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서기관의 질문 의도와 예수님의 대답 논리 1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31쪽

“오늘날 우리들은 다 같이 예수님을 의지해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율법의 어떤 행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크신 은혜로 우리를 건져내시사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고, 그 사실을 깨닫고 믿고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크신 은혜로 우리를 건져내시사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사실을 깨닫고 믿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서기관의 질문 의도와 예수님의 대답 논리 2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31쪽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신 다음에 사람에게 더 아름답고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길을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언약을 세우신 사실입니다. 최초에 아담을 만드시고 시원적인 의를 가진 아담에게 언약을 내리실 때 그 내용은 ‘내가 말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뒤집어서 말하면 그것을 지키면 산다 즉 생명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더 아름답고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생명의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기관의 질문 의도와 예수님의 대답 논리 3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32쪽

“하나님은 가장 쉽고 또 사람이 전혀 불평할 수 없는 방법을 마련해서 영생을 얻게 하셨지만, 사람은 일부러 자기가 조작해 가지고 하나님을 반대하고 죽음의 길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중략) 인류의 대표 아담은 사람으로 하여금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성을 가지게 한 동시에, 순결하고 아름다운 시원적인 의를 가질 수 있는 위치로 회복할 만한 능력조차 상실하게 한 것입니다.”

가장 쉽고 또 전혀 불평할 수 없는 방법을 마련해서 영생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서기관의 질문 의도와 예수님의 대답 논리 4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32쪽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 실패한 것이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전적인 무능력 상태에서 사람을 건져내시기 위하여 생명을 주시는데, 이것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이 값없이 거저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네 행위에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고 하던 시대는 그것으로 끝나고, 이제는 내가 값없이 주니 이 값없이 주는 것을 받아라’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언약의 시대가 전개된 것입니다. 그 이래로 오늘날까지 우리는 그 은혜의 언약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언약 가운데 건져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해석의 문제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38쪽

“야고보 2:10에 있는 말씀도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율법의 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생명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에 이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날의 율법의 의미 1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39쪽

“요한복음 6:28에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29절)”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게 하옵소서.

오늘날의 율법의 의미 2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39쪽

“이 법이라는 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할 때 역시 그 법은 하나님 당신의 속성에서, 하나님 당신의 존재에서 나온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의 속성 전체를 충분히 다 담아서 나타내실 것 같으면 사람 자신의 유한성 때문에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당신의 그 거룩한 속성의 내용을 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서, 하나님의 존재에서 나온 법을 바로 잘 배워 나가게 하시옵소서.

오늘날의 율법의 의미 3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39쪽

“하나님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터득해서 실효를 낼 수 있는 한계 안에 있는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한 내용을 법이라는 표현 방법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법이 곧 하나님의 완전성 전체를 드러내거나 하나님의 모든 의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 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것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사람이 터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신성하신 것과 공의로우신 것을 우리가 알기 위해서는 법을 연구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하신 것과 공의로우신 것을 알기 위해서 법을 연구하고 이해하게 하시옵소서.

오늘날의 율법의 의미 4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0쪽

“법에 하나님의 의의 속성이 완전하게 계시된 것은 아닐지라도 인간이 영혼의 기능들을 가지고 그것을 추리하고 상상해서 깨달아 갈 수 있는 가장 심오한 대상으로 법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표시된 법조문이 그 법을 받는 사람들의 정도 때문에 불가부득 실정법의 형식을 취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의 의미를 생각할 때는 항상 그 뒤에 있는 자연법, 그리고 영원의 신법(神法)을 반드시 상고하고 궁구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기능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의 속성을 추리하고 상상해서 깨달아 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날의 율법의 의미 5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0쪽

“법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과 공포에 빠지도록 하거나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0:28에서 그것을 말씀하셨지만, 마태복음 19:17에서도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고 해서, 계명이 결국 생명에 들어가는 길임을 가르치셨습니다.”

법의 목적을 바르게 이해하게 하시옵소서.

오늘날의 율법의 의미 6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1쪽

“전적으로 무능력해진 인간에게는 행위 언약의 시대에 효과를 냈던 그것이 실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법이 가지고 있는 효용은 무엇인가? 오늘날 법은 사람의 죄를 억제하는 효과를 내고, 사람이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신자의 생활의 규범으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법은 오늘날도 살아서 늘 사역되는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용(用)은 실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법을 바로 깨달아 알게 하시고, 그로써 죄를 억제하며 죄를 깨닫고 생활의 규범으로 삼게 하옵소서.

오늘날의 율법의 의미 7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2쪽

“유독 우리에게 선행을 강제하되 착한 일을 해야겠다는 것으로 우리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일도 이제는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신의 법이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까닭에 우리에게는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성신의 법이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선행을 이루어 나가게 하시옵소서.

오늘날의 율법의 의미 8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2쪽

“율법은 신자의 생활의 규범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알고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닮아서 우리의 품성이 어떠해야 하겠다는 표준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는 오늘도 살아서 신자 위에 늘 작용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자라도 자꾸 죄에 빠지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에게는 죄를 각성하게 하여 억제하고 경고를 하는 점에서 율법의 조문들은 오늘날 효과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아 죄를 각성하고 하나님의 의를 알며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닮아가게 하시옵소서.

이웃 사랑의 개념에 있는 결핍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3쪽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웃 사랑이라는 사상을 보면 ‘이웃’에 대해서나 또 ‘사랑한다’는 개념에 대해서 다 같이 심히 미흡하고 낮은 차원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의 어떤 기독교인에 비해서 그 이해가 낮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서 우리가 당연히 깨달아야 할 그 세계와 비교할 때에 낮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그런데도 그들은 그 낮은 처지에서 높은 세계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이것이면 됐다, 거기에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느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서 우리가 당연히 깨달아야 할 그 세계를 늘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진리를 구하는 바른 태도 1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4쪽

“예수님은 누가 어떤 이론이나 신학적인 명제 혹은 쟁점을 가지고 와서 물을 때 덮어놓고 그대로 대답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먼저 그 사람에게 그것이 진정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를 생각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은 불필요한 일에 끼여서 괜히 공론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았습니다. 허비하는 이야기를 즐긴 그런 철학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것도 상대가 받을 수 있을 때 주신 것이지 받을 수 없는데도 진주나 보물을 개나 돼지에게 던지듯 진리를 던져 주시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론이나 신학적인 명제 혹은 쟁점으로 괜히 공론하고 허비하는 이야기를 떠나,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진리를 얻어 하나라도 생활에서 체득하게 하시옵소서.

진리를 구하는 바른 태도 2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5쪽

“진리는 공짜입니까? 그것은 말로 하는 것이니까 거저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심히 고귀한 값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하나님 말씀을 주었는데, 물질을 좀 거두기로 많다고 하겠느냐’(고전 9:11) 하면서 사도 바울 선생은 명백하게, 너희가 물질을 존중히 여기느냐 진리를 더 존중히 여기느냐? 교회의 정신은 진리가 더 중요한 것인 줄 알아야 한다 하고 가르쳤습니다.”

진리가 더 중요한 것인 줄 알게 하시옵소서.

진리를 구하는 바른 태도 3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6쪽

“예수님 앞에서 참으로 생명의 도리를 얻으려 하지 않고 생명의 도리라는 제목을 가지고 이론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오늘날도 신학 이론을 좋아하고 성경에 있는 난문(難文)을 가지고 공연히 떠들기 좋아하면서 성경의 평범한 도리 하나라도 생활에서 체득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의 평범한 도리 하나라도 생활에서 체득하게 하시옵소서.

진리를 구하는 바른 태도 4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6쪽

“교회에서도 하나님 말씀의 여러 가지 내용을 배우면 자칫 귀만 자꾸 높아져 가지고 새로운 것만 바라고 있지 그 의미가 자기의 장성에 맞는 자양으로서 작용하지 않는 경우가 때로 생긴다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차례차례 장성하려고 하는 태도가 부족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런 교회도 공연히 이론만 하는 앞서의 그런 사람과 같이 별의미가 없는 것인데 여기 서기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차례차례 장성하려고 하는 태도를 가지게 하시옵소서.

진리를 구하는 바른 태도 5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6쪽

“‘지금 이단이니 정통이니 하는 것이 있기 전에 더 근본적으로 채워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것이 너에게는 결핍된 상태이다. 그것이라도 우선 채워라. 그리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너는 이상의 충만한 인간성 즉 영광스런 생명의 그 인간성을 생각할 수 있다’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의 인간상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영화된 인간상, 거룩한 영광의 능력을 받은 인간상,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인간상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채워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것을 우선 채우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영광스런 생명의 그 인간성을 이루어 나가게 하시옵소서.

진리를 구하는 바른 태도 6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7쪽

“참된 복음이란 최종적으로 인간성을 회복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상실했던 바 하나님이 만들어 내신 피조물로서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과 의로운 것들이 복구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충만한 영광으로 채워지는 것이 결국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 생명을 주신 큰 목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인간성에서부터 출발하겠다는 것을 떠나 가지고 무슨 전문가로서의 논리만을 가지고 논한다는 것은 공소(空疎)한 궤변에 불과할 뿐이요 의미 없는 이론에 그치는 것입니다.” * 空 빌 공, 疎 멀 소. (글이나 말이)내용이 없고 짜이지 아니하여 허술함.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과 의로운 것들이 복구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충만한 영광으로 채워지게 하시옵소서.

진리를 구하는 바른 태도 7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7쪽

“인간성이 항상 중요한 문제이고 고귀하다는 것을 우리 주께서도 가르치셨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5장 산상보훈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해석하실 때, 네가 고귀한 인간성에 대해서 분노한다든지 모욕하는 말을 하든지 혹은 미련한 놈이라고 하든지 할 때 네가 받을 보수가 무엇인지 아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만일 미련한 놈이라고 해서 언어로라도 상대의 인간성 그 존재의 가치를 모욕하고 부인하면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귀한 인간성에 대해서 분노한다든지 모욕하는 말을 하든지 혹은 미련한 놈이라고 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진리를 구하는 바른 태도 8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8쪽

“주님은 완곡하게 사마리아 사람의 원만한 인간성을 보이시고 신학 이전에 인간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신 대도(大道)는 진리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서 아름답게 장성하라는 것이지 그런 것을 떠나서 귀만 높아지고 이론만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언제든지 기독교의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서 아름답게 장성하게 하시옵소서.

진리를 구하는 바른 태도 9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8쪽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서 살 때에 그 사람이 기독교의 말을 않고 그런 냄새를 안 풍겨도 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인의 품성, 그러한 인격이 아름답게 비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복음은 끝까지 말씀으로 구원의 도리를 전해야 하는 것이지 행동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행동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방불하는 인격과 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격과 인간성으로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할 때에 그것이 복음을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략)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사심, 그 속죄의 공효의 말씀이 들어가야 성신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말을 않고 그런 냄새를 안 풍겨도 그리스도인의 품성, 그러한 인격을 아름답게 비추게 하시옵소서.

기도
<교회에 대하여 3>, 제34강 교회의 통일성(3), 149쪽

“거룩하신 주님, 주님께서 저희에게 가르치시는 큰 도리를 바로 깨달아 알게 하시고, 그로써 성신님을 의지하여서 인간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그 거룩함을 나타내게 하시며 (중략) 바로 잘 배워 나가게 하시옵소서. (중략) 겸손하게 주님 앞에 늘 원만한 인간성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남에게 증시하게 하시고, 구원의 거룩한 도리의 말씀을 필요에 따라서 전파함으로써 아버님께서 저희를 도구로 쓰시는 일을 충실히 잘 감당해 가게 하시옵소서.”

1980년 7월 20일 주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경우 2, <교회에 대하여 4>, 제51강 성신을 좇아 행치 않음(2), 183쪽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두가 복잡하게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결국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 놓으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알 만한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지도 못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지적으로 흡수를 해서 그것에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