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0일 목요일

좁은 문과 좁은 길 3,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3쪽

“하나님께서 환난 핍박을 즐겨서 사람에게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 (중략) 어느 때는 얼마 동안 훈련을 시키느라고 주시지만 ‘잠시 잠깐 후에 다시 너희를 평안히 펴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중략)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고전 10:13)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당치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환난과 질고라는 것은 그 자체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고 신자의 신앙의 정도와 하나님의 배정(配定)하에서 신자를 길러내시는 양약으로 쓸 때에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과도하면 소용이 없고 부족한 것도 별로 그렇게 일이 안 되는 것이고 꼭 적시에 적당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 配 짝지어 줄 배, 定 정할 정 : 몫을 나누어 정함.

신앙의 정도와 하나님의 배정하에서 꼭 적시에 적당하게 주시는 환난과 질고가 길러내시는 양약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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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