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내용에 터를 둔 사색이 중요함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88쪽
“그 사람이 암만 철학을 서책으로 공부했어도 결국은 그가 철학을 해야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은 신께 대한 학문입니다. 신학을 암만 공부해도 신께 대한 끝없는 사색을 자기가 하지 않고는 신학을 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끝없이 사색하게 하옵소서.
배운 내용에 터를 둔 사색이 중요함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88쪽
“무엇을 얼마만큼 아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 아는 것을 재료로 해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큰 그릇으로 늘 쓰임을 받느냐 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어거스틴 선생을 때때로 생각하게 됩니다.”
아는 것을 재료로 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옵소서.
배운 내용에 터를 둔 사색이 중요함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88쪽
“그가 그렇게 위대한 종이 된 것은 그가 생각한 것이 심오한 까닭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깊이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가 높이 선 것입니다. 무엇을 배웠으면 배운 것을 재료로 하여 충분히 다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터로 해서 좀더 생각을 깊이 끌고 들어갔습니다.”
무엇을 배웠으면 배운 것을 재료로 하여 충분히 다 사용하고, 그것을 터로 해서 좀더 생각을 깊이 끌고 들어가게 하옵소서.
배운 내용에 터를 둔 사색이 중요함 4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88쪽
“어떤 사람은 책을 많이 보면, 책도 다 못 보지만, 책을 보았다는 그것에 압도되어 가지고 일생 남이 얘기한 것만 밤낮 보고 듣다가 세월을 다 보냅니다. 책을 부지런히 보고 남이 얘기한 소리를 우리가 듣는 것은 결국 자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는 생각을 않고 남이 얘기한 것만 듣다 보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 남는 것입니다.”
책을 부지런히 보고 남이 얘기한 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깊이 해 나가게 하옵소서.
배운 내용에 터를 둔 사색이 중요함 5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89쪽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것을 규명한다면 ‘내가 이 교회의 한 책임자로서 이 교회가 거룩한 본질을 확실히 나타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하는 문제가 그 다음에 남는 것입니다. 무릇 어떤 존재이든 그 본질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날 때 제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물이 물로서 물 노릇을 가장 잘할 때 가치 있는 것이라 말입니다. 교회도 교회로서 자기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데서 비로소 교회의 존재 의의가 가장 명료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한 책임자로서 교회의 거룩한 본질을 확실히 나타내어, 교회의 존재 의의를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게 하옵소서.
거룩함의 의의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0쪽
“베드로전서 3:15에 보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거룩하게 하고’ 하는 표현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가 거룩하시다는 것을 늘 승인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를 주로 삼았다고 할 때 그리스도를 가소롭게 본다든지 만홀히 여긴다든지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거룩한 생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아주 존숭히 여기되 나는 사람이니까 그릇된 자신과는 달리 그리스도는 그럴 수 없다고 항상 나와 구별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아주 존숭히 여기고 주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을 늘 승인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거룩함의 의의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2쪽
“큰 상자와 작은 상자가 있으면 큰 상자 안에는 작은 상자가 들어가지만 작은 상자 안에는 큰 상자가 못 들어가는 것이다 하고 설명합니다. 가치화할 수 있는 폭이 넓은 것은 그보다 작은 하등의 가치를 가치화할 수 있지만 하등이 상등을 가치화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물을 제단에 놓았으면 제단 때문에 예물에 의의가 있는 것이지 제단이 없는 다음에야 예물은 그저 물건에 불과하지 않느냐 그것입니다. 금이란 것은 세상 어디든지 있는 것이지만 성전에 있는 금은 바로 성전 때문에 그 독특한 의의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 (생략)”
더 가치 있고 의의를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게 하옵소서.
거룩함의 의의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3쪽
“금과 그리고 예물인 물질을 가리켜 거룩하게 한다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종교 의식상, 제도상 사용한 말인데 즉 어떤 물질을 거룩하다 할 때는 그 물질 자체가 거룩함의 속성을 지녔다기보다는 거룩되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거룩되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일정한 조건 하에서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금이라는 것은 성전에 사용된 금이란 조건 아래에서만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붙드시사 바로 깨닫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더욱 허락하시고 총명을 허락하옵소서.
거룩함의 의의 4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3쪽
“성전이란 것이 금을 거룩하게 하느냐? 그렇다. 성전이 무엇이길래 금을 거룩하게 하느냐? 성전은 거룩한 집이다. 거룩한 집이라 하면 허다히 많은 집 가운데 성전은 짓기를 묘하게 지어서 거룩한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 그 집을 신성화하는 모태적인 더 큰 본체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이라는 속성이 본체에서 나누어진 특성임을 인정하는 까닭에 즉 본체와의 관계로 인해 그 속성상 거룩한 것의 가치가 여기까지 미쳐서 거룩하다 그 말입니다.”
주님, 성신님으로 역사하사 거룩함이라는 말을 쓰시면서 이런 여러 가지 오묘한 도리와 그 안에 포함하사 가르쳐 주시는 것을 잘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함의 장본이신 하나님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3쪽
“결국 거룩하신 속성의 장본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과 관계되어서 물질에도 그 속성이 입혀져서 거룩하다는 말로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별되게 드려서 그 독특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장소나 시간이나 물질에게도 거룩하다는 도덕적 가치를 표현하는 용어를 쓰는 것인데, 그것은 반드시 그 배후에 도덕적인 가치를 지닌 도덕적 존재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 존재라고 할 때는 결국 인격체라야 하는데 오직 자존(自存)이 신성한 그분에게서만 거룩함의 속성이 유출되어서 파급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늘 유념하게 하시고 그 거룩함의 속성을 덧입게 하옵소서.
거룩함의 장본이신 하나님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4쪽
“종교의 제도나 의식상 의미로 거룩함이란 용어를 사용할지라도 그것의 소종래는 거룩함이라는 도덕적인 성격을 분명히 보유하고 계시는 그분을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시간도 그렇습니다. 주일이 거룩하다 할 때 거룩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시고 주인이 되사 통재하시고 주장하셔야 합니다.”
주님을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를 가지는 것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시고 주인이 되사 통재하시고 주장하시옵길 기도합니다.
거룩함의 장본이신 하나님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4쪽
“거룩함의 속성의 장본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시간이 거룩하다는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는 인격자들의 문제가 또한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인정하심으로써 충분히 다 거룩하다고 끝나는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계시되었을 때는 계시를 받은 인격자들도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그것이 가치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과 관계되어 있는 신성성이 가치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시를 받고 거룩한 것으로 인정을 하고 가치화 하여 생활과 관계되어 있는 신성성을 가치화하게 하옵소서.
거룩함의 장본이신 하나님 4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5쪽
“그 시간의 주인이 되어서 그 시간의 독특한 목적을 천명하시고 그 목적 하에서 독특한 의의를 시간에 부여하신 그분이 거룩하신 분인 까닭에, 즉 하나님 당신이 거룩하시고 시간은 하나님이 내신 바요 하나님께 속한 바요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확실한 사상을 내리신 까닭에 주일이란 한 날을 구별해서 거룩한 날로 생각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일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 돌리며 거룩한 날로 생각하게 하옵소서.
거룩함의 장본이신 하나님 5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5쪽
“계시를 받은 자, 그와 같은 가치를 교시(敎示)받은 사람이 그렇다고 승인하고 거기에 부응하게 자기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 동안에는 그 시간은 거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일을 거룩하게 여겨라 했으면 거룩하게 여기라는 말을 듣는 것은 우리들 사람입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여기지 않으면 주일이 홀로 거룩해지지 않는다 말씀입니다.” * 敎示 : 가르쳐 보임
도덕적인 가치를 승인할 수 있는 의식의 기능을 발휘하여 주일을 거룩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거룩함의 도덕적 책임자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5쪽
“주일날이 참으로 거룩한 날이 되려면 그 거룩함이란 가치가 하나님 당신에게서 나온 까닭에 그 날은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구별된 태도를 취하는 점에서 비로소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당신을 구별된 분으로 독특하게 존숭하고 숭앙하는 의미에서 거룩한 것이지 종교적 계율 몇 가지를 세우고 그 계율을 지킴으로 주일날이 거룩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구별된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 당신을 구별된 분으로 독특하게 존숭하고 숭앙하게 하옵소서.
거룩함의 도덕적 책임자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6쪽
“거룩한 그 날을 거룩되게 구별하신 근원자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날이 거룩히 현시되게 하는 도덕적 책임자는 나 자신인 것입니다. 그 날이 거룩히 현시되는 사실의 도덕적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시고 그 뜻을 인류의 역사 위에서 구현하시려고 할 때에 나를 책임자로 세우신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선하신 뜻을 가지셨을지라도 그 아름답고 선하신 뜻이 인류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현현되도록 하기 위해서 도덕적 책임자를 선정하시사 나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라 말입니다. 주일날이 현실적으로 사회적으로 현 역사의 세계에서 성화된 시간으로 나타나려면 언제든지 그 책임은 다른 누구가 아닌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시고 그 뜻을 인류의 역사 위에서 구현하시려고 할 때에 저를 책임자로 세우셨음을 깨닫고, 주일을 현실적으로 사회적으로 현 역사의 세계에서 성화된 시간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거룩함의 도덕적 책임자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7쪽
“인격자에게 있어서는 모든 행동이 첫째가 아니고 그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중략) 하나님이 명시하신 표준을 위배하거나 도달치 못한 마음의 위치, 그로 말미암은 마음의 상태, 다시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지는 행동 이런 것이 다 죄입니다.”
모든 행동이 첫째가 아니고 그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함을 늘 유념하게 하옵소서.
주일의 참뜻과 교회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8쪽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 하는 것도 내가 행동으로 계율 몇 가지를 지키는 것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특별히 주일과 관련해서 자기 마음이 거룩하다는 상태를 만들어 냈느냐, 거룩하다는 스테이트를 내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너는 평소에 주일의 참된 의의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서 거룩하다는 사상의 위치에 늘 서 있느냐 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주일은 모든 시간을 대표적으로 표시하는 날입니다.”
평소에 주일의 참된 의의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서 거룩하다는 사상의 위치에 늘 서 있게 하옵소서.
주일의 참뜻과 교회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8쪽
“헌금이 자기 존재와 소유 전체의 대표인 것과 같이 주일은 시간의 대표인 것입니다. 주일은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님, 보시옵소서’ 하고 대표로 하루를 주님의 적극적인 목적을 위해 지내는 것인데, 그것은 오히려 선행을 하러 다니기보다는 주님의 슬하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날은 내가 아버지를 위해 바깥에 나가서 일하지만 이 날은 아버지의 눈앞에 나가서 뵙고 그 슬하에서 기쁨을 드리겠다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사 때때로 만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신(神)으로 아버지께 나오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고, 그렇게 찾으시는 아버지 앞에 가는 것입니다.”
주일을 주님의 적극적인 목적을 위해 지내며, 아버지의 눈앞에 나가서 뵙고 그 슬하에서 기쁨을 드리게 하옵소서.
주일의 참뜻과 교회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9쪽
“경배받으시는 하나님은 신이신 까닭에 육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 가서 경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좌 앞에 나가서 절하고 그 슬하에 앉아서 아버지가 물으시면 대답하고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면 듣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를 보시는 것을 기뻐하시니까 와서 절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 발단이 하나님의 극진하신 인격적인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사업을 많이 하는 것을 기뻐하시기보다 먼저 자식으로서 나의 존재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내가 비록 못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 날은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으로서 나의 존재를 기뻐하시므로 내가 비록 못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주일은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주일의 참뜻과 교회 4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9쪽
“하나님은 어디든지 존재하시니까 아무데 서더라도 거기 있으면 하나님 앞에 선 것이다 하는 그런 범신론적인 이론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존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안에 일정한 대면을 한다는 구체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일에 경배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안에 일정한 대면을 하여 하나님께 경배를 하며 인격적인 교제를 하게 하옵소서.
주일의 참뜻과 교회 5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299쪽
“개인이 기도하면서도 얼마든지 경배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 마음의 경계가 늘 경배의 위치에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날은 나 혼자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나 혼자만 만나자는 것이 아니고 형제 된 자들과 함께 만나자는 것입니다. 교회의 보편성을 표시하는 바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명에 연결되어서 한 몸이 된 자들이 다 같이 함께 앉아서 같이 지내자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런 형식을 취하기 위해서 비록 완전한 형태는 아닐지라도 취한 형태가 한 지교회에서 교우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비록 완전한 형태는 아닐지라도 지교회에서 교우끼리 모여,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명에 연결되어서 한 몸이 된 자로서 다 같이 함께 앉아서 같이 지내게 하옵소서.
주일의 참뜻과 교회 6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0쪽
“주의 자녀는 다 같이 주님 앞에 앉기를 원하고 또 다 같이 앉을 것이지만 인간의 모든 제한상 우선 가능한 우리끼리 여기 앉아 있습니다, 하고 모이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 앉았으면 첫째는 아버지 앞에 경배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셋째로 중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아버지의 자식다운 자기의 품성이 거기서 확연히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품성이란 결국 사랑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주님 앞에 앉기를 원하고 아버지 앞에 경배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아버지의 자식다운 품성이 거기서 확연히 드러나 사랑으로 연결되게 하옵소서.
주일의 참뜻과 교회 7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0쪽
“교회라는 관념이 제1세기부터 무엇으로 표시되었는고 하니 외부에서 볼 때에는 성도의 교통(communion of saints)으로 나타났습니다. 교회란 성도가 서로 앉아서 마음을 주고 교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교회라야만 서로서로 알 수 있는 것인데 지교회 안에서 동지적인 결속을 해서 자기와 같은 위치에다 늘 끌어다 놓으려 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래서 서로서로 마음이 통하고 깨달은 바가 비슷하고 올라가는 데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까닭에 자연히 그것이 하나의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앉아서 마음을 주고 교통하며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나가게 하시옵소서.
주일의 참뜻과 교회 8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0쪽
“언제든지 교회는 가급적 사상과 생활에 있어서 동일한 사람들끼리 교단을 가지려고 하는, 말하자면 원심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동지들끼리 자꾸 널리 결속하려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그저 우리 교회 하나만 따뜻하고 평안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에이, 심드렁한 그런 사람과는 상관 안 하련다’ 한다면 요컨대 그것은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생각이 부족한 사람의 경계입니다.”
교회가 가급적 사상과 생활에 있어서 동일한 사람들끼리 교단을 가지려는 원심적인 노력을 하게 하옵소서.
주일이 거룩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3쪽
“주일이 참으로 거룩하려면 먼저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확실한 사상과 신앙 가운데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시간은 운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적인 존재니까 내 생명은 시간적인 범주를 취해야만 발휘됩니다. 내 생명은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이 생명의 발휘도 하나님께 있다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나의 생명의 발휘 하나하나는 매시 매초의 것이 다 하나님 것이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비로소 생명의 발휘가 가능한 것이니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는 확실한 인식과 신앙이 필요합니다. 내가 사는 일생 동안의 시간이라는 것은 그것이 곧 하나님 손안에 있고 하나님의 것인 까닭에 내가 나의 시간이라고 스스로 쓸 것이 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쓴다 그것입니다.”
생명의 발휘 하나하나, 매시 매초의 것이 다 하나님 것이며 하나님의 손안에서 비로소 생명의 발휘가 가능한 것이니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는 확실한 인식과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일이 거룩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4쪽
“이 날은 하나님께 직접으로 관계되는 일에 내가 관여해야 하겠다 하는 목적 의식이 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간접적인 어떤 선행이나 아름다운 일을 하기보다 이 날은 하나님 당신의 영광의 어전에 내가 직접 들어간다는 것이 주일을 보낼 때 가장 중요히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주일에 하나님을 위한 간접적인 어떤 선행이나 아름다운 일을 하기보다 하나님 당신의 영광의 어전에 직접 들어가 하나님께 직접으로 관계되는 일에 관여하게 하옵소서.
주일이 거룩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4쪽
“이 날은 특별히 그 보좌 앞에 나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마음의 경계를 내가 확호히 보유하고, 그것이 나의 생활의 샘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날 보유한 거룩한 마음의 경계가 나의 생활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주일에 내가 하나님 앞에 경배합니다. 또 하나님을 모시어 기리고 높이고 찬양합니다. 이 날은 나 혼자가 아니라 내 형제와 더불어 같이 경배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룩한 집단으로서의 형제들과 함께 그 날 커뮤니온이라는 것을 또한 가지는 것입니다.”
주일에 보유한 거룩한 마음의 경계가 나의 생활의 표준이 되게 하옵소서.
주일이 거룩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4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5쪽
“사실상 목자 된 사람의 책임은 자기 혼자의 문제가 전부가 아니고 자기 교구 전체의 상태 여하에 자기의 행동이 들어가는 것이오. 우리 교우들은 주일날 밥 사먹고 살아야 하고 주일날 나가서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어서 일하고 있는데 ‘나만은 주일날 아무것도 안 했으니 거룩합니다’ 하고 만족하는 심정을 못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위치에 있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 하고 같은 생각을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판자로 앉아 있지 말고 책임자로, 동거자로 같이 앉아 있게 하옵소서.
교회로서 주일이 거룩하다는 문제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6쪽
“주일이 거룩하게 현시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맡은 자는 개인이 아니고 교회인 것입니다. (중략) 내가 취하는 것은 늘 교회의 한 분깃으로서 일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무시하고 항상 자기 개인이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다 된 것같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왜냐하면 언제든지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자로서 영향력을 가진 대표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주일을 거룩한 날로 그 성격을 명시하는 생활 태도를 늘 공동으로 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주일을 거룩한 날로 그 성격을 명시하는 생활 태도를 늘 공동으로 표시하게 하옵소서.
교회로서 주일이 거룩하다는 문제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7쪽
“거룩한 교회가 하는 중요한 행동의 하나는 물론 예배입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예배할 수 있지만 주일날 모여서 예배한다는 이것이 벌써 교회적 행동입니다. 왜 하필 주일날 모여서 예배하느냐 하면 그것이 주일날을 거룩하게 보내는 중요한 방도이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모여서 예배함으로 주일날을 거룩하게 보내게 하옵소서.
교회로서 주일이 거룩하다는 문제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8쪽
“옛날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산업 구조와 산업 형태 하에서 그들이 집단적으로 지킬 수 있었던 사례와 혼동해 가지고 무엇을 강요하는 것은 성경을 바로 해석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원했는가? 성경이 어떤 방도까지도 일점 차착(差錯)이 없이 이천 년 전이나 삼천 년 전 방도 그대로 다 써야 거룩하다고 한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구약의 제사도 다 지내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 差 어긋날 차, 錯 어긋날 착. 어그러져서 순서가 틀리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함.
성경을 바로 해석하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09쪽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옷을 입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교회 교우 가운데 주일날 공장에 나가서 일하지 아니할 수 없는 사람이 있어서 그것으로 자기의 생계를 유지하겠다고 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목적과 성격, 하나님 나라의 운용 방법을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 않고 ‘너는 주일날 공장에서 일하니까 다른 특권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상황에서 어떤 형태를 취했다는 것으로 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거룩함의 속성의 본질적인 표준을 생각하여, 하나님 말씀을 배워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목적과 성격, 하나님 나라의 운용 방법을 체득하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0쪽
“불의한 사람은 불의한 대로 오너라 그 말입니다. ‘너의 죄짐을 지고 오라는 것이지 그것을 버리고 오라는 것 아니다. 문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네게 얼마만큼 생생하게 이루어지는가 보자. 네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졌느냐. 예수님께 가라. 그가 편히 쉬게 할 것이다. 그가 주는 안식을 네가 얻으리라’ 그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예수님께 가서, 편히 쉼을 얻고 주께서 주는 안식을 얻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0쪽
“어떤 한 시간의 대표를 제정하신 하나님 뜻에는 안식(安息)의 의미가 늘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 있어서는 안식일(שבת)이라, 쉬는 날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렛날 쉬셨으니 너희도 그래라 하신 것입니다. 창조의 역사 가운데 있던 하나님의 리드미컬(rhythmical)한 것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너희도 행하라 그것입니다.” * 息 숨쉴 식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렛날 쉬셨듯이 그렇게 주일에 안식하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4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1쪽
“주일의 안식이 무엇이냐 할 때 먼저 우리 속에 하나님 나라가 구현됐다는 사실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신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라’(롬 14:17)고 했습니다. 거기에 평안이 있는데 그것을 네가 보유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일날만 가지라는 것은 아니나 바로 그 날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그 경계를 충분히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로써 자기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평안의 경계를 충분히 구현하여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5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1쪽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주일날 안식을 못하느냐? 몸뚱이는 안식을 못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비록 네가 너의 상황 가운데서는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취하지 못할지라도 네 마음에서는 그것을 취하고 있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보유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처한 상황 가운데서는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취하지 못할지라도 마음에서는 그것을 취하고 보유하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6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1쪽
“교회가 주일을 구별되게 지킨다고 할 때는 먼저 마음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주일날 나는 다만 일을 않는다 한다면 우스운 얘기가 될 것입니다. (중략) 주일날 나가서 일하는 것은 안 되고 영화관에서 영화 보고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나는 주일 아침에 예배드렸으니까 오후에는 가서 어저께 읽던 관능적인 너절한 소설이나 계속 읽겠다고 앉아서 실컷 읽고 앉았으면 그 사람은 책벌(責罰)할 사람이 없는 것이고 누가 말할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구별입니까?” * 責 꾸짖을 책
주일을 먼저 마음으로 구별되게 지키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7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2쪽
“다른 날은 이 세상일에 분주하지만 이 날만은 우리에게 주신 모든 기능을 다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다가 주력하겠다는 태도가 언제든지 필요합니다. 또 교우들이 모여 가지고 그 날 같이 앉아서 점심을 먹고 하나님 앞에 찬송하는 시간도 보내고 앉아서 신령한 이야기도 할 수가 있습니다. 꼭 무슨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편안히 앉아서 하나님 나라의 여러 가지 얘기를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얘기의 중점을 모을 수가 있습니다.”
주일에 저에게 주신 모든 기능을 다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다가 주력하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8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2쪽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것을 중심으로 해서 서로 얘기도 주고받고 하는 이런 것이 신성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거룩히 지내는 한 방법입니다. 산보를 가고 싶으면 간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습니다. 자기의 처자들을 데리고 어디로 나가서 산을 바라보면서 바람을 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구경하러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마음의 상태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가 무엇인가 하는 데다가 자꾸 집중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일에 항상 마음의 상태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가 무엇인가 하는 데다가 자꾸 집중해 나가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9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2쪽
“다른 날은 다른 문제가 와서 자꾸 나를 지배하지만 그 날만은 마음에 여유가 있습니다. 내가 하던 무슨 일도 오늘은 잊어버리고 누구하고 거래하는 것도 중단하고, 그래도 오늘만큼은 내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의 문제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생각을 해 보자 하고서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님과 서로 문답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만큼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의 문제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생각을 하여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님과 서로 문답을 하게 하옵소서.
안식의 의의 10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2쪽
“누가 밥을 사먹었으니까, 차를 탔으니까 주일을 범했다고 야단 내는 식으로 따지지 말고 어떻게 적극적으로 주일을 보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주일에 적극적인 것을 안 하면 벌써 어떤 의미로 다 주일을 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항상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을 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는 그 말보다는 오히려 하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사랑하라, 자꾸 하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랑하게 하옵소서.
기도 1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3쪽
“거룩하신 아버지, 어떻게 하여야 아버지의 거룩하심같이 저희가 거룩할 수 있는지 깊이 알아서 과연 아버님이 기뻐하시는 그 거룩한 위치에서 거룩한 태도로 거룩한 생활을 하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우리는 자칫 잘못 생각하여 거룩하겠노라고 하면서 자기의 종교 열정에 취하여 스스로 세운 규범과 규율의 노예가 되어서 거룩하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는 노예 행태(行態) 가운데 빠지기도 쉽고, 그렇지 않으면 거룩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고 무법주의자들처럼 아무 구별 없이 제멋대로 자기 쾌락을 좇기도 쉽사옵니다.” * 態 모양 태
기도 2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3쪽
“자기의 종교가 우상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저희 속에 깊이 감응된다는 사실이 주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사실상 거룩함이라는 경계를 바로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저희가 이 오묘하고 신령한 도리를 바로 잘 깨달아서 저희뿐 아니라 저희와 함께 하는 교우들과 바로 나누고 바로 생활하여 바로 설 수 있는지 주님의 은혜를 받고자 이 시간도 모여서 주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했사오니 주님, 성신님으로 역사하사 거룩함이라는 말을 쓰시면서 이런 여러 가지 오묘한 도리와 그 안에 포함하사 가르쳐 주시는 것을 잘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 3
<교회에 대하여 3>, 제40강 교회의 거룩함(4), 314쪽
“저희가 깨달은 바를 깊이 명심하여 아버님의 거룩한 참 속성이 우리에게 그대로 나누어져서 그것이 발휘되게 하시고 그것을 발휘하는 사람답게 우리의 시간이나 우리의 소유나 존재가 언제든지 변함이 없이 거룩한 위치와 거룩한 실용에서 뒤로 떨어지지 않기를 원하옵고 주께서 지키시사 보존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부족한 저희들을 붙드시사 바로 깨닫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더욱 허락하시고 총명을 허락하옵소서. 저희들이 이 착잡한 세대를 살면서 자칫하면 구실을 붙이고 타락하기도 쉽고 자칫하면 그 반동으로 반대쪽으로 타락해 나가기도 쉽사오니 항상 정당하고 바른길을 걷게 인도하시고 저희를 지켜 주시옵소서.”
1969년 날짜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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