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5일 월요일

백부장의 구원 신앙, <신앙의 자태2>, 제1강 백부장의 신앙(1) 중 38쪽.

"이것은 무슨 사상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본 사상입니다."
"신앙의 대상에 대한 개념이 정당하게 구성된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신앙은 언제든지 신앙의 대상에 대한 개념이 바로 서야 합니다."
"그 대상에 대한 지적 요소(notitia)를 바르게 가져야겠다고 생각지 않는다면 큰 문제입니다. 내게 정의적(情意的, 감정이나 의지에 관한 것) 요소가 아무리 있다 해도 또 내가 아무리 의지를 잘해도 의지하는 그 분에 대한 나의 개념이 부정당할 때는 그 신앙은 부정당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자태라는 면에서 볼 때 이 백부장은 구원의 신앙으로서의 개념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한 그대로 강경 직행(强勁 直行, 굳셀 강, 굳셀 경, 곧을 직, 갈 행, 강경 : 양보나 굽힘이 없이 힘있고 꿋꿋함, 직행 : 중간에 머무르거나 어떤 곳을 들르지 않고 목적지로 바로 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항상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셨다더라 저렇게 하셨다더라" 하는 소문은 들었을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듣고 이렇게 믿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듣고도 이렇게 위대한 신 개념의 결론에 도달했다면, 필시 그에게는 신에 대한 바르고 풍요한 기초적 지식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신 개념이라는 것은 백지 같은 상태에세 갑자기 충만한 상태로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라나는 것입니다. 희미한 데서 차츰차츰 밝은 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보게 하시고, 예수께 대한 지적 요소를 늘 바르고 풍요하게 가지게 하시며, 차츰차츰 자라나 충만한 데에 이르도록 하시고, 구원의 신앙을 가지고 그대로 강경 직행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백부장의 신앙의 위대성, <신앙의 자태2>, 제1강 백부장의 신앙(1) 중 36쪽.

"백부장은 "말씀 한 마디만 하십시오. 내 수하에도 군인들이 있어서 내 말 한 마디면 그 말의 타당성 여부를 논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들은 '가만히 계십시오. 천천히 하겠습니다' 하고 이렇게 대꾸도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움직입니다. 나는 일개의 백부장에 불과한데도 내 수하들이 그렇게 합니다. 나는 이 권력을 어디서 받았느냐하면 위에서 받았습니다. 그런고로 나도 권력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즉 위에서 권력으로 명령을 내려서 내게 오므로 나도 합니다. 이같이 명령 일하에 움직이는 이런 사실이 인간계에도 있거든 하물며 병이나 사람의 마음 상태나 혹은 자연계의 상태에 대해서까지 명령 일하에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당신에게는 말 한 마디면 족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병이나 사람의 마음 상태나 혹은 자연계의 상태에 대해서 명령 일하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일상을 살아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7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님께서는 기드온이나 바락이나 입다나 삼손이나 이런 사람들을 다 위대한 신앙의 용사들로 보여주셨사옵는데, 그들의 신앙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의 신앙에 대한 개념이 너무나 모호하고 그릇되고 또한 신앙에 대해서 불철저하게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느끼옵나이다. 이제 그들의 생애 가운데 무엇이 신앙의 요소로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추장(推奬, 천거 추, 권면할 장, 어떤 사람이나 물건 따위의 뛰어난 점을 말하고 추천함)하시고 전례(典例, 법 전, 법식 예, 말이나 행동 따위의 근거가 되는, 이전에 있던 사례)로 혹은 중요한 예로 위대하게 거용(擧用, 들 거, 쓸 용, 인재를 천거하거나 뽑아서 씀)하시는 것인가를 바로 깨닫게 하시고, 저희의 생애 가운데 스스로의 약점을 용서하지 않지만, 동시에 위대한 신앙이 없는 것을 통분히 생각하게 하여 주시며, 단지 하나의 도덕적인 자기 인격의 완성이라는 이 아주 잘못된 자기 중심의 윤리관에서 벗어나 마음 가운데 주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나의 부분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위대한 성신의 역사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을 통한(痛恨, 아플 통, 원한 품을 한, 한이 맺힐 만큼 원통해 함)히 여기는 심정을 가지게 합소서. 주여, 이리하여 저희가 참된 신앙의 용사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6년 2월 4일 목요일

결어,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6쪽.

"다윗 역시 약점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는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증하신 까닭은, 그가 자기의 사명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또 자기의 나아가는 데 대해서 무서워하지 않고 용기있게 전진하면서, 문제가 있을 때는 그것을 하나님께 전부 의지해 버리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기드온, 바락, 입다, 다윗 등은 모두 다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위대한 신자인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게게 인간적인 약점이 있는 것을 저어할(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대한 신앙이 없는 것을 더 통분(痛憤, 원통하고 분함)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약점을 뚜드려 고치려고 해서 백번을 고쳐 봐도 인간은 기왕의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 때문에 때때로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목적을 향하여 행진하고 또 용기있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힘을 받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적 앞에 과시(誇示, 자랑할 과, 보일 시, 자랑하거나 뽐내어 보임)하고 증시(證示, 증거하여 보임)하는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되겠습니까?"

인간적인 약점을 있는 것을 저어할 것이 아니라, 주신 사명을 잊지않고 신앙으로 그 목적을 향하여 행진하게 하시고, 문제가 있을 때는 그것을 하나님께 전부 의지해 버리고 나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명 수행에 대한 적극성,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3쪽.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삿14 : 1-4). 그러므로 삼손이 자기 지혜로 어떻게 해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또 지금 할 일인가를 면밀하게 생각할 때 여호와께로부터 이런 지혜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특별히 계시를 받아서 했다는 말보다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이것이 가장 타당하고 가장 무난한 방법일 것이다. 이 일부터 시작해서 적정(敵情, 적군이나 적국의 정세)의 허실을 탐지하고 이것을 계기로 내가 흔단(釁端, 틈 흔, 끝 단, 서로 사이가 벌어지거나 일이 다르게 되는 맨 처음이나 실마리)을 일으켜야겠다. 나는 이렇게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삼손은 또 인간미도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간 타입을 비교하면 다윗왕과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울기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고, 그리고 어느 때는 정이 헤프기도 하고 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하나님만 붙들고 나갔습니다. 죽어도 하나님을 붙들고 나가겠다는 이것이 신자입니다."

환경이나 인간적인 여건이 어찌됐든지, 주어진 처지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끝까지 죽어도 하나님만 붙들고 나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위대한 신앙의 자태,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2쪽.

"성신의 감동과 성신의 크신 역사가 그에게 작용할 때 자기에게 맡기신 본래의 사명을 위해 위대한 힘을 발휘하면서 나가는 것이 위대한 신자의 소위(所爲, 하고 있거나 해 놓은 일, 할 바)요, 그것이 위대한 신자를 만드는 조건입니다. 자기 혼자 열심으로 예배당 다니고 기도하는 것을 위대한 신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은혜의 방도이지만, 동시에 그 자신이 어떻게 큰 은혜의 그릇이 됐는가를 증명하는 데서 그 다과(多寡, 수량의 많고 적음)를 또한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에게는 위대한 힘이 나타났느냐? 위대한 힘이 나타날 만큼 그 전달하는 기관(器官, 다세포 생물에서, 생물체를 구성하여 나름의 특정한 생리(生理,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이 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기관, 그것이 신앙입니다."

주께서 쓰시는 그릇이요 기관이 되어, 성신의 감동과 성신의 크신 역사가 작용하는 신앙의 자태를 가지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2월 3일 수요일

위대한 각성자, 삼손.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80쪽.

"삼손에게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윤리적인 약점이 있었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그를 신앙의 용사로 앉혀 놓았습니다. 왜 신앙의 용사냐? 그는 단순히 자기 일생의 일에 대한 확실한 각성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일을 넘어지며 자빠지면서까지라도 실행해 나갔습니다."
"무엇을 믿고 나갔는가? 하나님께서 힘 주실 것을 믿고 나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이 일을 하러 나온 사람이니까 목숨을 내놓고 하겠다.'고 하면서 수천명의 불레셋 사람들 앞에 묶여서까지라도 나왔습니다."
"그가 사명을 행할 때 성신님이 그를 크게 감동해서 쓰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신자냐? 일단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려고 할 때 성신이 위대한 능력으로 그를 감동해서 쓰시면 그는 위대한 신자입니다. 그럴 때 위대한 신앙의 족적이 생깁니다. 신앙이란 것은 내가 종교열을 가지고 각고 면려(刻苦勉勵, 온갖 고생을 견뎌 내며 부지런히 노력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쓰실 때 그의 그릇으로서 사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가 많고 부족하며 잘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하나님의 의중을 잘 깨닫고, 그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그릇으로 사용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신앙인 -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명 수행에 매진하는 자,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79쪽.

"삼손은 나실인이었지만 그가 자기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인간으로서의 여러가지 약점과 불비(不備, 갖추지 못함)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 때문에 자기의 생의 방향을 변경한 일이 없었습니다. 약점이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라고 할 때는 항상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보내심을 입었는가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보내심을 입었는가에 대한 각성이 있게 하시고, 인간로서의 여러가지 약점과 불비에도 불구하고, 그 생의 방향을 변경하는 일이 없도록 성신께서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신앙인 - 일생을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안에서 사는 자, <신앙의 자태1>, 제9강 삼손의 신앙 중 278쪽.

"삼손을 위대한 신앙의 용사라 하게 한 그의 신앙의 첫째 기초는 분명히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하여서 하나님 앞에 드린 나실인의 위치를 스스로 변경하거나 포기한 일이 없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그는 일생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목적 안에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바른 신앙의 자세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상당히 관대하고 훌륭한 품성을 나타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의 일생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계획과 경륜의 내포 안에서 분명한 목적을 향해서 진행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먼저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신 본래의 거룩한 목적과 거룩한 경영의 테두리 안에 있는 동안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예배당에 잘 다니고 아무리 열심으로 기도하고 아무리 선행과 자선을 행할지라도, 그가 자기의 이상과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그렇게 할 뿐, 하나님 당신께서 그를 세우신 본래의 목적을 향해 생활해 나가는 일에 관해서 일호도 각성하지 못하고 있을 동안에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하나님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본래의 거룩한 목적과 거룩한 경영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나의 부분에서 해야 할 일을 성신의 역사과 능력으로 나타낼 수 있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2월 2일 화요일

기도,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61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는 저희에게 전진해야 할 방향과 목표를 알려 주셨사온데, 그곳은 저희의 본향이요 저희가 그곳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그곳에 속한 자로서 마침내 그곳에 들어가야만 할 저희의 집입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이렇게 거하여야 할 집, 저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의 집을 보이시면서 나아가라고 하실 때는 일생 나그네같이, 이 세상을 안주할 곳으로 생각지 않고 불요불굴(不撓不屈, 의지 따위가 흔들리지 않고 굽힘이 없음)히 타협함이 없이 많은 박해와 지장과 곤란을 극복하면서 전진해야 할 줄을 아나이다. 이것을 믿음이라, 용기있는 믿음이라고 가르치셨나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전진할 때는 얽매이기 쉬운 모든 거리끼는 것을 다 벗어버리고 - 우수사려(憂愁思慮, 근심과 시름에 차 생각함)에 얽매여 마음이 무거워서 생각할 여유가 없이 살지 말고 - 그 나라의 오묘한 것과 거룩한 기구와 내용에 대해서 깊이 알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늘 넉넉히 가지면서 전진하라고 하셨나이다.
주여, 저희의 마음 가운데 이 믿음의 자태에 대한 확실하고 바른 판단을 내려 주셔서, 그릇된 것을 믿음이라하거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아닌 것들을 믿음의 큰 내용인 것같이 말하는 그릇된 생각에 물들지 않게 하여 주시고, 바로 생각하여 주께서 보이시는 거룩한 목표를 바로 통찰할 수 있게 하시며, 확신을 가지고 전진케 하시옵소서. 그것은 주께서 이미 실재케 하신 것이요, 주께서 경영하신 것인 까닭에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 속에는 거기에 대한 확신과 확증이 생기나이다. 이것은 주께서 그런 확증을 저희에게 주시기 때문이며 이 확증이라는 관문을 통해서 그 여타의 모든 필요한 은혜를 저희에게 내려 주시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주여, 저희에게 이와 같은 확증이 있다는 것은 주께서 경영하신 그곳으로 저희를 이끄신다는 또 하나의 거룩한 증표가 되나이다. 이 거룩한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결어,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9쪽.

"히브리서에서 본 여러 사람의 신앙의 자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신앙이란 흔히 인간적인 생각대로 개인의 도덕적인 성격이나 종교적인 생활을 어떻게 했느냐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생이 어떻게 목표를 향해서 불요불굴(不撓不屈)히, 타협하지 않고 박해를 받아 가면서도 끊임없이 싸워 가면서 전진해 나갔느냐를 보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넓은 길을 택했더라면 받지 않았을 박해를 좁은 길을 택해서 일생 전진했던 까닭에 받은 것입니다."
"개인의 생의 목표도 불분명하고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방향과 지표도 불분명하면서 정통적 교회가 되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전승된 신앙은 역사적인 지표를 가져야 합니다."
"그 방향으로 향해 나아갈 때 타협함이 없었고, 좌절해서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일어나 또 싸워 가면서 나아갔으며, 박해가 있었고 나중에는 괴로움과 죽음이 있었지만, 그러나 추호도 타협치 않고 진진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보다도 더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참으로 경건히 살고자 하면 누구든지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꼭 유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아무 이름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목표를 알고 바르고 깊은 믿음을 갖고 살려고 하면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박해는 사람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어떤 기구를 통해서나 합리적인 방식을 통해서 방해를 일으키면, 또한 지장과 곤란과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적인 새사람의 생활이 좀더 영화롭게 자꾸 드러나는 동시에, 전체의 부분으로서는 전체가 다 같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역사를 이 현 역사의 과정 가운데에서 조성해 나가는 방향으로, 일생 타협하지 않고, 좌절해서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또 싸워 가면서 전진하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 2월 1일 월요일

신앙의 지적 요소는 시간의 진전에 따라 성장함,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8쪽.

"아브라함은 그러한 불완전한 지식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아갔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완전히 얻은 것은 아닙니다. 오직 이 땅에서 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의 그의 위치를 주신 것입니다."

신앙의 지적 요소가 시간의 진전에 따라 성장하게 하시고, 불완전한 지식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을 향해서 나가게 하시며, 그렇게 나아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이 땅에서는 완전히 얻지 못함을 알고 나아가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주시길 기도합니다.

"본향을 찾아감" - 개인으로는 영화롭게 생활, 전체로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현 역사 위에 조성해 나감,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6쪽.

"아담을 창조하신 때나 오늘날 우리를 건지신 때나,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정(定)하신 것에 변역(變易)이 없으시며 또 전능하신 까닭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본래의 목적은 꼭 이루고야 마십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 영화의 목표를 향해서 매일 전진해 나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영화의 목표를 향해서 매일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영화의 몸을 입기에 해당한 새사람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에게 있어서는 새사람의 능력이 자꾸 발휘되어야 마침내 그 새사람에 해당한 영화의 몸을 입게끔 장성해 갈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을 장성하더라도 완성을 못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일정한 기간 동안 나를 땅 위에 두셨다가 당신의 하실 일을 하신 다음에 내 영혼과 육신을 분리시키는 날에는 마침내 주께서 스스로 완성시키십니다. 그렇게 하여 간직하셨다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영화의 몸을 입혀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달리 말하면, 만유의 주 안에서 통일되고 모든 무릎이 그리스도 안에서 꿇게 하기 위해서는 지으신 만유가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영광의 옷을 다 입게 만든다는 것입니다(엡 1:10, 4:6 참조). 그리기 위해서 인류는 인류의 역사 위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자태를 만들어 내 놓고 나아가거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자태를 이루어 놓기 위해서는 평지에서 순탄하게 가게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반작용과 적의 역습이 있는 까닭에, 이 수많은 적의 역습과 적의 대적에 대해서 부딪혀 싸워 승리해 가면서 적극적으로 그리스도 나라의 거룩한 자태를 건설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내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적인 새사람의 생활이 좀더 영화롭게 자꾸 드러나는 동시에, 전체의 부분으로서는 전체가 다 같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역사를 이 현 역사의 과정 가운데에서 조성해 나가야 함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본향을 찾아서 나가는 행진의 방식입니다."

본향을 찾아서 나가는 행진이,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적인 새사람의 생활이 좀더 영화롭게 자꾸 장성하고 드러나는 동시에, 전체의 부분으로서는 전체가 다 같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역사를 이 현 역사의 과정 가운데에서 조성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 아담과 하와의 일체성의 원형, <신앙의 자태1>, 제8강 신앙의 용사들 중 254쪽.

"혼인은 결국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체성의 한 샘플로, 축도(缩圖, miniature)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일체인 것같은 일체성을 구현하는 최소 한도의 하나님이 내신 거룩한 제도요 한 일체의 단위이지 그것이 원형은 아닙니다. 이러한 단위적인 요소에서 발전해 나갈 때 그리스도적인 신령한 몸, 거룩한 일체성을 구성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리스도적인 영광의 위치 가운데 내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같이 그 지체인 내가 그에게까지 자라야 할 것입니다(엡 4 : 29 참조)."

그리스도와 교회가 일체인 것같은 일체성을 혼인을 통해 구현하게 하시고,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같이 그 지체인 내가 그에게까지 자라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