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31일 월요일

개인의 사명 수행과 하나님의 인도,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78쪽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을 하겠다고 하고 내가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에도 냉정하고 공평하게 이지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가지신 것이야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능력을 나에게 베푸시려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다’ 하는 개연적이고 보편적인 막연한 소리 한마디를 가지고 무리한 모험을 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27일 목요일

바울 선생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방식, <사도행전8>, 제7강 데메드리오의 소동 (1), 176쪽

“주님의 인도를 받아 나아갈 때에, 바울 선생에게는 주의 직접 계시가 많이 역사했습니다. 가령 성찬에 관한 도리도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았다”(고전 11:23) 해서 직접 받은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마음 가운데 내시(內示)로서, 그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치밀하게 그리고 거룩한 목적이라는 크라이테리온(criterion)하에서 늘 생각해 나가서 그 일이 이루어야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 주께 기도하여 확신을 얻는 것이 중요한 또 한 가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확신에 의해서 움직이려면 자기 환경의 전개나 변동을 늘 주시해서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 criterion (판단이나 결정을 위한) 기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치밀하게 그리고 거룩한 목적이라는 크라이테리온(criterion)하에서 늘 생각해 나가고, 환경의 전개나 변동을 늘 주시해서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26일 수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72쪽

“오늘날에도 주께서는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개인 개인의 속에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욕망과 잘못된 심정도 붕괴되어 나가고 또한 사회에 있는 여러 가지 불의에 대해서 저희들이 주의 말씀에 의하여 바로 설 때에 그런 것들이 세력을 가지고 더 공격을 하지 못하고 무너져 나간다는 이 큰 사실 앞에서 저희가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주님의 그릇으로서 거룩히 쓰이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일에 합당한 자로 서기 위해서 주께서 부르셨음을 저희가 아옵는데 그 부르심에 대해서 응대하지 않고 항상 제 길을 걷는 암매와 잘못을 주의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 회개케 하시며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은혜를 바르게 찾아서 주께서 저희에게 무엇을 시키시려고 하시는가에 대해서도 정신 차리게 하옵소서.”

1980년 11월 2일 주일 오전

2021년 5월 25일 화요일

마귀의 속임,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70쪽

“마귀의 첫째 일은 속이는 것인데 말하자면 이것은 사탄의 연극입니다. 한쪽에서는 귀신이 들어가서 야단을 하고 다른 한쪽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자를 만들어서 등장해 가지고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면서 주고받고 재주를 부리는 연극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진리와 진리에 의한 참된 신령한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24일 월요일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감,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62쪽

“‘너희는 하나님께 속해 있지만 온 세상은 그 악한 자의 팔에 누워 있느니라’(요일 5:19) 하는 말씀에서 보듯이 지금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이 에베소, 그런 사람들을 뽑아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했습니다(참조. 골 1:13).”

사람은 장래 일을 모름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65쪽

“하나님의 대권에 대한 침해라는 것은 보통 이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죄악을 범하는 것보다 무서운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악을 행하는 자가 금방 벼락을 맞아 죽지 않는 까닭에, 사람끼리의 잘못에 대해서는 굉장히 큰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불측한 반역죄를 무서운 줄 모르고 담대하게 짓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암매 가운데 처해 있는 인간의 그릇된 심리입니다.” 
* 不測하다 : 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괘씸하고 엉큼하다. 測 헤아릴 측.

내가 알아서 내 걸음을 경영하려고 하거나 내가 이룬 것같이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21일 금요일

에베소가 가지고 있는 특성,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52쪽

“이 도시에는 아데미의 신전(神殿)이 있었습니다. (중략)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한 신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데미 신당을 거기에 놓아두고 그 큰 신궁지기 노릇, 그것을 수호하고 있는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데에 에베소의 독특한 성격이 있었습니다. (중략) 아데미 신당이 있다는 것은 에베소 경제에도 굉장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중략) 은장색(銀匠色)들이 ‘아데미의 순례자들에게 팔았던 것을 점점 쇠퇴하게 한다’ 하고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 銀匠色 : 금, 은, 구리 따위의 세공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은장이.
“마술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서 여러 종류의 마술을, 요술을 하든지 점을 치든지 그렇지 않으면 소위 축마(逐魔), 축귀(逐鬼)라 해서 귀신을 쫓아내는 이런 일을 열심히 하는 까닭에 그런 책들이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중략) 행복을 추구하면서 혹은 액(厄)을 피하면서 잘살기 위해서 앞길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장래를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마음의 요구에 대응해서 (중략)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중략) 그것을 미끼로 장사를 한 것입니다.” * 逐 쫓을 축. 厄 재앙 액.
“고대 수메르 사람들, 바벨론 사람들, 갈대아 사람들에게 그런 것이 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당시에 에베소에는 특별히 그런 것이 심했습니다.”
“오만 개의 은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은화(銀貨)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공인 화폐는 데나리우스이지만, 그 이전에 알렉산더 때에도 있었고 헬라 시대에 쓰던 드라크마라는 은화가 있습니다. 그것이 다 은으로 만든 것입니다. 드라크마는 데나리와 같은 값으로 통용되었습니다. (중략) 한 데나리는 노동자가 나가서 하루 일해서 받는 품삯이었으니까 오만 명의 노동자가 일해서 받을 품삯만큼 값이 나가는 책을 모아서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장래 일을 알기 원하는 심정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55쪽

“바울 선생이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속죄함을 얻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의 자태가 차츰차츰 명확하게 형성되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장래를 사모하게 하셨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능히 알 수 없도록 만드셨다(참조. 전 8:7)고 가르쳤는데 사람들은 그 장래의 일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한 이후에 장래 일을 알기를 원하는 심정은 버쩍 하나의 강렬한 욕망으로 늘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 길을 제가 걷겠다고 하는 것, 즉 자기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서 자기가 자기의 길을 결정해서 가겠다고 한 것이 최초의 죄악의 아주 가장 강렬한 성격인데, 이것을 가진 이래로는 장래를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사람은 장래 일이 불안한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장래 일을 알려고 할 때에 알 수 있도록 별달리 문을 열어 주셨느냐 하면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시고 미리 보아야 할 것들을 보게 해 주시는 이 거룩한 계시의 사실과 그 범위를 떠나서 그 이외의 사특한 방법으로 자기의 장래를 예료(豫料)하려고 하고 인간의 장래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정욕적인 행동 경향입니다.” * 豫 미리 예, 料 헤아릴 료.

이방의 괴악한 종교행습을 엄히 경계하심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58쪽

“몰렉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이렇게 불로 사르는 제사를 지냈는데, (중략)암몬 사람 모압 사람들의 가장 괴악한 우상입니다. 우상 숭배의 방법으로서 제사를 드릴 때에 불을 때서 벌겋게 단 우상에다 살아 있는 자식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불 가운데로 지나가서 물론 타 죽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보면 재판장이 재판을 하려고 재판정에 들어가면서 거기까지 가는 동안 몇 발에 떨어져야 한다는 관념이 있어서 그러면 재수가 있고 그 수를 어기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척척 걸어가다가 하나가 모자라니까 거기는 잔 디딤으로 한 번을 더 디뎌서 그 수를 채우고 올라갔다고 그려 놓은 장면이 있습니다.”
“복술이라고 할 때에는 많은 경우에 무슨 신에게 접해서 점을 쳐 줍니다. 신에게 접해서 죽은 사람의 일까지라도 말한다고 해서 명도(冥途), 명도라는 것은 죽음 건너편 세계, 유명(幽冥)의 일인데 명도의 신에게 접한 자는 명도 점쟁이라 해서 또 그런 방면의 점을 자꾸 치는 것입니다. (중략) 요술(妖術)을 한다는 것도 그냥 기술(奇術)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에 접한 자의 이야기입니다.” * 冥 어두울 명, 途 길도. 幽 그윽할 유. 幽冥 : 저승. 奇 기이할 기.
“무당이란 가장 악질적인 것입니다. 신을 대리해서 신의 세계에 자기가 중매가 되어 가지고서 활동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진언자는 특별히 무슨 말를 턱 건네 가지고 그 말에 의해서 무엇이 된다고 하는 자입니다. 또 박수도 가장 괴악한 자로서 장래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지시와 은혜 가운데에서 장래를 예료(豫料)하는 것 이외에 절대로 다른 어떤 방법으로 자기가 모르는 세계를 알려고 장난이나 농으로라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아주 막대한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파렴치하다든지 어떤 도덕적 생활을 실패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 豫 미리 예, 料 헤아릴 료.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지시와 은혜 가운데에서 장래를 예료(豫料)하는 것 이외에 절대로 다른 어떤 방법으로 자기가 모르는 세계를 알려고 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18일 화요일

바울의 에베소 체류, <사도행전8>, 제6강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 151쪽

“54-57년까지의 세 번째 전도 여행 가운데서 (중략) 주의 제자로 자임(自任)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다시 세례를 준 일까지를 우리가 배웠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의 도를 전파하고 권면했습니다.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 왕국입니다. 메시야 왕국을 다른 데서 바라지 않고 이미 오신, 왕이신 예수님께 돌아와서 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할 것을 여기서 가르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강론하고 권면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져 가지고 듣지 않을 뿐 아니라 공중 앞에서 공공연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도리, 참된 하나님 나라의 도를 비방했습니다. (중략) 그러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람들과 다투면서 거기서 그냥 버티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경우에는 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 공연히 그들을 붙들고 시비를 하고 또 불쾌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말을 듣지도 않고 수긍하지도 않고 그대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데 그대로 유지하고 나갈 이유가 없다’ 생각하고 거기서 석 달 동안 있은 후에는 회당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두란노라는 서원(書院), 즉 학교를 빌렸습니다. 이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 선생은 담대하게 강론을 했고 이러기를 두 해 동안 했습니다.”
사람들과 다투면서 그냥 버티며 공연히 시비를 하고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는 일이 생길 때, 지혜롭게 처신하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17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6쪽

“거룩하신 주님, 저희들의 신앙생활 가운데 주께서 저희를 위하여 베풀어 주신 은혜의 사실이 있지만 거기에 대한 저희의 신앙의 내용과 인식의 내용은 심히 부족하고 미흡하고 결핍투성이이며, (중략) 인간적인 종교관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회하고 비천한 가운데 그냥 속해 있을 때가 많이 있사오며 사시랏ㅇ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이해한 것같이 자기 스스로 자득(自得)하고 구안(苟安) 가운데 젖어 있는 일이 많이 있사옵니다.”
“오늘날에도 명색만 기독교인이고 기독교를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 진수(眞髓)와 오묘한 도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결핍이 없는 양으로 그대로 지내는 이 큰 암매, 멍청한 사실이 흔히 있기 쉽사오니 저희를 정신 차리게 하시고 깨우쳐 주시고 불쌍히 여기사 저희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핍이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시고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내는 종교와 자홀(自惚) 가운데 빠져서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양 생각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것으로서 쓰일 수 있는 양 생각하는 이런 모든 오만과 잘못을 완전히 포기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서 겸손히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늘 바라고 기다리며, 주님이 깨우쳐 주시는 사실을 보면서 너무나 잘못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시옵소서.” * 髓 골수 수. 惚 황홀할 홀.

1980년 10월 26일 주일 오전

2021년 5월 14일 금요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아야 함,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5쪽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는 새로운 하나님의 경륜의 시대가 전개되고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중략) 예수 이름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확인해 놓은 것입니다.”
“민중을 결속시키고 조직해서 힘을 기르고 고난을 참으면서 로마와 투쟁을 해서 나중에는 로마 제국을 무찔러 버린다는 그런 의미의 구속(救贖)은 알아도 그런 물리적이고 육체적이고 현세적인 것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크신 경륜의 구속의 사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사상과 신앙과 지식의 내용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을 때에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세례가 구원을 받았다는, 구원에 관계되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저의 사상과 신앙과 지식의 내용이 충분하게 하옵소서.

2021년 5월 13일 목요일

절차나 의식 자체가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님,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39쪽

“‘나는 그러니까 세례 받았다. 나는 메시야에게 접붙임 받은 사람이다’ 하고 그런 구안(苟安)에 빠지고 그 세례가 주는 실효를, 세례가 요구하는 실제 내용으로 가지고 있는 효과를 가져야겠다고 생각도 하지 않고 과연 그것이 자기에게 있는가를 검토도 하지 않고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그것은 효과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런 까닭에 효과 없는 세계에서 일보도 벗어남이 없이 주저앉아서 저회하고 있다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평연(平然)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손을 씻었다고 해서 오며가며 남을 미워했다든지 남을 중상모략 했다든지 자기 자신이 남에 대해서 그릇되게 생각하고 오만한 평을 했다든지 하는 것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팔 뒤꿈치까지 씻어서 결례를 행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淨)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 일에 대해서 맹렬히 타매하셨습니다. ‘안 씻은 손으로 무엇을 먹어서 사람이 불결하게 되는 것인 줄 아느냐? 불결한 것은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참조. 마 15:19-20)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성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성경을 대할 때에도 성경 책 자체에서 신성한 무엇을 발견하려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책은 거룩하다’ 하고 책을 우상화합니다. 책이 뭐 거룩합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책을 혼동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경 숭배라는 것도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그릇된 메시야관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1쪽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유일의 구속자이심을 믿었고 구속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중략) 유대교의 성현(聖賢)이라는 사람들이 배출되던 시대입니다. 제1세기 2세기에 난 사람들을 탄나임(תַּנָּים)이라고 그러는데 아주 권위 있는 유대교의 성현들입니다. (중략)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메시야관을 안 고치는 이상에는 메시야를 대속의 구속주로, 자기의 피로 구속하시는 분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메시야의 구속을 믿지 않고서 메시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면 그 세례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로고스가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고 계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고 속죄의 크신 사실을 이뤘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구원을 받을 길은 없습니다.”
“메시야를 보편적인(universal) 구주로 믿고 나와야만 요한의 세례가 성례로서의 효과를 갖고 은혜의 방도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고, 하나님과 자신이 은혜의 계약을 맺었다는 표(sign)가 되고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중략) 만일 바울 선생이 가서 예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도록 하지 아니 했다면 에베소에 모여 있던 열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 그냥 있었을 것입니다.”

세례로써 확증되는 사실들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42쪽

“어떤 사람이 성례 후에도 성례의 효과가 없는 상태가 그대로 계속된다면 이것은 그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중략)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죽음에서 나와 생명으로 들어가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호와 표가 되는 것이고 확증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구원받았는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징표를 주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물리적으로 확실하게 공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이후에는 자기의 육신의 생활도 그 약속(commitment)하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도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를 정당하게 받은 사람은 비록 복음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미흡하다고 할지라도 세례 받으려고 자기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했을 때에는 최소한 성삼위와 그 성삼위 중 제2위 아들이신 하나님과 그의 구원 사실에 대해서 승인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후일에 그의 신앙이 타락했다가 다시 복구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요한의 세례를 받았던 이 사람들에게 있는 위험은 그것을 전연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왜 다시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첫째로 세례는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의 확인이 되는 까닭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구원받았다는 사실의 확인이 될 만한 내용과 요소를 안 가지고 있으면서 전연 별다른 기독론하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까닭에 그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어떤 교단에서 별다른 기독론을 가르치고 그런 별다른 기독론하에서 세례를 받았다면 그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비록 그의 지식이 미흡하더라도 성삼위의 이름 아래에서 아들이신 하나님의 구속의 사실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받았다면 이쪽 교회에 와서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왔다는 표로서 일생에 한 번 정당한 세례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021년 5월 12일 수요일

말씀이 없는 성례는 의미가 없음,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37쪽

“성례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징하는 진리의 내용입니다. (중략) 반드시 말씀과 병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개혁 교회에서 명확하고 확호하게 주장하고 믿는 바는 말씀은 성례 없이 독립하지만 성례는 말씀 없이 독립해서 의미를 안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리하게 전파하는 요한의 설교에 있었던 것입니다. (중략) 말씀이 먼저 들어가면 그 마음이 찔려서 자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하고 나와서 묻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가 가지고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중략) 메시야에게 속한 사람으로 자임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안에 깨달음이 없다는 큰 결핍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아무리 공급되어도 그것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결핍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를 믿는 양 생각합니다. (중략) 우리들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 민감하게 자기를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공급될 때 그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옵소서.
“세례가 요구하는 바 믿어야 할 내용을 충분히 다 깨닫지 못했으면서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이러한 위험이 뒤따라 다닙니다.”

2021년 5월 11일 화요일

세례는 근본적인 회개를 전제로 함,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35쪽

“참된 의미의 회개와 완전한 변개 안에는 또 한 가지, 신앙의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중략) 참으로 구원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회개에도 적어도 자기가 먼저 바르게 판단하는 인식론의 요소, 즉 지적인 요소가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정적(情的)인 요소, 그다음에는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의지적인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가 성립됩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줄 때에 요구한 회개는 그런 임시적인 회개가 아니고 근본적인 회개입니다. (중략)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으로서 자기를 드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에 의해서 바르게 살겠다는 자기의 작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생활 도리와 그 경영하시는 여러 가지 것들을 차례차례 배워서 그것에 의해서 자기가 살아가고 그것에 따라서 사명도 행하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한 분자로서 자기의 본분도 행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너는 과연 하나님께서 죄 사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고 또한 네게는 은혜의 계약의 세계로 그 거룩한 나라로 옮겼다’ 하는 것을 확증해 주시기 위해서 세례라는 의식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행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은 이미 그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확신이 있어야 하고 그 확신은 확실한 증거를 함께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이 새로운 사람으로서 행보를 한다는 것은 성자(聖者)의 생활을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새로운 사람이 자꾸 장성해 가는 것이니까 자기가 아는 범위 안에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것입니다.”
“세례는 심히 중요하고 그것은 또한 은혜의 방도로서도 중요합니다. 그 시간에 그 복음적 사실과 자기의 구원과 중생과 사죄의 큰 사실들을 확인하고 하나님께서 ‘오냐. 내가 네게 그렇게 했다’ 하고 세례라는 표를 주셨으니까 그 표를 잡으면 이제 확실하고 요지부동할 것입니다. 이런 확실하고 요지부동하는 심정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성신께서 역사하셔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정도의 반대만 하지 않고 받으면 성신께서 꼭 역사해 준다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루터파에서 생각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마치 성경 말씀에다 하나님의 성신의 능력과 역사를 가둬 놓는 것과 같은 생각입니다.”
“성경 말씀이 가장 유효한 은혜의 방도라고 할지라도 성신께서 그것을 쓰시려면 쓰시는 것이고 만일 안 쓰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례도 마찬가지이고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신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임재하시고 역사하시기도 하고 또 그 사람을 보시고 안 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성신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임재하시고 역사하옵소서.

2021년 5월 10일 월요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음,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25쪽

“바울 선생의 제3차 여행, 대개 주후 54년에 저 윗고을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지방을 다녀서 소아시아의 서남쪽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대도시인 에베소에 이르렀더니 예수님의 제자로 자칭하고 자임하고 있는 사람이 열두엇쯤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생활 행동을 가만히 볼 때에 진실하지 못하거나 훌륭하지 못한 것을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은혜의 계약 가운데 들어가서 사는 사람의 생활 방향과 인격적인 장성의 확연한 증거를 볼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가장 요체(要諦)가 되는 문제는 새로운 은혜의 계약의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사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보혜사이신 성신님이 역사(役事)하시는 문제입니다.” * 要諦 : 중요한 점. 요약할 요. 살필, 진실 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에 관문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 앞에 자기 자신의 신앙고백도 되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하는 것이 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대해서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확인을 하시는 중요한 절차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성례이고 그중에서도 세례입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과 은혜의 계약 가운데 접붙여진 여부를 가장 간단하고 명확하게 획선적(劃線的)으로, 금을 긋는 식으로 알려고 할 때에는 ‘무슨 세례를 받았는가? 세례 받은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 묻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을 접붙여 주는 그 신앙의 대상은 누구냐 하면 메시야다. 요한이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야, 즉 그리스도에게 접붙여 준 것입니다.”
“에베소를 하나의 기점(基點)으로 해서 발전해 나갈 교회의 초석(礎石)으로서 활동하게 하기 위하여, 교회의 기둥같이 활동하게 하기 위해서 처음에 나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주시고 뽑아내시는가 하는 양태(樣態)를 보여 주셨습니다.” * 礎 : 주춧돌 초
“다 같이 예루살렘의 최초의 신약 교회를 회억(回憶)하면서, 보혜사이신 성신님의 내재(內在)와 활동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갔을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28쪽

“사도 바울 선생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3차에 걸쳐서 여행을 하면서 교회를 세웠다는 것은 기독교 역사의 최초에 성신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계약과 새로운 경륜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증시하면서 역사를 지어 나가는 최초의 중요한 개시(開始)인 것입니다. (중략) 이때에 신령하고 아주 현실적이면서 능력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서, 지금 이 역사의 시기에 어떤 형태를 취하고 현현(顯現)하느냐 하는 문제를 증시하기 시작한 때라는 것입니다.” * 顯 나타날 현, 現 나타날 현.
“요한의 세례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 주일에 이야기했습니다. (중략) 그 근원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지 사람이 제 마음대로 이렇게 하기로 작정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의 세례도 그렇고 물론 그리스도의 세례도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양식(樣式)도 다른 것을 취한 것이 아니고 물을 가지고 하는 세례입니다.”
“요소적인 중요한 문제는 첫째로 (중략) 근본적으로 그 심정(heart)에 아주 극단적이고 전적인 변화가 있은 다음에야 준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그와 동시에 이 세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죄(赦罪)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중략) 요한이 증거한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야에 대한 관념을 정당하게 갖고 신의(信依)하고 나아갔다면 요한의 세례만으로도 성례를 통과한 것입니다. (중략) 충만한 기독론적인 의미를 다 계시하지 아니한 그런 양태의 세례에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 속에 이 열두 사람들도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 赦용서할 사.

세례의 중요성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29쪽

“그 위험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보겠는데, 먼저 세례의 중요성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이 말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중략) 가톨릭에서는 소위 뱁티즈멀 그레이스(baptismal grace)라는 말을 써서 세례는 그것 자체가 그것을 시행했으면 그에게 은혜를 끼치는 부호(符號)가 되는 동시에 은혜를 끼치는 방법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중략) 그 사람이 충분한 기독론과 복음 사실에 대한 넉넉한 인식이 비교적 희박하다고 할지라도 세례 받은 그 사실이 그 사람에게 은혜로 역사하면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충분히 은혜의 방도(media gratiae)라고 이야기합니다.”
“루터교에서는 세례라든지 성찬이라든지 하는 성례가, 츠빙글리식으로 ‘하나의 완전한 기호에 불과하다. (중략)’ 하고 생각지 않고, 그것을 시행하는 그 시간과 그 공간에 예수님께서도 임재하셔서 거기서 그것이 상징하는 모든 은혜를 그 시간에 그에게 다 베풀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에 상당히 공간적이라고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쪽은 물리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례나 성찬을 베풂으로 그것이 직접 동인(動因)이 되어서 거기서 어떤 유효성이 발생한다고 한다면 물리적인 이야기입니다. 인과(因果)의 관계를 가진 물리 이야기입니다.”
“그 물질 자체도 심지어 어떤 신비한 의미를 띠게 되는 것같이 이야기합니다. 또한 츠빙글리의 말대로 하자면 ‘(중략) 우리는 주를 기념하는 것이고 하나의 의식을 집행해서 그것으로 금을 그어 불신자와 신자의 세계를 나누고 그가 신자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 즉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명확하게 확인하는 일이다’ 하는 정도에서 끝내기 쉽습니다.”
“하지만 개혁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또 성경이 우리에게 정당하게 가르친 도리로서 가장 중요하고 엄숙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세례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기호 혹은 징표이고 동시에 하나의 봉인, 즉 확인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기호와 확인이냐? 요약해서 말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은혜의 계약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아서 그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중생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하나의 징표를 준다. 그것을 네가 확증으로 가지고 있거라’ 하는 의미입니다. 그와 동시에 내 편에서는 ‘이제부터는 이 새로운 생명으로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지 옛사람으로서 걸어가서는 안 되겠다. 그런고로 새로운 사람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전부를 드립니다’ 하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확인인 동시에 내 쪽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19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모든 백성을 제자를 삼아서 세례를 베풀라”고, 마지막에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을 내리실 때 그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릇 어떤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그 경영하신 대로, 선택하신 대로 성신님으로 역사해서 새로운 생명을 넣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중생(重生)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넣어 주신 사실이 그 사람의 의식 가운데 나타나는 사역을 성신님께서 하시면, 이것을 가리켜서 변개(conversion)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변개의 사실에는 첫째로 회개라는 사실이 따라옵니다. (중략) 거기서부터 획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의 참된 회개는 일생에 한 번뿐입니다.”

회개라는 말의 의미
<사도행전8>, 제5강 세례의 중요성, 132쪽

“그런데 성경에서는 회개라는 말이 정확하게 이런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고 (중략) 어떤 경고가 이르고 책망이 있고 말씀이 그에게 오면 ‘아, 이거 잘못했구나’ 하고 깨닫기도 합니다. (중략)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재미있는 설교를 듣고 좋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러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종교도 하려고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도 섬기려고 하고 ‘하나님은 나를 요구하실 것이다’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무가치한 자신을 가치 있는 것같이 인정하는 일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깊이 느끼는 시간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 참 잘못했다’ 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회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하면서도 아주 저급하고 비천한 위치에서 자식다운 아무런 인격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려서 자기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을 가치 있는 것같이 인정하는 일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깊이 느끼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적인 품성, 즉 그리스도적인 도덕적 성격과 인격이라는 것을 모르고 밤낮 몇 가지의 도덕적 조건에 비추어서 ‘이것은 괜찮다. 이것은 잘못했다’ 하는 정도에서 웃고 울고 자만하고 구안(苟安)에 빠져 있다면 기독교의 바른 도리를 체득하지 못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생활 지침은 ‘오직 성신을 의지해서 새사람으로 살아라’ 하는 데에 있지 옛사람적인 여러 가지 것을 가지고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 苟 구차할 구. 遷 옮길 천.
오직 성신을 의지해서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기의 잘못을 생각해 봐야 생각 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판하는 표준(criteria)이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큰 의미를 안 가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임시적 회개’라고 하는데 이런 임시적 회개도 겉으로 보기에는 진짜로 회개하는 것과 여러 가지로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2021년 5월 6일 목요일

기도,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21쪽

“거룩하신 주님이여, 저희들 마음 가운데 빛을 비추셔서 얼마나 저희가 부족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도리를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 된 체하고 자기의 몇 가지의 도덕적인 조건으로 자기의 종교와 강령을 삼고 그 동굴 속에 갇혀 앉아서 그것을 우상화하고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서 관견(管見)하며 비판하고 폄론(貶論)하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부정당한 모든 일을 행하면서 그것조차 알지 못하는 이런 괴악한 위치에 있는지 알게 하시옵소서. 자기가 무슨 가치가 있는 것같이 생각해서 스스로 하나님 앞에 원조(援助)를 하려고 나서는 아주 망측하고 주제넘은 생각도 하는 일이 있사옵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하시고 겸손히 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신성한 일에 대해서 자기가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주께서 저희에게 분수에 맞도록 은혜를 주셨고 일을 시키셨으니 그 시키시는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 管 : 대롱 관. 貶 : 떨어뜨릴 폄. 援 : 당길 원

1980년 10월 19일 주일 오전

2021년 5월 3일 월요일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세례와 본질상 동일함,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13쪽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세례와 본질상 동일함,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13쪽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는 어떠냐 할 때 가톨릭은 ‘이것은 결코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중략) 고대에 있던 신학자들은 이 두 가지가 본질상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냉정하게 보면 그것은 본질상 같은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셨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둘째로 그 양식이 물로써 세례를 준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가자 중요한 것은 그에게 아주 극단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 전적(全的)인 변화가 없이는 세례 안 준다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1:5-17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는데 그 가운데 16절을 보면 주의 사자가 요한의 부친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요한이 태어날 것을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의 하나님께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하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가고 있던 길에서 방향을 돌려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그 다음에 17절을 보면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오게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중략) 자식들 가운데 많은 사람을 자기네 선조의 마음으로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선조가 가지고 있던 그 마음을 자식들에게 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저희 마음대로 저희 세대의 정신만 가지고 살던 그 사람들에게 이제는 바른 정신이 돌아오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이 근본적인 회개입니다.”
“누가복음 3:7-9을 보면, 이것은 마태복음 3:7-10에도 있은 말씀인데 (중략) 임박한 진노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이 이러한 참된 회개인데 ‘누가 이것을 가르쳐서 이제는 행복을 추구하고 환난을 피하려고 이렇게 나오느냐’ 하고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행복주의(eudaemonism)와 종교적인 이익 추구에 대해서 맹렬하게 공격한 것입니다.”
“근본의 변화, 마음(heart)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말한 것이지 그러한 변화가 없는데 그 조목만 하면 산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는 성례적인 의미를 가지고 죄를 씻는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죄를 씻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그 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는 네 죄를 씻는다’ 하는 의미, 즉 사죄(赦罪)를 위한 성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볼로같이 그 세례를 받고 그 성례적인 의미를 나중에 깨달으면, 그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또 세례를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예수님의 세례와 다른 점
<사도행전8>, 제4강 요한의 세례 (2), 117쪽

“첫째로 요한의 세례는 구약의 이코노미하에 속해 있어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실 일을 늘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율법 시대에 속해 있어서 회개의 필요를 강조했습니다. 변개(變改, conversion)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 소극적인 것은 회개고 적극적인 것은 전적인 신앙, 즉 구원의 신앙입니다. 지금 신약 시대에 와서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일이 첫째로 오지 않고 믿으라는 말을 하는데 ‘네가 마음이 고쳐지고 전부가 변개되어서 주를 믿어야겠다’ 하는 것입니다. (중략) 셋째로, 이 세례는 주로 유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이 가지고 있는 소위 보편주의(universalism)와는 다른 점입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다르냐? 앞으로 자세한 설명을 더 듣게 되겠지만 우선 중요한 것은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비춰 볼 때에 무엇에 비춰 보느냐 하면 율법에 의해서 합니다. (중략) 신약의 유니버설리즘이라는 것은, 형식상으로는 보편주의이고 내부에 있어서는 신령주의(Spiritualism)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연약해서 이룰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의 성신께서 하신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율법의 제도를 이루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율법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그 하나하나의 강요에 대해서는 이제 우리는 상관이 없다.’ 이것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의미의 한 부분입니다. (중략) 그리스도적인 새 생명으로 말미암은 새사람이 자연스럽게 건강하게 살아나가면 자연스럽게 그 성격이 하나님의 거룩한 그리스도의 품성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새사람은 그리스도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살았느니라’는 그리스도 안의 새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고 ‘얼마나 잘못이 많고 부족이 많은가? 지금은 몰라서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항상 자기 자신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성신님이 내려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충만한 가운데 역사하셔서 생명의 성신의 법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하는 이 사실은 모르고 구약적인 율법의 개조에 의해서 회개를 한다고 해서 그놈 하나에 대해서만 어떻게 하면 되는 줄 알고 이렇게 껍데기만 피상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이것이 부정당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가톨릭이 그렇습니다.”
“수많은 프로테스탄트 역시 그렇게 하고 사는 것입니다. (중략)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신령한가? 내 안에서 성격이나 성품 전체가 조화 있고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서 율법에 맞는가? 성품이 율법에 맞으면 자연히 행하는 것도 어떤 개조를 알아서 행하는 것보다는 율법이 요구하는 그 근본정신에 의해서 하게 될 것입니다.”
성신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충만한 가운데 역사하셔서 성격이나 성품 전체가 조화 있고 자연스럽게 율법이 요구하는 그 근본정신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