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어떤 상태인가 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17쪽
“복음의 기초가 들어가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것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라는 차등 있는 결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한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 여하가 그 결실을 하고 못 하는 조건이 되는 까닭에 복음을 듣고 예수 믿고 구원을 받는 상태와는 전연 같지 않습니다. (중략) 속죄와 중생의 문제는 사람이 자의(自意)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내리신다는 것이 중요한 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원하시는 때에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중략) 죽은 사람 자신은 상관이 없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음으로 그 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되도록 성신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죽음이란 어떤 상태인가 2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19쪽
“사람이 진짜로 죽었다는 것과 진짜로 살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다만 죽음의 현상 가운데 어떤 극히 미미한 한 부분의 상태를 가지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판단을 하게 되니까 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어떤지 잘 알 수 있는 조건이 불분명합니다.”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로 정신 현상을 연구해 봐도 꿈을 정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사람들이 느끼고 하는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그 본질을 가르쳐 주는 그 큰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들은 원래 그 죽음에 대한 근원과 본질적인 것은 잘 모르는 까닭에 그 본질이 주는 바 큰 자극을 자기가 받고 그것을 죽음이라는 말을 써서 표현을 해도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고 개념을 구체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게 하옵소서.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1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어떻게 우리에게 어떠한 것에 대하여 더 바르게 깨닫게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언어의 발생과 언어 형성 과정, 그리고 그것이 내함하고 있는 의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중략) 소위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설명을 하는 것인데, 설명하는 그것이 개념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캐취(catch)한 전부를 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언어의 발생과 언어 형성 과정, 그리고 그것이 내함하고 있는 의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바르게 깨닫게 하옵소서.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2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2쪽
“모르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걸 다 설명할 길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란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열 길 물 속보다도 더 깊고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가르치는가를 알아야 비로소 바르고 심오한 개념을 거기서 터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것을 배워 바르고 심오한 개념을 터득하게 하옵소서.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3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2쪽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에 따르면 죽음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리킵니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면 제일 간단하면서도 가장 요령 있게 가장 본질적인 것을 들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죽음을 참으로 알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데 그에게서 떨어지면 그게 죽음이라는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늘 붙어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4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2쪽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빚어내느냐, 거기에 어떤 독특성이 있느냐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면 하나님과 정당하게 가져야 할 생명의 양식의 공급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양식을 먹고서 삶을 표현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정당하게 늘 먹고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살았다는 사람의 중요한 증좌(證左)인데, 그것이 전연 없는 사람이라면 그건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정당하게 늘 먹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5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3쪽
“죽은 사람을 살려 놓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하시는 일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 놓으시기 위해서는 생명을 그에게 주셔야 합니다. 생명을 주신 다음에는 생명의 양식을 계속적으로 그에게 공급해 주시고 그러면 그는 계속적으로 잘 먹고 탈 없이 자라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생명을 주시고 생명의 양식을 계속적으로 공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적으로 잘 먹고 탈 없이 자라 나가게 하옵소서.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6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4쪽
“중생은 사람의 의사 여하에 관계없이, 사람의 상태 여하에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독단의 대권을 가지고 만세 전에 선택하신 그 사람을 적시에 불러내시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대권의 작용입니다. 사람이 거기에 협력해서 마음 상태가 이렇게 되어야겠다고 가르칠 이유가 없습니다. (중략) 당신 있는 대로 먼저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서 작용하는 것은 자기의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고 전도자의 어떤 설명이나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고 오직 성신께서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면 술 먹던 사람도 예수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단의 대권을 가지고 만세 전에 선택하시고 적시에 불러내사 성신께서 역사하여 예수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5쪽
“각성해서, 돌밭이 되지 말고 길가가 되지 말고 가시떨기가 되지 말고 옥토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중략) 자기를 반성해서 ‘나는 길가인가, 가시밭인가, 옥토인가, 그렇지 않으면 돌밭인가’ 스스로 반성해 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을 거울삼아서 비춰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생명의 양식으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이것 자체가 나에게 오늘 뭐라고 하고 무엇을 재촉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양식이라는 건 사람 노릇을 하려면 당연히 먹어야 할 정신적인 양식입니다.”
각성을 하고 반성해서 길가인지 가시밭인지 옥토인지 살피고,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뭐라고 하고 무엇을 재촉하는지 알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2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5쪽
“아무 생각이 없고 이 세상의 잡된 생각만 자꾸 하는 사람은 정당한 사람 노릇을 못합니다.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뜻도 그런 것입니다. 마치 육신이 양식을 먹고 소화 기관이 소화해서 영양을 흡수하고 기운을 얻어서 에너지를 발휘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속에 들어가면 영혼의 기능이 그것을 잡아 가지고 그것에 의해서 정당하게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제 않던 새로운 작용을 하고 어제 없던 힘을 더욱 얻어서 자꾸 나타내야 거기에 산 사람의 모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 들어가서 영혼의 기능이 그것을 잡아 가지고 그것에 의해서 정당하게 작용해서, 어제 않던 새로운 작용을 하고 어제 없던 힘을 더욱 얻어서 자꾸 나타내어 거기에 산 사람의 모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3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6쪽
“누구든지 하나님이 새로 낳으실 때에는 다 같이 하나님의 자식으로 딱 낳아 주시는 것입니다. 난 다음부터는 성화의 길을 걷는데, 여러 가지 영양을 먹고 장성해 가면서 병치레도 하고 싸움도 해 가면서 커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성화의 길을 걸으며, 여러 가지 영양을 먹고 장성해 가면서 병치레도 하고 싸움도 해 가면서 커 나가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4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6쪽
“무엇보다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들이 이 도리를 가지고 ‘나는 옥토거니’ 하라는 게 아니라,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다고 하고 당연히 나는 모든 것을 받은 것같이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따져 놓고 보면 의외로 길가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의외가 아니라 이게 참 많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돌밭도 많습니다. 그리고 가시떨기도 많은 것입니다.”
길가가 아닌지 돌밭은 아닌지 가시떨기가 많은지 생각하고 반성하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5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6쪽
“당연히 좋은 씨가 먹어야 할 양분을 가시가 옆에서 횡취(橫取)를 해 가고 그게 먼저 자라서 딱 기운을 누르면 좋은 씨는 그만 숨이 막혀서 제대로 결실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시를 무엇이라고 가르치셨느냐 하면 이생의 염려라고 했습니다.” * 橫 가로 횡, 取 취할 취
“우리는 그런 말을 들을 때에 ‘나는 아무래도 가시밭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생의 염려를 다 하는 까닭에 그렇습니다. 이생의 염려를 않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우리가 다 그렇게 거룩해서 참으로 마음에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께 다 맡기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삽니까? 왜 무엇이 없을 때에는 ‘이것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하고 마음 가운데 걱정을 합니까? 그런 이생의 염려가 있으면 그게 가시밭이라고 그랬지 염려가 있어도 옥토라고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참으로 마음에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께 다 맡기고 마음에 평안을 얻어, 이생의 염려를 하지 않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6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7쪽
“좀 잘되어 보고자 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욕심, 일락, 쾌락을 추구하는 욕심, 그것이 정신적인 쾌락이든지 혹은 육체적인 쾌락이든지 종교적인 행복이든지 내세의 행복이든지 현세의 행복이든지 상관이 없고 또한 그것이 종교적인 윤리적인 의미로서 행복주의(eudaemonism)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이 너희에게 있다면 이게 가시밭인 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이 내게 없다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좀 잘되어 보고자 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욕심, 일락, 쾌락을 추구하는 욕심이 가시인 줄 알고 자신을 잘 살피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7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7쪽
“돌밭에 떨어진 씨의 가장 큰 위험은 배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배반은 많은 사람의 배반과 동질의 배반이니까 배교하는 시대에는 배교의 동류가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다시 깨닫고 회오(悔悟)하고 나온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받으시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마찬가지입니다. 회개해야 할 것을 회개 않는 것같이 무서운 일이 없습니다. 회개해야 할 것을 회개 안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정상하게 먹고 자랄 수가 없습니다.” * 悔 뉘우칠 회, 悟 깨달을 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다시 깨닫고 회오하고 나아와, 정상하게 먹고 자라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8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7쪽
“생을 바르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내리신 중요한 명령이고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자식으로 났으면 하나님의 자식답게 세상에서 그 생을 유지하고 나가야지 하나님의 자식이 그냥 죽어 버린다는 건 일이 아닙니다. (중략) 그런 상태에 빠져서는 안 되고 생명의 양식을 제대로 먹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테니까 고쳐야만 할 일은 꼭 고쳐야 합니다. 고쳐야 할 일을 안 고친다면 고쳐야 할 병이 들었는데 안 고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그 병이 사람을 잡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고쳐야만 할 일은 꼭 고치고, 생명의 양식을 제대로 먹고 건강하게 자라, 생을 바르게 유지함으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중요한 명령을 잘 수행하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9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8쪽
“신령한 생활에 있어서도 병이 들어서 고쳐야 할 때에는 고쳐야 합니다. 그게 회개라는 것인데 회개를 하려면 먼저 병이 들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병이 들었는지를 알려면 자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서 진찰해 봐야 합니다. 자기를 조사하고 진찰하기 위해서는 좋은 진찰 기계나 들여다보는 기계가 필요한데 그런 것이 말씀입니다. (중략) 히브리서 4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이 선 예리한 칼과 같아서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12절) 한다고 했습니다. 그건 사람을 해부할 때 하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수술을 해야 할 것은 수술까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서 진찰하고 고치고 수술하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10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9쪽
“우리가 연약한 사람이니까 연약한건 어찌 할 수 없고 죽을 때까지 그냥 연약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욱 강건하기를 원하는 소원이 우리에게 다 있습니다. 말씀을 잘 먹고 영양이 충분히 보급되고 신체가 잘 활용되면 연약하던 사람도 강건해집니다. 그런고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해서 강건해지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속에 있는 새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먹고 영양이 충분히 보급되고 잘 활용되어 강건하게 하옵소서.
나는 지금 길가가 아닌가 1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29쪽
“우리가 주일날 예배드릴 때에도 항상 ‘육신도 건강하고 생활을 건전하게 해 줍소서’ 하고 건강한 사람으로서 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는데, 건강한 사람이 되려면 항상 잘 단련해야 하고 병균이 들어가서 작해하지 못하게 미리 잘 막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비추는 것들을 잘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비추는 것들을 잘 깨달아, 항상 잘 단련하고 병균이 들어와 작해하지 못하게 미리 잘 막게 하옵소서.
돌밭에 떨어진 씨의 상태 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1쪽
“시간이 지나면 옥토에 떨어진 씨는 자꾸 더 장성해서 열매를 맺고, 돌밭에 떨어진 씨는 더 장성하려고 해도 할 길이 없는 상태에서 위에서 해가 딱 비추니까 햇빛에 못 견뎌서 그만 시들고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돌밭에 떨어진 것이라는 걸 알 수가 있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옥토에 떨어져 자꾸 더 장성해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돌밭에 떨어진 씨의 상태 2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1쪽
“만일 어떤 교회가 대체로 돌밭에 떨어진 씨처럼 장성한 그 정도에 그냥 딱 멎어서 저회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즉 늘 낮은 곳에서 빙빙 돌고 거기서 올라가지 않고 향상을 않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면 이런 돌밭에 떨어진 씨는 그 본질상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걸 드러낼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주 좋은 신자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늘 낮은 곳에서 빙빙 돌고 거기서 올라가지 않고 향상을 않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더 향상하며 더 장성하게 하옵소서.
돌밭에 떨어진 씨의 상태 3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1쪽
“교회의 질이 높아야 돌밭에 떨어져 있는 씨의 진상을 아는 것이지 교회의 정도가 얕으면 돌밭에 떨어져 있는 씨의 진상을 알 길이 없습니다. 요컨대 상당히 세속적인 교회, 오늘날에 많이 있는 기업적인 교회에서는 돌밭에 떨어진 씨가 장성한 그 정도 상태로도 일류 신자로서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합니다.”
교회의 질이 높아지고 교회의 정도가 깊어지게 하옵소서.
돌밭에 떨어진 씨의 상태 4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2쪽
“기쁨으로 받는다는 것이 옥토에 떨어진 씨의 증거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배교할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반대하거나 안 받으려고 하거나 어리삥삥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기쁨으로 그걸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장성할 동안에는 외면적으로 그 결과가 나와서 충분히 신자로서의 생활 상태가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중략) 단지 거기서 더 커 가지고 결실을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거기서 더 커 가지고 결실을 맺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2쪽
“말씀을 인하여서 자기가 어느 하나를 결정해서 이리로 가든지 저리로 가든지 해야 할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가서 참으로 성신님이 역사하시는 동안에는 사람이 향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향해서 자꾸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딱 정체하고 있지 못합니다.”
말씀이 속에 들어와 참으로 성신님이 역사하시어 향상하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2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2쪽
“말씀이 자꾸 어디로 향해서 가라고 하는데 그리고 가서는 손해를 보겠단 말입니다. 그리고 가서는 자기의 행복이 무너지겠고 자기가 도저히 꿈꾸던 것을 이룰 수가 없겠고 그리로 가서는 세상에 제일 빈궁한 쪼다가 되고 말겠고, ‘원, 세상에, 그렇게 살 수 있나. 사람이 이 세상에 한번 나왔으면 보아란 듯이 좀 살아야지 이렇게 살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자기를 딱 막아서 이리저리 고려한 결과 ‘못하겠다. 그냥 이렇게 지내면서 교회에서 존경받고 그만큼 교회에 봉사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도 그런 정도로 상당히 존중하고 살고 그렇게 지내지’ 하는 이러한 길, 좋게 말하자면 중용(中庸), 그런 미디오우커(mediocre)를 딱 취하고 살아갑니다. 이런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불응하고 배반하고 나가는 일입니다.”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순응하고 나가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3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3쪽
“하나님께서 환난 핍박을 즐겨서 사람에게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 (중략) 어느 때는 얼마 동안 훈련을 시키느라고 주시지만 ‘잠시 잠깐 후에 다시 너희를 평안히 펴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중략)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고전 10:13)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당치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환난과 질고라는 것은 그 자체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고 신자의 신앙의 정도와 하나님의 배정(配定)하에서 신자를 길러내시는 양약으로 쓸 때에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과도하면 소용이 없고 부족한 것도 별로 그렇게 일이 안 되는 것이고 꼭 적시에 적당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 配 짝지어 줄 배, 定 정할 정 : 몫을 나누어 정함.
신앙의 정도와 하나님의 배정하에서 꼭 적시에 적당하게 주시는 환난과 질고가 길러내시는 양약이 되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4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4쪽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이 일 중 이것을 취해라’ 하고 그 말씀 가운데에서 무서운 경고와 함께 성신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가 ‘아닙니다. 이걸 취할 수가 없습니다’ 하는 것이 배반입니다. 성신의 감화로서 그 말씀의 의미를 그가 알고 적어도 말씀이 요구하는 초보적인 단계, 제일차적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너 저리로 가겠느냐 이리로 가겠느냐, 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냐’ 하는 분기점을 주시는 것입니다. 분기점을 받으면 거기에 의해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신의 감화로서 말씀의 의미를 알고 분기점을 받으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5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4쪽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 7:13). ‘세상 사람이 많이 안 가는 데로 간다. 가는 사람이 아주 희소하다. 그렇지만 그리로 간다’ 하고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좁은 길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그 다음부터 걸어가는 좁은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세상 사람이 많이 안 가는, 가는 사람이 아주 희소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생명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6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4쪽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와 복음의 참된 진리가 사람에게 제공되어서 말씀의 깊이가 날마다 더하고, 신령하고 오묘하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도리에 깊이 들어가서 그것으로 양식을 삼아서 생활하고 맡기신 사명을 해 나가는 것은 좁은 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리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소수가 그리로 가고 많은 사람은 기독교에 있는 그 여타 여러 가지 매력이 있는 것들을 따라서 또는 여러 가지 위력이 있는 것들을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신령하고 오묘하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도리에 깊이 들어가서 그것으로 양식을 삼아서 생활하고 맡기신 사명을 해 나가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7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6쪽
“좁은 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속죄의 큰 사실 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하나님께 전부를 바치고 하나님이 정하신 인생의 길을, 그 목표를 향해서 오직 그를 의지하고 나가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속죄의 큰 사실 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하나님께 전부를 바치고 하나님이 정하신 인생의 길을, 그 목표를 향해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는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8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6쪽
“하나님이 만세 전에 그에게 정하신 바 그 길을 걸을 때에 모두 다 한 가지 일을 하라는 건 아닙니다. 각각 찬란한 면류관의 여러 보석과 같이 너는 이걸 하고 너는 저걸 하고, 각각 주신 은사에 가장 적합하게 일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를 그러한 그릇으로 만드셨고 그러기 위해서 그에게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 은사 가운데서 나가는 것이지 자기가 스스로 무엇이 되려고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기독교의 예술가가 된다든지 사상가가 된다든지 그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반드시 넓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그걸 그 사람에게 정해 주시고 시키신 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확신 가운데서 나갈 때는 좋습니다.”
스스로 무엇이 되려고 나가지 말고, 은사 가운데서 나가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9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7쪽
“기쁨으로 받는 것은 그 중에 무엇이든지 받을 만한 기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 마음 가운데 참된 기독교의 길을 걸어라. 일생 동안 너는 너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만을 전부로 알고 그를 향해서 그가 만세 전에 경영하신 그 길로 가겠다고 확실하게 서약을 하고 전체를 바쳐라. 바친 다음에는 그가 뭐라고 명령하시는가를 기다려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거라. 그렇게 하겠느냐’ 할 때에는 그렇게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네 생명은 네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게 주셨으니까 내가 맡아서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봉헌해서 드려 버리는 사실이 없다면 결국 자기의 일생의 길을 자기가 경영해서 가겠다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제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만을 전부로 알고 주를 향해서 주께서 만세 전에 경영하신 그 길로 가겠다고 확실하게 서약을 하고 전체를 바치고, 바친 다음에는 주께서 뭐라고 명령하시는가를 기다려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게 하옵소서.
좁은 문과 좁은 길 10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7쪽
“자기가 경영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애쓰겠다고 하는 건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 없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그 말씀 순종하는 것과 같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뿐더러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23). 거역하지 말아라, 완고하여 네 고집 쓰지 말아라, 그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우상 숭배의 죄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제가 경영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애쓰겠다고 하지 않게 하시고, 거역하지 않게 하시며, 완고하여 고집을 쓰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 1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8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들 스스로가 항상 자기를 살펴서 진정으로 주님의 부르신 부르심에 응하여서 지금 자기의 길을 걷고 있는가, 자기가 무엇을 스스로 평가하고 그렇게 하면 자기가 행복을 구할 것 같아서 자기가 잘되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스스로 정하고 나가는 것인가를 항상 주의하게 하시고 주를 믿고 나왔거든 주님의 크신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간절한 마음으로 찾으면서 현재 자기의 서 있는 자리에서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는 간곡한 마음과 주께 전부를 바친 심정을 가지고 생활을 하게 하시옵소서.”
기도 2
<교회에 대하여 4>, 제49강 돌밭에 뿌려진 씨(2), 138쪽
“저희가 항상 아버님 앞에서 참으로 옥토인지 여부에 대해서 민감하게 자기를 반성하고 판단하고 주님 앞에 그렇게 옥토로서 바로 설 것을 간절히 원하고 나가게 하시옵소서. 이리하여 주님, 저희들을 참으로 쓰실 만한 그릇으로 삼아 주시고 옥토에 뿌린 씨가 결실하는 것과 같이 결실하는 사람들이 되게 합소서.”
1973년 2월 11일 주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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