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1일 목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5,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4쪽

“자기가 마땅히 할 것을 잘하고 있다고 자기를 인정하는 아상(我相) 가운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기도의 본의냐 하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 앞에 우리가 구하는 가운데 제일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떡 일어나서, 거기다가 종교적인 자기를 현저하게 세우고 나가는 데에 중점을 둔다면 참으로 문제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찬송도 그렇고 다른 모든 것도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반적인 은혜의 수단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 아상(我相) : “자기의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홀(自惚)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것을 아상(我相)이라는 말로 자주 쓰고 있습니다.”, <사사기 소고 1>, 72쪽.  
“속에 있는 자아(自我)라는 것, 속에 있는 아상 (我相)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 인간의 공리주의 (功利主義)라는 것”, <신앙의 자태 1> 85쪽. 
“1. 『불교』 사상(四相)의 하나.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를 이른다. 2. 자기의 처지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마땅히 할 것을 잘하고 있다고 자신을 인정하는 아상 가운데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4,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3쪽

“기도를 하는 본의(本義)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남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자기는 어떤 시간에 나와서 기도를 했다는 것을 슬그머니 공로와 자기 자랑으로 가지고 있게 되고, 적어도 남에게 자랑은 하지 않지만 자기가 그것을 가치 있는 중요한 일로 여겨서 그것이 결핍되든지 그것을 중단했든지 할 때에는 갑자기 마음 가운데 파동이 일고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심정을 가지게 됩니다.”  

기도로 자기 공로를 삼거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게 하시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거룩한 교통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9일 화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3,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2쪽

“그것이 아주 옳다고 확신하고 받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도리를 좀 더 받아 가면, 그 거룩한 도리를 좀 더 알았다는 새로운 지식의 터 위에서 그것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비추어서 확인해 보고 옳은 것은 더욱 확신을 가지고 굳혀 가고 미비한 것은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개혁 정신의 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도리의 터 위에서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비추어 보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8일 월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2,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2쪽

“처음에 무엇을 받아들였을 때에 ‘그것이 옳겠거니’ 하고 받아들여 놓으면 그것이 나중에 자기에게 거의 전통이 되고 절대화된 우상으로 존재하게 되기가 쉬운 것입니다. 
가령 개혁 교회의 신앙이라고 해서 개혁 신앙과 신학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우상이 되기가 쉽습니다. 개혁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개혁 신학’이라는 체계를 죽겠다고 쥐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으면 깨닫고 거기에 자기를 비춰보고, 자기 자신의 사상 체계를 비추어 보아서 완고한 것이나 그릇된 것이나 자기 식 생각에 그냥 서 있으면 다른 것을 평가하는 평가의 척도나 원칙(principle)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언제든지 다시 신선하게 비판해 보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으면 깨닫고 거기에 자신을 비춰보고 비판해 보고 생각해 보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종교적 선입견의 문제와 개혁 정신의 태도 1, <사도행전7>, 제10강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 231쪽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면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 안에서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종교적인 선입견(prejudice)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도 보면 소동을 일으키는 유대 사람들은 다 종교적인 선입견에서 그런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강렬한 종교적인 선입관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비판하고 그것을 재평가하고 취사(取捨)하는 태도를 늘 취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2일 화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4쪽

“성신님께서 저희를 주장하셔서 그러한 것(이것이 과연 그러한지 터득한 부분을 반성하고 복습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을 고귀하고 신사적인 것이라고 가르치신 이 말씀의 뜻을 알고 저희도 이렇게 고귀하고 신사적인 위치에서 늘 살아가기를 바라오며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을 멀리 아덴까지 전송하였듯이 저희도 항상 마음에 거룩한 사랑과 진정을 품고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는 생활을 해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1968년 9월 8일 주일 오전

2020년 12월 21일 월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4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오늘도 은혜를 주셔서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를 배우게 하시고 또한 주께서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지금까지 이 고귀한 베뢰아 사람들을 본받아서 저희들도 고요히 시간을 내서 늘 성경을 공부하는 데에 주력하고, 이것이 과연 그러한지 각각 터득한 부분을 반성 작용에 의해서 다시 복습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데서 아버님의 은혜를 더욱 받기를 원하였고 앞으로도 이렇게 나가기를 원하옵나이다.”

2020년 12월 18일 금요일

베뢰아 사람들이 가진 고귀한 태도 2,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3쪽

“개혁 교회에서는 역사적으로 베뢰아적인 태도를 늘 취하기를 바라서,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 자리에서 기쁨으로 받는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같은 태도를 후닥닥 보이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들은 후에 조용한 가운데서 다시 반성해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기를 바라서, 설교를 듣든지 예배를 드리든지 항상 고요한 가운데 엄숙하게 드린 것입니다.”  

말씀을 들은 후에 조용한 가운데서 다시 반성해서 그것을 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7일 목요일

베뢰아 사람들이 가진 고귀한 태도 1,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2쪽

“그러한 까닭에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하기 위해서 때를 따라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항상 복잡하고 왔다 갔다 하고 일을 잔뜩 쌓아 놓고 일에 매여 있는 동안에는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기에 그렇게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하기 위해서 때를 따라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6일 수요일

하나님 말씀을 해독하는 데도 훈련이 필요함 2,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0쪽

“항상 반성 작용이 필요합니다. 반성 작용이라는 것은 내가 한번 인식한 사실을 나열해 놓고 그것을 비판하면서 차례차례 확인해 가는 심리작용입니다. 이러한 것이 늘 필요한 것입니다.” “배운 정도가 이것을 파악하기에 심히 빈약할 때에는 빈약한 내용밖에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책을 읽든지 말을 들을 때에도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훈련과 지식의 축적과 성장이 늘 필요한 것입니다.” 

책을 읽든지 말을 들을 때에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훈련과 지식의 축적과 성장이 늘 있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5일 화요일

하나님 말씀을 해독하는 데도 훈련이 필요함 1,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20쪽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해득(解得)하려면 해득하는 연습을 늘 해야 합니다. 예배당에 오래 다녔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번도 자기가 반성해서 말씀 자체의 의미를 재정리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냥 들어오는 대로 딱 듣고 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을 잘 보는 사람은 책을 한번 휙 빨리 보고 끝났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론적이고 심오한 도리를 가르친 책을 볼 때에는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을 자세히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하는 데에서 또 걷어 내고 ‘아 그렇구나’ 하고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만일 상당히 심오하게 오랜 세월 동안 연구한 것을 몇 마디로 표현한 것을 간단히 보아서 다 이해하려면 그의 사상이나 그의 생각의 그 깊이가 그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과 비견할 만한 사람이라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득하려고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을 자세히 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4일 월요일

교회가 부흥회적 성격을 취할 때 발생하는 폐단,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18쪽

“교회 안에서 교회 신도들의 신앙을 향상시키려고 하면서 항상 부흥회식 흥분과 감정과 열띤 호응만을 자꾸 일으키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던 태도가 하나님 니라에서는 좀 더 고귀하다는 것을 알았던 개혁 교회의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은 예배 의식과 하나님 앞에 모이는 태도에 대하여서 전통적으로 엄숙하게 하고 신중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함부로 제 감정에 의하여 요동할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기의 이해를 검토하라는 말입니다. (중략) 자기가 이해한 부분 안에서 지금 터득한 바를 바르게 깨닫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이해한 부분 안에서 지금 터득한 바를 바르게 깨닫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1일 금요일

베뢰아 사람들의 신사적인 태도 2,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16쪽

“날마다 주의해서 차례차례 그것이 그러한지의 여부에 대한 확실한 태도를 결정하고 나간 것입니다. 그것을 덮어놓고 천연(遷延)하는 것은 무성의한 태도여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성의와 열정을 가지고 그것이 그러한지 여부를 늘 판단하고 나아간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베뢰아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이러한 베뢰아 사람들의 특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고 그 오의(奧義)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좋은 터를 이룹니다.” 
* 천연하다 : 일이나 날짜 따위를 미루고 지체하다. 옮길 천. 늘일 연. 
* 오의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지니고 있는 깊은 뜻. 속 오. 뜻 의.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주의해서 차례차례 성의와 열정을 가지고 그것이 그러한지의 여부에 대한 확실한 태도를 결정하고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0일 목요일

베뢰아 사람들의 신사적인 태도 1, <사도행전7>, 제9강 베뢰아 사람들의 고귀한 태도, 214쪽

“본래 신사적이라는 말은 그 마음이 질서를 존중하고 항상 어떤 규례나 마땅히 걸어야 할 대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늘 자기를 주의하는 것을 뜻합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그러한가 하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다’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신사는 격동하는 감정 속에 한꺼번에 휩쓸려 다니지 않고 먼저 자기가 냉철하게 이지적으로 당위(當爲)나 가부(可否)를 바르게 판단한 다음에 마땅히 지지할 것은 중심으로 지지해서 변함이 없이 나아가고, 마땅히 배격할 것은 이론을 들어서 명확환 논리하에서 배격해 나갑니다. 이런 것이 신사의 태도인데 베뢰아 사람들 역시 그러한 신사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9일 수요일

기도 2,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8쪽

“주의 말씀의 큰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전통에 얽매여서 껍데기만 핥고 있는 동안에는 오히려 예수님을 욕되게 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큰 위험이 있음을 저희가 여기서 발견하였나이다. 그런고로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고 오묘하게 늘 깨닫고 나가게 하시고 그리하여 마땅히 바른 판단과 평가를 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1968년 9월 1일 주일 오전

2020년 12월 8일 화요일

기도 1,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8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에 거기에서 마땅히 깨달아야 할 깊은 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옵나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바르게 알지 못하여 몇 백 년이라도 그냥 고루한 전통과 그릇된 편견으로 은폐된 가운데 그대로 그것이 정당하다고 그 말씀을 해석하고 나가던 전통적인 유대교와 유대 사람들의 태도 가운데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지극히 큰 은혜로 주의 그 기이하시고 아주 획시기적인 크신 일, 개혁의 큰일을 바울 선생에게나 스데반에게 보여 주셨고 그들의 전(全) 정신을 뒤집어서 심히 오묘하고 깊은 도리를 바르게 추리하고 바르게 생각하게 하셨나이다.”

2020년 12월 7일 월요일

복음을 받은 헬라 사람들 2,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7쪽

“힘이 센 프로메테우스가 있고 별것들을 다 만들어 냈지만, 일단 유사(有事)해서 마음에 큰 불안을 느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생활로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헬라 사람에게 이 구원의 복음이 들어갔을 때, 성신님이 그 마음에 역사했을 때, ‘아, 이거야말로 진리이다’ 하고 마음 가운데 그것을 수긍한 것입니다.” 
“성신께서 그들에게 역사한즉 그것을 믿었습니다.” 

성신께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며 그것을 믿고 생활하도록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옵소서.

2020년 12월 4일 금요일

복음을 받은 헬라 사람들 1,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6쪽

“바울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해서 이런 깊은 사실들을 자기 마음 가운데 확인하고 확신한 것을 데살로니가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메시야론을 시정(是正)해서 신이 인화(人化)하신 메시야, 인간으로 사람의 모든 고통과 죽음을 맛보셨으나 죄 없으신 메시야, 그러나 다시 사시고 영화(榮華)하신 메이야, 그분을 이야기하였고, 둘째는 ‘나사렛 예수야말로 모든 언행과 그 역사(役事)에 있어서 도무지 틀림이 없는 메시야다’ 하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바울 선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확신한 이런 깊은 사실들을 올바로 깨닫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3일 목요일

오늘날의 그릇된 기독론,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4쪽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있는 중요한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른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성경은 자기네가 독점하고 일수판매(一手販賣)해서 자기네가 가장 권위 있는 정통으로 여기면서 진리를 더 깊이 아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나가는 것이 오늘날 세대에 허다한 배교상(背敎狀)입니다. (중략)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바르게 이야기하면 구식(舊式)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 그릇된 메시야관이야말로 헬라적 신화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성경 해석이라는 것은 자기네의 독단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내외에 있는 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보면 헬라적인 신화, 혹은 다신교의 그릇된 영향 가운데 있던 사람들의 생각과 비슷한 그릇된 기독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바르게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2일 수요일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2,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4쪽

“예수님께 대해서 연구를 안 해 보고 예수님께 대해서 옳다 그르다 한다면 얼마나 큰 무식이냐는 말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연구해 보지 않고 성경에 나와 있는 묘사가 예수님에게 맞는다는 것을 믿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암매입니까. 
사실상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모르는 사람과 같이 답답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저렇게 답답할까’ 생각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는 사람과 같이 멍청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되지못한 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유대 사람들이 꼭 그렇게 멍청하고 답답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면서 성경은 자기네가 가장 잘 아는 체하고 예수님을 가장 핍박을 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 연구하여 예수님을 바로 알고 깨닫게 하옵소서.

2020년 12월 1일 화요일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1, <사도행전7>, 제8강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 예수, 202쪽

“구약에 있는 이사야서를 떡 끄집어내서 해 받으신 이야기를 했겠고, 다니엘에 있는 ‘기름 부은 자의 끊어짐을 보리라’(단 9:26)는 말씀을 가지고 해 받으신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을 인용해서 ‘그는 썩지 아니한다. 그는 무덤 가운데에서도 그 육신은 안전히 거하다가 다시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아간다’(시 16:9-10)하는 말씀의 의미도 가르쳤을 것입니다.” 
“지금 나를 핍박하는 것은 마치 내가 스데반을 핍박한 것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왜 그러는가 하면 그들이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