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 하심이 무엇입니까? 의롭다 하심은 죄 없다 하시는 하나님의 선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둘째의 사실은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같이 이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권속(眷屬)이 되어서 하나님이 친히 먹이시고 기르시고 세우시며 생존의 목표를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휘오쎄시아, 즉 양자(養子)로 삼는 일이 늘 거기에 붙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셋째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의롭다고 하시면서 너희를 세우시는 뜻은 최후에 너희를 만물의 후사로 세우시려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다.’”
죄 없다 하시고, 친히 먹이시고 기르시고 세우시며 생존의 목표를 세워 주시며,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2019년 3월 30일 토요일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이 강설의 특이성: 기독교의 전모를 선포함 2,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3쪽
“하나님께서 어떤 정부를 세우셨고, 그 정부가 어떻게 인류의 정부 위에, 역사를 창조해 가는 모든 인류 위에 친히 통재하시느냐 하는 것을 한 모델을 들어서 이야기해 나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목표를 나중에 분명히 일러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신 줄 아느냐? 그 거룩한 은혜를 구현하시려는 것이다. 그 거룩한 은혜의 구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공로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공로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019년 3월 27일 수요일
이 강설의 특이성: 기독교의 전모를 선포함 1,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1쪽
“왜 먹고사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자기의 해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정부가 여기 있다’ 하고 그 해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내셨고, 하나님이 너희를 먹고살게 해 주셨고, 너희로 하여금 목적을 가지고 살게 하신 것이다’ 하되 바울 선생은 이것을 하나님의 정부라는 형태로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부에서 먹고살며,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정부에서 먹고살며,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26일 화요일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의 타락 3,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0쪽
“오늘날의 기독교가 생활이 아니고 종교로 타락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거기서 영광을 떠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중략)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이 우리의 생활에 직면한 것이 아니거나 기독교의 참된 진수가 자기의 전체 생활 혹은 인간의 전체 생활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고 독특하고 괴이하고 괴상한 종교적 생활을 기독교라고 해서 그리로 사람을 몰아넣으면 거기에는 영광이 떠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나중에 그 점을 강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가 말씀한 기독교라는 것은 생활의 대종(大宗)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大宗 : 사물의 근본.
기독교의 참된 진수가 전체 생활을 포괄하게 하옵소서.
기독교의 참된 진수가 전체 생활을 포괄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의 타락 2,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10쪽
“‘거기에 하나님의 종교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의미 없다. 너희가 너희 전체의 생활과 너희의 권력과 너희의 영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을 할 때 하나님 나라의 패턴과 하나님 나라의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에는 아무리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를 가졌을지라도 제국이 와서 너희를 병탄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역사적인 의의라는 것을 우리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패턴과 하나님 나라의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움직이게 하옵소서.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패턴과 하나님 나라의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움직이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20일 수요일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의 타락 1, <사도행전5>, 제7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3), 209쪽
“종교라고 할 때는 전 세계의 역사의 성격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지, 문화의 거대한 성격 가운데 부분을 취해서 종교라고 하면 그것은 타락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종교라는 말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훨씬 포괄적인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부분적인 것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늘 생각하게 하옵소서.
부분적인 것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늘 생각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18일 월요일
기도,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95쪽
“저희도 다 양자의 영을 받아 후사로서 그 찬란한 영광에 들어갈 것을 믿고 감사하옵나이다. 이 같은 사실을 확실히 알고 믿어서 이 세상 사는 동안 허투루 살지 않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힘 있게 능력을 발휘하며 살게 하여 주셔서, 저희를 자녀로 세우신 본의가 있게 살게 하옵소서.”
1966년 4월 6일 수요일
1966년 4월 6일 수요일
2019년 3월 16일 토요일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5,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93쪽
“신약에 있는 이 중요한 사상이 무엇을 가르치는가 할 때, 먼저 그 근거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서 그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셨다는 사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그 생명으로 그를 다시 낳으신 까닭에, 부활하신 그 생명으로 태어난 그에게 이번에는 하나님이 무슨 법적인 지위를 주셨는가 하면 ‘내 자녀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後嗣), 곧 하나님의 후사”(롬 8:17)가 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좋은 것을 받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하는 말씀과 같이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높은 위치에 두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서 저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시고, 자녀 삼으시고,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높은 위치에 두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서 저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시고, 자녀 삼으시고,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높은 위치에 두시니 감사합니다.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4,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92쪽
“자기 생활의 고귀성과 남이 존경하는 것의 가치를 알았을 때는 다시 그런 데로 빠져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칭의의 실질적 효과입니다.”
제 자신의 생활의 고귀성과 남이 존경하는 것의 가치를 알게 하옵소서.
제 자신의 생활의 고귀성과 남이 존경하는 것의 가치를 알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13일 수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3,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91쪽
“칭의의 실효(實效)가 어떻게 미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참으로 일생 입고 싶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좋은 옷을 입었다면, 그 옷을 입은 것 때문에라도 다시 더러운 데 가서 더러운 것을 묻히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용서의 철저함을 깨달아서 칭의라는 사실이 나의 내부에 현실적으로 실효 있게 유지되었을 때는 절대로 죄에 더 거하지 않으려는 강한 반발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용서의 철저함을 깨달아서 칭의라는 사실이 저의 내부에 현실적으로 실효 있게 유지되게 하옵소서.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참으로 일생 입고 싶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좋은 옷을 입었다면, 그 옷을 입은 것 때문에라도 다시 더러운 데 가서 더러운 것을 묻히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용서의 철저함을 깨달아서 칭의라는 사실이 나의 내부에 현실적으로 실효 있게 유지되었을 때는 절대로 죄에 더 거하지 않으려는 강한 반발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용서의 철저함을 깨달아서 칭의라는 사실이 저의 내부에 현실적으로 실효 있게 유지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12일 화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2,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9쪽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하나님이 친히 대가를 지불하게 마련하시고 그 마련하신 것에 의해서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의 죄와 오늘의 죄뿐 아니라 나의 모든 결핍으로 말미암은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의 터 위에서만 칭의라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너, 오늘날까지의 죄만은 용서해 주마. 앞으로의 죄는 네가 주의해라. 주의하지 않으면 너는 탈락한다’ 하는 것은 아르미니안(Arminian)들이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저의 모든 결핍으로 말미암은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과거의 죄와 오늘의 죄뿐 아니라 나의 모든 결핍으로 말미암은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의 터 위에서만 칭의라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너, 오늘날까지의 죄만은 용서해 주마. 앞으로의 죄는 네가 주의해라. 주의하지 않으면 너는 탈락한다’ 하는 것은 아르미니안(Arminian)들이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저의 모든 결핍으로 말미암은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2019년 3월 11일 월요일
사죄와 의롭다 하심 1,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8쪽
“칭의(justification)는 앞에서 말씀드린 중생이라든지 변개라든지 성화와는 아주 다릅니다. 중생이나 변개나 성화는 항상 그 사람, 곧 죄인의 내부에 발생하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은 그의 내부에 발생한 문제라기보다는 그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도덕적인 문제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법적인 지위를 규정하는 말입니다.”
의롭다고 선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의롭다고 선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019년 3월 10일 일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8,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6쪽
“하나님의 통치 대권이 인류의 역사 위에 나타날 때 그것은 그 전에도 늘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권능의 왕국이 인류의 역사(歷史) 위에서 역사(役事) 하는 것입니다. (중략) 인류의 역사 위에서 작용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중략) 하나님의 권능의 왕국이 인류의 역사(human history 혹은 the history of mankind)에서 워크 아웃(work out) 한다. 로트(wrought)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왕국이 인류의 역사(歷史) 위에서 역사(役事) 하는 것을 잘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권능의 왕국이 인류의 역사(歷史) 위에서 역사(役事) 하는 것을 잘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9일 토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7,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5쪽
“이 설교는 어디에 늘 중점을 두고 이야기 했는가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전부이시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셨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너희가 이렇게 하고 인류가 이렇게 해서 역사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는 것은 천계(天界)에서 하신다는 이야기 일뿐만 아니라 땅 위에서 인류의 역사 위해서 이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거기에 무엇이 분명히 나타났는가 할 때 ‘하나님 한 분이 주역이시다’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주역이신데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은 역사 위에 이렇게 분명하고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중심이시고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이 역사 위에 분명하고 명료하게 나타남을 믿고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중심이시고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이 역사 위에 분명하고 명료하게 나타남을 믿고 깨닫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8일 금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6,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4쪽
“잘못해서 하나님의 대권을 제한하는 것도 옳지 않고, 잘못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그 무한한 값을 제한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편이나 다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타내 보이시는 거룩한 의사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것은 우리가 인간의 논리(reason)의 형식의 범주 안에서 하는 이야기이니까 논리의 형식의 범주 안에서 상고 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야지, 그 이상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것을 자꾸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로,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가설을 자꾸 꺼내서 한쪽을 자꾸 약화시키는 것은 부정당한 일입니다.”
논리의 형식의 범주 안에서 상고 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하게 하옵소서.
논리의 형식의 범주 안에서 상고 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7일 목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5,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4쪽
“제가 여러분께 증언 하고 싶은 것은 제 자신이 믿는 바는 무엇인가 할 때 ‘하나님은 절대자이신 까닭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사를 보이신 것은 완전한 의사이다. 하나님의 절대 속성하에서 나타내신 거룩한 의사는 그것도 완전하고 절대적인 까닭에 하나님의 무한한 절대에 대해서 우리의 추리(reason)가 함부로 상고(詳考)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 다른 길이 있다든지 없다든지 하고 자꾸 이야기 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길을 보이셨고, 하나님이 보셨으면 그것은 절대이다. 그런 줄 알고 우리가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꾸 논리로써 이것이 절대적이라면 다른 상대적인 길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 길밖에 없다는 말이 되고 말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 길밖에 없다고 보셨으면 그 길밖에 없다고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하나님이 그 길을 가지고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뜻이다. 하나님이 쓰시려면 쓰시는 것이고 쓰시지 않으려면 안 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지 않는가. 그러니 하나님의 거룩한 의사 표시는 그 자체로 언제든지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속성하에서 나타내신 거룩한 의사는 그것도 완전하고 절대적인 까닭에 하나님의 무한한 절대에 대해서 함부로 추리하고 상고(詳考)하지 않게 하시며,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절대 속성하에서 나타내신 거룩한 의사는 그것도 완전하고 절대적인 까닭에 하나님의 무한한 절대에 대해서 함부로 추리하고 상고(詳考)하지 않게 하시며,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6일 수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4,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3쪽
“논란을 한 결과, ‘하나님이 이미 계시하신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그 일밖에는 절대로 하실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에서는 안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그 길 외에 다른 길을 취하시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의사(意思)인 까닭에 절대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당하다’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 하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개혁 신학자의 이론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계시하신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그 길 외에 다른 길을 취하시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그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이미 계시하신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그 길 외에 다른 길을 취하시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그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5일 화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3,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2쪽
“위대한 개혁주의의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칼빈 선생은 어거스틴을 권위자로 인용해서 때때로 그것을 강조해 나갔습니다.”
“‘속죄가 절대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까지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방법이었느냐 아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냐’ 할 때 어거스틴 선생이나 아타나시우스 선생이나 칼빈 선생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전능과 대권하에서 속죄를 꼭 절대적이라고 할 것이 있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예수님을 육신의 몸으로 땅에 보내서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으면 도무지 구원하실 수가 없었다는 그런 말로 하나님의 대권을 제한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그런고로 그렇게 절대적으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늘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속죄가 절대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까지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방법이었느냐 아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냐’ 할 때 어거스틴 선생이나 아타나시우스 선생이나 칼빈 선생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전능과 대권하에서 속죄를 꼭 절대적이라고 할 것이 있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예수님을 육신의 몸으로 땅에 보내서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으면 도무지 구원하실 수가 없었다는 그런 말로 하나님의 대권을 제한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그런고로 그렇게 절대적으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늘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4일 월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2,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1쪽
“거기에 직접적인 직설법을 쓰지 않고 결국 자꾸 생각해 나가면 그 결론으로서 ‘아, 그러면 그것 자체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도략 가운데 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대권을 가지고 이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의 죄는 사람의 죄로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너희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한들 그렇다고 해서 너희가 하나님의 일을 실패하게 했다든지 차단했다든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과 그 대권의 행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몇 배가 되는 모든 악한 자들이 일어나서 모든 악을 다 행할지라도 그것을 저해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도략,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과 그 대권의 행사로 이끌어 나가심을 믿고 의지하며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도략,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과 그 대권의 행사로 이끌어 나가심을 믿고 의지하며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2일 토요일
하나님의 절대 대권과 예수님의 속죄의 필요성 1,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80쪽
“역사에서 간단한 이야기를 재료로 취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진행을 말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공의를 나타내시고 어떻게 그 사랑을 나타내시는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만세 전의 경영과 도략은 그 공의와 사랑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반영해 나가는가 하는 것에 대해 다윗까지 이스라엘의 맨 처음 역사로써 몇 가지 중요한 예시(例示)를 한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중략)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와 사랑의 역사(歷史)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정점을 땅 위에 인류의 역사 위에 계시했다’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생각하고 생활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중략)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와 사랑의 역사(歷史)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정점을 땅 위에 인류의 역사 위에 계시했다’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생각하고 생활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9년 3월 1일 금요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2, <사도행전5>, 제6강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2), 179쪽
“이스라엘 민족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쓰셨느냐’ 하는 것과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려고 인류의 역사 위에 이스라엘 백성을 택해 내신 줄 아느냐’ 하는 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컨대 여기에 나타난 사관(史觀)은 ‘모든 역사의 큰 주역 혹은 유일의 주역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여기서 한 이 강설은 간단한 강설 같지만, 이후에 올 기독교의 거대한 역사를 올바로 계속 해석하도록 하나의 중요한 시사(示唆)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이끄시는 삶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이끄시는 삶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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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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