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0일 월요일

다메섹 노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일,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199쪽

“그 예수, 죽었으면 없어져 버렸어야 할 예수, 죽었으면 그 영혼이나 있지 육신이 그대로 있지 못할 예수가 영광 가운데 역력한 육신으로 나를 향해서 불렀다.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중략) 가까이 가지 못할 거리감을 주면서도 보이기는 역력하게 굉장히 크게 보인 것입니다. (중략) 물리학적인 법칙에서는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바울 선생과 같이 영민(英敏)하고 지식이 많은 이는 예수님을 만나 뵌 후에 그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멀리 계셔서 가까이 가지 못할 빛 가운데 거하시면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거기에서 이야기를 하셨는데도 나에게 그렇게 명료하고 가까이 그렇게 크게 나타나셨다. 도저히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나 감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현상으로 나타나 보이셨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거기에서 저희에게 명료하고 가까이 대하시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찬미하고 경배하고 높이고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7일 금요일

바울 선생이 해명한 위대한 메시야사상,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198쪽

“그들은(유대인들) 메시야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신화해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승낙치 않으면서도 그 속성상 신과 같이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바울 선생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뒤집었느냐 하면 ‘그는 신이었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땅에 오셔서 모든 점에 있어서 사람과 꼭 같이, 항상 모든 일에 초연한 능력을 발휘하시는 것이 아니라, 즉 그가 당하는 육신의 고통이나 심령상 고통을 당신의 능력으로 제어해서 오지 못하게 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 인생이 받는 모든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과 아픔을 다 당하시되 죄는 없으시느니라’(히 4:15) 여러분, 그것이 바울 선생이 해명해 놓은 위대한 메시야 사상입니다. ‘죄 없으신 그분은 또한 단순한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그런 것이다’ 이것이 그가 제시한 새로운 메시야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에 거기에서 마땅히 깨달아야 할 깊은 도리를 바르게 깨닫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6일 목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91쪽

“저희는 역사를 보는 눈이 천견(淺見)이고 단견(短見)이어서 사물을 관견(管見)하는 사람들이오나 저희가 성신을 의지하고 주께서 주신 거룩한 지혜를 받아서, 저희에게 주신 모든 진리가 가장 유효하게 주의 영광을 위해서 쓰이게 하시옵소서. (중략) 진실로 우리에게 주신 지혜가 논리적으로 순서 있게 바르게 사용되어야 할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게 하옵소서.” 

1968년 8월 25일 주일 오전

2020년 11월 25일 수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90쪽

“거룩하신 주님, 저희에게 주신 은사는 무슨 은사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가장 적절히 유효하게 최선을 다해서 사용해야 하고 그것이 어디에 유휴(遊休) 되거나 낭비되어 세상에서 허투루 소모되어서는 아니 될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나이다. 아버님께서 일찍이 그 사랑하시는 종 바울에게 주셨던 많은 지혜와 식견은 주께서 성신님으로 붙드심으로 인해 큰 통찰력으로 발휘되어서, 그의 생활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배우면서부터는 항상 가장 지혜 있게 행동하고 지혜 있게 생활을 해서, 그로 말미암아 복음이 오늘날 저희에게까지 미치는 큰 기초를 은혜롭게 세울 수 있었사옵나이다.”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복음을 전하는 데에 나타난 바울의 지혜,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9쪽

“성신의 인도함을 받고 점점 나아가면서 복음의 효과 있는 전달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항상 중요한 거점(據點)을 세워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민도(民度)와 깊은 정치적인 식견(識見)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라니까 오다가다 아무 데라도 들어가서 덮어놓고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시오’ 하고 돌아다닌 것이 아닙니다. 여기 보면 두 군데 암비볼리나 아볼로니아는 그냥 알과(戞過)했다고 했습니다.” 
* 民度 : 국민의 생활이나 문화 수준의 정도. 
 * 戞過 : 어떤 곳의 근처를 지나면서 그곳을 들르지 아니하고 그냥 지나감.  

성신의 인도함을 받고 점점 나아가 지혜로운 결정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3일 월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6,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7쪽

“스코틀랜드 국회가 일어나서 당장에 칼빈주의로 다 개종을 할 때에는 요한 낙스(John Knox, 1514-1572)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고 낙스는 칼빈의 밑에 와서 조용히 앉아서 공부를 하고 나갔던 사람입니다.”  

주재(主宰)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0일 금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5,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6쪽

“칼빈 선생은 제네바에 앉아서 자기 자신이 군중을 모아 가지고 거대한 개혁 운동을 할 수 있었지만 군중을 모아서 떠드는 것으로 개혁 운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개혁 운동이라는 것은 원칙의 문제이고 진리의 문제인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면, 배우고 나가서 그것을 크게 퍼트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는 자자 영영(孜孜營營)히 오디토리움(auditorium)에 앉아서 매일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 孜 힘쓸 자, 營 경영할, 지을 영. 자자영영하다 :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다. 

모든 통재(統宰)를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4,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6쪽

“루터는 결코 게르만 민족의 힘을 빌려서 라틴 족을 때리려고 하지도 않았고, 게르만의 민족 운동이나 시민 사회에서 당연하게 발흥(發興)하는 세력을 이용해서 가톨릭의 권위주의 체제를 뚜드려 부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하나님 나라의 일을 사람의 책략과 사람의 힘을 빌려서 하려고 할 때에는 일이 되지 않는다’ 하고서 끝까지 하나님 말씀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신께서 누구를 들어서 어떻게 싸우는가 보자’ 했을 때에, 성신께서 들어서 쓴 사람이 섹소니아 선제후(Elector of Saxony)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사람의 책략과 사람의 힘을 빌려서 하려고 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다 맡기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8일 수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3,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5쪽

“개혁 시대를 보면 우수한 인물들이 별과 같이 거기에 모여서 밀고 나아갔습니다. (중략) 대독일의 황제가 일어나서 루터와 항쟁해서 끝까지 죽여 버리려고 했지만 루터는 끝까지 자기의 원칙(principle)과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한 그가 주신 지혜를 가지고 가장 정당하게 움직여 나간 것입니다.” 

끝까지 원칙과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주신 지혜를 가지고 가장 정당하게 움직여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7일 화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2,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5쪽

“펠라기안(Pelagian)적인 그릇된 사상을 타매(唾罵)하고 바르게 비판하고 세운 어거스틴의 신학은 그 후에 칼빈 선생에 와서는 아르미니아니즘(Arminianism)을 타매하고 비판하고 나아가는 운동으로 다시 복귀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이런 역사적인 바른 신학을 포기하고 차라리 율법주의적이고 즉물주의적인 경건주의로 마구 흘러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경건주의도 못 되고 그냥 교회 기업주의, 처치애니티(churchianity)라는 것으로 자꾸 흘러 내려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 Pelagian : Pelagius주의자((원죄를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를 믿음)) 
* Arminianism : 아르미니우스설 ((인간의 자유와 능력을 구원에서 인정한 사상)) 
* churchianity : 특정 교회의 관습이나 이익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 

교회가 역사적인 바른 신학을 밀고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6일 월요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시대와 인물들 1,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4쪽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던 시기는 반드시 아주 우수한 두뇌와 우수한 정신들과 우수한 인품들이 교회 안에 모여 있을 때였습니다. 가령 교부철학(敎父哲學)의 완성과 동시에 바울 선생의 신학 이래로 신학의 대종을 세운 이가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입니다. 어거스틴의 두뇌는 아마 역사상 가장 종합적이고 우수한 두뇌 중 하나일 텐데 그는 철학의 세계에서도 위대한 교부 철학자로 그 시대를 장식했지만 무엇보다도 신학에 있어서, 즉 성경 해석에 있어서 깊고 오묘한 것을 투철하게 발견해 냈습니다.” 

아주 우수한 두뇌와 우수한 정신들과 우수한 인품들이 교회 안에 모이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3일 금요일

노래하는 사람의 예,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4쪽

“여러분, 살리아핀(Chaliapin, 1873-1938)이라는 유명한 가수를 아시지요? (중략) 그가 『메피스토펠레』(Mefistofele)라는 가극을 할 때 보면 (중략) 그렇게 마귀 노릇을 해서 사람들에게 ‘아, 마귀는 저런 것이다’ 하는 영감(inspiration)을 주는 것입니다. 한때는 살리아핀도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성당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기능이 교회에 있지 않고 자꾸만 사회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 이 세상 나라로 뻗어 나가서 그쪽에 자기의 안주지지(安住之地)와 성공과 빛과 영광을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혜도 그렇고 지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주의 영광을 위해 가장 적절히 유효하게 최선을 다해서 사용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2일 목요일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어디에 써야 하는가,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80쪽

“우수한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와서 교회의 프린시플(principle)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운영하고 그래서 바르게 역사를 지어서 다음 대(代)에 물려준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지혜나 지식 혹은 위대한 명철을 주시고 위대한 판단력을 주시고 위대한 예술적인 창조력을 주셨다면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영광의 한 부분씩을 가장 유효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주신 것이지 제멋대로 나아가서 이 세상만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프린시플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운영하고 그래서 바르게 역사를 지어서 다음 대에 물려주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1일 수요일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보는 지혜의 결핍 현상,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78쪽

“하나님 나라를 운전해 나가려고 할 때에, ‘거기에는 지모(智謀)가 필요 없고 사람의 명철이라는 것이 작용하지 않는다’ 하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사람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확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주신 은혜인 지혜나 지식이나 명철을 잘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앞을 늘 내다보고 바른 예산하에서 일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10일 화요일

하나님 나라의 일과 지혜 2,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76쪽

“프로그램이 서 있지 않은 전투는 만용(蠻勇)에 불과하고 결국 맹전(猛戰) 가운데 참패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계획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야 한다’ 하는 말, 즉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明哲)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하는 말씀을 ‘그러니까 우리의 명철이라는 것을 일체로 써서는 안 된다’ 이런 말로 바꾸어 놓으면 큰 망동(妄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프로그램을 세우고 계획을 세워 일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9일 월요일

하나님 나라의 일과 지혜 1, <사도행전7>, 제7강 성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함, 176쪽

“복음을 전할 때에는 어디든 닥치는 대로 문 앞에 이르러서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가운데 성신의 깊은 지혜를 가지고 목표를 세운 다음에 ‘여기서 하고 다음에는 어디로 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役事)를 땅 위에 구현(具現)시키려고 할 때에는,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국가의 국운(國運)을 반전시키고 판도(版圖)를 넓히려고 할 때에 가지는 정치적인 식견(識見)에 못지않은 위대한 식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기독교 역사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깊은 지혜를 가지고 목표를 세워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 땅에 구현하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6일 금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72쪽

“주님, 불사신(不死身)과 같은 이 찬연한 능력의 발현이 저희들 식구들 속에, 이 교회 안에 찬연하게 능력 있게 깃들고 나타나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여기서 더욱 그것이 빛나기를 간절히 기도하옵고 구하옵나이다. 저희 모든 현실적 사정을 주께서 아시오니 권고(眷顧)하옵소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사 모든 것을 쓰셔서 결국은 아버님의 영광을 드러내시옵소서. 모든 것을 쓰셔서 아버님의 영광을 저희를 통해서 드러내실 만큼 저희들은 장성해야 할 것이고 아버님께 전부를 맡기고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겠나이다.” 

1966년 9월 28일 수요일

2020년 11월 5일 목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71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들의 생활의 길에 아버님의 거룩한 나라의 영광과 능력이 충만케 하여 주셔서 우리의 인간적인 조건 여하를 불구하고 그 나라와 그 나라의 시민인 저희의 속사람의 순수한 능력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증진되어야 하겠고 저희의 생활을 통해서 더욱 아름답게 비쳐야 하겠사옵나이다. (중략) 그것이 저희 속에 늘 쌓여서 저희의 환경이 여하하든지 저희들을 통해서 늘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저희에게서 늘 강하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옵소서.”

2020년 11월 4일 수요일

바울과 실라의 찬송에 천지가 화답함 3,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71쪽

“그 후에 역사는 감연히 이렇게 하늘의 소리를 부르고 하늘의 세계에서 늘 사는 그 사람들의 목숨이 떨어지면서라도 하늘의 세계는 그대로 진행해서, 로마 제국이 아무리 그것을 눌러 보려고 했어도 그것은 도도한 바닷물과 같이 그냥 밀고 내려갔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의 역사는 한마디로 이 서전(緖戰)에서 나타난 하늘의 그 능력을 그대로 증거하면서 나아간 역사입니다.” 
* 緖 실마리 서. 

하늘의 소리를 늘 부르고 하늘의 세계에 늘 살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3일 화요일

바울과 실라의 찬송에 천지가 화답함 2,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70쪽

“자기의 경계가 하늘에 닿아 있을 때 비로소 하늘의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 하늘의 소리를 참으로 들었을 때에 그 사람들은 전에 어떠한 악대(樂隊)나 어떠한 합창대(chorus)나 어떤 예술가가 부르는 소리보다도 아주 기이하고 아주 심오하고 아주 특이하고 초연한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저의 경계가 하늘에 늘 닿아 있게 하옵소서.

2020년 11월 2일 월요일

바울과 실라의 찬송에 천지가 화답함 1, <사도행전7>, 제6강 빌립보 감옥에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송, 169쪽

“바울과 실라도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에 그들이 누구와 늘 관계하고 사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여기서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찬송입니다. 기도하고 울고 매달린다는 자기의 세계에 그냥 갇혀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의 세계에 마음이 있었던 까닭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왜 이렇습니까?’ 하고 울고 야단 내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껍데기는 토굴 속이지만 찬송이 나왔습니다. 그 속사람이 지금 하나님 나라의 세계에 딱 살고 앉아 있는 까닭에 그 나라의 의와 평강과 기쁨을 노래한 것입니다.”  
토굴 속에, 자기의 세계에 그냥 갇혀 있지 않고, 속사람은 늘 하나님 나라의 세계에 딱 살고 앉아서 그 나라의 의와 평강과 기쁨을 노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