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30일 금요일

신앙고백서에 나타나 있는 성례,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04쪽

“성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우리의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7장 1절에 나타난 것을 보면 (중략) 정식으로 모든 사람 앞에 ‘이 사람은 교인이다’ 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집행을 안 했으면 교인인지 아닌지 아직 불분명한 것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한 상이점(相異點)을 거기에 두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엄숙하게 약속하고 그리스도에게 봉사하고 살고 네 마음대로 네 행복을 추구하고 살지 말라는 엄숙한 예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주께 헌신하는 예식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봉사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의 계약의 복리들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어떤 징표로서, 세례를 받으면 느낄 수 있고 성찬을 먹으면 먹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그런 징표로서 신자들에게 표시되고 그것이 확인되고 봉인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내리고자 적용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중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8장은 세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 알고자 하니까 이것을 보는 것인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란 무엇이냐?”
“이것은 교회에 입교하는 예식으로서 중요하고 은혜 계약의 표도 되고,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졌다는 것과 중생했다는 표도 되고, 죄의 사유함을 받았다는 표도 되고, ‘나는 이제 하나님 앞에 전부를 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이제부터는 행보하겠습니다’ 하는 내 고백의 표도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가지고 있는 독특성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06쪽

“성례가 요한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것은 어떤가? (중략) 학자들이 뭐라고 하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고, 우리의 믿는 바와 성경이 가르친 바에 의해서 교회가 역사적으로 늘 믿고 나온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개종자들에게 주던 세례와는 달리 아주 풍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요한의 세례도 그와 같이 죄 있는 사람의 죄를 씻어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그 위치에 다시 놓아 준다는 의미인가? (중략) 결례는 분명히 복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략) 보통 유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위치와는 전혀 다른 아주 새롭고 높은 차원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의 사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 새로운 차원은 무엇입니까? (중략) 박두(迫頭)해 온 하나님 나라를 위해 확실한 준비를 하라는 자리입니다. (중략) ‘준비하기 위해서 이 세례를 받아라’ 하는 의미로 준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의 세례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 迫 : 닥칠 박. 
“그것 자체 안에 철두철미하게 도덕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네 심정을 온전히 정화했다는 도덕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성례는 ‘말씀’이 없으면 의미가 없음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08쪽

“요한의 세례에 서 있는 첫째 조건은 ‘네가 만일 근본적으로 네 마음에 성신님으로 말미암은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세례를 네게 줄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중략) 신약의 세례에 중요하게 붙어 다니는 큰 요소, 그것이 없으면 세례의 효과가 없게 되는데 그 요소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그것은 ‘말씀’입니다. 성례는 말씀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말씀은 독립해서 의미를 갖지만 성례는 상징에 불과한 까닭에 말씀이 같이 가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례를 받으면서 그 예식이라는 부호(symbol) 혹은 그 표(sign)에서 그 말씀을 연상하고 말씀이 약속한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유대 사람들이 결국 의식 그 자체가 효과를 내는 것같이 생각했습니다. (중략) 말씀에 대한 아무런 인식과 회억(回憶)이 없을지라도 의식 자체가 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톨릭의 세례관입니다. (중략)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은혜를 끼쳐서 그가 홀연히 여러 가지 은혜 가운데 변화를 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 回憶 : 돌아올 회, 생각할 억.
“제사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 까닭에 ‘양보다는 황소가 더 좋다’ 해서 큰 소를 드렸습니다.”
“교회가 그것이 없으면 교회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뭐냐 하면 말씀이 그 교회 안에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강단(講壇)이 있어야 합니다. (중략) 개혁 교회에서 교회라는 것을 말할 때에는 말씀이 정당하게 바르게 선포되고, 선포만 되는 것이 아니라 강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첫째 조건입니다.”
“요한의 세례의 특징 중 하나가 그것입니다. 말씀이 붙어 다녔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그 선두 조건으로 말씀이 오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heart) 가운데에서 성신님으로 역사해서 영혼의 저 심저(心底)에서부터 죄를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갈구와 신앙이 없이는 세례를 안 준다’ 하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목표였고 궁극적으로 세례를 주는 목적이 그것이었습니다.” * 底 : 바닥 저
“그뿐 아니라 요한이 거기다가 무엇을 늘 보했는가 하면 예리하게 아주 마음을 확실히 꼬집고 찌르는 듯한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말씀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는가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11쪽

“마치 우리 교회가 오래전부터 개혁 교회로, 죽 개혁 교회의 노선과 정신에 확실히 서 있었던 것같이 남들이 말하는 소리를 더러 들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서울에 있을 때에도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해 보면 그런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개혁 교회의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중략)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그것을 지시했다는 확증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하는 줄 압니까? 내가 무엇이기에 내가 나가서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므로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라고 하시는지 아닌지 먼저 잘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중요하지, 덮어놓고 ‘자기를 써서 이 일을 하시라’고 하면서 목사도 되려고 하고 종교인도 되려고 하고 교회도 세우고 다 합니다. 그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잘 알아보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28일 수요일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97쪽

“너희가 믿을 때에 성신을 받았느냐. (중략)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왜 다른 것은 안 묻고 ‘믿을 때에 성신을 받았느냐?’ 하고 물었겠는가”
“항상 모든 일에 하나님의 그 거룩한 계시와 그 은혜 가운데 살려고 하기보다 자기 선입관이나 생각이 앞서서 자기의 뜻대로 살면 성신께서 특별히 이런 것을 조명하셔서 깨닫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갈구하지도 않는데 그런 것이 들어가서 특별한 의미가 거기 그 사람에게 진개(陳開)될 이유가 없습니다.” * 陳 : 늘어놓을 진.
항상 모든 일에 하나님의 그 거룩한 계시와 그 은혜 가운데 살게 하사 성신께서 특별히 조명하시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사실상 두 개의 큰 문제 앞에서 어떤 확호한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 크라이시스(crisis)에 서 있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전통적인 관념이나 생각은 무엇이고 그에 따른 그 사람들의 태도는 어떤 것인가, 메시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무엇이었는가를 보면서 요한이나 우리 주 예수께서 그 사람들에게 준 것인 무엇인가 하면 최종적으로 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 예수님의 세례라는 한 개의 중요한 실(seal) 혹은 사인(sign)으로 나타났습니다. (중략) 그러한 사인으로서의 의미를 가져야만 비로소 성례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결례(潔禮)라는 것이나 제사를 드린다는 것도 하나의 사인입니다. (중략) 물을 뿌리든지 손을 씻든지 이것도 하나의 사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죄를 씻는 데에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물을 가지고 씻을 수 있는 죄는 세상에 없습니다.” * seal : 증표. 潔 : 몸 닦을 결.
“이런 징표로서 세례가 대표하는 실(實)내용이 무엇이냐 (중략)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주었다는 의미를 바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여기서 큰 착오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實 : 열매 실
“두 가지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례라는 것은 몇 번이든지 필요에 따라서 다시 고쳐서 받고 또 받아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마치 침례교회에서 ‘침례가 아니라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무효다’ 하는 것과 같이 세례의 징표라는 점을 무시해 버리고 양태(mode)를 더 중요히 생각하는 이런 일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둘째로, 만일 그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생각지 아니하면 세례가 가지고 있는 성례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바르게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톨릭처럼 ‘요한의 세례는 결국 성례의 의미를 갖지 않으므로 세례에 수반하는 독특한 은혜가 거기에 없다’ 하는 주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현실적으로 무슨 영향이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요컨대 참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을 종합적으로 좀 더 풍부하게 가지는 데서 그 사람의 사상 생활이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떠한 권선징악적인 적용을 금방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같이 생각한다면 모든 지식과 모든 탐구 역시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지식을 얻고 탐구하고, 참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을 종합적으로 좀 더 풍부하게 가지게 하옵소서.
“평생을 가도 하나님 나라의 그 거룩한 도리는 깊이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도리를 깊이 아는 것이 그 사람의 바른 정신과 또 인격을 함양해서 세워 주는 소이(所以)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도리를 깊이 알아 바른 정신과 인격을 함양해서 세워 나가게 하옵소서.
“그것 자체로 충분히 효과를 내고 성례로서의 의미를 다 가진다면 왜 에베소에 있는 열두 사람은 다시 세례를 받았는가”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01쪽

“성례라는 것이 무엇인가 (중략) ‘세례를 받고 너희 죄를 씻으라’ 하였는데 이 말씀에서 중요히 생각할 것은 이것이 소위 성례적 표현(sacramental language)이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서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표이고 실질상 효과와 능력은 내부에서 성신님이 일으키시는 것이다. 그래서 네 죄를 씻어 주신다’ 하는 의미입니다. (중략) 성신님이 그 안에서 역사하셨다는 역력한 증거가 있는 까닭에 이것을 행함으로써 첫째는 보이는 교회 안에 정식 회원으로서 입회를 하는 표를 삼고 둘째는 그 사람이 충분히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표적으로 그에게 실시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신앙고백으로만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 죄를 씻었다는 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할 때 ‘아, 그렇습니까’ 하고 받는 것입니다. 설령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검색까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중략) 창세기 17:10에도 있습니다. 거기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할례라는 것이 마치 계약인 것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성례는 유월절과 할례 두 가지이고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중략) 구약의 유월절과 할례라는 예전(禮典)은 개인적인 것보다 국민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민족적인 색채가 아닙니다. 민족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인인가 아닌가만 남는 것입니다.”
“둘째로 구약의 이 예전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 여러 가지 다른 것을 수반(隨伴)시켜서, 곁들여서 상징적으로 의식을 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제사나 결례도 다 구약의 성례를 보조하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그런데 신약은 어떠냐 하면 성찬이 없으면 세례가 완전히 성립 안 된다든지 또 세례가 없이는 성찬이 완전히 성립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이 없습니다. (중략) 셋째로 구약의 성례전들이 장차 오실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고 신약에 나타나는 성례들은 이미 오셔서 일을 이루신 예수님의 사실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 隨伴 : 따를 수, 짝 반.
“넷째로 (중략) 지배하시는 방법은 개조(個條)를 하나씩 하나씩 들어 놓고 이 개조에 대해서 어떤 조건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소위 구약의 배타주의(particularism)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세례나 성찬을 집행했을 때 내리시는 그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중생과 새로운 생명의 활동과 또 새사람의 일과 성신님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온전히 신령한 생활을 경영할 수 있게 특권을 내리시는 이런 풍성한 은혜와 같은 은혜를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중략) 그러나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는 그런 모든 것이 다 종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2021년 4월 23일 금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93쪽

“저희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 지대에서 돌아다니기가 심히 쉬우며 (중략)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의 도리의 심오하고 신령하고 거룩한 것들에 접촉하면서도 그 능력을 내 것으로 삼지 못하고 항상 영외에서 자기의 고집과 자기 마음대로의 선입관 가운데서 그냥 저회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옵나이다. 주께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크게 정신 차리고 깨우치게 하시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의 그 오묘(奧妙)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시며 이리하여 교회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은혜의 능력의 역사 가운데 확호하게 서게 하시고 인간적인 그릇된 도덕관이나 자기의 고집이나 자기의 편협한 종교관 가운데서 방황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1980년 10월 12일 주일 오전

전통적인 메시야관의 문제점,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8쪽

“요한은 이와 같이 사실상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 알아야 할 정당한 기독론의 핵심을 뽑아서 말했지만 사람들은 편견(prejudice)이 있는 까닭에 그렇게 못 알아들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세한 해석과 개념을 새로 구성하지 않는 이상,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말뜻과는 전연 같지 않습니다.”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9쪽

“전통적인 메시야관에 따르면 메시야가 구주로서 임한다는 생각은 전연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구주는 하나님뿐이시고 구속은 하나님으로만 말미암는다. 어떠한 중보자(中保者)도 필요하지 않다’ 하는 강한 신관과 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믿느냐,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론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mediator, μεσίτες)이시라는 것입니다.” * 保 : 도울 보. μεσίτης, ου, ὁ : 메시테스[mĕsitēs]. 중재자.
“중보자로서의 그의 임무를 제사라는 형식을 가지고 생각하고 표현하자면 그는 첫째로 제사장인 까닭에 당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서 하늘에 있는 성막(聖幕)에 들어가서 단번에 모든 죄를 도말(塗抹)하기 위한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것입니다. (중략)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열(班列)을 좇는 제사장으로서, 아론의 반열과 같이 중간에 변동하거나 하지 않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선지자로서 우리를 늘 가르치시고 셋째로, 왕으로서 우리 위에 군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 塗抹 : 칠할 도, 칠할 말. 발라서 드러나지 않게 가림. 班 : 나눌 반.
“지금은 하늘에 그저 구주로 앉아 계신다는 정도의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전통적으로 프로테스탄트의 신앙 중에서도 확연히 깊은 신학과 신앙을 가지고 가르친 이 개혁 교회의 신앙에서는 절대로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보자로서 제사장인 동시에 왕이시고 왕인 동시에 선지자이시고 선지자인 동시에 제사장이십니다. 그것을 다 지금도 행사하고 계시고 그 어느 것도 조금 적게 일하시는 부분이 없습니다. 다만 나라를 경영하시는 형태가 이렇게 생긴 것뿐입니다. (중략) 참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기묘하신 방법, 예수님이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기묘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그가 선지자로서 항상 성신님을 나에게 내주(內住)하게 하셨고 가르치게 하시며 그 거룩한 진리로 나에게 늘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못 믿는다면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요한의 세례 당시에 발생한 문제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91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중략) 그 죄를 속하려면 먼저 회개를 해야 하고 둘째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선행으로 맺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회개의 열매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주 유대적(Hebraistic)입니다.”
“오늘날에도 유대교에서는 이사야 53장에 있는 고난 받는 메시야를 한 인물로 생각지 아니하고 유대 사람 전체로 봅니다. 그래서 옛날에 유대 사람들이 메시야 시대가 도래(到來)하기 위해서 자자영영(孜孜營營) 노력하고 고통을 참고 애를 쓰고 매를 맞고 피땀을 흘렸지만 그 노력이 씨가 되어서 그 후에 메시야 왕국과 메시야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면 보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이런 것들이 요한의 세례 당시에 필연코 발생했던 일이고 세례 받은 사람들 안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 孜孜營營 : 힘쓸 자, 만들 영. 쉬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일함.
“그러면 요한의 세례 자체가 무효인가?”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그리스도를 깊이 바르게 알아야 함,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2쪽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그분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었고 어떻게 알고 뭐라고 가르쳐 주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야 그러한 정치 제도니까 일방 정치가들은 가서 악질적으로 짜 가지고 오고 국민들은 먹고 좋다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그것을 안 먹고 거부하고 자기는 아프리카 사람이나 인도 사람같이 그냥 쪼들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 하면 그럴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맹목적으로 멍하니 있지 말고 국가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저버리고 나가면 나중에 어디로 갈 것인가를 근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생각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생각을 하게 하옵소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측이 어느 때는 노동자들의 근로나 고통이나 여러 가지 것들을 이용해서 자본을 축적했는데도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뽐내고 자기 마음대로 쓰면서 낯을 내고 그것을 영광으로 알고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자본주의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일에 자유를 주고 또 그런 일에 구애(拘碍)가 없도록 한다는 점 때문에 악질적이고 악마주의적인 공산주의 같은 것을 대항할 때에는 이쪽에 서서 대항할 수밖에 없지만,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과 잘못에 대해서 그냥 용인하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 낯내다 [난내다] (활용형: 낯을 내다) 다른 사람 앞에 당당히 나서거나 지나치게 자랑하다. 拘碍 : 거리낄 구, 거리낄 애. 礙(거리낄 애)를 쓰기도 함. 거리끼거나 얽매임.
하나님 앞에서 좋은 태도를 가지게 하옵소서.
“그 교회의 강단이 그리스도를 얼마만큼 깊이 바르게 가르쳤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됩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한 그리스도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4쪽

“프로테스탄트의 우리 교회가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그 사람이 가톨릭에서 기독교 세례를 받고 왔다고 하면 ‘당신이 받은 영세(領洗)는 무효니까 다시 받으시오’ 하지 않는 것입니다.” * 領 : 다스릴, 옷깃, 목, 가장 요긴한 곳. 영세 : 세례하는 일
“요한은 예수님을 어떻게 알았느냐 (중략) ‘내 뒤에 오시는 분’이라고 해서 자기는 그의 안내자라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당신이 능력이 있는 분이므로 많은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바로 이어서 ‘그분은 성신과 불로써 세례를 주실 분이다. (중략) 그는 심판자이시다.’”
“대속(代贖)의 고통을 받으실 분 (중략) 선재(先在)하신 분이고, 31절에는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는 목적은 그분을 이스라엘에게 소개하고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중략) 성신으로써 세례를 주실 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심히 중요한 선언인데 (중략)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면서 요한이 소개하는 예수님을 알 때에 나사렛에서 오신 그분을 이스라엘에 약속한 메시야로서 그 메시야 개념의 테두리 안에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의 전통적인 신관(神觀)에 의하면 하나님 외에 다른 아무도 하나님과 동등으로 여길 수가 없습니다. (중략) 전통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반적인 신관이나 구원관에 아무런 수정을 가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들은 요한이 부르짖는 회개라는 문제와 죄악에 대한 예리한 지적 때문에 찔림을 받고 나와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2021년 4월 19일 월요일

에베소에 능력 있는 교회가 서려면,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77쪽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철저히 받고 거룩한 교회를 형성하려면 철저한 정신과 신앙의 위치에 서야지, 저렇게 중도소도 못 되고 어리삥삥하게 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터키 땅인데 그 일대를 놓고 보면 바울 선생의 생각에는 마치 고린도가 아가야의 중심이 되고 그다음에는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로마가 또 하나의 중심을 이루어 나가듯이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에베소가 중요한 중심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에서 전도를 해 보았으니까 갈라디아 땅에 있는 어느 곳을 생각해 보았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경과해 온 더베나 루스드라를 보았을 때 여기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중략) 에베소에 능력 있는 착실한 교회가 서려면 구원의 의식이 분명하고 성신의 거룩한 능력이 충만해서 그 충만한 능력 가운데서 교회의 기초를 세워 나갈 만하고 교회 역사의 처음을 장식해 나갈 만한 그런 핵심(core)이 될 중요한 인물들이 거기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사람들 머리 위에 손을 얹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옛날 한 24-5년 전에 임했던 오순절의 특별한 성신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신약 교회를 개시하기 위해서 필요한 성신님의 은사를 베풀어 주신다는 한 표호(標號)였습니다. 방언을 한다든지 예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표호를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제일 알아보기 쉬운 표호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 또 한 번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인(sign)으로, 시작하는 호각 소리 같은 표호로 그 사람들도 방언도 하고 예언을 한 것입니다.” * 標號 : 표할 표, 이름 호. 속의 것을 나타내 보이는 표지나 부호.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아야 했던 이유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80쪽

“우리의 그릇된 생각이나 등한한 생각이나 특별히 어떤 문제점도 생각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지나가는 이런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서 똑똑하게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할 수 있고 어떤 문제점이 있으면 생리적으로 얼른 마음에 걸리게끔 되어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중략) 우리는 흥미 때문에 배우는 것은 아니고 중요한 문제니까 그냥 넘어가지 않고 조금이라도 알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릇된 생각이나 등한한 생각이나 특별히 어떤 문제점도 생각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지나가는 이런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서 똑똑하게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할 수 있고 어떤 문제점이 있으면 생리적으로 얼른 마음에 걸리게끔 되어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러면 ‘요한의 세례는 무효했던 것이냐’ 하는 것이 첫째 문제입니다.”
“여기 있는 열두어 사람은 완전히 결핍이 되어 있기에 다시 세례를 받고 정신을 차리게 하나님께서 은혜로써 회복해 주신 것입니다.”
“세례 문제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과연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이름을 들을 만한 사람인가’ 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요소가 완전히 결핍되어 있는데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조건들은 가지고 있으려니 하고 자홀(自惚) 가운데, 스스로 만족 가운데 빠져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021년 4월 16일 금요일

구약의 배타주의와 신약의 보편주의,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75쪽

“구약이나 구이코노미 시대가 가지고 있는 배타주의(particularism)는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 교회 안에 들어와서 누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성격인 보편성(universalism)과 확실히 대조되는 것입니다. (중략) 의식법은 만일 법으로 따지면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절차법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과 사람끼리 ‘너는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라’ 하는 여러 가지 가르침들은 실체법입니다.”
“더 깊은 지식을 얻은 까닭에 변동되었다는 것보다는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전에는 ‘못 쓰겠다’ 하던 것도 ‘할 수 없다. 그냥 그대로 용인해야지’ 하고 전에 일호(一毫)도 용납하지 않던 것을 용납하는 식으로 대개 많이 변합니다.”
“신령한 주의(spiritualism, spirituality)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근거로 비추어 보자면 구약적인 철저한 자기 규제에도 못 미치고 신약이 주는 바 거룩한 성신으로 말미암은 은사의 생활에도 이르지 못하는, 중도 소도 못 되는 반거충이와 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대개 크리스천들이 이런 중간 지대에서, 회색 지대에서 그냥 구안(苟安) 가운데 빠져서 안일하게 지내기가 참 쉽습니다.” * 중도 소도 아니다 : ‘스님과 속세인도 아니다’의 뜻인데, 속인(俗人)을 소[牛]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苟安 : 구차할 구. 구차하게 편안과 안위를 구하는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 지대에서 돌아다니기가 심히 쉽사오니, 주께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거룩한 성신으로 말미암은 은사의 생활에 이르게 하옵소서.
“회색 지대의 구안 (중략)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특색도 없고 아무것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그런 불분명한 도덕적인 상태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2021년 4월 15일 목요일

신약과 구약의 관계,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73쪽

“오늘 이야기 가운데 우리가 볼 문제점이 무엇인가 하면, (중략)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를 또 받았다는 것이 여기 나타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아무런 효과도 없고 관련이 없는 것인가? (중략)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요한의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착실히 깨닫는 것이 옳지, 몰라도 그냥 지레짐작만 하고 지나간다면 중요한 진리를 놓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깊은 도리를 깨달을 재주가 없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며 착실히 깨달아 중요한 진리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깊은 도리를 깨닫게 하옵소서.
“새로운 하나님의 배제(配劑)와 경륜하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면 그것은 후에 새로운 배제인 신약의 시대에 들어와서 어떤 비중을 가지는가” * 配劑 : 여러 가지 약제를 배합함. 또는 그 약제. 짝 지어 줄 배, 배합할 제. 排布(배포). 늘어설 배, 펼 포. 생각을 해서 일을 이리저리 조리 있게 계획(計劃)함, 또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계획(計劃). dispense [dispéns] : 조제하다, 특면하다, 내놓다
“온전히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고 할 때에는 구약과 신약을 합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가 (중략) 구약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 또한 우리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며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지낸다면, 신약은 얼마나 잘 아는지 몰라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을 제대로 소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거스틴 선생이 (중략) ‘신약은 구약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신약에 있는 진리들은 다 구약 안에 있는 것이고 ‘신약은 결국 구약을 설명해 주는 책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중략) 가장 강조해준 책이 구약 이사야입니다. 신약 어떠한 책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신약을 바르게 깨달아 알고자 한다면 그 모태가 되는 큰 사실인 구약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식도 이렇게 바르게 배워야지 순서 없이 신약만 붙들고 앉아 있으면서 무엇을 아는 것같이 생각하는 그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식을 순서대로 바르게 배우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13일 화요일

하나님 말씀 가운데 숨어 있는 중요한 문제들, <사도행전8>, 제3강 요한의 세례 (1), 72쪽

“그러면 이런 구절을 읽어 갈 때에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하는 것과 문제가 되는 것을 볼 눈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오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중요성을 따질 때에 ‘그것이 얼마만큼 현실적인가, 즉 얼마만큼 적용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합니다. 보통은 ‘하나님 나라의 전체의 큰 진리 가운데에서 이것이 얼마나 막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할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전체 사상 구조라든지 또 하나님의 큰 경륜의 내용에 대해서 우리가 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매일의 실천 생활에서 얼마만큼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것을 얼른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항상 ‘내게 얼마만큼 유익하냐?’ 하고 공리적으로 생각하는 방식, 즉 공리적인 사고 형태를 못 버리는 것입니다.”
공리적인 사고 형태를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전체의 큰 진리 가운데에서 파악하고 하나님의 큰 경륜의 내용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12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67쪽

“주님이여, 저희 눈을 환연히 열어 주시고 저희를 드시사 이렇게 낮은 골짜기 속에서 캄캄한 데에서 위를 쳐다보되 조금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높이 올리사 넓은 세계를 보고 또한 일어나는 사태가 얼마나 긴박한 것인가를 보고 마귀의 세력과 흑암이 어떻게 팽창하고 커져서 지금 이 세계를 도도히 밀고 나가는가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거룩한 교회의 수가 많든지 적든지 하나하나가 당면해 있는 문제와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의 큰 내용이 무엇인가를 저희들이 깊이 깨닫도록 정신을 차리게 하여 주옵소서.”

1980년 10월 5일 주일 오전

바울 선생의 질문의 근본 취지,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64쪽

 “제1차 여행이나 2차 여행에서 많은 교회를 다 세웠고 그때 많은 신자가 그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신자들 하나하나가 오순절에 성신을 받듯이 했는가 하면 그런 기록이 도무지 없습니다. (중략) ‘성신을 받았다’는 말뜻은 결코 오순절적인 이양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결론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을 때에 성신 받았느냐’는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주후 64년에 바울 선생은 “중생의 씻음과 성신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딛 3:5)는 말씀을 했는데, (중략) 로마서 8:9이나 고린도전서 6:19-20이나 디도서 3:6이나 고린도전서 2:12, 3:16, (중략) 성신께서는 반드시 새로운 생명을 주시면서 새사람을 형성하고자 그 안에 들어가 계시는 것입니다. 성신이 내주하시고 또 성신이 인 치시고 또 성신이 세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성신의 도리는 바울 선생의 그 서신 가운데 아주 풍성하게 나옵니다. 물론 성신으로 먼저 중생해야 합니다.
“성신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하는 디도서 3:6의 표현처럼 중생 즉시 그 이후로는 성신이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이고 내주하신 성신의 그 현저한 역사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중략) 성신으로서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이루고 그 사명을 행하고 있는 흔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우니까 ‘믿을 때에 성신 받았느냐?’ 하고 물었고 ‘아닙니다. 우리는 성신이 있는 것도 듣지 못 했습니다’ 한 것입니다.”
성신으로서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이루고 그 사명을 행하게 하시며 그 흔적이 있게 하옵소서.
“그러면 믿은 이래로 성신의 역사의 자취는 무엇이냐? (중략) 그런데 너는 믿고 앉아서 무엇을 탐닉(耽溺)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느냐?” * 耽즐길 탐, 溺 빠질 닉.
“조금 있으면 64년부터 네로가 등극해서 박해를 시작합니다. 네로의 무서운 박해가 올 것인데 바울 선생도 그때 붙들려서 결국 68년경에 순교를 하셨는데 그러면 이런 네로의 박해가 오는 그 시대에 바울 선생은 환난에서 끝까지 견디고 참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답게 승리해야 할 것을 모든 교회에 늘 강조해서 가르친 것입니다.”
환난에서 끝까지 견디고 참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답게 승리하게 하옵소서.
“과거에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라는 무서운 박해가 오는데 그것도 모르고 앉아서 교회의 형태와 종교 행사에만 매달려서 거기서 떠들고 있다가 일단 문제가 오니까 아무런 준비 없이 넘어간 것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중략) 구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그렇게 용이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환경에서 이렇게 조용히 지내고 있으면 아무런 바람도 불지 않고 아무런 문제의 도전 같은 것도 없는 것인가?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못 보고 앉아 있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강한 문제들이 늘 앞에 떡 대두하고 있는데, 멀리 한국에 있는 문제까지 이야기할 것이 없이 당장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유치한 상태 가운데 그냥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021년 4월 7일 수요일

바울 선생의 성신론,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60쪽

“이 당시가 주후 54년인데 바울 선생이 성신론을 얼마만큼 풍성히 가지고 있었는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때부터 1년 혹은 2년 전에 52년과 53년에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가 있습니다. (중략) 데살로니가전서는 2차 선교 여행 마지막에 체류하던 고린도에 있을 때인 주후 52년에 쓴 것이고 데살로니가후서도 몇 달 지내서 53년 초에 거기서 아마 쓴 것 같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에 성신에 대해서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신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중략) 사람의 말로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신님께서 그 말씀을 쓰시고 그와 함께하셔서 역사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신이 그 속에서 역사해서 기쁨을 일으켰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신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중략) 하나님께서 내신 법칙이 있고 그 법칙대로 살도록 성신께서 힘을 주시고 인도하시는데 그것을 다 포기하고 제 마음대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신은 하나님의 법칙을 그 사람에게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여기서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신께서 하나님의 법칙을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인도하옵소서.
“고린도전서는 이때부터 한 3년 후에 썼습니다. 또한 로마서 8:14 이하에도 써 놓았는데 로마서는 지금부터 한 4년 후에 쓸 것입니다. 그다음에 갈라디아서에서도 무애지도(無礙地道), 신령한 생활의 도리 같은 것을 지금부터 3년 후에 아주 깊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 礙 : 거리낄 애.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알 수 있고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확인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무질러 버리고 제 마음대로 나가면 이것이 성신을 소멸하는 일입니다. 자기의 고집, 무지 경망, 부도덕으로 성신님께서 외부에서 그 크신 뜻을 이루어 나가시려고 하는 것이나 교회 앞에서 거룩한 은혜를 나타내시려는 것을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일이 많은데 그것이 성신을 소멸하는 일입니다.” * 무지르다 : 한 부분을 잘라버리다.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성신께서 이루어 나가시려는 그 크신 뜻을 받들게 하옵소서. 교회 앞에 거룩한 은혜를 나타내시옵소서.
“이런 도리는 후일에 골로새서 1:13이나 디도서 3:5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순결하여서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절개를 지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구별해 놓았고 둘째는 도덕적으로 순결해서 신절을 다 지키고 나가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순결하여서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절개를 지키게 하옵소서.
“바울 선생은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쓴 52년 53년에 이미 성신의 도리를 심오하고 풍성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넉넉히 규지(窺知)할 수 있습니다.” * 窺 : 엿볼 규

2021년 4월 6일 화요일

너희가 믿을 때에 성신을 받았느냐,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59쪽

“믿을 때에 성신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어떤 사람들이 해석하듯이 잘못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순절 때에 제자들이 한 일백 이십 명 모였다가 갑자기 모인 곳이 진동하고 크고 급한 바람이 부는 소리가 나고 그다음에 불같은 혀가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했다는 이 오순절 때의 특수한 이양적인 성신 강림을 항상 지언(指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도 어떻게 임했든지 간에 네가 방언은 해야 하고 네가 예언은 해야 하지 않느냐‘ 하고, 요새 어떤 교파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둘째 은혜‘라 해서 ’그 은혜를 또 받아야 한다‘ 하면서 그러한 것을 주장하고 말했겠는가? 그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입니다.”

2021년 4월 5일 월요일

에베소 교회에 필요했던 참된 능력,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58쪽

“그렇다면 이러한 제전을 큰일로 여기고 좋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중략) 무엇보다도 성신의 능력이 개개인에게 역사하셔서 첫째는 개인의 성품과 신앙의 절개와 성결의 생활을 하게 하는 데에서 특별히 그 은혜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 성결의 생활이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순결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앞에 신절(信節)을 다 지키는 것과 성신을 의지해서 죄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생활 양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신절 : 신의(信義) 있는 절조(節操: 마디 조, 잡을 조. 절개(節槪ㆍ節介)와 지조(志操))
“훨씬 초연한 경건의 내재력과 새사람다운 품성과 그리스도에 대한 간절한 사랑과 신절을 다하는 것, 이러한 것이라야만 가(可)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신절이라는 것을 합쳐서 한마디로 첫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열렬하게 사랑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타산(打算)을 하지 않는 그러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열렬하게 사랑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타산(打算)을 하지 않는 그러한 사랑을 다하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2일 금요일

에베소 교회의 중요성,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56쪽

“하나님께서도 그 종을 통해서 참된 초자연의 능력이 쓱쓱 발휘되게 하시고 그 능력은 마술하는 사람같이 사람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이 아니라 안수하면 병든 사람이 낫고 심지어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 놓아도 낫고 일어나는 희한한 일이 발생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하시느냐 하면, 초대에 교회의 큰 기초를 세워나가려고 할 때에 그 교회의 기초를 세울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기풍 가운데에 반신국적인 요소로서 마술이라는 것이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는데 그것을 퇴치하면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신비의 능력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을 모르느냐’ 하고 경고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기선 목사님 같은 분이 한 것은 죽은 사람을 살린 일입니다. 제가 그 목사님을 잘 압니다.”

교회에 도전해 오는 시대적 문제들, <사도행전8>, 제2강 제3차 전도 여행: 에베소, 52쪽

“자기 열정을 가지고 주께 열심히 봉사하려고 할 때 주님이 자기를 섬길 만한 천사가 없어서,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로도 부족해서 그 사람의 봉사를 그냥 받으려고 하시겠는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사람의 봉사가 주님 앞에 무엇을 보태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주를 의지하고 성신님을 의지해서 가르치신 그 도리대로 신령한 사람, 즉 새사람의 모양을 드러내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주를 의지하고 성신님을 의지해서 가르치신 그 도리대로 신령한 사람, 새사람의 모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형상적인 것, 유형적인(formal) 것에다 의미를 둔다는 것이 잘못이라 것입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물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신다니까 양보다는 황소가 더 좋고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행에 대해서도 양이 적은 것보다도 양이 많은 선행이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 돈도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강박관념(complex)을 가지는 식입니다.”
“1세기 어간은 계시 시대인 까닭에 만사에 그 행위 계시(act revelation)나 말씀의 계시(word revelation)가 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보이는 교회로 존재하려면 어떤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사회나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세상적인 성격, 강렬한 세상적인 특성들은 교회를 향해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공격을 안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 악한 자(ὁ πονηρός)에게 처해 있고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 ὁ πονηρός : 호 포네로스. 호 : 정관사 남성 단수 주격.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와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세계의 문제, 특별히 교회를 향해서 도전해 오는 흑암의 세력의 큰 공격과 작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와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세계의 문제, 특별히 교회를 향해서 도전해 오는 흑암의 세력의 큰 공격과 작용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옵소서.

2021년 4월 1일 목요일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스데반의 변론이 유대인들과 대립됨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67쪽

"사람이 항상 사상적으로 심오하거나 더욱 고결한 것을 탐구하고 추구하고 산다면 자기 자신의 현실에 대한 어떤 냉정하고 정직한 비판이 자신의 내부에서 내시(內示)에 의해 발생하든지 아니면 외부의 훌륭하고 우수한 이론에 의해서 자신이 그것을 터득해야 합니다."
"서책을 보았다든지 하면 '아, 그렇구나. 여기에 비추어 보면 내가 아주 잘못 생각했구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사람인 경우, 그중에서도 이편에서 상당히 적의를 가진 사람 쪽에서 그런 비판이 온다면 좀처럼 쉽게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반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현실에 대해 냉정하고 정직하게 비판하게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1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1쪽

"스데반의 사상과 정신으로 보아서는 그런 말도 함 직한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마디로 말하면 본질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가지고 따져라. 무엇이 참된 것이냐. 실제의 세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라. 왜 실제의 세계를 상징화하는 표상을 가지고 자꾸 떠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표상과 실제의 문제입니다. 신약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서 '표상이 아니라 실제다' 하는 것입니다."

본질과 실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2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5쪽

"성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작게 말할 때는 우리의 몸입니다. '너희 몸은 (중략) 너희 가운데 계신 성신의 전, 곧 성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상) 하고 우리의 몸을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 몸으로, 너희 몸뚱이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라'(고전 6:19하-20)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전의 본질은 우리 몸인줄 알게 하시고, 우리 몸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3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5쪽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하고 말씀했습니다.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의 교회는 모여 있는 이 집합을 이야기한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고 본질의 교회, 보편의 교회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즉 불가시(不可視)의 교회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시의 교회가 우리와 떨어져서 어디 딴 데 공중에 돌아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불가시이며 보편적이고 유구한 까닭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형태를 보일 때는 시간과 공간의 범주 안에 들어와서 형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모여 있는 보이는 교회의 형태입니다. 보이는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의 본질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는 이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의 보이는 형태입니다."

보이는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의 본질들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4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5쪽

"그리고 그것이 바로 커뮤니오 쌍토룸(communio sanctorum, 성도의 사귐)이라는 것입니다. 커뮤니오 쌍토룸이란 같이 모여서 교제하고 사랑하고 같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같이 사명을 받고 목적을 향해서 전진하는 이런 상태이지 집을 만들어 놓고 앉아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이 모여서 교제하고 사랑하고 같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같이 사명을 받고 목적을 향해서 전진하게 하옵소서.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5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8쪽

"그 당시에는 구약이 계시였는데 그 동일한 계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다 같이 한 하나님을 섬기고 그 계시 위에서 하나님을 찾는 생활 태도를 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반대의 위치에서 죽일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무엇이 작용한 것입니까? 물론 근본적으로 인간의 가장 부조리하고, 가장 의리 없는 타락의 본성인 증오심이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증오심이 작용했을지라도 그때 그 환경을 포착해서 (중략) 흑암의 세력의 주관자가 관여했던 것입니다."

타락한 본성의 작용을 주의하고, 흑암의 세력의 주관자가 관여하는 것을 분별케 하옵소서.


기도
<사도행전3>, 제3강 종교의 형태를 본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오류 중 89쪽

"오늘날도 주의 진리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그것을 받을지라도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계시를 가지고 있다는 많은 사람에게 훼파당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제든지 흔히 있기 쉽사옵니다. (중략) 그래도 주의 진리는 이 속에서 확호하게 서서 선양되어야 하겠사오니 주님, 저희들을 깨우쳐 주시사 말씀의 거룩하고 깊은 도리와 실제의 세계에 확호하게 서 있어서 계시된 표상이나 모형이 아니라 실제의 사실과 진실들을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은혜로 인도하시옵소서."

1974년 6월 12일 수요일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집사 스데반이 말씀 전파자가 된 일과 사도들의 태도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46쪽

"그들은 본질에 의거했습니다. 하나님을 존숭하고 그리스도를 존숭한 까닭에 하나님, 곧 그리스도의 신의 역사(役事)의 확실성과 거룩함을 깊이 존숭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이 역사하시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그 앞에서 근신하는 자세로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히 여겼던 것입니다."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심에 근신하며 감사하는 자세로 따르게 하옵소서.


치유의 기적과 말씀의 공급 1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49쪽

"그러니까 무턱대고 병원에 가서 자꾸 약만 달라고 할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 안에서 생명력이 충분히 발출되도록 해서 병을 극복할 수 있는 심정 가운데 들어가야 하고 희망을 가져야 하고 무슨 즐거움을 찾아야 하고 어떤 목표가 있어서 목표를 향한 격려를 얻어야 합니다."

생명력이 넘치고 기꺼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성신께서 이끌어 주옵소서.


치유의 기적과 말씀의 공급 2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49쪽

"모든 기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주고 성신님이 그것으로 역사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과 외로움을 씻기 위해서는 결국 말씀을 공급하는 말씀의 사역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신님께서 역사하셔서 고통과 어려움과 외로움을 씻어 내게 하옵소서.


치유의 기적과 말씀의 공급 3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50쪽

"개인에게 있는 마음의 병이라는 것이 결국 말씀에 의해서, 즉 하나님의 성신님이 말씀과 더블어 역사하심으로써 그 속에서 치유해 주셔야 한다"
"마음의 병이 고쳐져서 마음에 평안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런고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의 목적과 재창조의 크신 경륜과 목적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구원의 크신 목표와 크신 경륜에 대한 깨달음이 생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경륜에 대한 깨달음이 생기게 하옵소서.


치유의 기적과 말씀의 공급 4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52쪽

"문제는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이코노미의 정당하고 바른 전진이고 그러한 역사를 수립하고 건설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역사 위에 하나님의 거룩한 경륜이 정당하고 바르게 전진하게 하옵소서.


성전을 신성시했던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날도 주의할 점 1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59쪽

"말씀이 더 중요합니까, 말씀을 내신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까?"
"종교의 형태로서의 표증(token)이나 상징(symbol)을 가장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보다 존중하는 종교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며 참된 것인지 바르게 분별하게 하옵소서.


성전을 신성시했던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날도 주의할 점 2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60쪽

"그러면 그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궁극적인 근원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자기 행복에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좀더 만족을 얻고 행복을 얻는 데 골똘하면서 어떤 종교적인 형태와 제도와 의식(儀式)을 존숭해 나가는 까닭에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이 가령 정신적으로 성자(聖者)가 된다든지 어떤 고도적인 위치에 올라간다든지 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자기 속에 반(半) 의식적으로, 잠재의식적으로 도사리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성전을 신성시했던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날도 주의할 점 3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60쪽

"기도하면 아상(我相)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 기도하고 나면 기도하는 나의 상(相)이 자꾸 강하게 쥐어져서 '다시 한번 그 상을 반복해야겠다. 다시 한번 반복해야겠다' 하고 기도하는 나의 이미지를 반복하지 않으면 감정상 안정을 못 얻는다고 하면 벌써 병적인 상태로 들어간 것입니다. 기도를 했으면 한 만큼 그리스도의 상만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심정이 생겨야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심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하는 자기 자태가 자꾸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심정이 생기게 하옵소서.


기도 1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62쪽

"거룩하신 주님, 저희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참으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저희들 마음 가운데 자기(自己)가 더 나타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께 대한 사모와 사랑이 더욱 깊어지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하신 영광과 그 풍요하신 인간성과 아름다운 인격이 저희들의 인격적인 활동과 품성을 통해서 또한 사명을 수행해 나가는 생활을 통해서 더 현저하고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기도 2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62쪽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우리 주님이시요 하나님이신 것을 깊이 마음 가운데 새기고 간곡히 생각하며 스스로를 반성해서 자기의 행복, 자기의 성화(聖化), 자기의 무엇이나 자기(自己)라는 것이 자꾸 붙어 다니는가, 아니면 그런 것이 사라지고 오직 주님의 영광만이 차츰차츰 더욱 저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살피게 하시옵소서. 이리하여 주님의 나라의 참되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자기가 없어지며, 참으로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이 확실하여지고, 그러므로 이제 자기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므로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 살아 계신다는 이 사실이 저희 생활 가운데 맛보아 아는 사실로서 분명해지게 하시옵소서."


기도 3
<사도행전3>, 제2강 스데반을 고소한 이스라엘 백성 중 62쪽

"주님, 저희들의 연약한 것과 잘못되기 쉬운 여러 가지 것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성신의 큰 능력이 저희 안에서 역사하시사 참으로 역사(歷史)를 통해서 유구히 변함없이 나타내시려고 하는 참된 교회의 자태를 확실히 드러내고 살게 하시옵소서."

1974년 6월 5일 수요일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공회가 두 사도를 박해함 1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20쪽

"신성한 하나님의 이름과 위대한 정통의 이름으로 참된 것과 진리를 박해하는 핍박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든지 정통의 이름이든지 그 이름이 무엇이 되었든지 진리를 박해하는 자는 요한일서 4:3을 보면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입니다. 그때 공회의 박해는 예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늘 시인하게 하옵소서.


공회가 두 사도를 박해함 2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21쪽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아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 하였습니다. '너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즉 내주(內住)하시는 성신님이 이 세상의 어떤 신보다 크신 것이다. 그러니까 저들을 이기는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속하여 있게 하시고, 내주하시는 성신님을 의지하여 세상을 이기게 하옵소서.


공회가 두 사도를 박해함 3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21쪽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그 악한 자 마귀에게 속했느니라'(요일 5:19 참조) 하는 말도 했고, 바울 사도는 '그중에 이 세상의 신, 곧 이 세대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의 영화로운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고후 4:4 참조)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신이 항상 적그리스도적인 행동,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 세상에서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로 올바로 서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회가 두 사도를 박해함 4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24쪽

"권위의 집단 앞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렬하게 전파하면 거기에서는 굉장한 반동과 반작용이 일어나서 교회가 큰 박해를 받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박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악의 배후에는 사탄의 조직적인 대적(對敵)의 모략이 늘 움직인다는 것을 그대로 간과할 수가 없습니다. 적들이 박해를 하면서 스데반을 넘어뜨리는 것을 보면 거기에 충분한 음모가 있고 사전 계획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하옵소서. 


성전과 율법을 훼방했다는 고발과 스데반의 변론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30쪽

"하나님께서 성전 안에 계시냐. 너희들은 이렇게 맹렬하게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두어 놓고서 마치 하나님이 지역적으로 어떤 일정한 시공을 차지하고서 자기를 죽이고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신인 것처럼 이방인들의 신관(神觀)과 같은 신관을 가지고 신을 대하고 있지 않느냐. 신이 성전이라는 장소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일 아니냐. 원래 하나님께서는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분이다."

하나님을 시공에 가두거나 좁은 틀에 가두어 두려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스데반을 죽인 유대인들의 완고한 신관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33쪽

"'하나님이 한 분이시면 한 분이시지 어째서 그 옆에 예수님이 서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신론(二神論)이 됩니다."
"성신님이 주장(主掌)하셔서 자연스럽게 우리로 하여금 성부를 믿고 성자를 믿고 성신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이론을 알아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이라고 하면 한 인격에 대해서 사랑을 해야 하고, 즉 내 사랑을 부어야 하고 그리고 다른 인격이 그 사랑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또한 전달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덕의 완성이라는 것을 볼 때에도 절대로 일위일신(一位一神) 혹은 일위일체라는 관념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신님이 주장(主掌)하셔서 자연스럽게 우리로 하여금 성부를 믿고 성자를 믿고 성신을 믿게 하옵소서.


형식주의적인 종교는 참기독교를 박해함 1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36쪽

"거룩한 도리에 대한 박해가 어떻게 생기는가 하면 하나님께 대한 열성을 가지고 어떠한 종교적인 총 체계를 아주 엄격하고 성의 있게 적용할 때 필연적으로 파생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 세상에 살아가노라면 세상에 있는 여러 현상의 필연적이고 논리적인 결론이라는 것은 기독교를 박해하게 되어 있고 기독교를 반대하게 되는 것이지 기독교를 좋다고 여겨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환영을 받고 받아들여진다면 그 까닭은 무엇이냐 할 때 기독교 자체가 타협하고 변질된 까닭에 그런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타협하고 변질되지 않게 하옵소서.


형식주의적인 종교는 참기독교를 박해함 2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36쪽

"교회가 순결하게 서면 설수록 오히려 전통적인 기독교라는 무슨 주장(主張)이나 의식(意識)이나 운동이나 명의(名義,명분과 의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는 그런 교회를 사길시(蛇蝎視, 뱀이나 전갈처럼 여기고 아주 싫어함)하는 것입니다."

순결하게 서 나아가게 하옵소서.


형식주의적인 종교는 참기독교를 박해함 3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37쪽

"무서운 박해의 현실이 있는데도 교회가 세상에서 환영을 받고 이 세상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회 세력으로서 의미를 가지겠다고 하고 오히려 세상적인 관점이나 문화적인 관점에서 자꾸 의미를 가지려고 하게 되면 세상은 그것을 문화적인 운동의 하나 혹은 종교의 하나로서 용인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문화의 내용으로서 용인받는 것에 대해 나쁘다든지 좋다든지 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 않는 만큼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서로서로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의미를 찾지 않게 하옵소서.


형식주의적인 종교는 참기독교를 박해함 4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38쪽

"끝까지 순결하게 살고자 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장과 보호만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이 세상을 사랑하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요일 2:15) 하셨고, 또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마귀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장과 보호만을 믿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형식주의적인 종교는 참기독교를 박해함 5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38쪽

"'이 세상', 즉 호 코스모스라고 할 때에는 어떤 독특한 성격을 가진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성격은 다른 말로 할 때 '세상'이라는 성격으로써 율(律, 법 율,지을 율, 율하다 : 어떤 기준에 맞추어서 조처하다)할 그러한 요소들을 의미하는 것이지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집단과 움직임을 포함하는 소위 '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말을 써 놓아서 조금 오해하기 쉽지만, 이 세계를 지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우리가 다 살고 지내는 것이지 마귀가 지배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섭리하에 살고 지내게 하옵소서.


기도
<사도행전3>, 제1강 공회와 유대인들이 초대 교회를 핍박함 중 39쪽

"교회는 끝까지 순결해야 하고 본질적이어야 하겠사오므로 저희들도 세상에 있는 동안에 세상을 사랑치 않고 이 세상에서 소격(疎隔, 드물 소, 멀 격)을 당할지라도 항상 주님의 거룩한 보장을 믿고 주를 기쁘시게 하려는 이 거룩한 길로 올바로 서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1982년 7월 4일 주일 오전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