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게 가정을 주신 이유 1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197쪽
“가정은 안식하는 곳도 되고, 기쁨을 누리는 곳도 되고, 사랑을 서로 주고받는 장소도 되고, 또 아이들을 훈계하고 양육하고 교육하는 자리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창조된 이래로 지금까지 가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며 최고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런 목적으로 가정을 지어 주시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정신 차려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며 최고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런 목적으로 가정을 지어 주시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정신 차려서 생각하게 하옵소서.
인생에게 가정을 주신 이유 2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199쪽
“가정은 자기네끼리 행복을 건설하고 살라는 것이 최종의 목적이 아닙니다. 거기서 엄숙하게 개재(介在)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언약의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대로 해라. 그러면 ...’ 하는 이것이 언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 介 끼일 개.
가정에서 하나님의 언약과 명령을 따라 순종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인생에게 가정을 주신 이유 3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199쪽
“인류 역사의 상태는 가정을 단위로 끝나게 되어 있지 않고, 거기서부터 확대해서 더 큰 사회를 형성할 것을 표시한 것입니다. 사람은 가정에서 여러 가지 자양(滋養)을 얻지만 그 사람은 동시에 사회에 나가서 봉사하고 기능을 발휘해서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 앞에 기쁨을 드리는 중요한 사실인데 그것으로 역사의 성격을 만들어서 인류 사회에 바른 영향을 끼쳐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가정적인 자기뿐 아니라 사회적인 자아로서, 사회아(社會我)로서 행할 자기의 사명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 滋 불을 자, 養 기를 양. 몸의 영양이 됨.
가정에서 자양을 얻고 사회에 나가서 봉사하고 기능을 발휘해서 인류 사회에 바른 영향을 끼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지상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 1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01쪽
“하나님이 단순히 집안의 가장으로만 그들과 함께 거하신 것이 아니고, 또 언약하신 거룩한 예배의 대상으로 쉐키나 구름의 영광 가운데서 성소에만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시는 큰 목적은 또한 그가 친히 다스리는 사람들의 사회가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게 하며, 창조와 배포(排布)의 현실 위에서 지배하시고 통치하시는 모든 사실, 그리고 그와 같은 통치의 사실이 역사적으로 흘러갈 때 그 경륜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훌륭한가를 땅 위의 인간 속에서 보여 주시려고 한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알았던 것입니다.”
* 排 밀칠 배, 布 펼 포. 머리를 써서 일을 조리 있게 계획함.
가정이, 교회가, 그리고 사회가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역사적으로 흘러가며 그 경륜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훌륭한가를 땅 위의 인간 속에 드러내시옵소서.
지상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 2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02쪽
“예루살렘이라는 말뜻은 큰 임금이신 야훼가 거기서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인데, 교회가 새 예루살렘이다,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할 때는, 통치의 대권을 잡고 현실 생활 면까지라도 친히 다스리고 계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더 강조하는 말입니다.”
현실 생활에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게 하옵소서.
지상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 3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03쪽
“새 예루살렘이라고 할 때는 단순히 권능의 왕국의 통치권 행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보다는 하나님께서 독특하게 말씀하신 ‘은혜의 왕국’(regnum gratiae)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누누이 말한 천국이라는 말,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라 하는 표현으로 쓴 그 은혜의 왕국인 것입니다. 그것은 죽어서 가는 천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땅 위에서 현재 우리 주께서 친히 충만한 영광과 권능을 가지고 조금도 덜함이 없이 아주 만전(萬全)한 통치로써 왕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은혜의 왕국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의 왕국의 왕으로서 예수님의 통치 대권의 행사가 우선적으로 미치는 곳은 교회입니다.” * 萬全 : 조금도 허술함이 없이 아주 완전하거나 안전함.
우선적으로 교회에서 예수님의 통치를 받게 하옵소서.
지상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 4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04쪽
“교회라는 한 사회 형태를 형성하면 거기에는 그러한 사회 형태를 전제로 하여 다스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안 다스리고 가만 내버려두면 신체와 같이 유기적으로 저절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중략) 인간들이 모여 가지고 형성된 까닭에, 각각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독특성이라는 것들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제재도 하고 절제도 하고 조장도 하고 보충도 하는 통치의 사실이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가 새 예루살렘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통치의 사실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절제하며 통치를 받게 하옵소서.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07쪽
“나에게는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너를 불쌍히 여겨서 내가 이것을 값없이 입혀 준다’ 하시는 것을 가리켜 은혜라고 하는데 그런 은혜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은혜라고 해도 덮어놓고 아무라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반드시 어떤 반응이 있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반응이 일어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값없이 입혀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뿐 아니라, 그 은혜의 약속에 반응이 일어날 수 있게 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시내 산 언약과 행위 언약의 혼동 1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10쪽
“율법에 의해서 의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율법을 생명의 길로서 강요하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중략) 그래서 ‘너희가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면 잘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무엇을 강조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신권 정치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할 때 율법은 그 사람들이 지키고 살아야 할 규범으로서 주신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 얻을 것은 영원한 생명이나 민족의 구원이 아니라 민족의 번영이고 평안이고 땅 위에 있어서의 행복인 것입니다.”
율법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시내 산 언약과 행위 언약의 혼동 2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12쪽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네가 의거하고 살 법이 있어야 했는데 이 법은 천하에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한 법, 하나님의 의의 거룩한 속성을 그 사람들의 정도 안에서 할 수 있도록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율법은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율법이 이스라엘 사회에게 현세에서 그들이 의거하고 살아야 할 규범으로서 주어진 것을 마치 영생의 도리로서 주어진 것같이 뒤집어 놓는 것은 좋은 신학이 아닙니다.”
율법을 현세에서 의거하고 살아야 할 규범으로 삼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유의 성신을 좇아 사는 삶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14쪽
“새 언약의 내용인 자유는 개인 개인이 죄와 더불어 다투는 데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 즉 새 예루살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도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 가운데서도 자유롭게 살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통치하시려는 뜻을 분명히 보이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큰 통치 정신과 도리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라 하는 관점에서 논한 것이 바로 산상보훈입니다.”
새 예루살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육신의 소욕에 매이지 않고 죄책에서 자유롭게 살며 하나님의 큰 통치를 받아 성신을 좇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 1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16쪽
“하나님께서 성신님으로 거룩한 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나가게 사람의 속에서 각성과 자원의 심정을 일으키사 통치해 나가시는 이 하나님 나라의 사실을 새 예루살렘으로 가르치셨지만, 그러한 성신님의 역사 가운데 충만히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방황하고 자행자지할 때는 교회가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나에게 별로 없는 것임을 저희가 늘 명심하게 하옵소서.”
기도 2
<교회에 대하여 2>, 제23강 교회는 새 예루살렘(3), 216쪽
“저희를 건져내어 주시사 참으로 거룩한 나라의 시민답게 성신님의 충만한 역사가 모든 죄의 탐욕과 악의 굴레에서 풀어 주시는 은혜 가운데 저희가 확실히 들어가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이 저희의 모든 염려를 친히 맡으시고 주장하시는 속에 들어가서 저희가 기쁨을 가지고 살게 하시옵소서.”
1980년 4월 27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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