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1일 금요일

교회의 정치 형태는 사명 수행의 도구임 1,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9쪽

“사실상 개인의 자각이 없이 교회만 혼자 자각하는 길이란 없습니다. 교회라는 것이 무슨 우리의 대뇌와 소뇌와 같은 작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라고 말할 때에 그것은 추상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적으로 구체적인 활동을 하면 그것은 교회의 머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하나하나의 인격자들의 활동을 통해서 늘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인격적인 활동으로 교회의 사회적인 구체적 활동을 늘 드러내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9일 수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10,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9쪽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이 교회 위에 분여(分與)되어 혹은 덮여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이 교회를 덮어서 거룩함이 나타난다 할 때 현실적으로는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이 덮여 있는 까닭에 땅 위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답게 하늘나라의 임무가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땅에다가 그냥 두시지 않고 하늘나라의 것으로 구별해 놓았습니다. 따라서 그 자체의 도덕적 위치는 항상 순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하다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나누어 받은 까닭에 하나님께 속한 것답게 하늘나라의 임무를 감당하여 항상 순수하고 거룩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8일 화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9,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8쪽

“교회가 거룩하다는 말은 필연적으로 사명과 관계되어 있는 말입니다. 교회가 사명을 생각한다면 먼저 사명을 각성할 수 있는 성숙성, 교회의 존재 의의를 자각할 수 있는 성숙성을 전제로 하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성숙성이 있어서 하나님이 불러서 임무를 맡기신다는 구별된 위치에서 비로소 구현적(具顯的)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의의를 자각할 수 있는 성숙성이 있어서 하나님이 불러서 임무를 맡기신다는 구별된 위치에서 구현적인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7일 월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8,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7쪽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생활이란 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여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중략) 그것은 결국 최후에 가서 먼저 자기 개인에게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생활을 나타내는 데서부터 시작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교우들이 대체로 바로 인식한 터 위에서 비로소 성숙한 교회로서의 자각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성숙한 교회란 하나의 교회로서 자기의 존재의 의미와 임무를 자각했을 때 비로소 성숙성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교회로서 존재의 의미와 임무를 자각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5일 토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7,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7쪽

“자기 가정에서 혈연 관계만으로는 좌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생각했는데 교회 안에서도 역시 가라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지식과 깨달음이 깊이 들어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고 생활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4일 금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6,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4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생각할 때 실제로 그러한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도덕적인 선과 예술적인 미와 또한 과학적인 진리를 탐구하고 나아가는 인간의 동일한 한 자아가 동시에 정욕적이고 동물적이며 그래서 아집(我執)과 아상(我相) 가운데로 빠져들어가게 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것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았지 분석해서 분리시켜 가지고 두 개의 인간으로 보시지 않았습니다.” * 我相 : 자기(自己)의 처지(處地)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그 하나의 인간이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 대신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계셔서, 그리스도의 심정의 구체적인 발휘로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저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3일 목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5,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3쪽

“내가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반란에 대해서 항상 주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 진단하거나 잘못 관찰할 때 결국은 도로(徒勞)를 하는 것입니다.” * 徒勞 : 헛되이 수고함.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반란에 대해서 항상 주의를 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2일 수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4,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3쪽

“나라는 것도 하나의 정치적인 조직체로 되어 있다 말입니다. ‘나’라는 것도 다스림을 받는 데가 있고 다스리는 기관이 있고 무엇을 표시하는 채널들이 딱딱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아주 교묘하고 정밀하게 조성되어 있는 것이 나라는 인간입니다. 나라는 인간에는 자기의 지식을 관장하는 지적인 기능이 있으며 자기의 정서를 관장하는 정서적 기능이 있고 또한 자기의 의지의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즉 정의적인 활동이나 지적인 활동, 기본적인 통각(統覺)의 작용 이런 것들이 항상 일사불란하게 잘 통제되어 있는 정치 조직과 같이 조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 統覺 : 경험이나 인식을 자기의 의식 속에서 종합하고 통일하는 작용. 統 큰 줄기 통.

완전히 통제되어서 흔들리지 않고 항상 일정한 방향을 향해서 행진하는 사실을 유지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1일 화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3,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2쪽

“그리스도적인 생활이라 하는 말에 비추어 볼 때 내가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는 생각할 것 없이 나 자신이 영혼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한 인격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산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는 생각할 것 없이 먼저 나 자신이 영혼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한 인격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0일 월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2,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2쪽

“평천하를 하려면 치국을 해야 하고 치국을 하려면 제가를 해야 하고 제가를 하려면 수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프로그램이 유교에는 딱 서 있는 것입니다. (중략) 서양 철학자는 ‘큰 상자 안에는 작은 상자가 들어가지만 작은 상자 안에는 큰 상자가 못 들어가는 것이다’ 하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말입니다. 우리가 항상 먼저 눈앞에 있고 자기가 가장 알기 쉬운 점부터 알아야 그 논리의 외연(外延)인 큰 자아체(自我體), 자기와 자기 주위를 둘러싼 대아(大我)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소아(小我)를 알아야 대아를 안다는 말과 같습니다.” *外延 : 일정한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사물의 범위. 延 끌 연.

항상 먼저 눈앞에 있고 가장 알기 쉬운 점부터 알아나가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18일 토요일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생활의 구현 1,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1쪽

“교회라 할 때는 문제가 큰 것입니다. 교회라고 할 때는 나만이 아니고 나 이외의 다른 형제들도 공동으로 생명의 한 부분 부분이 되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줄여서 작은 데로 들어가서 생각할 때 가장 미세한 단위적인 요소로서 그 중의 한 부분인 나 자신에게서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는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17일 금요일

교회의 거룩한 생활과 교회 정부와의 관계 4,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21쪽

“교회가 교회로서의 실존, 생명의 존재를 항상 드러내고 살려면 무엇보다도 형식 이전에 그 형식을 요하는 본질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인데 그 능력이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과 생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생활로 본질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교회로서의 실존, 생명의 존재를 항상 드러내고 살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16일 목요일

교회의 거룩한 생활과 교회 정부와의 관계 3,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19쪽

“교회가 거룩하다 할 때에 교회의 존재라는 것이 그 회(association)라는 의미가 되면 안 됩니다. 노회도 회요 총회도 회이지만 교회는 회(會)가 아닙니다. 노회나 총회라는 것은 치리회 즉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회집인 것입니다. 그 자체가 교회로서의 본질적인 속성을 구유(具有)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타입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 정부의 기구로서의 존재입니다. 가장 단위적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체로서의 한 교회입니다.”

거룩한 교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교회의 거룩한 생활과 교회 정부와의 관계 2,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18쪽

“현상의 세계에서 실질적으로 교회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느냐? 궁극적으로는 그 교회 회원 하나하나의 생활 전체가 교회의 생활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교회 회원이 바깥에 나가서 장사를 하든지 다른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결국 교회 생활의 한 부분을 항상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이라는 것은 교인들이 예배당에 모여서 종교적인 의식을 집행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또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생활 전체를 거룩하게 하여 교회가 현상의 세계에서 실질적으로 거룩한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13일 월요일

교회의 거룩한 생활과 교회 정부와의 관계 1, <교회에 대하여 3>, 제41강 교회의 거룩함(5), 318쪽

“교회의 회원 하나하나가 거룩한 사람으로서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교회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격을 발휘하는 회원 하나하나가 거룩하다는 점에서 비로소 교회의 거룩한 속성을 논할 수 있는 것이지 교회라는 제도나 교회라고 하는 어떤 추상적 존재를 거룩한 것이라고 상정하고 쓰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격을 발휘하여 거룩한 사람으로서 거룩한 생활을 하여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10일 금요일

기도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4쪽

“저희가 깨달은 바를 깊이 명심하여 아버님의 거룩한 참 속성이 우리에게 그대로 나누어져서 그것이 발휘되게 하시고 그것을 발휘하는 사람답게 우리의 시간이나 우리의 소유나 존재가 언제든지 변함이 없이 거룩한 위치와 거룩한 실용에서 뒤로 떨어지지 않기를 원하옵고 주께서 지키시사 보존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부족한 저희들을 붙드시사 바로 깨닫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더욱 허락하시고 총명을 허락하옵소서. 저희들이 이 착잡한 세대를 살면서 자칫하면 구실을 붙이고 타락하기도 쉽고 자칫하면 그 반동으로 반대쪽으로 타락해 나가기도 쉽사오니 항상 정당하고 바른길을 걷게 인도하시고 저희를 지켜 주시옵소서.”

1969년 날짜 미상

2024년 5월 9일 목요일

기도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3쪽

“자기의 종교가 우상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저희 속에 깊이 감응된다는 사실이 주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사실상 거룩함이라는 경계를 바로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저희가 이 오묘하고 신령한 도리를 바로 잘 깨달아서 저희뿐 아니라 저희와 함께 하는 교우들과 바로 나누고 바로 생활하여 바로 설 수 있는지 주님의 은혜를 받고자 이 시간도 모여서 주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했사오니 주님, 성신님으로 역사하사 거룩함이라는 말을 쓰시면서 이런 여러 가지 오묘한 도리와 그 안에 포함하사 가르쳐 주시는 것을 잘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2024년 5월 8일 수요일

기도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3쪽

“거룩하신 아버지, 어떻게 하여야 아버지의 거룩하심같이 저희가 거룩할 수 있는지 깊이 알아서 과연 아버님이 기뻐하시는 그 거룩한 위치에서 거룩한 태도로 거룩한 생활을 하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우리는 자칫 잘못 생각하여 거룩하겠노라고 하면서 자기의 종교 열정에 취하여 스스로 세운 규범과 규율의 노예가 되어서 거룩하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는 노예 행태(行態) 가운데 빠지기도 쉽고, 그렇지 않으면 거룩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고 무법주의자들처럼 아무 구별 없이 제멋대로 자기 쾌락을 좇기도 쉽사옵니다.” * 態 모양 태

2024년 5월 7일 화요일

안식의 의의 10,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2쪽

“누가 밥을 사먹었으니까, 차를 탔으니까 주일을 범했다고 야단 내는 식으로 따지지 말고 어떻게 적극적으로 주일을 보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주일에 적극적인 것을 안 하면 벌써 어떤 의미로 다 주일을 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항상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을 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는 그 말보다는 오히려 하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사랑하라, 자꾸 하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랑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6일 월요일

안식의 의의 9,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2쪽

“다른 날은 다른 문제가 와서 자꾸 나를 지배하지만 그 날만은 마음에 여유가 있습니다. 내가 하던 무슨 일도 오늘은 잊어버리고 누구하고 거래하는 것도 중단하고, 그래도 오늘만큼은 내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의 문제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생각을 해 보자 하고서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님과 서로 문답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만큼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의 문제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생각을 하여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님과 서로 문답을 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3일 금요일

안식의 의의 8,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2쪽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것을 중심으로 해서 서로 얘기도 주고받고 하는 이런 것이 신성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거룩히 지내는 한 방법입니다. 산보를 가고 싶으면 간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습니다. 자기의 처자들을 데리고 어디로 나가서 산을 바라보면서 바람을 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구경하러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마음의 상태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가 무엇인가 하는 데다가 자꾸 집중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일에 항상 마음의 상태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가 무엇인가 하는 데다가 자꾸 집중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2일 목요일

안식의 의의 7,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2쪽

“다른 날은 이 세상일에 분주하지만 이 날만은 우리에게 주신 모든 기능을 다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다가 주력하겠다는 태도가 언제든지 필요합니다. 또 교우들이 모여 가지고 그 날 같이 앉아서 점심을 먹고 하나님 앞에 찬송하는 시간도 보내고 앉아서 신령한 이야기도 할 수가 있습니다. 꼭 무슨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편안히 앉아서 하나님 나라의 여러 가지 얘기를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얘기의 중점을 모을 수가 있습니다.”

주일에 저에게 주신 모든 기능을 다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다가 주력하게 하옵소서.

2024년 5월 1일 수요일

안식의 의의 6,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1쪽

“교회가 주일을 구별되게 지킨다고 할 때는 먼저 마음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주일날 나는 다만 일을 않는다 한다면 우스운 얘기가 될 것입니다. (중략) 주일날 나가서 일하는 것은 안 되고 영화관에서 영화 보고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나는 주일 아침에 예배드렸으니까 오후에는 가서 어저께 읽던 관능적인 너절한 소설이나 계속 읽겠다고 앉아서 실컷 읽고 앉았으면 그 사람은 책벌(責罰)할 사람이 없는 것이고 누가 말할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구별입니까?” * 責 꾸짖을 책

주일을 먼저 마음으로 구별되게 지키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