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1일 수요일

거룩한 생활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함 1, <교회에 대하여 3>, 제39강 교회의 거룩함(3), 267쪽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에 비추어서 이것이 거기에 부응한다든지 아니라든지 할 때 그것을 거룩하다든지 거룩하지 않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에 부응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이시는 것인데 계시로 보이시는 동시에 또한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심으로 보이십니다.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 가운데 심어 주심으로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감사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 그 표준에 의해서 무엇이 거룩하다든지 않다든지를 우리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심으로 무엇이 거룩한지 깨달아 나가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30일 화요일

성화의 본질과 특성 7, <교회에 대하여 3>, 제39강 교회의 거룩함(3), 264쪽

“하나님을 사랑하고 늘 믿고 의지하는 원칙 가운데에서, 그런 능력 가운데서 솟아 나오는 것이 선행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이신 뜻에 대한 의식적인 합치 혹은 순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최후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성신으로 중생한 자만이 이런 진정한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늘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보이신 뜻에 순응하여 그 원칙과 능력으로 성화의 열매인 선행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성신께서 이끌어 주시옵소서.

2024년 1월 29일 월요일

성화의 본질과 특성 6, <교회에 대하여 3>, 제39강 교회의 거룩함(3), 263쪽

“신자의 신령적 발전이라는 것은 이생에 있는 동안에 무흠(無欠)하게 되는 것은 아니고 늘 결핍이 따라다니기 마련이므로 신자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죄와 더불어는 항쟁해야만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신자의 생활은 우리 속에 있는 새사람과 옛사람의 끝없는 전쟁이며 특별히 훌륭한 신자의 생활에서는 그 전쟁이 강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신자라도 항상 자기의 죄를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용서해 주시기를 빌게 되는 것이올시다. 그 다음에 다시 좀더 나은 완전의 경지를 향하여 끝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이 신자의 생활입니다.” * 欠 : 모자랄 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언제든지 죄와 더불어 항쟁하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용서해 주시기를 빌며 다시 좀더 나은 완전의 경지를 향하여 끝없이 노력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26일 금요일

성화의 본질과 특성 5, <교회에 대하여 3>, 제39강 교회의 거룩함(3), 263쪽

“‘거룩하게 살라’ 하는 말씀의 권고를 따라서 우리의 영혼의 기능이 움직여 가지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 앞에 적극적으로 드리고 봉사하는 생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라는 말씀의 권고를 따라서 영혼의 기능이 움직여 거룩하게 살며, 그것이 생활 가운데 하나님 앞에 적극적으로 드리고 봉사하는 생활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25일 목요일

성화의 본질과 특성 4, <교회에 대하여 3>, 제39강 교회의 거룩함(3), 263쪽

“이 성화라는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는 기계적으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의 기능의 반응 혹은 부응에 의해서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영혼의 기능의 반응이라는 것은 두 면에서 중요히 나타나는데, 첫째는 악과 시험에 대해서 늘 대적한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고로 ‘너는 언제든지 계속적으로 악과 시험을 대적해야 한다’고 마음 가운데 경고가 와서 그 경고를 듣고 그대로 순응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계속적으로 악과 시험을 대적하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24일 수요일

성화의 본질과 특성 3, <교회에 대하여 3>, 제39강 교회의 거룩함(3), 263쪽

“성화는 두 부분에서 성립하는데 첫째 부분은 사람의 성품(nature)에서 점진적으로 죄의 오염과 부패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요, 둘째는 새로운 생명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서 하나님께 드린 생명을 자기가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성화란 이처럼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되는 한 행위 또는 과정인데 그 성화의 상태와 자질로서 거룩하다는 것은 사람의 심정 가운데서 발생하는 일로서 동시에 이것이 자연히 전 생활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성화의 자질로 거룩하다는 것이 자연히 전 생활에 영향을 주게 하여 주시옵소서.

2024년 1월 23일 화요일

성화의 본질과 특성 2, <교회에 대하여 3>, 제39강 교회의 거룩함(3), 262쪽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시고 또 무엇을 말하고 생각할 수도 있게 하시고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게도 하셨습니다. 그런 영혼의 기능을 우리에게 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이성의 판단과 주장에 의해 움직여서 우리의 영혼의 여러 기능들이 자유롭게 거룩함이라는 방향을 분명히 잡고 거룩하다는 위치와 생활 가운데 들어가기를 하나님은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이성의 판단과 주장에 의해 움직여서 우리의 영혼의 여러 기능들이 자유롭게 거룩함이라는 방향을 분명히 잡고 거룩하다는 위치와 생활 가운데 들어가게 하시옵소서.

2024년 1월 22일 월요일

성화의 본질과 특성 1, <교회에 대하여 3>, 제39강 교회의 거룩함(3), 262쪽

“거룩함이란 성신님의 계속적인 은혜로운 역사로 말미암아 죄인을 정화하고 또 그의 전 품성을 하나님의 형상처럼 새롭게 하는 것이며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정하신 바 선한 일들을 능히 행할 수 있도록 만든 성신의 역사 자체인데 그것을 성화(聖化)의 역사라고도 말합니다. (중략) 이것은 재창조적인 행동을 표시하는 말로서 흔히는 장기간의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지만, 또한 마침내 우리의 인생에서는 결코 완전에 도달하는 일이 없는 것이 이 성화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 선한 일들을 능히 행할 수 있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2024년 1월 18일 목요일

신약에 나타난 ‘거룩하다’는 말의 뜻, <교회에 대하여 3>, 제39강 교회의 거룩함(3), 261쪽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까이 맺고 그가 기쁘시게 받을 만한 봉사에 필요한 성질로서의 거룩함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의 존재를 놓고 말할 때는 구별된 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목적을 위해서 따로 떼어놓은 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자체의 성격은 어떤가 할 때 도덕적으로 순결하다는 것을 표시하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거룩하다 할 때에는 그 정신을 모든 불순과 오욕에서 온전히 구별해 놓은 것이고, 또 우리 육신의 욕망과 마음의 욕망이 이끌고 들어가는 죄악들을 전부 배척하고 부인해 나가는 정신을 거룩하다는 말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까이 맺고 기쁘시게 받을 만한 봉사에 필요한 거룩함이 있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기도,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5쪽

“참으로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할 줄 아옵나이다. (중략) 주님이 거룩하다는 사실을 바로 증시하게 하시옵소서. 그렇게 함으로 아버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수 있게 하시고 거룩함을 아버지께 돌려드리게 하옵소서. (중략) 어떤 장소나 어떤 물질을 거룩하다 할 때 항상 그 의미를 바로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교회가 거룩하다 할 때에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 속성의 큰 뜻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더욱 명백하게 알기를 원하옵나이다. (중략) 이 혼탁한 배교의 세대에 참 교회는 어떠한 것인가를 확실히 증명하고 실증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1967년 1월 9일 월요일

2024년 1월 15일 월요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5쪽

“내 생활이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이 아, 하나님 그분은 거룩한 분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는 사실(fact), 히스토리(history)를 만들고서 이것을 받으십시오 하는 상태라야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 하는 말뜻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도덕적 책임자는 누구냐 하면 나인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 할 때에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그렇게 거룩하게 드려야 할 책임자는 나다 그 말입니다.”

내 생활이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이 아, 하나님 그분은 거룩한 분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는 사실, 히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게 하시옵소서.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6,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3쪽

“만일 어떤 날을 구별했다 하는 것은 다만 구별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거룩하려면 도덕적인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시간이 도덕적 성격을 가질 수 없지만 도덕적 실재자가 그 날의 주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일날을 도덕적으로 성격화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할 기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인간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과 관계나 범주 위에 서 계신 하나님만은 그것을 성격화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 실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일날의 주인이 되셔야 그 거룩한 성격을 나누어 받을 수 있음을 알고, 몇 가지 계율을 지킴으로 주일을 성수하려는 잘못에서 벗어나게 하시옵소서.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5,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1쪽

“혹여 어떤 사람은 그 날 금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금식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나누어 받은 사람이 그 날 거룩한 도덕적 성격을 특수하게 표시하기 위하여 하는 행동이라고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인할 뿐 아니라 그것이 가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떠나서 종교적 계율의 조목으로서 자기가 그것을 지키느라고 한다면 참 의미 없는 것입니다.”

종교적 규율을 지키느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나누어 받고 도덕적 성격을 드러내게 하시옵소서.

2024년 1월 11일 목요일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4,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0쪽

“주일은 내가 이러이러한 종교적인 규율을 지킴으로써 이 날을 거룩히 지키겠다, 한다면 그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몇 가지 종교적 규율을 지키는 것으로 이 거룩함이라는 도덕적 성격이 성격화해서 나오지 않습니다. 가령 밥을 안 사먹고 집에 가서 찬밥만 먹고, 내가 자동차도 안 타고 걸어서 예배당에 가기만 하면 주일은 거룩하게 되고 나는 주일을 거룩히 지킨 것이냐? 거기에 어떤 도덕적인 가치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주일을 내가 종교적인 규율을 지킴으로써 성수하려는 잘못을 벗어나, 주일의 도덕적 실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속성을 나누어 받아 구현하게 하시옵소서.

2024년 1월 10일 수요일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3,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0쪽

“그러면 월요일은 어떤가? 그 시간에도 거룩한 실재자는 존재하사 당신의 거룩한 속성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의 어떠함같이 그 시간의 성격을 부여하려면 나는 월요일에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성수하고 월요일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는 그런 이론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또한 중요한 사상입니다.”

평일에도 거룩한 실재자는 존재하사 당신의 거룩한 속성을 드러내시므로 주일의 어떠함같이 평일에도 거룩하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9일 화요일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2,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0쪽 “

내가 밤낮 주일을 반대하고 무시하고 무관심했다 할지라도 엄연히 거기에는 도덕적 실재자가 어떤 시간을 도구로 사용하사 당신의 속성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날의 한 구체적인 대표가 주일입니다. 그래서 주일이 거룩하다 하는 말은 요컨대 이 시간이 대표하고 있는 바 도덕적 실재자가 계셔서 그 실재자의 거룩한 속성이 시간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인데, 우리는 다만 그 중요한 전례(sample)로서 주일을 지킨 것일 뿐입니다.”

주일을 대표하고 있는 바 도덕적 실재자가 계셔서 그 실재자의 거룩한 속성이 시간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을 덧입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8일 월요일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1,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9쪽

“성경에 거룩하라는 말이 나올 때 늘 주의해야 할 것은 도덕적인 실재자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일 성수의 문제에서도 그것은 그 시간이 도덕적 실재자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도덕적 실재자를 무시하고서 자기가 실재자가 되어서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사상을 갖는다면 위험한 우상에 빠져들어가는 것입니다.”

주일의 도덕적 실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주일이 거룩함을 알고 주일을 성수하게 하시옵소서.

2024년 1월 6일 토요일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10,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9쪽

“‘관념을 거룩하게 하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보통 얘기가 아닙니다. 관념을 명백히 하라든지 관념을 구체화하라든지 하면 내 속에 잘 정돈한다든지 뚜렷이 잠재시킨다든지 하는 정도에서 끝나겠지만, 도덕적인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는 말로써 거룩하게 하라고 했으면 전인적인 품성을 드러내는 총체적인 활동을 해야 하겠다 말입니다.”

관념을 거룩하게 하여, 전인적인 품성을 드러내는 총체적인 활동을 하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5일 금요일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9,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9쪽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에 단지 학문을 위해서 한다든지 혹은 자기의 지식을 풍부하게 하기 위하여 한다든지 하면 그것은 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는 거룩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드시 목표는 하나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신학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데에는 반드시 한 목표가 있는 것인데 그것은 거룩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았다 할 때도 그 관념이 우리에게 있음으로써 우리가 거룩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관념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순결한 것이 되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4일 목요일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8,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8쪽

“우리가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가 쓴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한다’는 말에다가 ‘신학을 한다’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다’든지 하는 말을 넣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아는 너희의 관념과 지식의 내용을 거룩하게 하라, 했다면 만물이 다 주께로부터 나와서 주로 말미암아서 주께로 돌아가는 큰 사실, 결국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으로써 거룩해야 할 것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도덕적 책임을 지는 초석으로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으로써 거룩하며 그것이 반드시 도덕적 책임을 지는 초석으로서 출발하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3일 수요일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7,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8쪽

“어떠한 사상이든지 형성된 사상은 그 사람의 도덕적인 행동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통 생각하고 다음에 뜻을 두고 그 다음에 정이 움직이고 그리고 나서 행동합니다. 그러나 정이 반드시 행동에 비해 앞서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있다가 정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사고 작용과 의지의 발동이란 사실은 앞서는 요소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을 생각을 하고 뜻을 두어 그것으로 도덕적인 성격을 가지고 행동을 하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2일 화요일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6,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7쪽

“참으로 신비한 사실이지만, 사람의 사고 작용이라는 것이 전 인격적인 작용 전체의 움직임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지 그것만 똑 떨어져 가지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고하면 필연적으로 지적인 감정(intellectual feeling)이라는 것이 움직이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심리학상 정조(情操: sentiment)라고 합니다. 센티먼트 없이 사고만 따로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 情 뜻 정, 操 잡을 조 : 정신(精神)의 활동(活動)에 따라 일어나는 복잡(複雜)하고 고상(高尙)한 감정(感情).

영혼의 기능이 조화 있게 총체적으로 작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게 하옵소서.

2024년 1월 1일 월요일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5,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7쪽

“‘내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누구를 거룩하게 하라는 말이냐 하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는 너희의 관념(idea), 너희의 사고의 결정(結晶)을 거룩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시간, 공간, 물질뿐 아니라 어떤 정신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거룩함’이라는 말을 적용한 예를 보는 것입니다.” * 結 맺을 결 晶 맑을 정 : 애써 노력(努力)하여 이루어진 보람 있는 결과(結果).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거룩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