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나 구이코노미 시대가 가지고 있는 배타주의(particularism)는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 교회 안에 들어와서 누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성격인 보편성(universalism)과 확실히 대조되는 것입니다. (중략) 의식법은 만일 법으로 따지면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절차법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과 사람끼리 ‘너는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라’ 하는 여러 가지 가르침들은 실체법입니다.”
“더 깊은 지식을 얻은 까닭에 변동되었다는 것보다는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전에는 ‘못 쓰겠다’ 하던 것도 ‘할 수 없다. 그냥 그대로 용인해야지’ 하고 전에 일호(一毫)도 용납하지 않던 것을 용납하는 식으로 대개 많이 변합니다.”
“신령한 주의(spiritualism, spirituality)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근거로 비추어 보자면 구약적인 철저한 자기 규제에도 못 미치고 신약이 주는 바 거룩한 성신으로 말미암은 은사의 생활에도 이르지 못하는, 중도 소도 못 되는 반거충이와 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대개 크리스천들이 이런 중간 지대에서, 회색 지대에서 그냥 구안(苟安) 가운데 빠져서 안일하게 지내기가 참 쉽습니다.” * 중도 소도 아니다 : ‘스님과 속세인도 아니다’의 뜻인데, 속인(俗人)을 소[牛]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苟安 : 구차할 구. 구차하게 편안과 안위를 구하는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 지대에서 돌아다니기가 심히 쉽사오니, 주께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거룩한 성신으로 말미암은 은사의 생활에 이르게 하옵소서.
“회색 지대의 구안 (중략)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특색도 없고 아무것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그런 불분명한 도덕적인 상태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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