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어떤 전통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겨서 그것에 대해서 비판할 줄 모를 뿐 아니라 거기에 입각해서 사람을 비판하고 욕하고 중상합니다. (중략) 자기가 생각하는 그 애오라지 미미한 권선징악적인 몇 가지 도덕률만을 가지고 그것이 기독교라고 하면서, 인간 전체를 놓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런 관견(管見) 가운데, 아주 좁은 소견 가운데 빠져 들어가서 교회를 형성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이것이 교회라고 떠들고 그러면서 자기의 생각에 안 맞으면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중략) 오늘날 교회를 다닌다는 많은 사람이 교회 아닌 것을 교회라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그것을 고집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중요한 사실 앞에서 주의할 것은,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바른 것을 늘 흡수하고 바르게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어떤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단정하고 거기에 딱 주저앉아 있고 완고하게 서 있어서, 다른 참신하고 풍성하고 신선한 것을 주더라도 그것을 받을 줄 모른다는 것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빠져 있는 무서운 완고입니다.”
어떤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단정하고 거기에 딱 주저앉아 있고 완고하게 서 있어서, 다른 참신하고 풍성하고 신선한 것을 주더라도 받을 줄 모르는 무서운 완고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자기네가 그것이 성경에 의한 것이고 계시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을 때에는 무서워집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도리를 훼파하고 악을 행할 때에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중세에 종교 재판을 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사람을 무참하게 살해했던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 왕국이 메시야의 그 희한한 재주와 선행과 노력과 고통과 전쟁으로 건설된다고 생각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의 건설 내용을 가르치실 때에 그렇게 칼과 노력과 군중과 사람의 힘으로 역전 역투(力戰力鬪)해서, 분투(奮鬪)해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님의 역사로 사람의 마음속에 건설되어 가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유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메시야관에 의하면 메시야의 가장 강력한 성격은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큰 민중 운동의 지도자인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 나라를 지도하고 나갈 인물이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당신 혼자서 무엇을 싹 다 이루어 놓는 그런 인물이 아닙니다. (중략) 자기들이 일어나서 번영하도록 발전시켜야 합니다.”
“유대 사람들이 지금까지 전연 생각지 않았던 새로운 메시야 이미지입니다. 이렇게 개개인을 고통에서 벗겨 주시는 인물인 것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구세주(救世主)로서, 구주(救主)로서 당신이 주시는 구원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훨씬 신령적이고 또한 개인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유대인 사회는 어떤 테마와 어떤 시스템이 있는 논리가 들어가면 가만히 못 있고 일어나서 마구 받고 힘을 다해서 쳐부수려고 하고 싸우고 맹렬히 박해한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어떤 다른 사회에도 그런 일이 없습니다. (중략) 그 까닭은 무엇이냐? 한마디로 말하면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하나의 계통이 있는 큰 이상적인 사상, 그것을 간단히 줄여서 제목을 붙인다면 ‘메시야 왕국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그 영광의 속죄의 사실과 또한 메시야가 가지고 있는 참된 이미지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게 하옵소서.
“가장 무서운 죄악은 사람이 도덕적이고 규율적이고 자기 이상을 가지고 있고 겸선천하(兼善天下)라도 해서, 천하라도 같이 나서서 좋게 만들고자 하는 이상을 가지고 열렬하게 일하는 사람 가운데 있는 무서운 완고(頑固)입니다. 사무엘이 일찍이 그 죄악을 이야기할 때에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3) 하고 말했습니다.”
* 겸선천하 : 兼 겸할 겸. '맹자'의 내용 가운데 '진심장(盡心章)'에 나오는 '궁즉독선기신(窮則獨善其身)하고 달즉겸선천하(達則兼善天下)한다'는 말에서 나온 말. '무슨 일이 잘 안 풀려서 궁색할 때는 홀로 자기 몸을 닦는 데 힘쓰고, 일이 잘 풀릴 때는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한다'는 뜻.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완고에 빠지지 않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60년이 되면 네로가 일어나서 마구 박해를 하는 때가 오는데 이때는 51년경입니다. 갈리오는 네로의 스승이라고 하는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와 형제간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략) 하나님께서 갈리오라는 사람의 명쾌한 법적인 판단, 로마법의 판단을 쓰셔서 사도 바울을 거룩한 섭리와 은혜로 보호하신 일입니다. 만일 빌라도가 갈리오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저희가 사는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아노라 하면서도 사실상 우상을 들이는 일까지라도 빈번하게 많은 것을 아나이다. 주를 믿노라 하면서 사실은 세상을 사랑하고 탐심을 가지므로 우상을 들여서 사실상 믿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우상을 섬기는 사람보다도 더 괴악하게 세상의 영화(榮華)나 인간의 행복과 같은 것들이 우상이 되어서 지배하는 때도 많이 있사옵는데 이런 데에서 저희를 건져 주시옵소서.”
“지금 시대에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늘 범하는 가장 중요한 죄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은혜의 사실을 받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큰 죄가 됩니다. (중략)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그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아무것도 안 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징계를 받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항상 하나님 말씀을 늘 주의해서 대해야 합니다.”
자기의 고집을 따라 제 마음대로 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은혜의 사실을 받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사람은 반드시 창조주와의 관계하에서 사는 것이고 창조주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인 대주재 앞에 어떤 관계를 가지고, 어떤 의무를 가지고 사는데 그 의무를 행치 않고 당연히 있어야 할 당위의 위치에 있지 않는다면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분께 순종하고 그를 찾고 좇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그다음에는 그가 하지 말라고 하신 일, 즉 사신 우상(邪神偶像)을 섬기든지 그릇된 길을 가든지 남을 잘못 이끄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 일이 없습니다. 증명하려고 안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은 당연히 계신 것으로 하고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부인하는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사실상 입증하고 나가는 것이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보고 나갑니다. (중략) 안 믿는 사람과 신의 존재에 대해서 변론을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입니다. (중략)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 거룩한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경영과 통치와 역사(役事)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 은혜를 그 내부에도 주셨지만, 성신의 일반적인 역사(General operation of the Holy Spirit)에 의해서,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의를 행하고 또 선을 뒤좇고 진리를 찾고 그리고 좋은 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인격적이고 도덕적이고 고상한 인품으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각고면려(刻苦勉勵)해서 그 사람의 정서의 생활이나 의지의 생활에서 또는 지적인 활동에서 높이 수양하고 쌓아 올리면 이 세상에서 말하는 성인(聖人)도 되고 현인군자(賢人君子)도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저희에게 큰 은혜를 주셔서 주님의 나라의 거룩한 도리를 알게 하시고 또한 그 거룩한 도리 위에서 살게 하옵소서.
“칼빈 선생의 말마따나 부패했을지라도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 하면 도저히 다른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중략)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 초월하고 가장 고귀한 위치에다 사람을 놓아 두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는 희미하게나마 의를 따라서 나가려고 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진리를 사모해서 찾으려고 하는 이런 하나님의 형상의 나머지 자취가 늘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를 따라서 나가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진리를 사모하게 하옵소서.
“바울 선생은 후에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4) 또한 골로새서에서는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 3:10) 하는 말씀을 해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라는 말을 썼고,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았다’는 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