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선 1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2쪽
“육신이라는 말은 성경에서는 자연적인 인간, 소위 자연인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무슨 도덕적인 의미를 거기다 보태지 않고 필연적으로 자연스럽게 조성되어 가지고 나온 인간입니다. 그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까닭에 받은 바 죄의 부패 상태, 죄로 말미암은 오염이라는 것이 죄의 상태를 늘 지어 주고 있어서 이 죄상에 나타난 전적인 무능력(total inability), 전적 부패(total depravity)가 필연적으로 그의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활동하는 것이나 또 감정을 사용하는 것이나 의지의 작용에 나타나서 어떤 일정한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띠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무능력하고 전적으로 부패한 육신의 성격대로 살아가지 않게 하옵소서.
자연의 선 2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3쪽
“‘육신에 속한 사람’이란 중생한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것을 아는 그 사고의 활동이나 당연히 가져야 할 순화된 거룩한 정서의 작용과 의지의 작용을 나타내지 않고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심정과 의지를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심정과 의지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중생한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것을 아는 그 사고의 활동이나 당연히 가져야 할 순화된 거룩한 정서의 작용과 의지의 작용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자연의 선 3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5쪽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타락했다.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부패하고 타락했을망정 그 부패한 하나님의 형상도 얼마나 훌륭하냐’ 하는 칼빈 선생의 말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가장 훌륭합니다. 그러면 그런 훌륭한 데서 훌륭한 종교도 나올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런 데서 훌륭한 기독교도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육신에 속했다는 말의 범주 가운데에 다 들어갑니다.”
육신에 속한 기독교에서 벗어나 성신을 좇아 행하게 하옵소서.
자연의 선 4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5쪽
“육신에 속해서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중요한 강령과 기독교의 참된 성격을 떠나서 주변적인 기독교 생활을 하고, 기독교의 근본 요소가 아닌 비본질적인 그러나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포괄한 기독교 색채와 향기가 있는 생활을 선하게 아름답게 고귀하게 성자답게 해 나가면 그것으로써 기독교는 훌륭해지느냐 하면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도리는 거기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배교에 있어서 또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중요한 강령을 따르고 기독교의 참된 성격을 발휘하는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교회가 육신에 속했다는 말의 의미 1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6쪽
“지금 대체로 보아서 세계 교회가 가지고 있는 큰 경향은 기독교는 문화적인 의미에 있어서 사회의 중요한 한 요소로서 세계의 문제와 그 진통을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의 배교상의 주요한 일면입니다. 그걸 왜 감히 배교라고 하느냐 하면 기독교의 본질적인 성격을 오히려 은폐하고 기독교의 참된 성격이 아닌 사이비적인 성격을 가져다가 기독교화하고 기독교의 간판을 거기다 걸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적인 성격을 오히려 은폐하고 기독교의 참된 성격이 아닌 사이비적인 성격을 가져다가 기독교화하고 기독교의 간판을 거기다 걸지 않게 하옵소서.
교회가 육신에 속했다는 말의 의미 2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6쪽
“사도행전을 보아도 그렇지만 기독교는 초기부터 사상이나 도덕 혹은 예술적인 기품에 있어서 세계 정상을 향해서 늘 올라가고 있었지 결코 뒤져서 가려고 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헬레니즘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서 머리에 이고 다닌 일은 없습니다. 헬레니즘이 들어왔을 때에는 그걸 먹고 소화해 버렸고 헤브라이즘도 그것이 전부라고 하지 않고 거기의 모든 부족을 보충해 버렸습니다.”
기독교 본래의 독특하고 찬란한 광채를 문화적으로든지 사회적으로든지 또한 그 자체의 역사의 모든 원인이 되는 요소로서 잘 발전시키게 하옵소서.
교회가 육신에 속했다는 말의 의미 3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7쪽
“기독교는 야만의 사회에 들어가든지 문화의 사회에 들어가든지 어떤 사회에 들어가든지, 문화 사회의 벽돌 혹은 콘크리트 혹은 철근 혹은 알루미늄 새시로 다 지어진 집과 같은 것이든지, 야만의 오두막 초가 혹은 볼품 없는 움막과 같은 것이든지간에 이것도 저것도 다 부수고 기독교의 독특한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모양의 집을 지어 놓는 것이지 이건 좋다고 이용하고 저건 못 쓰겠다고 버리고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독특한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모양의 집을 짓게 하옵소서.
교회가 육신에 속했다는 말의 의미 4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7쪽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소위 탈속한, 탈세계적인 이 독특성이라는 것을 잃어버릴 때에는 기독교는 이 세계의 문화의 정상에서 스스로 세계의 인류 문화의 한 내용으로 주저앉고 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인류 문화의 내용으로 주저앉는 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제3의 아름다운 세계를 하나 건설하면 이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렇게 건설한 하나님 나라는 땅위에 있어서 인류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고 인류에게 참된 빛이 되고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축복이 되고 인류에게 참된 빛이 되고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가 육신에 속했다는 말의 의미 5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8쪽
“사람들이 지어 놓은 여러 가지 찬란한 예술적인 성공, 예술적인 축적이라는 것이 인류의 아름다운 영광으로서 영구히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영광의 내용이 기독교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는 인류에게 영광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려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땅위의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나라인 까닭에 하늘과 땅에 걸쳐서 뻗어 있는 나라입니다.”
인류에게 영광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려고 존재하게 하옵소서.
교회가 육신에 속했다는 말의 의미 6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8쪽
“기독교 본래 가지고 있는 중생과 그리스도의 생명력 위에서 비로소 발휘되는 참된 미와 선과 진리의 본자(本姿)와 본질에서는 떠난 것입니다. 이런 걸 배교라고 합니다.” *姿 맵시 자
“육신에 속했다 하는 말의 뜻은 신자가 각 개인에게 있어서는 그가 개인의 생활에서 인간 선에 의지하고 자기의 지혜와 지식에 의지하고 자기의 능력을 의존해서 기독교를 봉사해 나간다는 데에 특별히 봐야 할 점이 있는 것이고 크게 전 교회적으로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전세계에서 어떻게 인간 문화를 자기의 영광의 관으로 쓰고 앉아서 그것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문화를 자기의 영광의 관으로 쓰고 앉아서 그것을 향해서 달려가지 않고, 기독교 본래 가지고 있는 중생과 그리스도의 생명력 위에서 비로소 발휘되는 참된 미와 선과 진리의 본자(本姿)와 본질에 충실하게 하옵소서.
시험과 배반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99쪽
“시험은 오기 마련입니다. (중략) 시험이라는 것은 마치 추위나 더위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중략) 시험 없는 세계라는 건 없습니다.”
“시험은 항상 마음에 오는 것입니다. 가만 앉았어도 시험은 받는 것입니다. 가만히 안 앉아 있고 바깥으로 도망간다고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견딜 수 없고 이길 수 없는 상태가 배교를 만들어 낸다 하는 걸 여기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배교를 만들어 내는 데에 시험은 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시험이 올 때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배교의 원인이 되는 바위 1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1쪽
“바위에 대해서 왜 추찰을 해야 하느냐 하면 구체적으로 ‘아, 요런 것이 바위 노릇을 하는구나’ 하고 알아야 방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뿌리가 깊이 못 들어오게 하는 요소 즉 사람 속에 있는 어떤 요소든지 그 사람에게 진리의 뿌리가 깊이 못 들어가게 한다면 그것이 바위라고 하신 것입니다.”
완고함과 탐욕을 방비하여 진리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옵소서.
배교의 원인이 되는 바위 2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2쪽
“제일 단단하고 무서운 바위는 ‘자기’라고, 아상(我相)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앞세우고 자기 종교를 하려고 할 때에는 자기의 비위에 맞는 동안은 기쁘게 받습니다. 기독교를 자기 종교로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못 받아서 가난하고 괴롭고 어려운 사람들보다도 은혜를 많이 받아서 부요롭고 평안한 사람들에게 그게 많이 있습니다. 생활에 큰 걱정이 없는 사람들은 생활에 걱정이 없는 까닭에 자기의 안온하고 좋은 생활을 계속 더 유지하고 싶은 심정이 바위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식 기독교를 가지고 자꾸 자기에게 억강부회(抑强附會)해서, 유리하게 해석해서 붙이는 것입니다.” * 抑 누를 억, 强 굳셀 강, 附 붙일 부, 會 모일 회 :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
자기 식 기독교를 가지고 자꾸 자기에게 억강부회해서, 유리하게 해석해서 붙이지 않게 하옵소서.
배교의 원인이 되는 바위 3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2쪽
“자기 귀가 가려워서 자기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이야기만 자꾸 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진리라도 자기 앞으로 당겨서 자기를 변호하는 데다가 자꾸 써먹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마음에 평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몇 가지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에 대해서 자기가 보답하는 형식으로 몇 가지 부조(扶助)를, 기부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위에 있는 일입니다.” * 扶助 : 1. 잔칫집이나 상가(喪家) 따위에 돈이나 물건을 보내어 도와줌. 또는 돈이나 물건. 2. 남을 거들어 도와줌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이야기만 자꾸 받으려고 애를 쓰지 않게 하옵소서.
배교의 원인이 되는 바위 4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3쪽
“마음에 말씀이 접촉을 했을지라도 반응이 없을 때에는 그게 길가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접촉했을 때 처음에는 기쁨으로 받지만 그것이 자기 속에서 믿음이 되도록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되 자기의 마음, 이 카르디아의 표면에 그냥 둘 수도 있는 것이고 조금 더 깊이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게 자기 속에서 뿌리가 되어서 깊이 박히고 그래서 그것이 참된 구원의 믿음으로 발전하는 것은 거절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돌밭에 뿌려진 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기쁨으로 받고 깊이 뿌리를 내려 장성하게 하옵소서.
배교의 원인이 되는 바위 5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3쪽
“그 바위가 무엇이 되었든지 궁극적으로 거기에 ‘자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령 물욕이라는 것도 결국 자기가 자기 행복을 위해서 뭘 보존하고 쓰겠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 행복 추구라든지 자기의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요구와 같은 종교적인 탐욕들이 다 바위입니다. 자기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귀찮고 마음을 괴롭게 할 조건들을 자기가 듣기 원치 않습니다.”
행복 추구라든지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요구와 같은 종교적인 탐욕을 좇지 않게 하옵소서.
배교의 원인이 되는 바위 6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4쪽
“일단 그 말씀이 쓰게, 칼과 같이 예리하게, 무섭게 북풍과 같이 경고하고 경책하고 그에게 ‘전부(全部)냐 전무(全無)냐’ 둘 중 하나를 결정하라고 결단을 요구하고 위기에다가 딱 세워두면 나는 그런 데에는 서기 싫다. 왜 내가 이렇게 그냥 억압에 눌려 가지고서 결정을 해야 하느냐? 나는 나대로 내 평안을 유지하고 나가겠다 하는 식입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형성한 소위 인간적인 안정, 이게 헬라적인 안정(εἰρήνη: 에이레네)인데 그런 인간적인 안정을 항구하게 지속할 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인간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이 경고하고 경책할 때 반대하지 않게 하옵소서.
성도의 교통(Communio Sanctorum) 1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5쪽
“시험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때때로 분기점(crisis)이 오는 것입니다. 들어간 말씀이나 자기가 접촉하고 있는 기독교가 그를 그냥 가만 놓아두지 않고,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하고 형편 좋게 자기에게 적당하게 믿으려고 하는 걸 그냥 놓아두지 않고 열 마디 들은 데서 한 마디 혹은 백 마디 들은 데서 한 마디라도 어느 때는 성신께서 쓰셔서 ‘네가 완전히 들어오든지 나가든지 해라. 뭐 하는 것이냐’ 하고 매로 그를 한번 때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책하시는 분기점에서 주님을 위해서 전부를 바치는 결단을 하게 하옵소서.
성도의 교통(Communio Sanctorum) 2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7쪽
“예배가 끝나면 휘휘 둘러보고서 조금 있다 가 버리면 됩니다. 특별히 누구하고 시비 상관 할 것 없고 교회라는 것은 결국 내가 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리 하나 빌려 주는 집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성도끼리 교통하는 것 이 두 가지 요소 중에 하나만 빠져도 교회로서는 의미 없는 것입니다. 나는 내 골방에 앉아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와의 교통은 교회에서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있고 교회에 몸담은 까닭에 성도끼리 서로 교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다가다 만나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서로 찾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성도끼리 교통하게 하옵소서.
성도의 교통(Communio Sanctorum) 3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8쪽
“예배당에 갔으니까 이제 불가부득이 서로 얼굴을 맞대는 것이지요. 그러면 교통을 합니까? 그때는 교통하는 것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교통하려는 게 아니라 만났으니까 인사하고 또 만났으니까 그냥 획 달아나기 안됐으니까 수어 수작(數語酬酌)을 하고 그런 다음에는 또 적당하게 가 버립니다. (중략) 성찬을 행하는 것으로 커뮤니온이라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것을 우리가 먹어 가면서 ‘너희는 한 살을 먹고 한 피를 나눈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나의 생명의 연결로서 생각하고 교통해라.’ 그래서 그것을 커뮤니온 서비스(communion service)라고 합니다.”
하나의 생명의 연결로서 생각하고 교통하게 하옵소서.
성도의 교통(Communio Sanctorum) 4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08쪽
“제도도 없고 예배당도 없던 제1세기 교회를 ‘사도 시대의 교회’라고 해서 교회 가운데 가장 표준의 교회라고 오늘날 자꾸 그러지 않습니까? (중략) 항상 모이는 것은 주의해서 열심히 모여서 서로 교통을 했습니다.”
“모이는 데에는 두 가지 교통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교통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고 둘째는 형제끼리 교통이 되는 까닭에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각성을 나누고 자기의 각성에 의해서 지낸 바를 이야기하고 사정을 말하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또 형제끼리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각성을 나누고 그 각성에 의해서 지낸 바를 이야기하고 사정을 말하게 하옵소서.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1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0쪽
“교회를 어떻게 아는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아는 것입니다.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니까 고린도 교회에 바울이 한 편지와 같이 ‘네 육신을 의지해서 보면, 인간적으로 따지고 보면 너희는 잘난 것 하나도 없고 훌륭한 것 하나도 없다. 다 못나고 다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또 기독교로 보더라도 너희들은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니까 내가 너희들한테 신령한 사람에게 말하듯 할 수가 없어서 육신에 속한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한다. 너희가 어린아이고 아직 장성한 사람이 못됐다. 그러고 시기와 분쟁이 있고 만성적으로 그전에도 감당 못하고 지금도 감당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지만 그래도 그게 교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어도 결국은 고린도에 위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게 하나님께서 교회를 두셔서 고린도 교회의 큰 사명의 하나는 그 편지를 두었다가 이 세상에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로 두셔서 쓰시고자 하실 때 그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2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1쪽
“진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바위이고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아상, 자기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복, 자기 자신의 무엇 이것을 제일 전제로 하고 거기에 손해가 나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나갈 때에 그는 오히려 교회 그 자체의 엄밀하고 공고한 존재까지라도 항상 그 의미를 안 따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받은 바 말씀 몇 가지를 가지고라도 분기점에 서서 이럴 것인가 저럴 것인가를 결정할 때에 마음 가운데 시험을 받아 가지고 에이, 그럴 것 있느냐 하고 마음을 더욱 완고하게 하고 종래와 같은 생활을 그냥 지속하고, 그것이 자꾸 계속되면 이 시험이라는 게 더 큰 게 오고 더 큰 게 와서 마지막에는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상으로 진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3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1쪽
“그가 위기에 처해서 본질적인 기독교를 안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 벌써 배반입니다. 무슨 형태가 바깥에 크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진실하게 교회를 봉사하고 나아가고 일원으로서 자기의 임무를 충실히 해야겠다는 이런 생각이 없이 그냥 예수 믿는다는 종교에 속해서 따라다니는 사람의 하나가 되겠다고 할 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진실하게 교회를 봉사하고 나아가고 일원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해나가게 하옵소서.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4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2쪽
“교회가 억압을 한다든지 억제를 하는 것이 절대로 좋은 게 아닙니다. 강요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절대로 원칙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신이 그 속에서 말씀을 하시고 교회에서 강설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만 하는 것뿐이지 그 나머지는 절대로 개인적인 작용(influence)이나 공작을 하는 것 아닙니다.”
교회에서 강설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할 때, 하나님의 성신이 그 속에서 말씀을 하시옵소서.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5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2쪽
“낙심 난 사람을 권고를 한다는 건 그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다가 잘 몰라 가지고 괴로움을 받았을 때 말씀을 풀어주는 데 있는 것”
“어느 때는 자기 마음 가운데 의심해서 방황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자기의 사정상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일일이 그 사람이 낙심 났다든지 신앙이 퇴보했다든지 그렇게 얼른 단정 않는 것입니다.”
“그의 전 생활, 긴 생활이 계속적으로 어떻게 향상해 가는가 하는 것만 주의해서 보는 것입니다.”
낙심한 교인을 권고하고 그이의 전 생활, 긴 생활이 계속적으로 어떻게 향상해 가는가 하는 것을 주의해서 보게 하옵소서.
시험이 올 때 배반하는 자 6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3쪽
“하나님 말씀 외에 다른 걸로 이래라 저래라 할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인사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인 까닭에 말씀을 전할 그릇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듣기 싫든지 좋든지 상관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 사람도 신실한 말씀 전달자입니다. 그리고 들은 말씀이 그 속에서 성신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이지 그 외에 달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이 속에서 성신으로 작용하게 하옵소서.
기도 1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3쪽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님의 거룩한 말씀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전달될 때에 그 말씀이 성신님으로 역사하여 그에게 믿음을 더욱 주시기를 바라오며 그런 때에 주시는 바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지 않고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하시고 그러나 힘이 없는 걸 깨닫고 ‘주여, 나를 붙들어 주시고 힘 주시옵소서. 스스로는 어떻게 할 길이 없고 이 자연적인 품성은 항상 반대의 길을 걷고자 하나이다’ 하고 자기의 연약한 것과 그 자연의 품성이 반신적인 성격인 것을 고백하고 의지하게 합소서.”
기도 2
<교회에 대하여 4>, 제48강 돌밭에 뿌려진 씨(1), 114쪽
“우리들이 다 같이 어떤 지경에서든지 하나님 앞에 항상 진리와 은혜의 길을 싫어하는 본질적인 진노의 자식의 경향을 원래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고, 그 옛사람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고 틈을 타서 저희에게서 발동하는 까닭에 주께서 항상 저희를 붙들어 주시고 주의 말씀의 깊이를 저희의 속에 깊이 심어 주시는 그 은혜를 거절하지 않고 늘 받게 합소서.”
1973년 2월 11일 주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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