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9일 수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7쪽

“아버지께서 저희가 좀 더 어떻게 인격으로서 장성하며 어떠한 사상을 포회하며 어떻게 문제를 생각해 나가야 하며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서 좀 더 영혼을 가진 사람답게, 그저 가장 단순한 조직으로만 되어 있어서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사는 사람이 아니고 깊은 생각과 사상을 가진 사람답게 정신을 차려서 깨달아 나아가도록 아버님의 계시의 내용과 가르침으로 풍성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신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그 보고(寶庫)와 풍성한 내용들을 인하여 저희들이 주께 감사드리지 아니할 수 없사옵나이다. 이제 그것이 우리 안에서 생명의 양식으로 충분히 공급되기를 원하오며 깨달아 알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리하여 주님의 자식으로서 거룩한 위치에 확실히 서게 하옵소서.”

1981년 2월 1일 주일 오전

2021년 9월 28일 화요일

바울의 문제를 판단할 능력이 없던 산헤드린,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6쪽

“‘네가 잘했다, 네가 잘못이다’ 하는 것이 명료하지 않을 때에는 그런 문제를 가지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몇 가지 조건에 의한 공식(formula)를 가지고 공리적으로 자기 종교적인 요구를 만족시키겠다고 하지 말고 한 인격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크게 가르쳐 주셨으니까 그런 것을 바르게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인격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크고 높게 배워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7일 월요일

멸망을 향해 치달아 가던 유대 사회에 참된 빛이 비침,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3쪽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충만한 계시 가운데 있고 거룩한 사상 가운데 있고 또 하나님이 쓰시는 그 거룩한 성신의 충만한 능력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울에게서 물 흐르듯이 나오는 충만한 계시가 기독교의 교리 체계를 세웠고 큰 사상의 기저(基底)를 다 준 것입니다. 또한 바울 자신이 그런 능력 있는 사상가였고 동시에 성신에 충만해서 가장 거룩한 인격으로 활동을 했으니까 바울과 접촉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기회입니다.”

바울을 통해 좀 더 배워 빛으로 생명으로 참된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5일 토요일

아무런 반성이 없는 이스라엘 일반 민중의 상태,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1쪽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찔린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는 과연 그런 죄인이다. 어찌할꼬?’ 하고서 나아온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소망이 있었고 빛을 찾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아온 사람들이 기독교인입니다. 요컨대 기독교는 전비(前非)에 대한 반성과 전비에 대한 정당한 평가 위에 늘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前非 : 이전에 저지른 잘못.

어떤 인간이 되고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지 어제와 오늘을 반성하는 지혜로움을 가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4일 금요일

역사를 통해 현저히 대조되는 두 가지 사실,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56쪽

“역사는 단순히 인간들끼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이 역사의 성격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큰 세력이 움직이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도 이 인류 역사 위에 능력적인 사실과 영광으로 함께 전진해 가면서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캄캄한 절망과 어두움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능력적인 사실과 영광을 보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하나님을 양심에 따라 섬겼다는 말의 의미,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49쪽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바 그 거룩한 계시에서 ‘이것은 죄다’ 하는 하나님의 가치 판단이 그 속에 있어야 양심도 그 가치 판단에 의존해서 ‘그러니까 이 죄는 행치 말아라. 의는 행하라’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사람을 죽여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를 만큼 암매하고 무지한 가운데로 빠져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도 일찍이 자기 양심을 따라서 기독교를 핍박했던 것이지 양심에서 하지 말라는데 억지로 혹은 포악이 좋아서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중략) ‘범사에 하나님을 섬기되 양심에 따라 섬겼다’ 할 때는 필연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인식의 터 위에서 그것이 가르쳐 주는 한에서 바른 데를 찾아 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말을 하거나 글을 쓰든지 하나님께서 보이신 바 그 거룩한 계시에 눈을 떠서 그 인식의 터 위에서 바른 데를 찾아 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1일 화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40쪽

“이 세대에도 저희들이 참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고 그러한 그릇들이 되려면 저회하고 편협한 위치, 아무것도 아닌 가장 비열한 위치에서 빙빙 도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하겠고 저희들이 주님을 향해서 주의 나라의 거룩한 도리를 알고 증거할 수 있는 거룩한 은사와 능력 가운데 확호히 늘 서야만 하겠사옵니아다.”
“주여, 저희들이 주께서 세우신 거룩한 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전진해 나가는 것인가에 대해서 용이하게 안일하게 생각지 않도록 하여 주시고 거기에 대한 저희의 책임은 무엇이며 과연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가, 그런 성숙성이 있는가를 반문케 하옵소서.”

1981년 1월 25일 주일 오전

2021년 9월 20일 월요일

동족을 향한 바울의 사랑,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39쪽

“조금 전에 두드려 맞고 막 야단이 났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런 연설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바울 선생은 성신의 충만함을 받았고 또 그렇게 인격이나 인품이 고도한 위치에 있어서 책임감이 철저하고 깊고 또 그의 사랑도 그렇게 철저하고 깊은 사람이었기에 거기서 이런 연설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신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을 따라 인격이나 인품이 자라나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8일 토요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다,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36쪽

“진리를 모르고 히브리주의의 강한 껍데기에 꽉 눌려 가지고 그 속에 들어앉아서 그 이상 나가지 못하고, 그 동굴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던 자기에게 동굴의 입구를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보여 주시고, 눈을 환연히 열어 주셔서 나갔다는 것입니다.”

눈을 환연히 열어 주셔서 예수님의 큰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그리스도의 초연성을 증거함,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34쪽

“바울 선생은 여기 폭도들에게 그러한 사실에 접촉할 수 있도록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반기독자였던 자기가 당장에 뒤집어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느냐 하면, 반기독자가 된 근거의 최저에 있으면서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그리스도는 인간이다. 야훼만이 신이다’ 하는 것인데 그것이 무너지고 ‘그리스도가 곧 그 야훼 신이다’ 하는 데로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속하여 주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합니다.

2021년 9월 16일 목요일

헤브라이즘의 독특성,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8쪽

“사람의 생활에는 그 두 가지 큰 중요한 지침과 규범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내가 한 인간으로서, 한 인격으로서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둘째는 내가 한 사회적인 존재인 까닭에 이 사회에 대해서 남에 대해서 어떠한 의무를 늘 짊어지고 있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부정당한가를 늘 바르게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계시에 입각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며 사회생활도 하고, 확호한 사관을 가지고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상적인 사회와 인간을 바라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5일 수요일

바울이 핍박을 받은 이유,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4쪽

“그러면 왜 하필 바울을 없애려고 하느냐? 왜 그런 시기와 증오가 발생하느냐 하면 최종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역사적인 전진을 저해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그것을 파괴하려는 마귀의 의도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자기에게 적응한 사람들을 그때그때 잡아서 그 사람의 증오심이라든지 암매라든지 깨닫지 못하는 것 등을 이용합니다. 그것이 마귀가 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역사적인 전진의 대열에 참여하여 성신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4일 화요일

히브리주의자 사울이 기독교를 핍박했던 이유 2,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2쪽

“기독교 역사상에서 사도 바울 선생의 위치가 아주 독특한데 그의 특성 중에 가장 큰 것 하나를 말하라고 하면 철저하다는 것입니다. 뜨뜻미지근하지 않고 철저하게 규명해서 늘 발본색원적(拔本塞源的)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 拔本塞源 : 뺄 발, 막을 색.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버려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함. ≪춘추좌씨전≫에 나온 말.

뜨뜻미지근하지 않고 철저하게 규명해서 늘 발본색원적(拔本塞源的)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3일 월요일

히브리주의자 사울이 기독교를 핍박했던 이유 1,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1쪽

“개혁 교회는 역사적으로 단순히 말씀과 성례뿐 아니라 또 하나는 권징이라는 것을 교회의 징표(mark)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불순을 숙청하고 깨끗이 하는 것이 개혁 교회의 가장 교회다운 특징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회가 교회인 것을 세상에 증시하려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방도로 나타나야 하고 둘째, 말씀은 볼 수 있는 형태로 공급되는데 그것이 성례입니다. 성례가 있어야 하고 셋째, 교회의 불순을 늘 제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순을 늘 제거하고 깨끗이 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옵소서.

2021년 9월 10일 금요일

바울의 사명과 책임감,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20쪽

“바울은 아주 예민한 사람이고 그런 것을 깊이 잘 아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자기 책임이며 무엇이 자기의 염결성(廉潔性)이며 위신(威信)인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 廉潔 : 청렴하고 결백함. 威信 : 위엄과 신망.
“이방과 임금들과 유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릇으로서의 임무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있는 곳에는 책임이 있고 임무가 있는 곳에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책임이며 염결성이고 위신인지 명확하게 알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9일 목요일

바울이 당한 환난의 의미, <사도행전9>, 제5강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연설, 117쪽

“사람 보기에는 부자유한 것 같고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그 거룩하신 뜻에 맡기고 성신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은 각각 그에게 주신 은사와 사명과 분수대로 자기의 책임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그 거룩하신 뜻에 맡기고 성신님만 의지하고 나아가, 주신 은사와 사명과 분수대로 책임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8일 수요일

기도,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110쪽

“때를 따라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요구를 억제하시면서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고귀한 도덕인 것을 가르쳐 주시고 이와 같이 주를 순종하여 그 임무를 잘 마치게 하시나이다. (중략) 저희에게 주신 것들은 가장 미미하고 작은 부분일지라도 저희의 힘에는 겨운 큰 것들이오니 이것들을 잘 감당해 나가게 하시고 정신을 차리고 큰 세계를 볼 수 있게 하옵소서.”

1981년 1월 18일 주일 오전

2021년 9월 7일 화요일

회심 후 바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109쪽

“주님께서 ‘너는 그렇게 하면 마음이 개운하고 개결(介潔)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내 계획은 그렇지 않다. 너를 저 멀리 이방 사람에게 보내려고 했으니 어서 나가거라’ 하신 것입니다. 그냥 바울 선생의 마음에 있는 그 개연(介然)한 심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자기의 책임을 다하게 두었다면 바울의 고집과 바울의 주장과 그의 인격으로 보아서는 거기서 순교했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재촉해서 ‘빨리 나가거라’ 하신 것입니다.” * 介潔하다 : 깔끔할 개. 깨끗할 결. 성품이 깨끗하고 굳다. 介然하다 : 굳게 지켜 변함이 없다.

종교적 감정으로 움직이지 말고 주의 계획대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6일 월요일

사도 바울이 처해 있던 상황,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104쪽

“물론 야고보도 훌륭한 감독이지만 그가 그 일에 대해서 철저한 사상가로서 자기 임무를 다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략) 요컨대 의사가 없다는 것보다도 능력의 부족과 철저한 해석의 부족 때문에 바울 선생과 같이 투철하게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로 학적으로 체계를 세워 가지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아마도 그가 쓴 듯하다고 하는데 야고보서를 보더라도 그런 사상 문제가 그렇게 심오하게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투철하게 논리적으로 체계를 세워 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4일 토요일

유대주의 신자들의 문제점,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100쪽

“사람들은 구원이라는 것을 ‘대문 안에 발만 들여놓으면 그만이다’ 하는 식으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특별히 한국에는 과거에 그것이 많았습니다. (중략) 교회의 의식과 제도와 활동은 가르쳐도 복음의 본질적이고 심오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처음에 전도를 받으면서 들은 내용 이상으로 별로 더 많이 가르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풍부한 내용을 성신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하나하나 배워나가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3일 금요일

예루살렘에 대한 사도 바울의 부채감,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96쪽

“유대주의의 지도자로 서 있었던 그 자리에 가서 어떤 바울인가를 다시 한번 증거해서 자기가 과거에 진도(眞道)를 핍박했던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이기 원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책임감이 왕성한 분입니다. 잘못을 항상 자기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책임감입니다.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 眞道 : 참된 도리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 늘 생각하고 항상 잘못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2일 목요일

바울이 쓴 13개의 서신,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94쪽

“사색하고 명상하고 기도하고, 친구가 오면 담화를 하고 지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한 결과로 자기 사상의 성숙한 내용을 완결하기 위해서 에베소서를 쓰고, 위대한 교회의 진리를 가르치고 위대한 기독론을 가르치는 골로새서를 씁니다.”

바울의 서신을 통해 성숙한 사상과 위대한 교회의 진리와 위대한 기독론을 배우게 하옵소서.

2021년 9월 1일 수요일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대한 우리의 신앙, <사도행전9>, 제4강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 92쪽

“신성하고 거룩한 정신과 또한 능력의 지배를 받는 까닭에 불순과 죄악적인 것으로 사상 내용을 왜곡할 위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순을 통제하셨다는 점에서 영감의 특이성이 있고”
“인간의 모든 사고 인식 작용으로 터득한 영역 이상의 광활하고 고귀한 세계의 사실들을 터득해서 전했다는 점, 또한 거기에 인간적인 약점과 부족으로 말미암은 불순(不純)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서 듣고 보되 사람의 소리라는 형식으로서 나타낸 것을 본다”

성경 66권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