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화요일

안식의 의의 5,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1쪽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주일날 안식을 못하느냐? 몸뚱이는 안식을 못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비록 네가 너의 상황 가운데서는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취하지 못할지라도 네 마음에서는 그것을 취하고 있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보유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처한 상황 가운데서는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취하지 못할지라도 마음에서는 그것을 취하고 보유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29일 월요일

안식의 의의 4,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1쪽

“주일의 안식이 무엇이냐 할 때 먼저 우리 속에 하나님 나라가 구현됐다는 사실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신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라’(롬 14:17)고 했습니다. 거기에 평안이 있는데 그것을 네가 보유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일날만 가지라는 것은 아니나 바로 그 날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그 경계를 충분히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로써 자기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평안의 경계를 충분히 구현하여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27일 토요일

안식의 의의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0쪽

“어떤 한 시간의 대표를 제정하신 하나님 뜻에는 안식(安息)의 의미가 늘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 있어서는 안식일(שבת)이라, 쉬는 날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렛날 쉬셨으니 너희도 그래라 하신 것입니다. 창조의 역사 가운데 있던 하나님의 리드미컬(rhythmical)한 것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너희도 행하라 그것입니다.” * 息 숨쉴 식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렛날 쉬셨듯이 그렇게 주일에 안식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26일 금요일

안식의 의의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0쪽

“불의한 사람은 불의한 대로 오너라 그 말입니다. ‘너의 죄짐을 지고 오라는 것이지 그것을 버리고 오라는 것 아니다. 문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네게 얼마만큼 생생하게 이루어지는가 보자. 네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졌느냐. 예수님께 가라. 그가 편히 쉬게 할 것이다. 그가 주는 안식을 네가 얻으리라’ 그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예수님께 가서, 편히 쉼을 얻고 주께서 주는 안식을 얻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25일 목요일

안식의 의의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9쪽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옷을 입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교회 교우 가운데 주일날 공장에 나가서 일하지 아니할 수 없는 사람이 있어서 그것으로 자기의 생계를 유지하겠다고 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목적과 성격, 하나님 나라의 운용 방법을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 않고 ‘너는 주일날 공장에서 일하니까 다른 특권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상황에서 어떤 형태를 취했다는 것으로 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거룩함의 속성의 본질적인 표준을 생각하여, 하나님 말씀을 배워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목적과 성격, 하나님 나라의 운용 방법을 체득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24일 수요일

교회로서 주일이 거룩하다는 문제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8쪽

“옛날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산업 구조와 산업 형태 하에서 그들이 집단적으로 지킬 수 있었던 사례와 혼동해 가지고 무엇을 강요하는 것은 성경을 바로 해석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원했는가? 성경이 어떤 방도까지도 일점 차착(差錯)이 없이 이천 년 전이나 삼천 년 전 방도 그대로 다 써야 거룩하다고 한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구약의 제사도 다 지내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 差 어긋날 차, 錯 어긋날 착. 어그러져서 순서가 틀리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함.

성경을 바로 해석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23일 화요일

교회로서 주일이 거룩하다는 문제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7쪽

“거룩한 교회가 하는 중요한 행동의 하나는 물론 예배입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예배할 수 있지만 주일날 모여서 예배한다는 이것이 벌써 교회적 행동입니다. 왜 하필 주일날 모여서 예배하느냐 하면 그것이 주일날을 거룩하게 보내는 중요한 방도이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모여서 예배함으로 주일날을 거룩하게 보내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22일 월요일

교회로서 주일이 거룩하다는 문제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6쪽

“주일이 거룩하게 현시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맡은 자는 개인이 아니고 교회인 것입니다. (중략) 내가 취하는 것은 늘 교회의 한 분깃으로서 일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무시하고 항상 자기 개인이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다 된 것같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왜냐하면 언제든지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자로서 영향력을 가진 대표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주일을 거룩한 날로 그 성격을 명시하는 생활 태도를 늘 공동으로 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주일을 거룩한 날로 그 성격을 명시하는 생활 태도를 늘 공동으로 표시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19일 금요일

주일이 거룩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4,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5쪽

“사실상 목자 된 사람의 책임은 자기 혼자의 문제가 전부가 아니고 자기 교구 전체의 상태 여하에 자기의 행동이 들어가는 것이오. 우리 교우들은 주일날 밥 사먹고 살아야 하고 주일날 나가서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어서 일하고 있는데 ‘나만은 주일날 아무것도 안 했으니 거룩합니다’ 하고 만족하는 심정을 못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위치에 있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 하고 같은 생각을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판자로 앉아 있지 말고 책임자로, 동거자로 같이 앉아 있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18일 목요일

주일이 거룩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4쪽

“이 날은 특별히 그 보좌 앞에 나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마음의 경계를 내가 확호히 보유하고, 그것이 나의 생활의 샘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날 보유한 거룩한 마음의 경계가 나의 생활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주일에 내가 하나님 앞에 경배합니다. 또 하나님을 모시어 기리고 높이고 찬양합니다. 이 날은 나 혼자가 아니라 내 형제와 더불어 같이 경배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룩한 집단으로서의 형제들과 함께 그 날 커뮤니온이라는 것을 또한 가지는 것입니다.”

주일에 보유한 거룩한 마음의 경계가 나의 생활의 표준이 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17일 수요일

주일이 거룩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4쪽

“이 날은 하나님께 직접으로 관계되는 일에 내가 관여해야 하겠다 하는 목적 의식이 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간접적인 어떤 선행이나 아름다운 일을 하기보다 이 날은 하나님 당신의 영광의 어전에 내가 직접 들어간다는 것이 주일을 보낼 때 가장 중요히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주일에 하나님을 위한 간접적인 어떤 선행이나 아름다운 일을 하기보다 하나님 당신의 영광의 어전에 직접 들어가 하나님께 직접으로 관계되는 일에 관여하게 하옵소서.

주일이 거룩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3쪽

“주일이 참으로 거룩하려면 먼저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확실한 사상과 신앙 가운데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시간은 운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적인 존재니까 내 생명은 시간적인 범주를 취해야만 발휘됩니다. 내 생명은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이 생명의 발휘도 하나님께 있다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나의 생명의 발휘 하나하나는 매시 매초의 것이 다 하나님 것이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비로소 생명의 발휘가 가능한 것이니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는 확실한 인식과 신앙이 필요합니다. 내가 사는 일생 동안의 시간이라는 것은 그것이 곧 하나님 손안에 있고 하나님의 것인 까닭에 내가 나의 시간이라고 스스로 쓸 것이 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쓴다 그것입니다.”

생명의 발휘 하나하나, 매시 매초의 것이 다 하나님 것이며 하나님의 손안에서 비로소 생명의 발휘가 가능한 것이니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는 확실한 인식과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주일의 참뜻과 교회 8,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0쪽

“언제든지 교회는 가급적 사상과 생활에 있어서 동일한 사람들끼리 교단을 가지려고 하는, 말하자면 원심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동지들끼리 자꾸 널리 결속하려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그저 우리 교회 하나만 따뜻하고 평안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에이, 심드렁한 그런 사람과는 상관 안 하련다’ 한다면 요컨대 그것은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생각이 부족한 사람의 경계입니다.”

교회가 가급적 사상과 생활에 있어서 동일한 사람들끼리 교단을 가지려는 원심적인 노력을 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주일의 참뜻과 교회 7,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0쪽

“교회라는 관념이 제1세기부터 무엇으로 표시되었는고 하니 외부에서 볼 때에는 성도의 교통(communion of saints)으로 나타났습니다. 교회란 성도가 서로 앉아서 마음을 주고 교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교회라야만 서로서로 알 수 있는 것인데 지교회 안에서 동지적인 결속을 해서 자기와 같은 위치에다 늘 끌어다 놓으려 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래서 서로서로 마음이 통하고 깨달은 바가 비슷하고 올라가는 데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까닭에 자연히 그것이 하나의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앉아서 마음을 주고 교통하며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나가게 하시옵소서.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주일의 참뜻과 교회 6,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0쪽

“주의 자녀는 다 같이 주님 앞에 앉기를 원하고 또 다 같이 앉을 것이지만 인간의 모든 제한상 우선 가능한 우리끼리 여기 앉아 있습니다, 하고 모이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 앉았으면 첫째는 아버지 앞에 경배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셋째로 중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아버지의 자식다운 자기의 품성이 거기서 확연히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품성이란 결국 사랑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주님 앞에 앉기를 원하고 아버지 앞에 경배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아버지의 자식다운 품성이 거기서 확연히 드러나 사랑으로 연결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11일 목요일

주일의 참뜻과 교회 5,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9쪽

“개인이 기도하면서도 얼마든지 경배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 마음의 경계가 늘 경배의 위치에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날은 나 혼자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나 혼자만 만나자는 것이 아니고 형제 된 자들과 함께 만나자는 것입니다. 교회의 보편성을 표시하는 바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명에 연결되어서 한 몸이 된 자들이 다 같이 함께 앉아서 같이 지내자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런 형식을 취하기 위해서 비록 완전한 형태는 아닐지라도 취한 형태가 한 지교회에서 교우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비록 완전한 형태는 아닐지라도 지교회에서 교우끼리 모여,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명에 연결되어서 한 몸이 된 자로서 다 같이 함께 앉아서 같이 지내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10일 수요일

주일의 참뜻과 교회 4,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9쪽

“하나님은 어디든지 존재하시니까 아무데 서더라도 거기 있으면 하나님 앞에 선 것이다 하는 그런 범신론적인 이론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존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안에 일정한 대면을 한다는 구체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일에 경배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안에 일정한 대면을 하여 하나님께 경배를 하며 인격적인 교제를 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9일 화요일

주일의 참뜻과 교회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9쪽

“경배받으시는 하나님은 신이신 까닭에 육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 가서 경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좌 앞에 나가서 절하고 그 슬하에 앉아서 아버지가 물으시면 대답하고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면 듣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를 보시는 것을 기뻐하시니까 와서 절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 발단이 하나님의 극진하신 인격적인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사업을 많이 하는 것을 기뻐하시기보다 먼저 자식으로서 나의 존재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내가 비록 못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 날은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으로서 나의 존재를 기뻐하시므로 내가 비록 못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주일은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2024년 4월 8일 월요일

주일의 참뜻과 교회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8쪽

“헌금이 자기 존재와 소유 전체의 대표인 것과 같이 주일은 시간의 대표인 것입니다. 주일은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님, 보시옵소서’ 하고 대표로 하루를 주님의 적극적인 목적을 위해 지내는 것인데, 그것은 오히려 선행을 하러 다니기보다는 주님의 슬하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날은 내가 아버지를 위해 바깥에 나가서 일하지만 이 날은 아버지의 눈앞에 나가서 뵙고 그 슬하에서 기쁨을 드리겠다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사 때때로 만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신(神)으로 아버지께 나오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고, 그렇게 찾으시는 아버지 앞에 가는 것입니다.”

주일을 주님의 적극적인 목적을 위해 지내며, 아버지의 눈앞에 나가서 뵙고 그 슬하에서 기쁨을 드리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5일 금요일

주일의 참뜻과 교회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8쪽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 하는 것도 내가 행동으로 계율 몇 가지를 지키는 것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특별히 주일과 관련해서 자기 마음이 거룩하다는 상태를 만들어 냈느냐, 거룩하다는 스테이트를 내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너는 평소에 주일의 참된 의의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서 거룩하다는 사상의 위치에 늘 서 있느냐 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주일은 모든 시간을 대표적으로 표시하는 날입니다.”

평소에 주일의 참된 의의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서 거룩하다는 사상의 위치에 늘 서 있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4일 목요일

거룩함의 도덕적 책임자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7쪽

“인격자에게 있어서는 모든 행동이 첫째가 아니고 그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중략) 하나님이 명시하신 표준을 위배하거나 도달치 못한 마음의 위치, 그로 말미암은 마음의 상태, 다시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지는 행동 이런 것이 다 죄입니다.”

모든 행동이 첫째가 아니고 그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함을 늘 유념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3일 수요일

거룩함의 도덕적 책임자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6쪽

“거룩한 그 날을 거룩되게 구별하신 근원자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날이 거룩히 현시되게 하는 도덕적 책임자는 나 자신인 것입니다. 그 날이 거룩히 현시되는 사실의 도덕적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시고 그 뜻을 인류의 역사 위에서 구현하시려고 할 때에 나를 책임자로 세우신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선하신 뜻을 가지셨을지라도 그 아름답고 선하신 뜻이 인류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현현되도록 하기 위해서 도덕적 책임자를 선정하시사 나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라 말입니다. 주일날이 현실적으로 사회적으로 현 역사의 세계에서 성화된 시간으로 나타나려면 언제든지 그 책임은 다른 누구가 아닌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시고 그 뜻을 인류의 역사 위에서 구현하시려고 할 때에 저를 책임자로 세우셨음을 깨닫고, 주일을 현실적으로 사회적으로 현 역사의 세계에서 성화된 시간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2일 화요일

거룩함의 도덕적 책임자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5쪽

“주일날이 참으로 거룩한 날이 되려면 그 거룩함이란 가치가 하나님 당신에게서 나온 까닭에 그 날은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구별된 태도를 취하는 점에서 비로소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당신을 구별된 분으로 독특하게 존숭하고 숭앙하는 의미에서 거룩한 것이지 종교적 계율 몇 가지를 세우고 그 계율을 지킴으로 주일날이 거룩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구별된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 당신을 구별된 분으로 독특하게 존숭하고 숭앙하게 하옵소서.

2024년 4월 1일 월요일

거룩함의 장본이신 하나님 5,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5쪽

“계시를 받은 자, 그와 같은 가치를 교시(敎示)받은 사람이 그렇다고 승인하고 거기에 부응하게 자기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 동안에는 그 시간은 거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일을 거룩하게 여겨라 했으면 거룩하게 여기라는 말을 듣는 것은 우리들 사람입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여기지 않으면 주일이 홀로 거룩해지지 않는다 말씀입니다.” * 敎示 : 가르쳐 보임

도덕적인 가치를 승인할 수 있는 의식의 기능을 발휘하여 주일을 거룩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