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하나님을 양심에 따라 섬겼다는 말의 의미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49쪽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바 그 거룩한 계시에서 ‘이것은 죄다’ 하는 하나님의 가치 판단이 그 속에 있어야 양심도 그 가치 판단에 의존해서 ‘그러니까 이 죄는 행치 말아라. 의는 행하라’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사람을 죽여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를 만큼 암매하고 무지한 가운데로 빠져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도 일찍이 자기 양심을 따라서 기독교를 핍박했던 것이지 양심에서 하지 말라는데 억지로 혹은 포악이 좋아서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중략) ‘범사에 하나님을 섬기되 양심에 따라 섬겼다’ 할 때는 필연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인식의 터 위에서 그것이 가르쳐 주는 한에서 바른 데를 찾아 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말을 하거나 글을 쓰든지 하나님께서 보이신 바 그 거룩한 계시에 눈을 떠서 그 인식의 터 위에서 바른 데를 찾아 나가게 하옵소서.

역사를 통해 현저히 대조되는 두 가지 사실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56쪽

“역사는 단순히 인간들끼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이 역사의 성격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큰 세력이 움직이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도 이 인류 역사 위에 능력적인 사실과 영광으로 함께 전진해 가면서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캄캄한 절망과 어두움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능력적인 사실과 영광을 보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무런 반성이 없는 이스라엘 일반 민중의 상태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1쪽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찔린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는 과연 그런 죄인이다. 어찌할꼬?’ 하고서 나아온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소망이 있었고 빛을 찾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아온 사람들이 기독교인입니다. 요컨대 기독교는 전비(前非)에 대한 반성과 전비에 대한 정당한 평가 위에 늘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前非 : 이전에 저지른 잘못.

어떤 인간이 되고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지 어제와 오늘을 반성하는 지혜로움을 가지게 하옵소서.

멸망을 향해 치달아 가던 유대 사회에 참된 빛이 비침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3쪽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충만한 계시 가운데 있고 거룩한 사상 가운데 있고 또 하나님이 쓰시는 그 거룩한 성신의 충만한 능력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울에게서 물 흐르듯이 나오는 충만한 계시가 기독교의 교리 체계를 세웠고 큰 사상의 기저(基底)를 다 준 것입니다. 또한 바울 자신이 그런 능력 있는 사상가였고 동시에 성신에 충만해서 가장 거룩한 인격으로 활동을 했으니까 바울과 접촉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기회입니다.”

바울을 통해 좀 더 배워 빛으로 생명으로 참된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바울의 문제를 판단할 능력이 없던 산헤드린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6쪽

“‘네가 잘했다, 네가 잘못이다’ 하는 것이 명료하지 않을 때에는 그런 문제를 가지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몇 가지 조건에 의한 공식(formula)를 가지고 공리적으로 자기 종교적인 요구를 만족시키겠다고 하지 말고 한 인격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크게 가르쳐 주셨으니까 그런 것을 바르게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인격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크고 높게 배워나가게 하옵소서.

기도
<사도행전9>, 제6강 예루살렘 공회 앞에 선 바울, 167쪽

“아버지께서 저희가 좀 더 어떻게 인격으로서 장성하며 어떠한 사상을 포회하며 어떻게 문제를 생각해 나가야 하며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서 좀 더 영혼을 가진 사람답게, 그저 가장 단순한 조직으로만 되어 있어서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사는 사람이 아니고 깊은 생각과 사상을 가진 사람답게 정신을 차려서 깨달아 나아가도록 아버님의 계시의 내용과 가르침으로 풍성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신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그 보고(寶庫)와 풍성한 내용들을 인하여 저희들이 주께 감사드리지 아니할 수 없사옵나이다. 이제 그것이 우리 안에서 생명의 양식으로 충분히 공급되기를 원하오며 깨달아 알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리하여 주님의 자식으로서 거룩한 위치에 확실히 서게 하옵소서.”

1981년 2월 1일 주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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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