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8일 금요일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5쪽

“각성해서, 돌밭이 되지 말고 길가가 되지 말고 가시떨기가 되지 말고 옥토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중략) 자기를 반성해서 ‘나는 길가인가, 가시밭인가, 옥토인가, 그렇지 않으면 돌밭인가’ 스스로 반성해 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을 거울삼아서 비춰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생명의 양식으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이것 자체가 나에게 오늘 뭐라고 하고 무엇을 재촉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양식이라는 건 사람 노릇을 하려면 당연히 먹어야 할 정신적인 양식입니다.”

각성을 하고 반성해서 길가인지 가시밭인지 옥토인지 살피고,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뭐라고 하고 무엇을 재촉하는지 알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27일 목요일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6,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4쪽

“중생은 사람의 의사 여하에 관계없이, 사람의 상태 여하에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독단의 대권을 가지고 만세 전에 선택하신 그 사람을 적시에 불러내시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대권의 작용입니다. 사람이 거기에 협력해서 마음 상태가 이렇게 되어야겠다고 가르칠 이유가 없습니다. (중략) 당신 있는 대로 먼저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서 작용하는 것은 자기의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고 전도자의 어떤 설명이나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고 오직 성신께서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면 술 먹던 사람도 예수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단의 대권을 가지고 만세 전에 선택하시고 적시에 불러내사 성신께서 역사하여 예수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5,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3쪽

“죽은 사람을 살려 놓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하시는 일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 놓으시기 위해서는 생명을 그에게 주셔야 합니다. 생명을 주신 다음에는 생명의 양식을 계속적으로 그에게 공급해 주시고 그러면 그는 계속적으로 잘 먹고 탈 없이 자라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생명을 주시고 생명의 양식을 계속적으로 공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적으로 잘 먹고 탈 없이 자라 나가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25일 화요일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4,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2쪽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빚어내느냐, 거기에 어떤 독특성이 있느냐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면 하나님과 정당하게 가져야 할 생명의 양식의 공급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양식을 먹고서 삶을 표현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정당하게 늘 먹고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살았다는 사람의 중요한 증좌(證左)인데, 그것이 전연 없는 사람이라면 그건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정당하게 늘 먹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24일 월요일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3,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2쪽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에 따르면 죽음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리킵니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면 제일 간단하면서도 가장 요령 있게 가장 본질적인 것을 들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죽음을 참으로 알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데 그에게서 떨어지면 그게 죽음이라는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늘 붙어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025년 2월 22일 토요일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2,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2쪽

“모르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걸 다 설명할 길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란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열 길 물 속보다도 더 깊고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가르치는가를 알아야 비로소 바르고 심오한 개념을 거기서 터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것을 배워 바르고 심오한 개념을 터득하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21일 금요일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1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어떻게 우리에게 어떠한 것에 대하여 더 바르게 깨닫게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언어의 발생과 언어 형성 과정, 그리고 그것이 내함하고 있는 의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중략) 소위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설명을 하는 것인데, 설명하는 그것이 개념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캐취(catch)한 전부를 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언어의 발생과 언어 형성 과정, 그리고 그것이 내함하고 있는 의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바르게 깨닫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20일 목요일

죽음이란 어떤 상태인가 2,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19쪽

“사람이 진짜로 죽었다는 것과 진짜로 살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다만 죽음의 현상 가운데 어떤 극히 미미한 한 부분의 상태를 가지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판단을 하게 되니까 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어떤지 잘 알 수 있는 조건이 불분명합니다.”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로 정신 현상을 연구해 봐도 꿈을 정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사람들이 느끼고 하는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그 본질을 가르쳐 주는 그 큰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들은 원래 그 죽음에 대한 근원과 본질적인 것은 잘 모르는 까닭에 그 본질이 주는 바 큰 자극을 자기가 받고 그것을 죽음이라는 말을 써서 표현을 해도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고 개념을 구체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19일 수요일

죽음이란 어떤 상태인가 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17쪽

“복음의 기초가 들어가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것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라는 차등 있는 결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한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 여하가 그 결실을 하고 못 하는 조건이 되는 까닭에 복음을 듣고 예수 믿고 구원을 받는 상태와는 전연 같지 않습니다. (중략) 속죄와 중생의 문제는 사람이 자의(自意)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내리신다는 것이 중요한 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원하시는 때에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중략) 죽은 사람 자신은 상관이 없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음으로 그 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되도록 성신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2025년 2월 18일 화요일

기도 2,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4쪽

“우리들이 다 같이 어떤 지경에서든지 하나님 앞에 항상 진리와 은혜의 길을 싫어하는 본질적인 진노의 자식의 경향을 원래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고, 그 옛사람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고 틈을 타서 저희에게서 발동하는 까닭에 주께서 항상 저희를 붙들어 주시고 주의 말씀의 깊이를 저희의 속에 깊이 심어 주시는 그 은혜를 거절하지 않고 늘 받게 합소서.”

1973년 2월 11일 주일 오전

2025년 2월 17일 월요일

기도 1,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3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님의 거룩한 말씀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전달될 때에 그 말씀이 성신님으로 역사하여 그에게 믿음을 더욱 주시기를 바라오며 그런 때에 주시는 바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지 않고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하시고 그러나 힘이 없는 걸 깨닫고 ‘주여, 나를 붙들어 주시고 힘 주시옵소서. 스스로는 어떻게 할 길이 없고 이 자연적인 품성은 항상 반대의 길을 걷고자 하나이다’ 하고 자기의 연약한 것과 그 자연의 품성이 반신적인 성격인 것을 고백하고 의지하게 합소서.”

2025년 2월 15일 토요일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6,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3쪽

“하나님 말씀 외에 다른 걸로 이래라 저래라 할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인사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인 까닭에 말씀을 전할 그릇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듣기 싫든지 좋든지 상관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 사람도 신실한 말씀 전달자입니다. 그리고 들은 말씀이 그 속에서 성신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이지 그 외에 달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이 속에서 성신으로 작용하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14일 금요일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5,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2쪽

“낙심 난 사람을 권고를 한다는 건 그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다가 잘 몰라 가지고 괴로움을 받았을 때 말씀을 풀어주는 데 있는 것”
“어느 때는 자기 마음 가운데 의심해서 방황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자기의 사정상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일일이 그 사람이 낙심 났다든지 신앙이 퇴보했다든지 그렇게 얼른 단정 않는 것입니다.”
“그의 전 생활, 긴 생활이 계속적으로 어떻게 향상해 가는가 하는 것만 주의해서 보는 것입니다.”

낙심한 교인을 권고하고 그이의 전 생활, 긴 생활이 계속적으로 어떻게 향상해 가는가 하는 것을 주의해서 보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13일 목요일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4,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2쪽

“교회가 억압을 한다든지 억제를 하는 것이 절대로 좋은 게 아닙니다. 강요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절대로 원칙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신이 그 속에서 말씀을 하시고 교회에서 강설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만 하는 것뿐이지 그 나머지는 절대로 개인적인 작용(influence)이나 공작을 하는 것 아닙니다.”

교회에서 강설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할 때, 하나님의 성신이 그 속에서 말씀을 하시옵소서.

2025년 2월 12일 수요일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3,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1쪽

“그가 위기에 처해서 본질적인 기독교를 안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 벌써 배반입니다. 무슨 형태가 바깥에 크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진실하게 교회를 봉사하고 나아가고 일원으로서 자기의 임무를 충실히 해야겠다는 이런 생각이 없이 그냥 예수 믿는다는 종교에 속해서 따라다니는 사람의 하나가 되겠다고 할 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진실하게 교회를 봉사하고 나아가고 일원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해나가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11일 화요일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2,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1쪽

“진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바위이고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아상, 자기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복, 자기 자신의 무엇 이것을 제일 전제로 하고 거기에 손해가 나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나갈 때에 그는 오히려 교회 그 자체의 엄밀하고 공고한 존재까지라도 항상 그 의미를 안 따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받은 바 말씀 몇 가지를 가지고라도 분기점에 서서 이럴 것인가 저럴 것인가를 결정할 때에 마음 가운데 시험을 받아 가지고 에이, 그럴 것 있느냐 하고 마음을 더욱 완고하게 하고 종래와 같은 생활을 그냥 지속하고, 그것이 자꾸 계속되면 이 시험이라는 게 더 큰 게 오고 더 큰 게 와서 마지막에는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상으로 진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10일 월요일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1,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0쪽

“교회를 어떻게 아는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아는 것입니다.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니까 고린도 교회에 바울이 한 편지와 같이 ‘네 육신을 의지해서 보면, 인간적으로 따지고 보면 너희는 잘난 것 하나도 없고 훌륭한 것 하나도 없다. 다 못나고 다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또 기독교로 보더라도 너희들은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니까 내가 너희들한테 신령한 사람에게 말하듯 할 수가 없어서 육신에 속한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한다. 너희가 어린아이고 아직 장성한 사람이 못됐다. 그러고 시기와 분쟁이 있고 만성적으로 그전에도 감당 못하고 지금도 감당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지만 그래도 그게 교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어도 결국은 고린도에 위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게 하나님께서 교회를 두셔서 고린도 교회의 큰 사명의 하나는 그 편지를 두었다가 이 세상에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로 두셔서 쓰시고자 하실 때 그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7일 금요일

성도의 교통(Communio Sanctorum) 4,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8쪽

“제도도 없고 예배당도 없던 제1세기 교회를 ‘사도 시대의 교회’라고 해서 교회 가운데 가장 표준의 교회라고 오늘날 자꾸 그러지 않습니까? (중략) 항상 모이는 것은 주의해서 열심히 모여서 서로 교통을 했습니다.”
“모이는 데에는 두 가지 교통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교통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고 둘째는 형제끼리 교통이 되는 까닭에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각성을 나누고 자기의 각성에 의해서 지낸 바를 이야기하고 사정을 말하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또 형제끼리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각성을 나누고 그 각성에 의해서 지낸 바를 이야기하고 사정을 말하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6일 목요일

성도의 교통(Communio Sanctorum) 3,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8쪽

“예배당에 갔으니까 이제 불가부득이 서로 얼굴을 맞대는 것이지요. 그러면 교통을 합니까? 그때는 교통하는 것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교통하려는 게 아니라 만났으니까 인사하고 또 만났으니까 그냥 획 달아나기 안됐으니까 수어 수작(數語酬酌)을 하고 그런 다음에는 또 적당하게 가 버립니다. (중략) 성찬을 행하는 것으로 커뮤니온이라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것을 우리가 먹어 가면서 ‘너희는 한 살을 먹고 한 피를 나눈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나의 생명의 연결로서 생각하고 교통해라.’ 그래서 그것을 커뮤니온 서비스(communion service)라고 합니다.”

하나의 생명의 연결로서 생각하고 교통하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5일 수요일

성도의 교통(Communio Sanctorum) 2,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7쪽

“예배가 끝나면 휘휘 둘러보고서 조금 있다 가 버리면 됩니다. 특별히 누구하고 시비 상관 할 것 없고 교회라는 것은 결국 내가 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리 하나 빌려 주는 집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성도끼리 교통하는 것 이 두 가지 요소 중에 하나만 빠져도 교회로서는 의미 없는 것입니다. 나는 내 골방에 앉아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와의 교통은 교회에서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있고 교회에 몸담은 까닭에 성도끼리 서로 교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다가다 만나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서로 찾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성도끼리 교통하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4일 화요일

성도의 교통(Communio Sanctorum) 1,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5쪽

“시험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때때로 분기점(crisis)이 오는 것입니다. 들어간 말씀이나 자기가 접촉하고 있는 기독교가 그를 그냥 가만 놓아두지 않고,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하고 형편 좋게 자기에게 적당하게 믿으려고 하는 걸 그냥 놓아두지 않고 열 마디 들은 데서 한 마디 혹은 백 마디 들은 데서 한 마디라도 어느 때는 성신께서 쓰셔서 ‘네가 완전히 들어오든지 나가든지 해라. 뭐 하는 것이냐’ 하고 매로 그를 한번 때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책하시는 분기점에서 주님을 위해서 전부를 바치는 결단을 하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3일 월요일

배교의 원인이 되는 바위 6,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4쪽

“일단 그 말씀이 쓰게, 칼과 같이 예리하게, 무섭게 북풍과 같이 경고하고 경책하고 그에게 ‘전부(全部)냐 전무(全無)냐’ 둘 중 하나를 결정하라고 결단을 요구하고 위기에다가 딱 세워두면 나는 그런 데에는 서기 싫다. 왜 내가 이렇게 그냥 억압에 눌려 가지고서 결정을 해야 하느냐? 나는 나대로 내 평안을 유지하고 나가겠다 하는 식입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형성한 소위 인간적인 안정, 이게 헬라적인 안정(εἰρήνη: 에이레네)인데 그런 인간적인 안정을 항구하게 지속할 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인간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이 경고하고 경책할 때 반대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5년 2월 1일 토요일

배교의 원인이 되는 바위 5,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3쪽

“그 바위가 무엇이 되었든지 궁극적으로 거기에 ‘자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령 물욕이라는 것도 결국 자기가 자기 행복을 위해서 뭘 보존하고 쓰겠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 행복 추구라든지 자기의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요구와 같은 종교적인 탐욕들이 다 바위입니다. 자기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귀찮고 마음을 괴롭게 할 조건들을 자기가 듣기 원치 않습니다.”

행복 추구라든지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요구와 같은 종교적인 탐욕을 좇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