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논고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02쪽
“신비한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생명을 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람을 새로운 생명으로 살려 놓으시는 이런 큰 중생의 사실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 함부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이 많으면 그 속에서 중생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이지 사실상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을 주셨고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셨으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을 하는 것이고, 불리한 시기라고 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바울 선생의 변호는 자기변호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예수님의 일을 증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게 하옵소서.
이단이란 무엇인가 1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06쪽
“무엇을 어떻게 주장하면 이단이 되느냐 하면 기독교가 기독교 되기에 필요한 것, 즉 정통이 되기에 필요한 절대적인 요소는 많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절대적인 요소를 가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감하면 안 되는 진리를 파괴하고 딴 것으로 대치하면 비로소 그것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며 나의 구속의 주이시며 부활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가감할 수 없는 중요한 것으로 늘 붙잡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단이란 무엇인가 2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07쪽
“삼위일체에 대해서 ‘세 개의 양태(樣態)다. 마치 물이 있고 일면 얼음이 됐다가 열을 가하면 증기가 되어서 올라가는 것과 같다. 삼위일체는 그런 것이다. 하나의 실체이고 다만 세 개의 양태다’ 하고 말하면 그것은 유니테리언(Unitarian)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니테리언은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樣 모양 양, 態 모양 태. Unitarian : 유니테리언교도(삼위일체론을 부정하고 신격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한 파)
아들이신 하나님, 아버지 되신 하나님, 부어 주시는 성신님, 분명한 삼위일체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계신 것을 믿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이단이란 무엇인가 3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07쪽
“가령 ‘예수님이 지상에 와서 유대 땅에다 천년 왕국을 건설하시고 유대 사람들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운다’ 하고 주장하면 개혁교회 신학으로 볼 때에는 비성경적이고 비개혁교회적입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을 이단이라고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 형제들도 있다. 생각을 그렇게 하니까 어쩔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한 책이냐?’ 할 때 성경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리는 믿지만 ‘아니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포함한 책이다’ 그렇게 주장을 하면서도 기독론에 있어서 예수님의 속죄와 또 구원론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들을 그대로 지지하고 나간다면 그 사람을 이단이라고 못 하는 것입니다.”
바른 기독론을 지지하고 나가게 하시며, 형제들을 정죄하지 않게 하옵소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이단이라고 한 이유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0쪽
“계시가 (중략) 역사를 통해서 장기간 또 더해지고 또 더해지면서 전에는 불분명하던 것이 명백하게 되고 전에 종자(種子)의 형태로 있던 것이 줄기의 형태로, 줄기의 형태는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의 형태로 발전해 나왔다면 그 계시에 의한 크라이테리아 역시 요지부동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 種 씨 종. 크라이테리아(criteria) : 기준.
하나님께서 내신 여러 가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방법, 인간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항상 가변적(可變的)이며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바울의 변론 내용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3쪽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이것은 ‘명백한 사상 체계와 명백한 논리하에서 결국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내가 말을 한다’ 그런 뜻입니다. 왜 갑자기 양심을 들고 나서는가 하면, 지적인 감정, 소위 센티멘트(sentiment)라는 것이 양심이라는 것인데 자기는 자기의 지적 감정에 있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는 것입니다.” * sentiment : 정서, 감정.
성신께서 역사하셔서 명백한 사상 체계와 명백한 논리하에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계시의 발전과 신론 1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4쪽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계신다’ 이런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변증해 주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해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그것을 알 만한 것이 다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더 알아가며 그 지식이 자라나고 자꾸 깨닫게 하옵소서.
계시의 발전과 신론 2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5쪽
“자꾸 믿어 가면서, 칼빈 선생 말마따나 모든 지식은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당한 지식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알면 아는 만큼 하나님을 더 깨닫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쓰레기 지식이 많으니까, 알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너무나 많이 우리 눈과 귀에 다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색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집어 내던지는 지식의 재료라도 주워서 그것을 연마해서 하나님께 대해서 깨닫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든지 경륜이라든지 또 하나님의 크신 계획 내용에서 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많은 세월 동안 배우고 깨닫고 생활하는 데에서 얻게 하옵소서.
계시의 발전과 신론 3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6쪽
“오늘날 우리가 확실히 이단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계시가 더 이상 계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시는 더 계속되지 않고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상 다른 것을 더 보태면 그것은 계시도 아니고 그거야말로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완성된 계시를 잘 배우고 깨닫고 생활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바울의 변론의 근거가 된 사상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8쪽
“신약의 교회는 분명히 부활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부활의 능력의 발휘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사실은 최종 인류의 역사의 종결 때에 구체적으로 사람의 몸까지 영화된 상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완성되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참된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미 살아나 가지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중생의 사실이 부활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종말적인 의미의 부활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부활의 거룩하신 영광의 능력은 이미 중생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중생이라는 사실 위에서 비로소 교회는 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다시 살아난 새사람으로서 교회에서 부활의 거룩하신 영광의 능력이 발휘되게 하옵소서.
기도
<사도행전9>, 제8강 유대인들의 논고와 바울의 자기변호, 219쪽
“말을 하게 한 그 내용의 배경에 있는 그 큰 사상과 그 확신의 재료와 내용들을 오늘날 저희들도 명백하게 파악하고 있으면서 주의 말씀이 표현될 때에 적든지 많든지 확연한 터 위에서 늘 나타내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교회가 전체적으로 거룩한 도리를 잘 파악해서 이 거룩한 도리 위에서 확연히 서서 저희들의 생활도 경영하고 저희들의 증거도 있게 하시옵소서.”
1981년 2월 15일 주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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