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 1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37쪽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하나의 유기체가 바로 교회라는 관점은 당연히 ‘인격’이라고 하는 중요한 내용을 거기에 적응시켜서 생각하는 말입니다. (중략) 그 인격이라는 말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개념의 근원 혹은 근본 요소는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물론 생명체이시면서 절대적인 의미에서 인격자이신 하나님에게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적인 거룩한 인격을 구현하게 하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 2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38쪽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라 할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한 큰 존재, 말하자면 거대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성삼위의 제2위 되신 한 분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포함하고 있는 바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그 인격자의 구성 요소인 세포, 단위의 요소들로서 연합해서 그리스도적인 거룩한 인격을 구현하는 하나의 큰 기관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을 구현하는 기관인 교회의 세포라고 할 만한 단위적인 구성 요소는 인격자들인 우리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성 요소인 세포, 단위의 요소들로서 연합해서 그리스도적인 거룩한 인격을 구현하는 하나의 큰 기관으로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 3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38쪽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효와 새로운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거룩한 하나의 용체(容體)를 구성하고 구현해 가는 단위입니다. 요컨대 교회의 속성이라고 할 때에 속성이라는 말 자체가 한 인격의 구체적인 성격을 상상하고 쓰는 말입니다. 교회라는 것을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보고서 사용한 말입니다. 그러면 그 속성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구현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 容 얼굴 용, 體 몸 체. 얼굴 모양과 몸맵시.

성신님으로 저희에게 비추시고 더욱 가르쳐 주셔서 분명히 깨닫게 하시며, 저희가 바로 알뿐더러 성신님으로 격려하시고 책망하시고 이끌어 주셔서 교회의 속성을 바로 구현하게 하시옵소서. 

우리 각각에게서 거룩한 속성이 구현되어야 함 1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39쪽

“내 자신의 인격적인 특성은 어떻게 구성되어 나타나느냐 할 때 먼저 생각할 것은 나의 기관과 기능이 정상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아무리 그 인격의 내용이 훌륭한 가치를 지닌 경우일지라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실용되고 실현할 수 있는 인격의 용체에 큰 결함과 불비(不備)가 있을 때에는 인격자로서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인에 비교해서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거룩한 속성,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일체성, 또 보편적인 성격을 아무리 표시하려고 할지라도 그것을 나타낼 수 있는 용체에 큰 결함과 불비가 있다면 그것이 충분히 나타날 길이 있겠습니까?” * 備 갖출 비.

우리 각각에게서 거룩한 속성이 구현되게 하시옵소서.

우리 각각에게서 거룩한 속성이 구현되어야 함 2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0쪽

“우리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가 거룩한 교회로서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하는 것이 항상 중점입니다. 그러려니까 필연적으로 이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 하나하나에게 동일한 속성이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와는 달리 교회의 거룩한 인격을 구성하는 단위 하나하나가 또한 인격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 말입니다. 하나하나가 도덕적 책임자입니다.”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 인격자로서, 거룩한 교회로서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우리 각각에게서 거룩한 속성이 구현되어야 함 3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0쪽

“하나님의 거룩한 법칙에 준거해서 자기가 자의식을 가지고 생활을 해야 하는 책임을 일컬어 도덕적 책임(moral responsibility)이라고 합니다. 윤리적 책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칙이라는 거룩한 크라이테리어에 준해서 자기가 거기 부응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이것이 도덕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이라는 거룩한 크라이테리어에 준해서 거기 부응하는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우리 각각에게서 거룩한 속성이 구현되어야 함 4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0쪽

“교인 개개인이 거룩한 하나님의 속성을 나누어 받은 사람으로서 제각각 충분한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생활의 행진 가운데 거룩함(holiness)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홀리니스의 프로세스(process)를 동시에 가져야 한단 말씀이오.”

거룩한 하나님의 속성을 나누어 받은 사람으로서 있어야 할 충분한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생활의 행진 가운데 거룩함이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 각각에게서 거룩한 속성이 구현되어야 함 5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1쪽

“거룩한 위치라는 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보혈로 사셔서 크신 은혜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속성을 우리에게 위치적으로 주셨다고 실컷 이야기할지라도 내 생활의 과정 가운데 거룩하다는 것이 구현되지 아니하면,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나가지 아니할 때에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교회는 거룩한 것이니라’고 백 번 이야기하여도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의 어떤 부분 즉 내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만큼은 이지러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생활은 거룩하지 않거든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을 확신하고, 내 생활의 과정 가운데 거룩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게 하시옵소서.

교인의 사생활과 교회의 성격 1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1쪽

“신자 개개인의 생활이라는 것이 교회의 속성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을 다시 좀더 진전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의 생활이라는 말은 내가 교회 안에서 생활한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교회가 한 개의 생명력을 가진 인격자라면 그것 자체의 생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체의 움직임과 지향하는 바와 또 그 자체가 이루어 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움직임, 지향하는 목표,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결과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그 자체의 생활이라고 합시다. 그러니까 그것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생활이지요.”

신자 개개인의 생활이라는 것이 교회의 속성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는 것을 유념하게 하시옵소서.

교인의 사생활과 교회의 성격 2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2쪽

“내가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생활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생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물론 대부분도 아닌 것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생활이라는 것, 교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의 구현이나 그것을 역사 위에서 증시해 나가는 전체의 생활 진행은 순전히 교인 하나하나가 자기 집에서 혹은 직장에서 하는 생활입니다. 교인의 사생활을 떠나서 교회의 성격이라는 것은 구성되지 않습니다.”

집에서 혹은 직장에서 하는 생활로 교회의 성격을 구현하고 역사 위에서 증시해 나가게 하시옵소서.

교인의 사생활과 교회의 성격 3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2쪽

“교회가 공동으로 앉아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대략 한 주일 생활의 십분의 일도 안 될 것입니다. 전 생활의 십분의 구는 우리가 교회 밖에서 보내는 것입니다. 교회의 생활이 우리 생명의 대표적인 시간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생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성격을 구성하는 전부입니까? 사실 우리의 성격을 구성하고 구현하는 생활의 대부분이란 가정과 직장에서 하는 생활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생활을 하며 거룩하게 하시옵소서.

교인의 사생활과 교회의 성격 4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2쪽

“교회가 거룩하려면 교우 개인의 생활이 거룩해야 함을 강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생활이 거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집에서 아이들을 기를 때도 그렇고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부인들이 씨서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그 생활 하나하나에 거룩하다는 속성이 구체적으로 늘 나타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교회가 저 혼자 거룩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끌어안고 산다고 해도 별달리 교회만 거룩하게 되는 수가 없습니다. 예배당 문 바깥에 있는 이 거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혹은 시장에서 아귀다툼을 하고 지나면서 보내는 생활 하나하나가 한마디로 말하면 ‘교회의 생활’입니다.” * 씨서리 : ‘설거지’의 방언 (전라)

 이 거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거룩하다는 속성을 구체적으로 늘 나타내게 하시옵소서.

교인의 사생활과 교회의 성격 5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3쪽

“교회가 어떤 호흡을 하고 있느냐,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성격을 표시하고 있느냐 할 때 우리 교인 개인개인을 놓고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활들을 하고 있는가? 교인의 생활은 잡다합니다. 어떤 사람은 시장 마당에 가서 싸우는 시간에 다른 한 사람은 조용히 골방에 앉아서 기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모두 합쳐 가지고 한 개의 성격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신령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교인의 사생활과 교회의 성격 6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4쪽

“결국 이상적으로 이야기하면 교인 하나하나의 생활이 다 신령하고 거룩해야 거룩한 교회의 성격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상으로는 적어도 교인들 전체의 경향과 또 대부분의 교우가 신령한 생활을 해야 하겠구나, 하고 밀고 나가야만 거룩한 교회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강설은 교회의 몇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우 전체에게 하는 것입니다. 교우 전체가 빠짐없이 강설을 다 잘 듣고 그렇게 은혜 받기를 원하지만 다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다는 안 될지라도 대부분은 그렇게 되어야 하겠다 말입니다.”

강설을 잘 듣고 은혜를 받으며 신령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1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4쪽

“단순히 그냥 나눠 놓는다는 의미보다 헌상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목적이 없이 나눠 놓은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은 분명히 ‘위로 올린다’는 데 있습니다.”
“이름 자체는 도덕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그 이름 찬양합시다 할 때는 이름이라는 부호를 찬양한다는 말은 아니고 사실은 그 이름이 대표하고 있는 바 실재이신 그분을 찬송한다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런 의미로 보자면 그것은 상당히 정신적인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수 있게 하시고 거룩함을 아버지께 돌려드리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2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6쪽

“‘거룩한 날’ 할 때는 분명히 어떤 사상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 대표하고 있는 바 가장 중심적인 그 날의 주인 되는 이 혹은 지배자라는 도덕적인 존재를 예산하고 전제로 하고 거룩한 날이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시간이 거룩하다는 그것 자체만으로는 의미를 안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날이 대표하고 있는 바 도덕적인 존재는 누구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신 것처럼 항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말에 대해서 참 의미를 바로 알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3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6쪽

“성소가 무엇을 대표하고 있느냐? 거룩하신 하나님을 또한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물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에서 쓰던 성물들이 무엇을 대표했느냐?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을 구현하는 한 기구, 표현 방도로 존재할 때 거룩한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항상 그 안에 있는 도덕적 실재를 전제로 하고서 거룩한 시간, 장소, 물질이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4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6쪽

“거룩한 날 하면 단순히 구별한 날이란 뜻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분명히 도덕적 성격인 순결성을 포함하고서 쓰는 말입니다. 구별할 뿐 아니라 도덕적 순결성이 있고, 반드시 하나님께 드린다는 구체적인 방향을 취한다는 내용들이 거기 붙어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사상이 신약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날로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5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7쪽

“‘내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누구를 거룩하게 하라는 말이냐 하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는 너희의 관념(idea), 너희의 사고의 결정(結晶)을 거룩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시간, 공간, 물질뿐 아니라 어떤 정신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거룩함’이라는 말을 적용한 예를 보는 것입니다.” * 結 맺을 결 晶 맑을 정 : 애써 노력(努力)하여 이루어진 보람 있는 결과(結果).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거룩하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6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7쪽

“참으로 신비한 사실이지만, 사람의 사고 작용이라는 것이 전 인격적인 작용 전체의 움직임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지 그것만 똑 떨어져 가지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고하면 필연적으로 지적인 감정(intellectual feeling)이라는 것이 움직이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심리학상 정조(情操: sentiment)라고 합니다. 센티먼트 없이 사고만 따로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 情 뜻 정, 操 잡을 조 : 정신(精神)의 활동(活動)에 따라 일어나는 복잡(複雜)하고 고상(高尙)한 감정(感情).

영혼의 기능이 조화 있게 총체적으로 작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7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8쪽

“어떠한 사상이든지 형성된 사상은 그 사람의 도덕적인 행동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통 생각하고 다음에 뜻을 두고 그 다음에 정이 움직이고 그리고 나서 행동합니다. 그러나 정이 반드시 행동에 비해 앞서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있다가 정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사고 작용과 의지의 발동이란 사실은 앞서는 요소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을 생각을 하고 뜻을 두어 그것으로 도덕적인 성격을 가지고 행동을 하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8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8쪽

“우리가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가 쓴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한다’는 말에다가 ‘신학을 한다’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다’든지 하는 말을 넣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아는 너희의 관념과 지식의 내용을 거룩하게 하라, 했다면 만물이 다 주께로부터 나와서 주로 말미암아서 주께로 돌아가는 큰 사실, 결국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으로써 거룩해야 할 것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도덕적 책임을 지는 초석으로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으로써 거룩하며 그것이 반드시 도덕적 책임을 지는 초석으로서 출발하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9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9쪽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에 단지 학문을 위해서 한다든지 혹은 자기의 지식을 풍부하게 하기 위하여 한다든지 하면 그것은 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는 거룩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드시 목표는 하나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신학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데에는 반드시 한 목표가 있는 것인데 그것은 거룩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았다 할 때도 그 관념이 우리에게 있음으로써 우리가 거룩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관념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순결한 것이 되게 하옵소서.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것의 개념 10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9쪽

“‘관념을 거룩하게 하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보통 얘기가 아닙니다. 관념을 명백히 하라든지 관념을 구체화하라든지 하면 내 속에 잘 정돈한다든지 뚜렷이 잠재시킨다든지 하는 정도에서 끝나겠지만, 도덕적인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는 말로써 거룩하게 하라고 했으면 전인적인 품성을 드러내는 총체적인 활동을 해야 하겠다 말입니다.”

관념을 거룩하게 하여, 전인적인 품성을 드러내는 총체적인 활동을 하게 하옵소서.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1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49쪽

“성경에 거룩하라는 말이 나올 때 늘 주의해야 할 것은 도덕적인 실재자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일 성수의 문제에서도 그것은 그 시간이 도덕적 실재자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도덕적 실재자를 무시하고서 자기가 실재자가 되어서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사상을 갖는다면 위험한 우상에 빠져들어가는 것입니다.”

주일의 도덕적 실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주일이 거룩함을 알고 주일을 성수하게 하시옵소서.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2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0쪽

“내가 밤낮 주일을 반대하고 무시하고 무관심했다 할지라도 엄연히 거기에는 도덕적 실재자가 어떤 시간을 도구로 사용하사 당신의 속성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날의 한 구체적인 대표가 주일입니다. 그래서 주일이 거룩하다 하는 말은 요컨대 이 시간이 대표하고 있는 바 도덕적 실재자가 계셔서 그 실재자의 거룩한 속성이 시간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인데, 우리는 다만 그 중요한 전례(sample)로서 주일을 지킨 것일 뿐입니다.”

주일을 대표하고 있는 바 도덕적 실재자가 계셔서 그 실재자의 거룩한 속성이 시간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을 덧입게 하옵소서.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3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0쪽

“그러면 월요일은 어떤가? 그 시간에도 거룩한 실재자는 존재하사 당신의 거룩한 속성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의 어떠함같이 그 시간의 성격을 부여하려면 나는 월요일에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성수하고 월요일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는 그런 이론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또한 중요한 사상입니다.”

평일에도 거룩한 실재자는 존재하사 당신의 거룩한 속성을 드러내시므로 주일의 어떠함같이 평일에도 거룩하게 하옵소서.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4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0쪽

“주일은 내가 이러이러한 종교적인 규율을 지킴으로써 이 날을 거룩히 지키겠다, 한다면 그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몇 가지 종교적 규율을 지키는 것으로 이 거룩함이라는 도덕적 성격이 성격화해서 나오지 않습니다. 가령 밥을 안 사먹고 집에 가서 찬밥만 먹고, 내가 자동차도 안 타고 걸어서 예배당에 가기만 하면 주일은 거룩하게 되고 나는 주일을 거룩히 지킨 것이냐? 거기에 어떤 도덕적인 가치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주일을 내가 종교적인 규율을 지킴으로써 성수하려는 잘못을 벗어나, 주일의 도덕적 실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속성을 나누어 받아 구현하게 하시옵소서.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5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1쪽

“혹여 어떤 사람은 그 날 금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금식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나누어 받은 사람이 그 날 거룩한 도덕적 성격을 특수하게 표시하기 위하여 하는 행동이라고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인할 뿐 아니라 그것이 가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떠나서 종교적 계율의 조목으로서 자기가 그것을 지키느라고 한다면 참 의미 없는 것입니다.”

종교적 규율을 지키느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나누어 받고 도덕적 성격을 드러내게 하시옵소서.

거룩하다는 것과 도덕적 실재자와의 밀접한 관계 6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3쪽

“만일 어떤 날을 구별했다 하는 것은 다만 구별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거룩하려면 도덕적인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시간이 도덕적 성격을 가질 수 없지만 도덕적 실재자가 그 날의 주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일날을 도덕적으로 성격화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할 기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인간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과 관계나 범주 위에 서 계신 하나님만은 그것을 성격화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 실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일날의 주인이 되셔야 그 거룩한 성격을 나누어 받을 수 있음을 알고, 몇 가지 계율을 지킴으로 주일을 성수하려는 잘못에서 벗어나게 하시옵소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5쪽

“내 생활이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이 아, 하나님 그분은 거룩한 분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는 사실(fact), 히스토리(history)를 만들고서 이것을 받으십시오 하는 상태라야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 하는 말뜻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도덕적 책임자는 누구냐 하면 나인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 할 때에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그렇게 거룩하게 드려야 할 책임자는 나다 그 말입니다.”

내 생활이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이 아, 하나님 그분은 거룩한 분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는 사실, 히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게 하시옵소서.

기도
<교회에 대하여 3>, 제38강 교회의 거룩함(2), 255쪽

“참으로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할 줄 아옵나이다. (중략) 주님이 거룩하다는 사실을 바로 증시하게 하시옵소서. 그렇게 함으로 아버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수 있게 하시고 거룩함을 아버지께 돌려드리게 하옵소서. (중략) 어떤 장소나 어떤 물질을 거룩하다 할 때 항상 그 의미를 바로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교회가 거룩하다 할 때에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 속성의 큰 뜻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더욱 명백하게 알기를 원하옵나이다. (중략) 이 혼탁한 배교의 세대에 참 교회는 어떠한 것인가를 확실히 증명하고 실증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1967년 1월 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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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으로 자라려면 1, <신앙의 도리>, 제1장 믿는 자의 정상적인 장성, 8쪽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바른 지식과 그 하나님의 말씀의 도리가 우리 속에서 필요한 때마다 때를 따라서 성신님의 주장(主掌)하심으로 능력있게 역사(役事)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바른 지식과 그 하나님의 말씀의 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