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30일 금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8,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4쪽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덮어놓고 하나님께서 가장 진수(眞髓)와 진리를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노력하고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진수와 진리를 받고자 노력하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8일 수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7,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4쪽

"율법주의나 계율주의나 형성주의(formalism)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고 가르쳤으면 '그러면 본질은 무엇인가' 해서 그것을 파악해야지 파악하지 못할 때에는 무엇이 되느냐 하면 기독교인이라 하면서 가장 껄렁껄렁한 사람이 되거나 혹은 아마 아주 자유로운 자유주의자(liberalist)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불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배우고 깨닫고 익히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7일 화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6,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3쪽

"참된 것을 잡아야 충만함이 생기는 것이지 참된 것도 못 잡고 가지고 있던 것도 버릴 때에는 전연 공허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도 전연 하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참된 경계(境界)를 안다고 하거나 성경 공부를 전연 하지 않으면서 신앙의 참된 경계를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잡아 충만하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6일 월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5,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2쪽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하는 것은 또한 기독교적인 정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다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하는 말씀이 제4계명에 분명히 있는데도 안식일을 안 지키고 산다면 무엇 때문에 안 지키는 것인지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참된 본질을 배우고 익히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3일 금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4,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2쪽

"왜 그렇게 형성적인 것을 나쁘다고 해야 하느냐 할 때 사도 바울 선생이 말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더욱 알려고 하고 가장 고도적인 그리스도,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좀 더 올바로 깊이 알고 또 그 거룩하신 은혜와 권능과 고난에도 참여한다는 이 확실한 목표하에서 과거에 가지고 있던 모든 형성적인 것을 우리가 정죄하게 되는 것이지 목적 없이 정죄만 하면 파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더욱 알려고 하고 가장 고도적인 그리스도,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좀 더 올바로 깊이 알고 또 그 거룩하신 은혜와 권능과 고난에도 참여하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2일 목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3,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1쪽

"바울 선생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것을 해로 여겼다는 것은 참으로 진실하고 본질적인 기독교의 오의(奧義,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지니고 있는 깊은 뜻) 가운데 들어가기 위한 것이지 포기나 파괴 자체를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형성적인 기독교(formal Christianity)란 사람이 무엇 무엇을 꾸려서 기독교의 의(義)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의지의 작용에 한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지어낸 어떠한 종교적 감정도 해당됩니다. 예를 들면 '성자(聖者)가 되어야겠다'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하고 본질적인 기독교의 오의 가운데 들어가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1일 수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2,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60쪽

"예수 믿는 사람이 히브리주의적인 할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형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할례의 거룩하신 본의를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의 인 치심과 언약의 확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참된 기독교인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역시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러 성전에 들어가셨던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눅 2:21 참조)."

성신의 인 치심을 믿고 의지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12일 월요일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1, <사도행전3>, 제7강 형성주의를 버리고 참된 본질을 취함 중 158쪽

"동일한 하나님을 모시고 동일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동일한 기초적인 신 개념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가 교회를 핍박할 때에는 하나님께 대한 동일한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핍박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 대한 기초적인 개념이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이해의 심천(深淺), 즉 깊고 옅고 한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형제가 될 수 있게도 하고 혹은 위하여 봉사해야 할 대상들을 전연 반대로 핍박하고 괴롭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10일 토요일

기도,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53쪽

"큰 죄악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가진 연약 때문에 교회가 나타내야 할 참자태를 드러내지 못할 수 있음을 알고 겸손히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옵소서. 항상 주께 자신을 드린 자답게 자기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리되 약하고 결핍된 것까지라도 다 주께 드려서 부족을 채워 주심을 받고 수선함을 받고 그 위에 은사를 더하여 주심을 받아 주께서 쓰시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의 영광의 목적을 이루게 하시옵소서."

1981년 5월 3일 주일 오전

2016년 9월 7일 수요일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52쪽

"오늘날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고쳐야 할 것, 개혁해야 할 것, 또 바른 사상을 가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사상이 일조(一朝)에 고쳐지지 않는 것은 왜 그런가  (중략)
무엇이 개혁 교회입니까? (중략)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고루한 것을 버리고 신선하고 원칙적인 것들을 자꾸 받아서 거기에 의해 살아가거라' 하는 대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사상을 형성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다 만들어 놓고 '이것이다' 하고 일러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까닭에 하나님 말씀을 배울 때에 거기에 있는 대지(大旨)와 소지(小旨)만 빼내어 알거나 거기에 있는 이야기만 조르르 알고 끝난다면 깊은 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그것이 결국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생각하라고 하는가' 하는 큰 도리를 거기에서 배우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깊은 것을 배우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6일 화요일

유대화 운동 4,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51쪽

"유대주의 운동은 교회 바깥에서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중요한 장애로 늘 존재했고, 마귀는 그것을 이용해서 외부에 있는 유대주의자들과 내부에 있는 유대주의 운동자들을 서로 연결시켜서 그것을 타파하려고 하는 바울의 정당하고 참되고 바른 신학적인 전진과 진행을 몹시 훼파하려고 하고 박해한 것입니다. (중략) 큰 죄악은 아니었지만 이 인간적이 연약이 중대한 장애를 늘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또한 필연적으로 핍박을 불러일으킨 때도 있었습니다."

핍박 가운데서도 정당하고 참되고 바른 신학적인 전진과 진행을 하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2일 금요일

유대화 운동 3,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50쪽

"그 후에 그는 아라비아에 갔다가 한 3년 만에야 비로소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는 깊은 사색 가운데 새롭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주의적이고 번문욕례적(繁文縟禮的,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인 형식적 율법 준수에세 철저하게 탈피하고 승화해서 이제는 참된 실재의 세계의 거룩한 법칙을 전파해야겠다' 하고 바울은 투철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투철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할 사색력이 박약하고 또 전통에 얽매이기 쉽고 습관에 그냥 찌들어 있기 쉬운 사람들은 비록 예수님의 그 깊은 교훈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한 번이나 혹은 두 번이나 세 번 들어서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그 깊은 교훈을 깊은 사색 가운데 시간을 들여 깨닫게 하옵소서.

2016년 9월 1일 목요일

유대화 운동 2, <사도행전3>, 제6강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가 중 149쪽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쓸 때 절대로 거기에 신성을 부여해서 쓰지 않았고, 신성을 부여할 경우에는 참람(僭濫)하다고 해서 돌로 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고 그때 그런 고백을 했고, 그 후에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고백을 할 때에도 다른 제자들의 심정도 다 마찬가지였는데 역시 거기에 신성을 부여해서 말했고, (중략)
그랬는데도 얼마 동안은 이 쥬디즘(Judaism) 혹은 쥬디아이제이션(Judaization)이라는 유대주의적인 사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지낸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바울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