 이론을 가지고 자꾸 다투기보다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친 것을 우리가 올바로 배우게 하옵소서

2016년 11월 28일 월요일

세례의 정신과 방식 2,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85쪽

"자연스럽기보다는 아주 종교적입니다. 무엇인가를 만들고 종교적으로 자꾸자꾸 무엇을 형성해 나가는 강한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관이 작다는 것과 믿음이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자꾸 이야기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도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려고 하고 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형제로서 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정당하지 자꾸 비판하고 논란하고 또 믿음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자꾸 논란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세계관이나 믿음의 차이를 가지고 자꾸 이야기하고 변론하지 않게 하옵소서.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세례의 정신과 방식 1,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84쪽

"세례를 받은 사람이 성신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무엇으로 아느냐 하면 그것은 알기가 대단히 힘든 이야기입니다.”
“세례를 준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고 확실히 믿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그리고 중생했다는 증거를 적어도 자기의 신앙 태도와 고백의 태도로 분명히 표시할 때 세례를 주는 것이지 중생했는지의 여부를 목사가 판단할 수 없는데도 ‘세례 문답에 대답을 잘했으니 세례를 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역사(役事)로 거기에 죄를 씻으심과 중생의 씻음과 성신으로 말미암은 새롭게 하심이 있는 것을 분명히 표시하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성신의 충만함이 있게 하옵소서.

2016년 11월 7일 월요일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내려간 사실의 의의 3,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83쪽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그것에 하나도 그른 소리가 없고 다 옳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일단 행동을 해서 옮기려고 하면 ‘그래도 뭐, 우리가 갈 것이 있는가. 그냥 여기에 있는 것이 좋지’ 하고 그냥 있는 데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관성이라고 할 것인데 그런 데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정당한 타성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2016년 11월 2일 수요일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내려간 사실의 의의 2,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82쪽

"오늘날 교회에 있으면서 교회적인 생활을 여러 모로 볼 때 ‘아, 이것이 부정당하고 부당하니까 혹은 적어도 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니까 내가 여기에서 벗어나야겠다’ 하고 느낀다고 할지라도 그저 느끼는 정도에 불과하지 그 껍데기를 벗고 구각(舊殼)을 탈각(脫却 : 벗어나고 물리침)하고 파쇄(破碎)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오늘날의 신자뿐 아니라 오늘날의 교역자에게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정당한 구각을 탈각하고 파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내려간 사실의 의의 1, <사도행전3>, 제8강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신을 받음 중 182쪽

"기독교의 새로운 정신이 지배했다는 중요한 증적(證迹)의 하나입니다. 즉 이것은 전통적인 유대교적인 사상에서 해탈해서 기독교적인 정신으로 올라간 한 중요한 증거로서 이러한 식으로만 발전해 나아가면 다음에는 이방 사람과 세계 어디로든지 뻗어나아갈 것이고 사실상 그렇게 해서 뻗어 나아간 것입니다.”

기독교의 새로운 정신이 지배하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27일 목요일

기도,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7쪽

"우맹(愚氓)이요 소경이요 재와 먼지만도 못하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고요하고 잠잠한 가운데 주의 말씀의 은혜 가운데 장성해 나가게 하시옵소서"

1965년 8월 22일 주일 공부

2016년 10월 24일 월요일

핍박은 형제라는 사람에게서 오기가 쉬움 2,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6쪽

"같은 신 개념을 가진 처지 안에서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오히려 좀 더 본질적이었던 사람을 박해한 사실이 여기에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령 15세기에 가톨릭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께 대한 생각과 그 후에 프로테스탄트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무엇이 얼마나 다르냐 하면 굉장히 다른 것은 없습니다. 어떤 지엽적인 것이나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자꾸 서로 달라져 나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가톨릭이 종교 재판이라는 명의하에서 얼마나 많은 참된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 불에 태우고 물에 빠뜨려 죽였습니까? 이 문제는 신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라서 핍박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어느 때든지 사실상 참된 핍박은 형제라고 하는 자에게서 오기 쉬운 것입니다. 형제라고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핍박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네 개념과 같지 않거나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 종교 감정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냥 반대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형적인 예를 여기 사울이 교회를 핍박한 데서 먼저 보는 것입니다."

개념이나 종교 감정이 다르다고 반대하지 않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핍박은 형제라는 사람에게서 오기가 쉬움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5쪽

핍박은 형제라는 사람에게서 오기가 쉬움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5쪽

"아침에 일어나서 당장 첫눈에 성경에 있는 바 복을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 눈에 띄어야 복이 있는 것이지 일어나서 아침에 신문을 보니까 또 무슨 데모가 나서 누구를 두들겼다는 이야기를 본다면 '재수 없구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세속적인 것부터 안 보고 성경부터 쳐다보아야겠다' 하는 식으로 산다면, 정통파 유대인들이 '이를 닦고 양치를 한 다음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다음에 무슨 다른 말을 하겠다' 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하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근본주의와 세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교회 3,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2쪽

"(세대주의는) 레그눔 포텐티아에(regnum potentiae, 권능의 왕국)의 왕으로서 당신의 그 거룩하신 능력을 역사 위에 친히 나타내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해석할 기능도 없는 것입니다."
"대중이 당하는 여항간(閭巷間, 시골 마을의 사회)의 사소한 문제나 큰 문제에 대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에서 깊이 해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거기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공식(formula)이나 원칙(principle)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문제나 큰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깊이 해석할 수 있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19일 수요일

근본주의와 세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교회 2,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1쪽

"경건주의가 가지고 있던 주요한 약점은 (중략) 세상의 많은 중생(衆生)이 당하고 있는 괴롬과 슬픔과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 있게 생각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만 옳다 하면서 모든 것을 관견(管見 : 대롱 구멍으로 사물을 본다는 뜻으로, 좁은 소견이나 자기의 소견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괴롬과 슬픔과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 있게 생각해 줄 마음의 여유가 있게 하옵소서. 자기만 옳다 하면서 모든 것을 관견하지 않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18일 화요일

근본주의와 세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교회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70쪽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빌 2:3 참조) 하는 성경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덮어놓고 가질 수 있는 정감은 아닙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판단하에서 비로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아, 저 사람은 나보다 낫지' 하고 한번 느껴 보려고 해서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어디로 보든지 못났는데 '나보다 낫다고 생각해 보라'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로 보든지 못났다고 보는 그 보는 법을 고치면 차츰차츰 발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앙만이 제일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런 원칙(principle)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쌓았던 이 성(城)은 자기의 것에 불과한 것이고,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은사로 어떻게 인도하실는지 내가 알지 못하니까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내가 올바로 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의 성 안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안 됩니다."

내 형제를 하나님께서 어떤 은사로 어떻게 인도하실는지 내가 알지 못합니다. 형제가 서 있는 자리를 내가 올바로 보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개혁 신학의 사변화와 경건주의의 발흥 4,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8쪽

"우리 교회에서도 무엇이든지 배우면 배운 것을 자꾸 성숙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이지 익지도 않았으면서 과실 노릇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삼십 되어서 '나는 다 익었느니라' 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저처럼 이렇게 오십이 넘어도 '그래도 아직 멀었다. 익다니 말이 되느냐'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은 머리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 자꾸 증험해야 합니다. 증험해서 피할 수 없는 확증을 자꾸 쥐고 살아 나가는 이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배운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하고 생활 가운데 자꾸 증험해서 피할 수 없는 확증을 자꾸 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14일 금요일

개혁 신학의 사변화와 경건주의의 발흥 3,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7쪽

"그것은 마치 장로교에서 적어도 몇 백 년이 지나니까 4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다 칼빈 선생의 지도력과 지도한 정신에서 떠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느 시대든지 자기가 받아 가지고 있는 정신을 오해하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고, 그러려면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늘 주의해야 합니다."

칼빈 선생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있는 정신을 오해하지 않고 붙들고 있게 하시고,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늘 주의하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12일 수요일

개혁 신학의 사변화와 경건주의의 발흥 2,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6쪽

"물론 루터 선생 자신에게는 그것이 잘 통합되고 조절되어서 문제가 없었습니다. 신앙과 신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잘 조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 선생이 가지고 있던 신학적 태도는 기독인의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자칫 그것이 철학적으로 흘러갈 흠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략) 오늘날은 루터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신축 유연성(flexibility)이 얼마든지 고등 비평이나 자유주의를 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굉장히 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과 신학이 잘 통합되고 조절되게 하옵소서.

2016년 10월 7일 금요일

개혁 신학의 사변화와 경건주의의 발흥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5쪽

"경건주의가 왜 생겼는가 할 때 '이렇게 사변적이고 공허하고 신앙에 실내용이 없으면서 신항(信項)과 건조한 신학만 가지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깊고 정적(情的)인 신비한 교통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이렇게 자꾸 주둥이만 까고 잔소리만 해서 되겠느냐' 하는 것이 독일의 대학교에 주로 돌아다니던 기풍이었습니다."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계시를 떠나지 않게 하시고, 고요하고 잠잠한 가운데 주의 말씀의 은혜 가운데 장성해 나가게 하시옵소서.

2016년 9월 30일 금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8,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4쪽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덮어놓고 하나님께서 가장 진수(眞髓)와 진리를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노력하고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진수와 진리를 받고자 노력하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8일 수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7,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4쪽

"율법주의나 계율주의나 형성주의(formalism)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고 가르쳤으면 '그러면 본질은 무엇인가' 해서 그것을 파악해야지 파악하지 못할 때에는 무엇이 되느냐 하면 기독교인이라 하면서 가장 껄렁껄렁한 사람이 되거나 혹은 아마 아주 자유로운 자유주의자(liberalist)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불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배우고 깨닫고 익히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7일 화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6,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3쪽

"참된 것을 잡아야 충만함이 생기는 것이지 참된 것도 못 잡고 가지고 있던 것도 버릴 때에는 전연 공허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도 전연 하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참된 경계(境界)를 안다고 하거나 성경 공부를 전연 하지 않으면서 신앙의 참된 경계를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잡아 충만하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6일 월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5,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2쪽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하는 것은 또한 기독교적인 정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다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하는 말씀이 제4계명에 분명히 있는데도 안식일을 안 지키고 산다면 무엇 때문에 안 지키는 것인지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참된 본질을 배우고 익히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3일 금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4,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2쪽

"왜 그렇게 형성적인 것을 나쁘다고 해야 하느냐 할 때 사도 바울 선생이 말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더욱 알려고 하고 가장 고도적인 그리스도,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좀 더 올바로 깊이 알고 또 그 거룩하신 은혜와 권능과 고난에도 참여한다는 이 확실한 목표하에서 과거에 가지고 있던 모든 형성적인 것을 우리가 정죄하게 되는 것이지 목적 없이 정죄만 하면 파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더욱 알려고 하고 가장 고도적인 그리스도,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좀 더 올바로 깊이 알고 또 그 거룩하신 은혜와 권능과 고난에도 참여하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2일 목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3,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1쪽

"바울 선생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것을 해로 여겼다는 것은 참으로 진실하고 본질적인 기독교의 오의(奧義,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지니고 있는 깊은 뜻) 가운데 들어가기 위한 것이지 포기나 파괴 자체를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형성적인 기독교(formal Christianity)란 사람이 무엇 무엇을 꾸려서 기독교의 의(義)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의지의 작용에 한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지어낸 어떠한 종교적 감정도 해당됩니다. 예를 들면 '성자(聖者)가 되어야겠다'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하고 본질적인 기독교의 오의 가운데 들어가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1일 수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2,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0쪽

"예수 믿는 사람이 히브리주의적인 할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형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할례의 거룩하신 본의를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의 인 치심과 언약의 확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참된 기독교인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역시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러 성전에 들어가셨던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눅 2:21 참조)."

성신의 인 치심을 믿고 의지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12일 월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58쪽

"동일한 하나님을 모시고 동일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동일한 기초적인 신 개념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가 교회를 핍박할 때에는 하나님께 대한 동일한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핍박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 대한 기초적인 개념이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이해의 심천(深淺), 즉 깊고 옅고 한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형제가 될 수 있게도 하고 혹은 위하여 봉사해야 할 대상들을 전연 반대로 핍박하고 괴롭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10일 토요일

기도,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53쪽

"큰 죄악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가진 연약 때문에 교회가 나타내야 할 참자태를 드러내지 못할 수 있음을 알고 겸손히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옵소서. 항상 주께 자신을 드린 자답게 자기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리되 약하고 결핍된 것까지라도 다 주께 드려서 부족을 채워 주심을 받고 수선함을 받고 그 위에 은사를 더하여 주심을 받아 주께서 쓰시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의 영광의 목적을 이루게 하시옵소서."

1981년 5월 3일 주일 오전

2016년 9월 7일 수요일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52쪽

"오늘날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고쳐야 할 것, 개혁해야 할 것, 또 바른 사상을 가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사상이 일조(一朝)에 고쳐지지 않는 것은 왜 그런가  (중략)
무엇이 개혁 교회입니까? (중략)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고루한 것을 버리고 신선하고 원칙적인 것들을 자꾸 받아서 거기에 의해 살아가거라' 하는 대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사상을 형성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다 만들어 놓고 '이것이다' 하고 일러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까닭에 하나님 말씀을 배울 때에 거기에 있는 대지(大旨)와 소지(小旨)만 빼내어 알거나 거기에 있는 이야기만 조르르 알고 끝난다면 깊은 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그것이 결국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생각하라고 하는가' 하는 큰 도리를 거기에서 배우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깊은 것을 배우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6일 화요일

유대화 운동 4,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51쪽

"유대주의 운동은 교회 바깥에서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중요한 장애로 늘 존재했고, 마귀는 그것을 이용해서 외부에 있는 유대주의자들과 내부에 있는 유대주의 운동자들을 서로 연결시켜서 그것을 타파하려고 하는 바울의 정당하고 참되고 바른 신학적인 전진과 진행을 몹시 훼파하려고 하고 박해한 것입니다. (중략) 큰 죄악은 아니었지만 이 인간적이 연약이 중대한 장애를 늘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또한 필연적으로 핍박을 불러일으킨 때도 있었습니다."

핍박 가운데서도 정당하고 참되고 바른 신학적인 전진과 진행을 하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일 금요일

유대화 운동 3,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50쪽

"그 후에 그는 아라비아에 갔다가 한 3년 만에야 비로소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는 깊은 사색 가운데 새롭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주의적이고 번문욕례적(繁文縟禮的,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인 형식적 율법 준수에세 철저하게 탈피하고 승화해서 이제는 참된 실재의 세계의 거룩한 법칙을 전파해야겠다' 하고 바울은 투철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투철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할 사색력이 박약하고 또 전통에 얽매이기 쉽고 습관에 그냥 찌들어 있기 쉬운 사람들은 비록 예수님의 그 깊은 교훈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한 번이나 혹은 두 번이나 세 번 들어서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그 깊은 교훈을 깊은 사색 가운데 시간을 들여 깨닫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1일 목요일

유대화 운동 2,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49쪽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쓸 때 절대로 거기에 신성을 부여해서 쓰지 않았고, 신성을 부여할 경우에는 참람(僭濫)하다고 해서 돌로 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고 그때 그런 고백을 했고, 그 후에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고백을 할 때에도 다른 제자들의 심정도 다 마찬가지였는데 역시 거기에 신성을 부여해서 말했고, (중략)
그랬는데도 얼마 동안은 이 쥬디즘(Judaism) 혹은 쥬디아이제이션(Judaization)이라는 유대주의적인 사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지낸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바울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일어났습니다."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유대화 운동1,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46쪽

"무릇 어떤 반세력의 작용에는 중요히 보아야 할 것이 한 서너 가지 있는데 첫째는 그 거룩한 능력을 받아서 쓰는 종들인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이나 제한 때문에 범하게 되는 과실이나 혹은 온전치 못하고 졸렬하고 미급한 상태를 지어 놓은 일들이 반세력적인 전진에 때때로 보탬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혼자 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오직 성신님의 충만한 역사(役事)와 좋은 교도(敎導)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상태는 예수님을 장시간 따라나녔던 사도들에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부족과 연약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를 줄 수 있사오니 성신께서 하나하나 가르치시고 한걸음한걸음 붙들어 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2016년 8월 29일 월요일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반세력의 작용 4,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45쪽

"그런데 이런 거룩한 능력이 그 종들과 성도들을 쓰셔서 신약 교회를 형성하고 신약에 나타난 새로운 하나님의 신정(神政) 정치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역사를 지어서 전진케 해 나가는 데 대조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현저한 사실은 반세력(反勢力)의 준동입니다. 반세력이 쉬지 않고 늘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든지 지나쳐 버리면 안 됩니다. 찬란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역사의 전진만을 전부로 알고 보지 말고 그와 동시에 거기에 곁들여서 늘 나타나는 무서운 반세력의 작용이나 사역을 늘 주의해야 합니다."

반세력이 쉬지 않고 늘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게 하옵소서. 늘 주의하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25일 목요일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반세력의 작용 3,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45쪽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할 때 '예수는 첫째, 그리스도시요 메시야이시고, 그의 지상에서의 생애와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준비하신 모든 복음의 은혜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내려 주신다' 하는 이 큰 사실을 나타내보이고 전했고, 그리로 들어온 사람들은 과연 그렇게 복을 받은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 혹은 새로운 나라의 사람들다운 완전한 변화와 재창조의 현실들이 거기에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나라의 사람들다운 완전한 변화와 재창조의 현실들이 여기에 나타나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반세력의 작용 2,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45쪽

"우리가 사도행전 전부를 꿰뚫어 볼 때에 가장 현저하게 보는 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성신님으로 또 땅 위에 있는 그의 종들을 쓰셔서 신성하고 거룩한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역사(歷史)를 지어 가시는 사실이고, 그럴 때에 종들을 시켜서 하신 중요한 일의 큰 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노릇을 하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22일 월요일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반세력의 작용,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43쪽

"이렇게 민중의 세력 혹은 사회 세력에 의한 대폭동적인 핍박이 처음으로 일어났고, 이후에도 이러한 핍박의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 때를 따라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로서 간단(間斷)없이 인류사 가운데 일어났던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해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나 목적이 있습니다. (중략) 헬레니즘의 유지를 위한 하나의 강력한 정책이 거기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연약함으로 핍박과 박해 속에서 어려움을 겪기 쉽사오니 함께 하시사 하나 하나 가르쳐주시고 한걸음 한걸음 붙들어주시며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반세력의 작용,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43쪽

"이렇게 민중의 세력 혹은 사회 세력에 의한 대폭동적인 핍박이 처음으로 일어났고, 이후에도 이러한 핍박의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 때를 따라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로서 간단(間斷)없이 인류사 가운데 일어났던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해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나 목적이 있습니다. (중략) 헬레니즘의 유지를 위한 하나의 강력한 정책이 거기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연약함으로 핍박과 박해 속에서 어려움을 겪기 쉽사오니 함께 하시사 하나 하나 가르쳐주시고 한걸음 한걸음 붙들어주시며 인도하여 주옵소서.

2016년 8월 19일 금요일

기도,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3쪽

"저희가 스스로 살폈으면 주께로부터 심판을 받지 아니하겠지만, 저희가 심판을 받는 것은 정죄 혹은 징벌을 받는 것과 같은 무서운 현상이로소이다. 주여, 주께서는 저희를 정죄치 아니하시지만 저희는 정죄받는 사람이 받는 형벌과 비슷한 징계 가운데 얼마든지 빠져 들어갈 수 있사옵니다. 살아계신 주님의 그 무서운 징계의 손이 사랑의 손이시지만 동시에 무서운 공의의 손이요 또한 교정의 손이요 책망의 손인 것을 깨닫고 저희가 하나님의 무서운 채찍으로서의 책망을 받기 전에 말씀으로서의 책망을 달게 받고 경고를 받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리하여 항상 저희 자신이 너무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는 것을 올바로 볼 수 있는 정당한 자세를 저희에게 허락하옵소서."

1965년 8월 15일 주일 공부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9,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2쪽

"문제를 일으키면 문제가 있으니까 문제를 처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 각성해서 '문제를 일으킬 것 없다' 하고서는 문제를 당하는 그 자리에서 딱 풀어 버리면 문제가 없지만, 항상 문제를 일으켜서 이리저리 다 퍼져서 교회 전체가 그것을 논의할 수밖에 없게 될 때는 그것을 교회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처리하게 되면 그만큼 문제는 풀어지지만 그렇게 문제가 풀어지는 것이 전진은 아닙니다. 퇴보하려는 것을 그냥 원상으로 보귀시키는 데에 주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당하는 그 자리에서 딱 풀어 버리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17일 수요일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8,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1쪽

"하나님께서 그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계획 가운데 진행하는 데에 맡겨 놓으시지 않고 하나님의 강력한 손으로 막 밀어젖히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면 주께 정죄를 받지 않지만, 우리가 판단 혹은 징계를 받는 것은 주께로부터 심판을 받는 것이니라'(고전 11:31-32 참조) (중략) 내가 판단해서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서는 척척 끌고 나가면 좋지만,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이번에는 주께서 징계하신다는 말입니다."

제 자신의 위치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 계획을 세워 진행해 나가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7,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0쪽

"의무를 가지기 전에는 하늘로부터 온 거룩하고 신령한 책무가 자기를 지배하게 되지만, 교회라는 사회가 그에게 일종의 책무를 부과하고 짊어지워 주어서 그것이 자기를 지배하면 첫째로, '무엇보다도 그것을 감당해야 하겠다' 하는 의무감이 들고 둘째는 잘못되면 '나는 그것만 감당하면 다 되었다' 하는 생각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입니다. (중략) 조직을 하면 저조적이고 저회적인 인심이 점점 더 타락하는 것을 막기는 하지만, 그러나 교회의 거룩한 목적을 위한 자기의 강력한 진행에는 대단히 허덕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온 거룩하고 신령한 책무가 지배하게 하옵시며, 교회의 거룩한 목적을 향해 강력하게 진행해 나가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8일 월요일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6,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0쪽


"우리 교회에서는 처음부터 임명을 하지 않고 자임하는 것으로써 임명을 대신하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급적 고도적인 원칙하에서 움직일 때에 교회가 자기의 사명에 대한 각성에서 빠르게 자라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빠르게 목적을 향해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조직하는 것입니다. 조직하게 되면 조직이라는 사실에 의무를 가지게 되니까 의무를 가진 다음부터는 의무라는 관념이 자기를 지배합니다."

기꺼이 자임하여 빠르게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5일 금요일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5,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30쪽

"교회라는 기업을 가지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의 기업(enterprise)으로 커 가는 것이 반드시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맡기신 거룩한 사명과 거룩한 목적을 향한 그의 진행이 명백해야 하는데 살림하느라고 다른 것을 다 잊어버린다면 일이 아닙니다.
살림이라는 것은 저절로 되어야 합니다. 저절로 어떻게 됩니까? 고도적으로 성신의 감화와 말씀의 교훈 가운데 착념하고 있을 동안에는 문제가 안 생깁니다."

고도적으로 성신의 감화와 말씀의 교훈 가운데 착념하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4일 목요일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4,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9쪽

"살림의 문제가 앞서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일 혹은 사업과 거룩한 목적을 향한 진행은 정돈(停 머무를 정, 頓 조아릴 돈)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바르게 진행하려면 진행하기 전에 자기가 정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비되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정력을 다 넣어 놓으면 교회는 진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새 교회는 흔히 자체의 살림 하나 잘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다 보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목적을 향해 늘 전진하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3일 수요일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3,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9쪽

"교회로서는 이 핍박이 전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와 또한 성신의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의 적극적인 노력하에서 그것이 도(道)를 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경우를 따지지 않고 거룩한 표준하에서 잘 자랐다면, 경우를 따지고 교회를 조직하는 이런저런 문제보다는 말씀을 자꾸 널리 퍼뜨리는 데 주력해서 핍박을 받지 않고도 프로그램이 섰을 듯합니다."

경우를 따지지 않고 거룩한 표준하에서 잘 자라게 하옵소서.

2016년 8월 1일 월요일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2,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9쪽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식입니다. 저조된 교회의 정도가 자꾸 낮아져서 자기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 가운데 이리 삐치고 저리 삐칠 때 하나님은 그렇게 이리 삐치고 저리 삐칠 마음의 여유가 없게 만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 반성하고 깨우쳐, 하나님의 징계를 면하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23일 토요일

큰 핍박으로 예수살렘 교회를 흩으심 1,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8쪽

"자기들끼리 떨어지지 않고 예수님이 부탁하신 큰 위임령(commission)인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 하는 말씀을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세워서 이행하지 못하니까 이번에는 하나님이 치셔서 흩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이행하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22일 금요일

예루살렘 교회에 원망이 생김,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6쪽

"원래 교회에서는 경우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더군다나 신령한 가정입니다. 신령한 가정에서 무엇을 할 때 경위를 자꾸 따진다는 것은 분명히 사도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까닭에 항상 자기 자신이 당하는 괴로움을 크게 생각하고, 자기가 어떤 물건을 상실했든지 무엇을 잃었든지 없어졌든지 자기에게서 그것이 나가든지 해서 말하자면 자기의 이해로 타산을 할 때 나오는 결손만 크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침을 받게 하시고, 자기의 이해로 타산을 할 때 나오는 결손만을 크게 생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20일 수요일

스데반의 최후 3,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3쪽

"요동하는 것이 바다 물결과 같아서 야단 내고 소리 지르고 막 그냥 부르짖고 울부짖고 치고 하여 마귀의 화신들과 같고 사귀(邪鬼) 들린 사람들과 같이 돌질하는 이 무서운 살인자들 속에서 그는 마치 고요히 자는 자와 같이 있었는데 이것은 큰 대조입니다. 이것이 스데반의 위대한 순교 장면입니다."

세상 풍파 속에서 고요하고 평안하게 지내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18일 월요일

스데반의 최후 2,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3쪽

"사실상 예수를 믿고 그 영혼과 육신이 서로 분리되는 것은 자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현상으로는 믿지 않는 사람이 죽는 현상과 같지만 죽는다는 참된 의미가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죽는 것입니다. 더 소망이 없이 이제는 영원한 죽음 가운데 완전히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자는 것입니다. 얼마 후면 훨씬 영광스러운 육신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15일 금요일

스데반의 최후 1,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2쪽

"요컨대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스데반이 순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입증하시는 거룩한 사실로서 그가 하늘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신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과 그 다음에는 예수님 앞에 자기의 영혼을 부탁했다는 것, 그 다음에는 자기의 대적 혹은 원수들의 죄에 대해서 용서하는 성신의 크고 충만한 능력이 그 안에 있었다는 것, 과연 승리자라는 것, 죄가 그를 지배하지 못하고 성신님이 그를 온전히 끝까지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신의 지배를 받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14일 목요일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5,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20쪽

"안식일을 구별하셨으면 안식일을 구별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그 거룩하신 목적하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날을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써라' 하신 까닭에 그날을 구별해서 쓰는 것이지 안식일 새벽으로 쑥 들어가면 그 시간부터는 이상하고 새로운 공기가 돌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슨 이상하고 새로운 우주선(宇宙線) 같은 것이 꽉 지배해서 그날만은 거룩하다는 특별한 양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략) 그 사람이 그날을 거룩하게 보내야 하는 것이고 마음 가운데 그날을 구별하는 확실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하고 확실한 태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구별하는 확실한 목적의식이 있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13일 수요일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4,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19쪽

"문제는 그 나무의 열매 자체가 구별되었다기보다는 그것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 자체가 늘 거룩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명령을 준행한다는 점에 있지 열매를 먹는다든지 안 먹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먹는 문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먹지 말라' 하셨으니 먹지 말라는 그 명령을 지킨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가게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붙들어 인도하여 주옵소서.

2016년 7월 11일 월요일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3,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19쪽

"무엇이 거룩하냐 할 때 최후로 말하면 안식일을 안식일로 제정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존재가 먼저 거룩하고, 둘째는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목표가 거룩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 거룩한 계획하에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나 설계도도 역시 거룩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설계도 자체가 홀로 거룩할 요소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 날이라고 해서 다른 날과 특별히 다른 이상한 날이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날을 거룩히 구별하셨다는 그 사실이 항상 거룩한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두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7일 목요일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2,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16쪽

"'하나님은 이 산에도 거하시는 것이고 또 저 갈대아 우르와 같은 마구 우상을 섬기는 그런 사회에서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거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하란에도 계신 것이고 하나님은 어디든지 불러내신 그 자리에 같이 계시지 않으냐. 즉 하나님이 어디에서든지 사람과 더불어 교통하시는 데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sanctuary)가 성립되는 것이지 하필 왈 예루살렘에만 거하시겠느냐' 해서 참으로 기독교의 본질적인 것을 드러냈습니다."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6일 수요일

사울의 형식주의와 스데반의 본질주의 1, <사도행전3>, 제5강 스데반의 최후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심 중 116쪽

"'양태는 본질의 표시에 불과한 까닭에 양태 자체에 거룩하다는 가치를 부여하기보다는 본질이 거룩한즉 필연적으로 양태가 거룩한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이 스데반적인 논리입니다."

생활의 형식에 앞서 본질이 거룩하게 하옵소서.

2016년 7월 5일 화요일

기도 2,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107쪽

"저희 교회로 하여금 참으로 장성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옛 때를 벗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또 노도와 같이 주위에서 밀려오는 이 한국 교회의 현실 앞에서 무엇이 참된 교회의 성격이며 사명이며 행로일 것인가를 올바로 식별하게 하시옵소서."

1965년 8월 8일 주일 공부

2016년 6월 30일 목요일

기도 1,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107쪽

"자기는 한껏 거룩하지만 목표 없는 일을 하게 되는 때가 많이 있는 것을 알고 주의하게 하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 위에 당신의 은혜의 왕국을 세워 나아가시고 발전시키시며 그런고로 그 은혜의 왕국이 하나님의 권능의 왕국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사용하셔서 가장 유효하게 하나님의 경영의 목표를 향해서 진행시키시는가를 보이는 이 큰 사실에 대해서 먼저 아버님께서 스데반의 이 큰 설교를 통해서 확연하게 원칙을 보여 주신 것을 여기에서 깨닫게 하여 주시고, 저희로 하여금 이런 것을 볼 때에 맹목적으로 보지 않게 하시며,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기독교가 참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사명과 목표가 무엇인가를 더 깨달아 알게 하시옵소서."

2016년 6월 29일 수요일

스데반의 변론 내용 : 두 가지 요점 3,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106쪽

"오늘도 교회가 하나님이 택하여 내시고 뽑아내신 역사적인 거룩한 목표를 무시하고, 교회의 존재라는 것이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끼리 착하고 거룩하게 살고 자기네끼리 안심하고 살고 자기네끼리 서로 찾아보며 살고 하는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런 교회는 역사를 창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역사를 못 움직이는 것입니다."

모여 있는 사람들끼리 착하고 거룩하게 살고 우리끼리 안심하고 살고 우리끼리 서로 찾아보며 살고 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역사를 창조하고 역사를 움직이는 교회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2016년 6월 27일 월요일

스데반의 변론 내용 : 두 가지 요점 2,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106쪽

"사이비 기독교는 자기 자신의 종교적인 향상과 만족에 중점을 둘 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충만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계획과 경영에 대해서는 맹목입니다. 어떻게 해야 거기에 가는 것인가 하는 이 역사적인 거룩한 계시의 내용의 방향을 무시할 때 사이비 기독교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계획과 경영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남을 올바로 깨닫게 하옵소서.

2016년 6월 26일 일요일

스데반의 변론 내용 : 두 가지 요점 1,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103쪽

"'왜 이스라엘 백성을 땅 위에 둔 줄 아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자기네끼리 평안히 살고 자기네끼리 그저 우리는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면서 살라고 하신 것인 줄 아느냐. 그렇게 생각하면 큰일이다. 광야의 교회로 세우셨다'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라는 말과 같이 '생명의 도를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 생명의 도리를 나타나게 하려고 한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평안과 만족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게 하시고, 생명의 도리를 이 세상에 나타내게 하옵소서.

2016년 6월 24일 금요일

공회의 심문과 스데반의 변론 목표 4,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98쪽

"세상의 다른 종교와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다른 중요한 것이 기독교는 분명한 하나의 목표를 세웠는데 그 목표는 자기 자신의 성화(聖化)나 성성(成聖)이나 자신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이나 정신적인 평안을 찾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니르바나(nirvana) 혹은 열반(涅槃)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목표는 자기 자신이 어디로 떨어지든지 자신의 도덕적 향상이나 타락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게 증거되며 그리스도의 거룩한 계획이 인류의 역사 위에서 찬연히 늘 빛나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게 증거되며 그리스도의 거룩한 계획이 인류의 역사 위에서 찬연히 늘 빛나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목표를 향하여 늘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6년 6월 23일 목요일

공회의 심문과 스데반의 변론 목표 3,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98쪽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언제든지 제일 중요한 것은 생의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산다'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향해서 어떻게 유효하게 도달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때로는 충돌도 하는 것이고 때로는 완곡하게 협력도 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목표를 향해서 늘 향상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생의 목표를 향해서 늘 향상하게 하옵소서.

2016년 6월 22일 수요일

공회의 심문과 스데반의 변론 목표 2,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98쪽

"스데반은 성신님이 충만해서 자기가 믿는 바를 이야기하되 항상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이 있든지 하나님의 성신의 충만함을 받아서 활동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이 덮어놓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 생활에도 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표(life purpose)가 늘 분명하고 뚜렷해야 합니다."

인생의 목표(life purpose)가 늘 분명하고 뚜렷하게 하시고,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이 있든지 하나님의 성신의 충만함을 받아서 활동하게 하옵소서.

2016년 6월 17일 금요일

공회의 심문과 스데반의 변론 목표 1,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97쪽

"자기의 무죄를 변론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집중한 데는 한군데입니다. 즉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자는 것입니다. 그는 거기에서 '어떠한 예수이신가' 하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2016년 6월 16일 목요일

길리가아 회당의 사울, <사도행전3>, 제4강 스데반의 변론 내용 중 94쪽

"공회를 모았고 공회 앞에서 이야기했으니까 공회에서 재판을 해서 선고를 해야 할 터인데 선고도 하지 않고 아무 판결이 없이 그만 흥분해서 와 하고 달려들어 끌고 나가서 자기네 법칙대로 높은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아마 스데반의 손발을 묶어 위에서 거꾸로 내려 떨어뜨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으니까 돌로 쳐서 죽이는 유대 사람의 방법대로 두 사람이 같이 겨우 들 수 있는 큰 돌을 가져다가 그것을 스데반의 위에 내던진 다음에는 사람들이 모두 돌을 쥐고서 막 쳤을 것입니다."

2016년 5월 20일 금요일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백부장의 모든 행위는 신앙의 표출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54쪽.

"신앙이라는 것으로 그 사람을 보면, 여타의 문제는 다 신앙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백부장이라는 사람을 우리가 평가하고 해석할 때는 무엇보다도 항상 그가 예수님에게 시종여일(始終如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음)하게 대한 태도에서, 다른 말로 말하면 신앙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행위가 신앙의 표출이 되도록 가르치시고 이끄시옵기를 기도합니다.

참된 신앙은 전인격으로 나타남,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59쪽.

"참된 신앙은 그것이 항상 전인적인 까닭에 그 인격의 어떤 한 부분만으로 신앙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특성, 곧 그의 신앙은 그것이 전인간적으로 항상 움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종에 대해서도 따뜻하게 대하는 인간미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정서가 풍부한 그의 태도도 단순한 정의 만족을 위한 태도가 아니고, 신앙으로 말미암은 좀더 근거 있는 태도입니다."

일상에서 보이는 인간미가 신앙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하시고, 전인격적으로 참된 신앙을 표출할 수 있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백부장의 신앙의 상태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60쪽.

"백부장이 보인 자기 종에 대한 따뜻한 태도에는 단순히 개인적인 인간미로서만 보아 넘기기가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도 일단 그가 신앙으로 들어가면 과거와 같이 단지 인간미라는 정서미(情緖美)에서만 움직이지 않고, 이번에는 신앙이라는 확실한 근거 위에서 자기 사상이 그렇고 주의(主義)가 그러니까 끝까지 철저하게 신념대로 나가야겠다는 것이 뒷받침이 되어 비로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백부장의 신앙의 상태입니다."

신앙이라는 확실한 근거 위에서, 자기 사상과 신념으로 일상 속에서 마음을 쓰고 느끼며 활동하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람의 덕도 전능하신 주의 손에 맡겨져야 정상적으로 쓰여짐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63쪽.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덕이나 도덕적 품성도 일단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위치로 돌아간 후에 새로 그리스도적인 바른 인식론 하에서 그것이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주의할 것은 신앙의 덕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도덕과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도덕을 포함해 가지고 신앙의 덕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늘 밀고 나가는 이런 사람에게 신앙이 들어가면 그 의지를 그리스도를 위해서 참 잘 쓸 수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주관적인 여러 품성의 발휘는 일단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확실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경험 안에서 주신 은사가 하나님의 성신으로 말미암아 바로 쓰이게 될 때, 그 의지의 작용에서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지가 강한 사람은 그 강한 의지를 포기해야 하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강한 의지를 의뢰하는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란 그것을 의뢰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중략) 과거 자기 재주를 믿던 그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아무리 자기에게 재주가 많고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이것으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표준에 도저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도무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일단 자기 재주를 의지하던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게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은 어떠한 것으로 나타나느냐 하면, 예컨대 과거에 자기 건강에 의지하던 사람이 자기 건강에 의지하지 않고 주께 의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자기 건강은 자기가 유지할 줄 알았던 그런 생각을 안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 건강을 뺏으시면 내가 당장에라도 몸져 드러눕게 되고 당장에 병신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 하는 것을 확실히 늘 느끼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주께서 허락하시면 살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하리라' 하고 이렇게 믿게 되지, '자, 나는 건강하고 튼튼하며 재주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또 경험이 있어 장사를 잘하니 아무 성에 가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자. 그래서 몇 년 동안 있으면서 이(利)를 남기자'(약 4:13) 하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에 대해서 성경은 "그러한 자랑은 악한 것이다. 네가 허탄한 것을 자랑하니, 이런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다"(약 4:16)고 했습니다. 그것은 악한 것이니 그 악한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기에게 있는 은사는 그것대로 감사할 일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자기가 이룰 수 있다고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 튼튼한 의지가 있고 아주 예리한 지성이 있으며 혹은 풍요한 정서와 정조가 있을지라도 그것들이 이제는 성신님께 부탁함이 되어서, 곧 전능하신 주의 손에 맡겨져야 정상적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가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자기가 그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든지 주장할 수 있다든지 자기의 것이라고 하든지 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자신 있고 잘 하는 것을 믿고 의뢰하지 않고, 그 은사를 성신님께 의탁하여 전능하신 주의 손에 맡겨 정상적으로 쓰이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백부장이 이스라엘 사람을 사랑한 진정한 이유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66쪽.

"우리는 사람인데 사람은 하나님 당신의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모양을 이지러뜨려서 부패하고 타락한 것이 한꺼번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에 비교해 볼 때 볼품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볼품이 없고 더럽기만 한 것이냐 하면 비록 부패하고 타락한 형상일망정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인 까닭에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도 이스라엘 사람의 손에 의해 왜곡되고 이지러지고 형해화(形骸化, 내용은 없이 뼈대만 있게 된다는 뜻으로, 형식만 있고 가치나 의미가 없게 됨을 이르는 말)되었으며, 어느 때는 그 속에 이교적인 것까지 포함되기도 했지만, 거기에는 계시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헤브레이즘은 특수한 계시의 요소를 포함하지 아니한 다른 어떤 철학이나 정치나 예술적인 창작보다도 더 위대한 영향을 그후 인류 역사 위에 남겨 주고 갔습니다. 민감한 사람들은 이것을 어느 시대든지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의 기독교의 형태로 기독교를 받아들이려 할 때 오늘날의 기독교의 형태가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타락의 요소가 많이 있고 부패의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 곳에 있는 거룩한 계시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거룩한 계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라는 것을 그 부패한 껍데기라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그 계시만을 그냥 빼내 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는 어떤 모습이든 형태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 요구된 형태에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부패와 타락의 요소가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를 제거하려면 먼저 받아들인 기독교에서 그 속에 있는 가장 진수인 거룩한 계시를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바로 체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그에 알맞은 바른 형태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교회는 언제든지 부단한 개혁을 요합니다. 부단히 부패한 요소를 삼제(芟除,풀을 베어 없애 버림)하고 거기에 아름다운 요소를 넣어야 합니다.
백부장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유대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의 자태를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이 백부장의 위대한 신앙의 첫째 기초입니다."

어지러지고 부패하고 타락한 중에도 그 속에서 늘 거룩한 계시의 진수를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바로 체득하며 바른 형태를 취하도록 부단히 개혁해 갈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특별 계시에 대한 백부장의 친화성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69쪽.

"기독교는 어떤 점에서 독특하냐 하면 그 내용이 이교의 그것과 전연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용이 독특한 것은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기독교가 특별히 독특한 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을 계시하신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와 기독교 안에는 하나님께서 일반 계시로써 전개하신 것과 다른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계시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미 이교적인 환경과 세계에서 자라며 많은 경험을 한 백부장으로 하여금 독특한 매력을 느끼고 찾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사랑한다든지 혹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 준 것은 곧 그의 종교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있는 독특한 계시에 대한 그의 친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기호가 차츰 차츰 깊이 들어가서 마침내 그 계시를 마음으로 사랑하여 그 사람들의 종교 행동을 훨씬 편리하게 할 양으로 회당을 지어 준 것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이 독특한 계시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독특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경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특별 계시입니다. 그 계시가 나타나는 형식의 첫째는 개념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개념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들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이 말씀이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이는 형태로 형상화하여, 표상화하여 나타나는 성례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특성이라고 할 때 늘 첫째는 말씀이요 둘째는 성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특징, 혹은 교회가 다른 어떤 종교의 종교 행동과 서로 다른 것은 무엇이냐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선포되고 해명된다는 그 점입니다."
"성례는 한 개의 상징으로서 기념은 기념이지만, 성례의 집행은 우리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의 표징이 되는 까닭에 언약하시는 하나님의 신이 거기에 같이 거하셔서 역사하십니다. 마치 우리가 말씀을 바로 집행하는 데, 곧 말씀을 바로 먹인다는 사실을 집행하는 데 역사하시는 것과 똑같이 성신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들려주시는 말씀을 먹을 때 성신님이 역사하시고, 보여주시는 성례에 하나님의 신이 함께 거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계속 주의 깊게 생각한 백부장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83쪽.

"그가 예수님을 공평하게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 것은 그가 계시에 접촉해서 그것의 아름다움을 봄으로써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그럴 때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여기저기서 들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무엇을 볼 때 그 생각하는 바에 따라 주의하고 평가를 하게 됩니다."
"유대교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을 한 백부장으로서는 아무래도 예수님에 대해서 그러한 관점에서 주의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희한한 인물이다" 하는 정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참차츰 예수께서 하신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도 듣고, 또 가버나움에서 여러 사람을 낫게 하신 일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서 나은 것과, 백부장과 아마 알음알이(서로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로 잘 알고 있던 그 왕의 신하의 아들도 멀리서 말씀 한 마디로 나았다는 이야기도  벌써 한 일 년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나 일상 속에서 예수님에 대해 늘 주의 깊게 생각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구원의 신앙에서 그 대상의 중요성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87쪽.

"백부장의 신앙에 나타난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 대해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바르게, 깊게 알았다 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신앙의 특성은 그 신앙의 지적 요소로서 대상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깊이 알았다는 것이며, 깊게 알 뿐만 아니라 거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다른 요소가 합쳐졌다는 것입니다. 즉 안 그것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말씀 한 마디면 고치실 분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에 그것을 의지해서 "그러니까 말씀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신앙이 깊어지려면 신앙의 각 요소가 다 깊어져야 하고, 그렇게 해서 어떤 행동을 일으키려면 자기가 '과연 그렇다' 하고 신의(信依, 믿고 의지)하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신의하고 신용할 수 있으려면, 신용할 만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에서 첫째로 중요한 것은 대상입니다. 대상을 바로 믿고 깊이 믿는 데서 신앙은 깊어지는 것입니다."
"인식이 바르고 깊으면 그만큼 더 붙들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인식한 그만큼 거기에 의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깊게 믿고, 예수님을 더 붙들고 매달리는 일상이 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구원의 신앙에서 그 대상을 잘못 생각한 사례들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88쪽.

"이 백부장의 경우를 볼 때, 평소 하나님 말씀을 그가 사랑하고 보았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구원 받는 높은 신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의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대상을 놓고 볼 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인 의미의 대상이 있고 독특한 의미의 대상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전체의 하나님의 계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반적인 신앙의 대상입니다. 나는 무얼 믿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표시되어 있는 바 계시를 믿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곧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친 것이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성경 가운데 나타난 기록에서 정당하고 또 반드시 있어야 할 추리로 말미암아 바로 결론을 끄집어 낸 어떤 도리를 말합니다. 그 도리를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을 일반적으로 바른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바른 신앙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할 것은 카톨릭적인 생각이 이 일반적인 의미의 신앙의 대상에서 때때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카톨릭은 말하기를 교인은 그 의무로서 반드시 에클레시아 도켄스(ecclesia docens) 곧 사제,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으로 구성되어 있는 '가르치는 교회'가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한 부분이라"고 선언한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거기에 의해서 교회가 결정해 준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복음에 무엇을 더 가하는 행동인데, 나중에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이와 같은 것을 카톨릭적 오류라고 해서 강력하게 비판하고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오류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교회의 전통을 하나 세우고 "우리는 이것을 신조로 믿는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하고 나중에 그것을 거의 신조와 비슷하게, 철칙인 양 믿고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생각 곧 유추(類推, 미루어 짐작함, analogy)가 틀린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렇게 해서 구약의 율법도 아니고 신약적인 교훈도 아닌 그런 것을 가지고 "이것은 성경 말씀이라. 하나님 말씀이라"고 막 우겨댑니다. 이런 것이 카톨릭하고 뭐 다른 것이 있습니다까?
우리가 구원의 신앙이라는 것을 말할 때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은 무엇이 됐든지 믿는 것은 일반적인 신앙이지만, 그 일반적인 신앙만 가지고 구원의 신앙이 확증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하는 교회가 안하는 교회보다 더 신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신앙을 바르게 붙잡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들은 신앙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대상으로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들을 믿지 않게 하시고, 일반적으로 믿어야 할 것과 구원의 신앙에 꼭 필요한 것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다 믿지는 못해도, 반드시 믿어야 할 내용은 꼭 믿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구원의 신앙의 확증 - 계시 가운데서 어떤 것을 꼭 믿어야 함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91쪽.

"계시하신 것을 일반적으로 믿는다 하는 것은 구원의 신앙을 확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신앙을 확증하려면 그중에 어떤 것을 독특하게 꼭 절대로 확신해야 합니다. 그 이외에 다른 것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믿는 것뿐이라면 그의 신앙이 확실히 구원의 신앙에까지 자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또 어떤 것은 믿는다고 하지만 시인하는 것뿐이지 확실히 그대로 신뢰하고 신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지해 버리자고 이야기해 놓고서도 의지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래도 내가 할 것은 내가 해야지' 하면서 의지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할 것을 자기가 생각해 내는 것인 줄 압니다."
"그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으니까 나는  주실 것을 기대한다. 그러면 기대하는 나로서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서 지금 자기가 할 것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계시를 일반적으로 믿는다고 하지만 반드시 다 믿느냐 하면 그것을 반드시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계획과 그 말이  상충될 때 자기가 양보하려고는 아니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계시하신 것을 반드시 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믿음이 약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는 계시를 다 믿는다"고 하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따지고 보면 자기가 확실히 그대로 의지하고 사는 것도 있지만, 거기에까지 아직 이르지 못하고 사는 것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으로는 구원의 신앙으로 확증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계시를 다 믿지 못한다고 해서 확증이 안된다는 말이 아니라, 거기에는 꼭 믿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꼭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시가 상충할 때, 믿음이 부족하여,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주님을 다 의지하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부족한 것은 많지 구원의 신앙에 꼭 필요한 것은 철저히 믿고 의지하도록 붙들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기도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94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까지 높이 숭상해야 할 분으로 생각지 못했을 때에 백부장은 지극히 높고 거룩한 분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신성을 가지신 분으로 생각하는 데까지 이른 것을 저희들이 이제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그의 생각의 미침이 어떻게 그렇게 기묘하게 그의 안에 있게 됐는가를 저희들이 탐색하면서 저희들 자신도 하나하나 참으로 칭찬을 받는 높고 거룩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라옵나이다. 그런 믿음이 있어야만 이 괴악한 세대, 험악한 세대, 또 싸워야 할 일이 많고 달여갈 길이 험준한 이 세대에, 이 역사의 과정 위에 저희가 능히 서서 아버님께서 저희에게 요구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주신 바 사명을 능히 수행할 줄로 믿사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을 가납하시옵고, 저희들이 아버님께서 기뻐이 받으실 만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여 믿음의 자태에 대해서 주께서 여러 모로 가르쳐 주시는 것을 깨닫고 배우고자 하오니, 이제 더 깊이 가르쳐 주시고 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모든 것을 다 맡으시고  친히 주장하시사 아버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시고 저희 교회에 아버님께서 은혜 베푸사 거룩한 사명과 저희의 가는 길에 거룩한 목표를 명확하게 보여 주시는 대로 바로 파악하고 확실히 파악해서, 저희의 생이 저회적이고 일반적인 데에 그냥 빠져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일반적인 이 타성과 고루한 생활 가운데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시며, 고결하고 고귀한 역사적인 사명에 대한 각성이 확실히 있는 사람과 같은 생활 태도를 취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968. 7.24."


백부장의 모든 행위는 신앙의 표출, <신앙의 자태2>, 제2강 백부장의 신앙(2) 중 54쪽.

"신앙이라는 것으로 그 사람을 보면, 여타의 문제는 다 신앙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백부장이라는 사람을 우리가 평가하고 해석할 때는 무엇보다도 항상 그가 예수님에게 시종여일(始終如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음)하게 대한 태도에서, 다른 말로 말하면 신앙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행위가 신앙의 표출이 되도록 가르치시고 이끄시옵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신앙의 자태2>, 제1강 백부장의 신앙(1) 중 46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오늘 이 백부장의 신앙에 대해서 저희들이 생각해 보면 볼수록 그는 참 기이한 큰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주께서 과연 기이히 여기실 만한 위대한 신앙을 가진 것을 알겠나이다. 그러한 신앙은 일조 일석(一朝一夕,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일을 이르는 말)에 생긴 것이 아니고 차츰차츰 자라서 그런 높은 곳에 이르렀을 것이며, 우리 주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때 또는 우리 주님께서 하신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민감하게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했을 것이옵니다. 주님, 주님께서 그의 집을 향해서 가시려고 하실 때, 아마 그의 집에서 상거(相距, 서로 떨어진 거리나 시간)가 멀지 않으셨을 때 사람을 보내서 감히 송구해서 자기 집에 모실 수가 없고 자기도 감히 그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가장 숭엄한 바른 고백을 하게 된 것이로소이다.
주님, 참으로 이러한 신앙을 주께서는 기이히 여기셨는데, 오늘날 저희들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이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신앙이 이렇게 기이한 상태를 이루어야 구원의 신앙의 큰 자태인 줄 아나이다. 저희의 신앙도 이렇게 기이한 지경까지 장성해 올라가고 있사온지, 저희도 기이한 신앙의 소유자들인지 주께서 감찰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깨닫게 하시고 깨우쳐 주시옵소서. 어떻게 백부장은 이와 같은 기이한 신앙을 그 빈약한 재료를 가지고서라도 얻었겠사옵나이까? 바쁜 군무(軍務, 군인으로서 군대에 복무하는 일)에 있으면서 어떻게 그는 이와 같은 훌륭한 신앙의 경지에 도달했겠나이까?
주님, 우리들이 늘 바쁘다고 할지라도 결국 우리들도 백부장과 같은 그런 기이한 신앙의 경지에 올라가야만 될 것을 절실하게 느끼옵나이다. 주께서 저희들을 통해서 큰 일을 하시고자 하실 때에는 이런 기이한 신앙의 소유자들을 쓰시는 줄 믿나이다. 신앙이 이렇게 철저하고 기이하지 않고서는 저희가 주님의 그릇이 될 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는 것을 또한 느끼나이다. 주님이여,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사 저희의 신앙이 참으로 더욱 고결하고 위대하여서 기이한 경지에 도달케 깨우쳐 주시고 그 길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들의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시고 저희들의 사정을 일일이 다 하감(下瞰, 아래 하, 볼 감, 높은 데서 내려다봄)하시며 저희들의 생활의 필요를 주께서 지탱하시고 건강을 주시며, 저희 교우들 하나하나를 다 보호하시옵소서. 동경에 있는 저희 교회의 교우들도 다 주님이 보호하시고, 성신님이 저희들을 세우시사 이 시대에 기이한 그릇들로 쓰시고자 하시는 이 큰 뜻을 다 각성하게 하시고, 거룩되게 하시며 능력 있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968.7.17."

2016년 5월 18일 수요일

구약에서 신론을 배운 백부장, <신앙의 자태2>, 제1강 백부장의 신앙(1) 중 42쪽.

"무릇 하나님에 대한 바른 관념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계시한 기초를 바로 붙드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는 평지에서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완전히 순식간에 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일반 계시, 곧 자연 계시에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바른 상념을 가지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상념을 가질 때 우주론(cosmology)이나 역사론(historiology)은 나에게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즉 역사의 진행을 볼 때, 도덕적인 규율을 볼 때, 또는 모든 것이 어떤 목표를 향해서 진행한다는 목적론(teleology)이라는 것을 볼 때, 혹은 존재 즉 본체론(ontology)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 모든 논증으로부터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이 이렇게 '어떤 하나님인가'를 생각해 나갈 때 결정적으로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바른 관념을 제시하는 것은 이왕에 있었던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그 당시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특별 계시의 충만한 집성은 구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그가 틈틈이 배우고 읽고 보고 한 데서 비로소 그는 어떠한 하나님이신가를 발견한 것입니다."
"구약에 있는 신론은 어떤 신을 말하느냐? 무엇보다도 첫째 하나님은 인격자시다. 둘째 하나님은 주 곧 주재(主宰, 주인 주, 벼슬아치 재,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또는 그 사람)이시다. 셋째 하나님은 역사의 과정에서 역사를 운영하시는 분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여기에 대한 명확한 관념이 백부장에게 있었던 까닭에 그는 예수님께 대해서 "당신이 그분입니다" 하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내 집에 오시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그분 앞에 나아가겠습니까? 신령계에 있는 세력이든 물질계에 있는 세력이든 또는 사람의 신체를 지배하는 세력이든 무엇이 되었든지 당신의 말씀 한 마디면 족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병을 고쳐 주신 이야기나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또 아마 왕의 신하가 가나까지 가서 예수님께 청하여 가버나움에 있는 자기 아들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했을 터인데, 백부장도 그 사회 계층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이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아하, 백 리 밖의 그 산 속에 계시면서 말 한 마디로 낫게 하셨구나! 그러면 그는 누구신가? 이 세상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하는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일상 속에서, 책을 통해서,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또 그 말씀을 바르게 해명한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도록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며 바르게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3월 4일 금요일

구원 신앙에 대한 실증, <신앙의 자태2>, 제1강 백부장의 신앙(1) 중 40쪽.

"예수님께서는 그가 종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서 마음 가운데 깊은 슬픔을 가지고 그 자신이 고통을 덜어 주었으면 하는 그런 간절한 박애심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보시고 그것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백부장의 마음 가운데는 그를 존중히 여기는 사랑 곧 '그의 생명의 존귀성은 내 생명의 존귀성과 마찬가지다' 하는 이런 아름다운 거룩한 휴머니즘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거룩한 휴머니즘이 일상 속에서 나타나, 구원 신앙을 실증하는 나날이 되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2월 15일 월요일

백부장의 구원 신앙, <신앙의 자태2>, 제1강 백부장의 신앙(1) 중 38쪽.

"이것은 무슨 사상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본 사상입니다."
"신앙의 대상에 대한 개념이 정당하게 구성된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신앙은 언제든지 신앙의 대상에 대한 개념이 바로 서야 합니다."
"그 대상에 대한 지적 요소(notitia)를 바르게 가져야겠다고 생각지 않는다면 큰 문제입니다. 내게 정의적(情意的, 감정이나 의지에 관한 것) 요소가 아무리 있다 해도 또 내가 아무리 의지를 잘해도 의지하는 그 분에 대한 나의 개념이 부정당할 때는 그 신앙은 부정당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자태라는 면에서 볼 때 이 백부장은 구원의 신앙으로서의 개념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한 그대로 강경 직행(强勁 直行, 굳셀 강, 굳셀 경, 곧을 직, 갈 행, 강경 : 양보나 굽힘이 없이 힘있고 꿋꿋함, 직행 : 중간에 머무르거나 어떤 곳을 들르지 않고 목적지로 바로 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항상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셨다더라 저렇게 하셨다더라" 하는 소문은 들었을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듣고 이렇게 믿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듣고도 이렇게 위대한 신 개념의 결론에 도달했다면, 필시 그에게는 신에 대한 바르고 풍요한 기초적 지식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신 개념이라는 것은 백지 같은 상태에세 갑자기 충만한 상태로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라나는 것입니다. 희미한 데서 차츰차츰 밝은 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보게 하시고, 예수께 대한 지적 요소를 늘 바르고 풍요하게 가지게 하시며, 차츰차츰 자라나 충만한 데에 이르도록 하시고, 구원의 신앙을 가지고 그대로 강경 직행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백부장의 신앙의 위대성, <신앙의 자태2>, 제1강 백부장의 신앙(1) 중 36쪽.

"백부장은 "말씀 한 마디만 하십시오. 내 수하에도 군인들이 있어서 내 말 한 마디면 그 말의 타당성 여부를 논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들은 '가만히 계십시오. 천천히 하겠습니다' 하고 이렇게 대꾸도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움직입니다. 나는 일개의 백부장에 불과한데도 내 수하들이 그렇게 합니다. 나는 이 권력을 어디서 받았느냐하면 위에서 받았습니다. 그런고로 나도 권력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즉 위에서 권력으로 명령을 내려서 내게 오므로 나도 합니다. 이같이 명령 일하에 움직이는 이런 사실이 인간계에도 있거든 하물며 병이나 사람의 마음 상태나 혹은 자연계의 상태에 대해서까지 명령 일하에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당신에게는 말 한 마디면 족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병이나 사람의 마음 상태나 혹은 자연계의 상태에 대해서 명령 일하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일상을 살아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7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님께서는 기드온이나 바락이나 입다나 삼손이나 이런 사람들을 다 위대한 신앙의 용사들로 보여주셨사옵는데, 그들의 신앙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의 신앙에 대한 개념이 너무나 모호하고 그릇되고 또한 신앙에 대해서 불철저하게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느끼옵나이다. 이제 그들의 생애 가운데 무엇이 신앙의 요소로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추장(推奬, 천거 추, 권면할 장, 어떤 사람이나 물건 따위의 뛰어난 점을 말하고 추천함)하시고 전례(典例, 법 전, 법식 예, 말이나 행동 따위의 근거가 되는, 이전에 있던 사례)로 혹은 중요한 예로 위대하게 거용(擧用, 들 거, 쓸 용, 인재를 천거하거나 뽑아서 씀)하시는 것인가를 바로 깨닫게 하시고, 저희의 생애 가운데 스스로의 약점을 용서하지 않지만, 동시에 위대한 신앙이 없는 것을 통분히 생각하게 하여 주시며, 단지 하나의 도덕적인 자기 인격의 완성이라는 이 아주 잘못된 자기 중심의 윤리관에서 벗어나 마음 가운데 주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나의 부분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위대한 성신의 역사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을 통한(痛恨, 아플 통, 원한 품을 한, 한이 맺힐 만큼 원통해 함)히 여기는 심정을 가지게 합소서. 주여, 이리하여 저희가 참된 신앙의 용사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6년 2월 4일 목요일

결어,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6쪽.

"다윗 역시 약점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는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증하신 까닭은, 그가 자기의 사명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또 자기의 나아가는 데 대해서 무서워하지 않고 용기있게 전진하면서, 문제가 있을 때는 그것을 하나님께 전부 의지해 버리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기드온, 바락, 입다, 다윗 등은 모두 다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위대한 신자인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게게 인간적인 약점이 있는 것을 저어할(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대한 신앙이 없는 것을 더 통분(痛憤, 원통하고 분함)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약점을 뚜드려 고치려고 해서 백번을 고쳐 봐도 인간은 기왕의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 때문에 때때로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목적을 향하여 행진하고 또 용기있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힘을 받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적 앞에 과시(誇示, 자랑할 과, 보일 시, 자랑하거나 뽐내어 보임)하고 증시(證示, 증거하여 보임)하는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되겠습니까?"

인간적인 약점을 있는 것을 저어할 것이 아니라, 주신 사명을 잊지않고 신앙으로 그 목적을 향하여 행진하게 하시고, 문제가 있을 때는 그것을 하나님께 전부 의지해 버리고 나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명 수행에 대한 적극성,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3쪽.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삿14 : 1-4). 그러므로 삼손이 자기 지혜로 어떻게 해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또 지금 할 일인가를 면밀하게 생각할 때 여호와께로부터 이런 지혜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특별히 계시를 받아서 했다는 말보다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이것이 가장 타당하고 가장 무난한 방법일 것이다. 이 일부터 시작해서 적정(敵情, 적군이나 적국의 정세)의 허실을 탐지하고 이것을 계기로 내가 흔단(釁端, 틈 흔, 끝 단, 서로 사이가 벌어지거나 일이 다르게 되는 맨 처음이나 실마리)을 일으켜야겠다. 나는 이렇게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삼손은 또 인간미도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간 타입을 비교하면 다윗왕과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울기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고, 그리고 어느 때는 정이 헤프기도 하고 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하나님만 붙들고 나갔습니다. 죽어도 하나님을 붙들고 나가겠다는 이것이 신자입니다."

환경이나 인간적인 여건이 어찌됐든지, 주어진 처지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끝까지 죽어도 하나님만 붙들고 나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위대한 신앙의 자태,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2쪽.

"성신의 감동과 성신의 크신 역사가 그에게 작용할 때 자기에게 맡기신 본래의 사명을 위해 위대한 힘을 발휘하면서 나가는 것이 위대한 신자의 소위(所爲, 하고 있거나 해 놓은 일, 할 바)요, 그것이 위대한 신자를 만드는 조건입니다. 자기 혼자 열심으로 예배당 다니고 기도하는 것을 위대한 신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은혜의 방도이지만, 동시에 그 자신이 어떻게 큰 은혜의 그릇이 됐는가를 증명하는 데서 그 다과(多寡, 수량의 많고 적음)를 또한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에게는 위대한 힘이 나타났느냐? 위대한 힘이 나타날 만큼 그 전달하는 기관(器官, 다세포 생물에서, 생물체를 구성하여 나름의 특정한 생리(生理,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이 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기관, 그것이 신앙입니다."

주께서 쓰시는 그릇이요 기관이 되어, 성신의 감동과 성신의 크신 역사가 작용하는 신앙의 자태를 가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2월 3일 수요일

위대한 각성자, 삼손.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0쪽.

"삼손에게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윤리적인 약점이 있었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그를 신앙의 용사로 앉혀 놓았습니다. 왜 신앙의 용사냐? 그는 단순히 자기 일생의 일에 대한 확실한 각성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일을 넘어지며 자빠지면서까지라도 실행해 나갔습니다."
"무엇을 믿고 나갔는가? 하나님께서 힘 주실 것을 믿고 나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이 일을 하러 나온 사람이니까 목숨을 내놓고 하겠다.'고 하면서 수천명의 불레셋 사람들 앞에 묶여서까지라도 나왔습니다."
"그가 사명을 행할 때 성신님이 그를 크게 감동해서 쓰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신자냐? 일단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려고 할 때 성신이 위대한 능력으로 그를 감동해서 쓰시면 그는 위대한 신자입니다. 그럴 때 위대한 신앙의 족적이 생깁니다. 신앙이란 것은 내가 종교열을 가지고 각고 면려(刻苦勉勵, 온갖 고생을 견뎌 내며 부지런히 노력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쓰실 때 그의 그릇으로서 사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가 많고 부족하며 잘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하나님의 의중을 잘 깨닫고, 그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그릇으로 사용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신앙인 -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명 수행에 매진하는 자,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79쪽.

"삼손은 나실인이었지만 그가 자기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인간으로서의 여러가지 약점과 불비(不備, 갖추지 못함)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 때문에 자기의 생의 방향을 변경한 일이 없었습니다. 약점이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라고 할 때는 항상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보내심을 입었는가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보내심을 입었는가에 대한 각성이 있게 하시고, 인간로서의 여러가지 약점과 불비에도 불구하고, 그 생의 방향을 변경하는 일이 없도록 성신께서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신앙인 - 일생을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안에서 사는 자,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78쪽.

"삼손을 위대한 신앙의 용사라 하게 한 그의 신앙의 첫째 기초는 분명히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하여서 하나님 앞에 드린 나실인의 위치를 스스로 변경하거나 포기한 일이 없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그는 일생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목적 안에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바른 신앙의 자세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상당히 관대하고 훌륭한 품성을 나타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의 일생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계획과 경륜의 내포 안에서 분명한 목적을 향해서 진행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먼저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신 본래의 거룩한 목적과 거룩한 경영의 테두리 안에 있는 동안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예배당에 잘 다니고 아무리 열심으로 기도하고 아무리 선행과 자선을 행할지라도, 그가 자기의 이상과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그렇게 할 뿐, 하나님 당신께서 그를 세우신 본래의 목적을 향해 생활해 나가는 일에 관해서 일호도 각성하지 못하고 있을 동안에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하나님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본래의 거룩한 목적과 거룩한 경영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나의 부분에서 해야 할 일을 성신의 역사과 능력으로 나타낼 수 있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2월 2일 화요일

기도,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61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는 저희에게 전진해야 할 방향과 목표를 알려 주셨사온데, 그곳은 저희의 본향이요 저희가 그곳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그곳에 속한 자로서 마침내 그곳에 들어가야만 할 저희의 집입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이렇게 거하여야 할 집, 저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의 집을 보이시면서 나아가라고 하실 때는 일생 나그네같이, 이 세상을 안주할 곳으로 생각지 않고 불요불굴(不撓不屈, 의지 따위가 흔들리지 않고 굽힘이 없음)히 타협함이 없이 많은 박해와 지장과 곤란을 극복하면서 전진해야 할 줄을 아나이다. 이것을 믿음이라, 용기있는 믿음이라고 가르치셨나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전진할 때는 얽매이기 쉬운 모든 거리끼는 것을 다 벗어버리고 - 우수사려(憂愁思慮, 근심과 시름에 차 생각함)에 얽매여 마음이 무거워서 생각할 여유가 없이 살지 말고 - 그 나라의 오묘한 것과 거룩한 기구와 내용에 대해서 깊이 알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늘 넉넉히 가지면서 전진하라고 하셨나이다.
주여, 저희의 마음 가운데 이 믿음의 자태에 대한 확실하고 바른 판단을 내려 주셔서, 그릇된 것을 믿음이라하거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아닌 것들을 믿음의 큰 내용인 것같이 말하는 그릇된 생각에 물들지 않게 하여 주시고, 바로 생각하여 주께서 보이시는 거룩한 목표를 바로 통찰할 수 있게 하시며, 확신을 가지고 전진케 하시옵소서. 그것은 주께서 이미 실재케 하신 것이요, 주께서 경영하신 것인 까닭에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 속에는 거기에 대한 확신과 확증이 생기나이다. 이것은 주께서 그런 확증을 저희에게 주시기 때문이며 이 확증이라는 관문을 통해서 그 여타의 모든 필요한 은혜를 저희에게 내려 주시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주여, 저희에게 이와 같은 확증이 있다는 것은 주께서 경영하신 그곳으로 저희를 이끄신다는 또 하나의 거룩한 증표가 되나이다. 이 거룩한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결어,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9쪽.

"히브리서에서 본 여러 사람의 신앙의 자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신앙이란 흔히 인간적인 생각대로 개인의 도덕적인 성격이나 종교적인 생활을 어떻게 했느냐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생이 어떻게 목표를 향해서 불요불굴(不撓不屈)히, 타협하지 않고 박해를 받아 가면서도 끊임없이 싸워 가면서 전진해 나갔느냐를 보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넓은 길을 택했더라면 받지 않았을 박해를 좁은 길을 택해서 일생 전진했던 까닭에 받은 것입니다."
"개인의 생의 목표도 불분명하고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방향과 지표도 불분명하면서 정통적 교회가 되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전승된 신앙은 역사적인 지표를 가져야 합니다."
"그 방향으로 향해 나아갈 때 타협함이 없었고, 좌절해서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일어나 또 싸워 가면서 나아갔으며, 박해가 있었고 나중에는 괴로움과 죽음이 있었지만, 그러나 추호도 타협치 않고 진진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보다도 더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참으로 경건히 살고자 하면 누구든지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꼭 유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아무 이름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목표를 알고 바르고 깊은 믿음을 갖고 살려고 하면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박해는 사람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어떤 기구를 통해서나 합리적인 방식을 통해서 방해를 일으키면, 또한 지장과 곤란과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적인 새사람의 생활이 좀더 영화롭게 자꾸 드러나는 동시에, 전체의 부분으로서는 전체가 다 같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역사를 이 현 역사의 과정 가운데에서 조성해 나가는 방향으로, 일생 타협하지 않고, 좌절해서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또 싸워 가면서 전진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2월 1일 월요일

신앙의 지적 요소는 시간의 진전에 따라 성장함,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8쪽.

"아브라함은 그러한 불완전한 지식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아갔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완전히 얻은 것은 아닙니다. 오직 이 땅에서 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의 그의 위치를 주신 것입니다."

신앙의 지적 요소가 시간의 진전에 따라 성장하게 하시고, 불완전한 지식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을 향해서 나가게 하시며, 그렇게 나아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이 땅에서는 완전히 얻지 못함을 알고 나아가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주시길 기도합니다.

"본향을 찾아감" - 개인으로는 영화롭게 생활, 전체로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현 역사 위에 조성해 나감,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6쪽.

"아담을 창조하신 때나 오늘날 우리를 건지신 때나,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정(定)하신 것에 변역(變易)이 없으시며 또 전능하신 까닭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본래의 목적은 꼭 이루고야 마십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 영화의 목표를 향해서 매일 전진해 나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영화의 목표를 향해서 매일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영화의 몸을 입기에 해당한 새사람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에게 있어서는 새사람의 능력이 자꾸 발휘되어야 마침내 그 새사람에 해당한 영화의 몸을 입게끔 장성해 갈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을 장성하더라도 완성을 못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일정한 기간 동안 나를 땅 위에 두셨다가 당신의 하실 일을 하신 다음에 내 영혼과 육신을 분리시키는 날에는 마침내 주께서 스스로 완성시키십니다. 그렇게 하여 간직하셨다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영화의 몸을 입혀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달리 말하면, 만유의 주 안에서 통일되고 모든 무릎이 그리스도 안에서 꿇게 하기 위해서는 지으신 만유가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영광의 옷을 다 입게 만든다는 것입니다(엡 1:10, 4:6 참조). 그리기 위해서 인류는 인류의 역사 위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자태를 만들어 내 놓고 나아가거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자태를 이루어 놓기 위해서는 평지에서 순탄하게 가게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반작용과 적의 역습이 있는 까닭에, 이 수많은 적의 역습과 적의 대적에 대해서 부딪혀 싸워 승리해 가면서 적극적으로 그리스도 나라의 거룩한 자태를 건설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내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적인 새사람의 생활이 좀더 영화롭게 자꾸 드러나는 동시에, 전체의 부분으로서는 전체가 다 같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역사를 이 현 역사의 과정 가운데에서 조성해 나가야 함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본향을 찾아서 나가는 행진의 방식입니다."

본향을 찾아서 나가는 행진이,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적인 새사람의 생활이 좀더 영화롭게 자꾸 장성하고 드러나는 동시에, 전체의 부분으로서는 전체가 다 같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역사를 이 현 역사의 과정 가운데에서 조성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 아담과 하와의 일체성의 원형,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4쪽.

"혼인은 결국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체성의 한 샘플로, 축도(缩圖, miniature)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일체인 것같은 일체성을 구현하는 최소 한도의 하나님이 내신 거룩한 제도요 한 일체의 단위이지 그것이 원형은 아닙니다. 이러한 단위적인 요소에서 발전해 나갈 때 그리스도적인 신령한 몸, 거룩한 일체성을 구성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리스도적인 영광의 위치 가운데 내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같이 그 지체인 내가 그에게까지 자라야 할 것입니다(엡 4 : 29 참조)."

그리스도와 교회가 일체인 것같은 일체성을 혼인을 통해 구현하게 하시고,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같이 그 지체인 내가 그에게까지 자라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1월 30일 토요일

교회가 정상적, 정통적, 역사적 믿음 가지려면 행진의 목표가 명확해야 함,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3쪽.

"교회라면 교우 하나하나가 일생을 드려서 행진해야 할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면서 항상 다시금 전진할 태세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행진했느냐 하면 매일 매일 죽음을 향해서 전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성을 향해서, 생명을 향해서 전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땅에 보내신 거룩한 목표에 확실히 도달하기까지 매일 매일 그것을 구현하면서 또 더욱 명백화하면서 전진하였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 나라를 일상 속에서 구현하면서 또 더욱 명백화하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나라를 향해서, 생명을 향해서 전진하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본향"을 찾아갈 수 있는 근거,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0쪽.

"본향"을 찾아갈 수 있는 근거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0쪽.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준비하신 한 본향을 향해서 간다고 할 때, 이 말은 피안을 향해서 간다는 말로 얼른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마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략) "내가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한다, 예비한 다음에 다시 오겠다"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구약의 많은 성도들이 바라고 나아간 본향은 예수님께서 예비히시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본향 또는 고향이라는 말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나 혹은 자기가 제일 어렸을 때부터 제일 오랫 동안 생육받은 곳입니다."
"본향을 찾아간다고 말할 때에는, 벌써 그 말 자체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경영하신 가운데에 이미 우리가 거기에 존재했었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세 전에 이루신 경영과 도략 가운데에는 우리가 거기에 있었고 우리가 거기에 있었음으로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 역사의 과정 가운데 또한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효가 실재의 세계에서는 이미 만세 전에 존재했고 존재한 까닭에 아담도 아벨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세도 다 그리스도의 그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때에 구원받아서 중생하고 또한 그들이 땅에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됐을 때 그의 앞으로 가는 것이지, 예수님이 그 후에 나타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에 비로소 그의 속죄 공효가 유효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효는 이미 존재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이미 존재한 까닭에 아담부터라도 그 공효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던 것입니다. 다만 그 구원은 중생이라는 사실이 생긴 그 자리에 직면해서 성립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면 아담이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중생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죄인이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원래 그 사람은 하니님의 창조의 본래의 의도 가운데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전능이 있고 하나님의 선택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다는 사실이 명확히 있는 것입니다."
"생의 존재 가치를 바로 이해하고 자기의 일생이 어디를 향해 가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알며 진행해 나갈 때 그것을 가르쳐서 용기있는 위대한 믿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 피안 : 강의 건너편 기슭. <<불교>> 사바 세계의 저쪽에 있다는 정토.
* 도략(韜 감출 도, 略 다스릴 략).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미리 예비하시고 경영하시는 본향을 알고, 생의 존재 가치를 바로 이해하며, 일생 어디를 향해 가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알고 진행해 나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3) 하나님을 찾는 생활 태도를 가짐,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49쪽.

"하나님의 존재를 신뢰한 다음에 가져야 할 믿음의 중요한 자태는 하나님을 찾는 생활 태도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경영을 하신 바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한 성이 있는데 -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히 채워질 곳으로서 - 그곳에 이르기까지 나그네의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상적인 목표인데, 그 목표를 향해서 자기의 일생 동안 걸어가야 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의 시간이나 정력이나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경영을 하신 바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일생의 시간이나 정력이나 모든 것을 사용하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1월 29일 금요일

(2) 목표와 방향이 분명함,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46쪽.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이 있어서 그들은 거기를 향해서 일생 갔다 하는 것이지, 천당에 가려고 일생 갔다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천당은 죽으면 그 자리에서 즉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 천당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 세상에서의 행진에 대한 약속이 아닙니다. 천당은 사람들의 영혼이 거할 곳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렇게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그 믿음을 예로 든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개인 개인의 도덕적 성격이나 종교 의례에 대한 태도에 있지 않고,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을 했느냐 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은 인생을 나그네요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정착하는 생활을 인생의 중요한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나그네이지만 두류(逗留)하면서 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서 일생 걸어가는 것이며, 그 목적지를 멀리서 바라고 걸어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지에 대한 그의 전 인격적인 태도는, '자기의 본향'이로라 하는 지정의(知情意)적인 모든 심적 활동이 그것을 정점으로 향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 두류(逗 머무를 두, 留 머무를 류) : 여행지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묵음.

생각이나 마음, 일상의 움직임과 중심이 늘 하나님 나라에 가 있도록 하시며, 일생을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한걸음한걸음 바르게 걸어가도록 가르치시며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46쪽.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기본적으로 그의 존재를 시인하는 것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한 다음에는 "그를 찾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어떻게든지 그 뜻을 잘 받들어서 세상에서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건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가, 즉 어떤 방향을 취하고 인생의 행진을 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주 좁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결국 하나님을 찾는 데로 들어가는가,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이상을 정하고 자기 스스로의 종교에 의해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시는 방향으로 인생의 행진을 해 나가며 자주 좁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결국 하나님을 찾는 데로 들어가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용사,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45쪽.

"라합은 기생이었지만 믿음의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라합이 훌륭한 신자가 된 것은 그 사람이 교회에 열심히 나왔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잘 대접해서 보냈다는 것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훌륭한 믿음인가?'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방향과 그 길을 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1월 18일 월요일

사람들이 일컫는 "일등 신자",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43쪽.

"사람들이 믿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 가운데 혹시 잘못되기 쉬운 것에 대한 명백한 표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 도덕이나 종교적인 윤리 행동을 믿음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악착스럽게 인색한 것을 하지 않고 선량하고 관대해서 남에게 호감을 주며, 그의 인격이 남 보기에도 칭찬할 만할 때 "아, 저 사람은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신자다운 사람이다."라고 높이 칭찬합니다."

종교적인 윤리 행동을 믿음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선량하고 관대하며 남에게 호감을 주고, 인격적으로 고상한 것을 믿음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란?,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43쪽.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이미 배포되어 있는 사실을 보이는 역사의 세계 위에서 구현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향해서 나갈 때에는 어떠한 것을 해야 하느냐"
"내가 살고있는 세계에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구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야 내가 그것들을 구현해나가는 것입니다. 즉 믿음을 갖는다 하는 것은 내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비치되어 있는 사실이 믿음이라는 형식으로 내게 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은혜의 방도를 통해서 그 비치되어 있는 사실이 내게 오면 이 비치된 사실이 역사의 과정 위에서 실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이미 배포되어 있고 비치되어 있는 사실을, 믿음이라는 은혜의 방도를 통해서, 일상에서 일생 동안 구현하고 실현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정상적 소망 - 하나님께서 실재의 세계에 준비해 놓으신 것을 바라는 것,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41쪽.

"믿음이 따라다니는 소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그렇게 히시려고 했고 이미 실재의 세계에 다 그렇게 준비해 놓으신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재의 세계에 무한히 많은 은혜를 준비해 놓으셨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아내지도 못하고 스스로의 욕심에 의지해서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 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무엇을 바란다 하는 지적인 작용과 그 작용이 구체적으로 구상을 했을 때 - 왜냐하면 소망이란 이러한 구상 가운데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 그것이 하나님의 구상에 부합하는, 하나님 나라의 것이라면 하나님이 거기에 대한 보증으로서 믿음을 내려 주십니다."

일상 속에 무한히 많이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 나라의 은혜로운 것들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구상에 부합하는 소망을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붙잡고, 주께서 마련하신 길을 한걸음한걸음 걸어가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1월 13일 수요일

정상적인 소망은 믿음이 수반되어야 함,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41쪽.

""아버지, 돈 백원이 필요하니 나에게 돈 백원을 주십시오."할 때, 아버지가 "그래라, 내가 지금 바쁘니 이것을 끝내고 조금 있다가 줄 터이니 그런줄 알아라."하면, 그 아이는 그 돈 백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는 늘 잘 주셨다는 사실에 대한 자기의 인식에 비추어서 '아, 아버지는 나중에 꼭 주신다.'하고 믿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참으로 소망하는 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믿음을 요하는 것이고 또 믿음을 가져야만 그것은 실현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아가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믿음 있기 전에 창조주와 그 분이 배포하신 내용이 선재해 있음,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40쪽.

"믿음이 있기 전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고 나라는 사람의 영혼의 기능이 있어야 그 위에 믿음이라는 것이 늘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있기 전에 또 무엇이 있어야 하는고 하니, 나를 지으신 이가 계셔야 하는 것이고 내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 거기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재(先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지으신 창조주, 대주재가 계시고 또 창조주가 나의 안에 믿음의 조건으로서, 실질 내용(substance)으로서의 사실들을 가지고 계시사, 나를 땅에다 존재케 하시고, 실존하시는 하나님께서 배포(排布, dispense)하신 내용들을 나에게 알리실 때 그것이 믿음이라는 형태로 알려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할 때의 첫째의 의의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의 존재가 분명하다고 내가 시인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해서 또 다른 믿음의 내용(substance)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아름다운 도성을 준비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는 보았다 하지 않습니다. "보지 못했지만 보는 것같이 멀리 바라고 간다." "왜 가느냐?" "그것이 있으니까 간다." "있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아느냐?" "나는 믿는다." 그것입니다. 그런고로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하는 것입니다.

* dispense [dispéns] : 조제하다, 특면하다, 내놓다
* substance [sΛbstəns] : 물질, 본질

우리를 창조하신 실존하시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놓으신,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적인, 믿음의 내용과 본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아름다운 도성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그 길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도록 가르쳐주시고 붙들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승인은 그 신앙이 내 속에 있기 때문임,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37쪽.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시인은 어떠한 형태로서 내 마음 가운데 존재하느냐 하면, 내가 승인함으로, 즉 내가 시인함으로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시니까 나는 승인하게끔 되는 것이고, 그 승인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과 연관한 신앙이 내 속에 있는 까닭에 승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백히 파악해야 할 사실은 실재의 세계의 존재라는 것이 그 존재의 사실을 나에게 신앙이라는 상태로 알려주고 그 신앙이라는 상태가 내 안에 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시인하는 심리적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가 어떤 소망을 가졌으면 이 소망의 내용이 실지로 존재를 하는 것이냐, 그래서 실지로 그대로 실현될 것이냐 하면, 신앙이 그것이 존재하고 실현될 것임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므로, 하나님을 시인하고,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를 믿으며, 그 나라의 실현을 소망합니다. 믿음으로 소망이 실현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을 성신께서 일상 속에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길 원하오며, 그 길로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1월 12일 화요일

현상과 실재,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36쪽.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할 때 그 실상이라는 말은 확증이다, 확실한 보장이다 하는 말 뜻과 거의 같은데, 이것을 다시 말하면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없는 부허한 것, 사람의 가공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신앙이 생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배포하시고 경영하시는 실상을 믿고 일상을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란?,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33쪽.

"그런데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 하나의 확실한 보증이다."라고 할 때의 '믿음'이라는 말은 모든 믿음이 다 그러한 것이다 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귀절 이전에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 : 39하) 하고 믿음을 선언한 까닭에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바 소망이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라면 항상 참음으로 기다릴 것이니라(롬 8 : 24, 25 참조)하는 말씀대로 그것이 올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것이 올 것이라고 확실히 기대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실체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역사의 과정 가운데 기대한 대로 어떤 일정한 시기에 실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가진 소망은, 그것이 어떠한 일정한 시기와 어떠한 일정한 지역에서 어떤 형태로 실현되기를 바랄 때 아주 구체적이고 명백해지는 것입니다."

본향을 향해 전진하는 나그네로서 일상 속에서 믿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걷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성경 본문 2, 히 11 : 17 - 히 12 : 2,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33쪽.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 11:18) 1)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ㄱ)네 2)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히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창48:14
(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히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출1:16, 출1:17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히 11: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히 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히 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 11: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히 11: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히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히 11: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히 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삼상23:14, 왕하1:8
(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사57:1
(히 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11:2-38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성경 본문 1, 히 11 : 1 - 16,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33쪽.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왕하2:16, 왕하2:17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 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히 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계21:14
(히 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히 11: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롬4:19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요8:56
(히 11: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고후4:18, 빌1:23
(히 11: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창11:31
(히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막8:38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믿음의 눈으로 늘 바라보며 일상을 살아가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