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친히 내시고 스스로 소유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은 사실상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돈을 가지고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 이 몸도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그것을 바칠 자격이 있습니까? (중략) 그런고로 헌금이란 우리의 정신을 드리라는 것뿐입니다. 그뿐입니다. (중략)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추하고 더러운 것밖에 없어서 하나님의 그 아름답고 깨끗한 궁전에 용납할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전부 내어놓는 삶을 살도록 성신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2020년 2월 28일 금요일
2020년 2월 27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4,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90쪽
“교회는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잘못을 증거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넋은 다 어디로 가고 형식만 남아 있는 그것을 위대한 것같이 여기는 것이 헤브라이즘의 타락입니다. (중략)
우리 교회는 ‘자연스럽게’라는 표어(motto)를 늘 중요하게 썼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이상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내가 30도만큼 할 수 있으면 30도만큼만 할 것이지 그 이상으로 부풀려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자연스럽게 하게 하시고 그 이상으로 부풀려서 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는 ‘자연스럽게’라는 표어(motto)를 늘 중요하게 썼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이상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내가 30도만큼 할 수 있으면 30도만큼만 할 것이지 그 이상으로 부풀려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자연스럽게 하게 하시고 그 이상으로 부풀려서 하지 않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21일 금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3,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9쪽
“헌금을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신이나 넋은 빠지고 시시한 물건만 몇 가지 갖다 놓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느냐? (중략) 돈이 없으면 내지 말아라. 그러나 너 자신을 내놓아라. 나는 네 자신의 몸을 산제사로 들리는 것을 반가이 받는다. 그것을 네가 표상하기 위해 일전을 내놓든지 십 원을 내놓든지 네 마음 가운데 우러나오는 대로 기쁨으로 드리면 받을 것이지만, 없는 것을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정신으로 넋으로 제 자신으로 마음 가운데 우러나오는 대로 기쁨으로 드리는, 그런 원칙을 지켜나가게 하옵소서.
정신으로 넋으로 제 자신으로 마음 가운데 우러나오는 대로 기쁨으로 드리는, 그런 원칙을 지켜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2,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8쪽
“의식(儀式)이란 결국 어떤 원칙을 제시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제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도는 제도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큰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다리요 방도로서 존재합니다. 그런데 목적은 없고 그냥 ‘너는 다리 위를 한없이 돌아다녀라. 그러면 결국 도달할 곳에 도달할 것이니라’ 해서 한강 다리를 백날 돌아다닌다 한들 다리를 건너서 목적지에 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한강에 있는 것입니다.”
번문욕례적인 허다한 많은 방도에 치중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통치하심을 늘 승인하는 목적지를 향해 다리를 건너가게 하옵소서.
번문욕례적인 허다한 많은 방도에 치중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통치하심을 늘 승인하는 목적지를 향해 다리를 건너가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9일 수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1,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7쪽
“‘이 순결한 하나님의 나라를 여기에 건설한다. 그러기 위해서 생명의 존엄성을 늘 유지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의 생명을 주의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승인해서는 안 된다. 우상의 제물도 먹지 말아라. 그런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라’ 하는 위대한 법칙이 거기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원칙(principle)하에서 나온 법칙입니다. (중략) 큰 원칙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늘 유지하고 생명을 주의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승인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내용을 사회적으로 현시하게 하옵소서.
생명의 존엄성을 늘 유지하고 생명을 주의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절대의 대권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승인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내용을 사회적으로 현시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7일 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0,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7쪽
“둘째는 ‘생명은 순결하게 발전해서 거룩한 씨를 퍼뜨려야 하는 까닭에 불의나 불순과 추악으로 불행한 자녀를 만들고 불행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서 그로 말미암아 원한과 괴로움과 슬픔이 생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 부정당한 부모를 가진 불쌍한 어린아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회의 발전상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현실적이고 사회적이면서도 순결을 보전해 가면서 나아간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순결하게 여기에 건설하게 하게 하옵소서.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순결하게 여기에 건설하게 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3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9,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6쪽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대권 이외에 다른 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고로 우상의 문제나 목매어 죽인 문제나 피라는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되고, 거기에는 살벌하게 남의 생명의 희생의 터 위에서 자기의 행복을 건설한다는 그런 태도가 없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언제든지 약육강식(弱肉强食) 위에서 자연도태(自然淘汰)를 믿는 현대의 진화론적 철학 가운데서나 발견하는 문제이지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벌하게 남의 생명의 희생의 터 위에서 자기의 행복을 건설한다는 그런 태도가 없게 하옵소서.
살벌하게 남의 생명의 희생의 터 위에서 자기의 행복을 건설한다는 그런 태도가 없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2일 수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8,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5쪽
“역사상에 나타난 이 회의를 우리가 볼 때에 그런 중요한 의의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중략) 여기에 무슨 법이 있는가 할 때,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본래의 온정을 표시하기 시작해서 살벌하고 피비린내 나는 비인도적이고 비신국적(非神國的)인 현실에서는 언제든지 유리(遊離)해 나가는 것이다’ 하는 것이 여기에 나타난 큰 사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본래의 온정을 표시하기 시작해서 살벌하고 피비린내 나는 비인도적이고 비신국적(非神國的)인 현실에서는 언제든지 유리(遊離)해 나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본래의 온정을 표시하기 시작해서 살벌하고 피비린내 나는 비인도적이고 비신국적(非神國的)인 현실에서는 언제든지 유리(遊離)해 나가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1일 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7,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5쪽
“진(眞)을 추구하고 미를 추구하는 헬레니즘의 이상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데서 이루어진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헬레니즘이고 헤브라이즘이고 다 없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한 분뿐이구나. 그가 오직 유일의 방도이고, 이 방도를 떠나서는 이상(理想)의 경계에 도달하지 못 한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길이다. 이것만이 바른 철학이다. 헤브라이즘이나 헬레니즘이 지금까지 말하던 여타의 것은 그림자를 보인 것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이것이야말로 그 진리요 그 도리이다. 예수님만이 진리요, 죽었던 그가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 탄생했으니까 예수님만이 생명이다’”
오직 예수님을 유일의 방도로 길로 진리로 생명으로 알고, 이 방도로 이상의 경계에 도달하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님을 유일의 방도로 길로 진리로 생명으로 알고, 이 방도로 이상의 경계에 도달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10일 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6,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5쪽
“생의 충족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경계(境界)인 까닭에 자유라는 헬레니즘의 이상을 초월하는 것이고, 그런고로 하나님 나라의 자유라는 것은 무식과 맹목과 암매 가운데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암매의 노예가 되었던 내가 밝히 보고 밝히 깨달은 까닭에 높은 교양과 새로운 지혜 가운데에서 누리는 자유라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계에서 높은 교양과 새로운 지혜 가운데에서 자유를 누리며 생의 충족을 실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경계에서 높은 교양과 새로운 지혜 가운데에서 자유를 누리며 생의 충족을 실현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7일 금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5,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5쪽
“또 헤브리이즘에서 발견하는 자기희생(self-sacrifice)이라는 것도 자기 스스로 억지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심으로써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풍요를 소유하게 하시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아는 터 위에서 즐거이 자신을 드리는 것임을 안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생의 충족이라는 헬레니즘의 이상에 도달했다는 것을 동시에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대신하심으로써 저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풍요를 소유하게 하시고, 즐거이 제 자신을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대신하심으로써 저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풍요를 소유하게 하시고, 즐거이 제 자신을 드리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6일 목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4,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4쪽
“또 헤브라이즘이 가지고 있던 자기 부인이라는 것도 자기가 스스로 억제하면서 억지로 ‘안 된다, 안 된다’ 하고 스스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이 나에게서 홀연히 발생하는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자기 부인을 홀연히 이루심을 알고, 기꺼이 자기 부인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자기 부인을 홀연히 이루심을 알고, 기꺼이 자기 부인을 하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5일 수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3,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4쪽
“바울 선생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가지고 있던 이 위대한 사실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하면서부터 예수 안에서 이 위대한 이상들이 다 실현된 것을 보았습니다. 즉 헤브라이즘이 가지고 있는 유유 맹종(唯唯盲從)과 같은 맹종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참조. 롬 12:1).”
즐거운 마음으로 제 자신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게 하옵소서.
즐거운 마음으로 제 자신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4일 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2,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4쪽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죄를 지속적으로 자꾸 범하는 것이 아니다. 가다가 불가부득 넘어진 그 사실이 죄가 되지만, 그러나 넘어져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법은 없다’ 하는 말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 24:16) 하는 말씀과 같이 또 일어나 서는 것입니다.”
가다가 불가부득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서게 하옵소서.
가다가 불가부득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서게 하옵소서.
2020년 2월 3일 월요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1, <사도행전6>, 제6강 예루살렘 회의의 교훈, 184쪽
“내 속에 있는 성신으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의 나라를 내 안에 보유한 것을 증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도 중생이라는 사실의 터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참조. 롬 14:17). 그것도 저것도 없고 마음에는 밤낮 불안과 괴로움과 암매가 가득하고 늘 계속해서 악을 생각하고 불의를 생각하고 계속적으로 죄악적인 생활 가운데 호흡하고 살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범치 아니 하는 것이다’(참조. 요일 3:9; 5:18) 하는 말씀을 알 길이 없습니다.”
성신으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의 나라를 내 안에 보유한 것을 증시하게 하옵소서.
성신으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의 나라를 내 안에 보유한 것을 증시하게 하옵소서.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
-
“육신에 속해서 인간의 열정을 가지고 무엇을 행한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입니다. (중략) 분파(分派)가 됐다는 것입니다. 모든 분파된 것을 나쁘다고 한 것이 아니고 분파의 원인이 인간의 열정에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말씀입...
-
“‘나’라는 한 개체로 보면 내 안에서 주관적으로 또한 내 안에서 유기적으로 활동하시는 것입니다. 유기적으로 활동하시면 성신의 생각도 결국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떠오른 이 생각이 성신의 생각인가 내 생각인가를...
-
“성신님이 내 인격을 당신의 인격으로 화(化)하게 유기적으로 사역하려고 할 때에 하시는 방식은 강제로 하는 게 아니고 항상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앞에다 놔두고 우리에게 판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리로 가겠느냐, 저리로 가겠느냐?’ 성신께서 어떤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